이날 강의는 '탈북인의 눈으로 본 2012년 북한'이라는 주제로 한반도평화번영연구소 김형덕 소장이 진행했다. 김 소장은 예전의 북한이 상명하달식의 수직적 권력구조를 가지고 정치·경제·문화·군사에 이르기까지 전 영역을 통치했다면, 김정은 체제의 북한은 기존의 권력구조를 유지하면서 조금씩 변화를 모색하는 단계라고 말했다.
특히 북한이 기존보다 개방적인 체제로 나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경제영역에서 북한이 현재 시장경제를 확대하는 데 치중하고 있고, 문화영역에서도 한국의 드라마와 같은 대중문화가 유입되면서 이전보다 다소 개방적인 사회로 변해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북한 최고 통치자와 만나야 북한의 변화를 유도할 수 있다
김형덕 소장은 1993년 탈북 이전의 북한과 현재의 북한을 정치·경제·군사·문화적 측면에서 비교 분석했다. 그는 "예전에 북한에서는 김일성, 김정일의 교시라고 하면 누구도 건드릴 수 없었다"며 "현재도 이러한 방식을 고수하고 있지만 예전만큼 모든 것을 가리는 체제는 아니다. 부분적으로나마 정치 영역이 공개되고 있다. 리설주의 등장이 바로 그런 사례"라고 말했다.
▲ 한반도평화아카데미 두 번째 강연자인 한반도평화번영연구소 김형덕 소장 ⓒ프레시안(이재호) |
이어 김 소장은 경제적인 부분의 변화를 이야기했다. 예전의 북한 경제가 국가자본주의 체제에서 모든 것을 통제하면서 간단한 생필품을 팔 수 있는 시장을 아주 적게나마 용인해줬지만, 지금은 이러한 시장이 확대되어 예전보다 시장경제로 한 발짝 더 나아갔다는 것이다.
경제적인 영역에서의 시장경제 확대는 문화적인 측면에도 영향을 끼쳤다. 김 소장에 따르면 예전에 북한에서는 영화나 예술작품에는 언제나 김일성과 김정일의 교시가 들어가 있었다. 어느 한 작품도 예외가 없었다. 영화의 경우 애니메이션을 제외한 모든 장르의 영화에 예외 없이 적용됐다. 그런데 이러한 문화를 고수하는 것이 더이상 힘들어졌다. 그는 이 변화가 "햇볕정책이 낳은 가장 큰 성과"라고 말했다.
김 소장은 "북한에는 김일성이나 김정일이 만나는 사람은 누구도 업신여길 수 없는 분위기가 있다. 김정일이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을 만났을 때 중국에 있는 북한 식당에 가면 한국 사람에게 대단히 친절하게 대했다. 이렇게 북한 주민들의 남한에 대한 생각이 변화하는 것"이라며 "남한에 대한 생각이 바뀌면서 남한 문화도 많이 유입되기 시작했다. 북한 당국에서도 딱히 막을 방법이 없으니 허용해 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우리 정부가 북한 주민을 변화시켜서 북한 전체의 변화를 유도하려면 북한의 최고 통치자와 많이 만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형덕 소장은 북한의 군사적 변화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자신이 탈북했던 1993년에도 북한 군대에는 영양실조에 걸린 허약한 군인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북한은 지속적으로 군사우선주의를 주장한다. 그런데 이것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고 전제한 뒤 "비용을 줄이고 효율적으로 군사체제를 마련하기 위해 미사일과 핵무기를 개발하려고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북한은 실패할 수밖에 없는 정권, 남한의 역할이 중요하다
김 소장은 북한을 실패할 수밖에 없는 정권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사람에게는 기본적으로 생존할 권리와 선택할 자유가 있어야 한다. 즉, 기본권이 보장돼야 하는데 북한은 기본적인 생존이 보장되지 않는 곳"이라고 말했다.
북한의 실패 이유에 대해 그는 북한 혼자 주체적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주체사상이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김 소장은 "현대 사회는 자체적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소련의 붕괴와 미국의 압박이 있었던 이후 주체사상만 고집하던 북한은 결국 고난의 행군 시기로 접어들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김형덕 소장은 체제유지조차 힘든 북한과 통일을 위해 남한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우리의 주도로 통일을 이루어나간다는 주인의식과 북한과 남한의 상호 존중이 중요하다"며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남한이 통일 문제를 장기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장기적 접근 방식에서 김 소장은 북·미 간, 남·북 간 평화협정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평화협정은 북한이 먼저 제안한 것인데, 북측은 협정을 체결하면 핵을 만들 명분이 없어진다. 평화협정을 체결하지 않으니까 오히려 북한에게 핵을 가질 명분을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소장은 우리가 북한이랑 멀어진 사이 중국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북한과 중국 국경을 답사한 결과 "한국이 북한과 멀어진 사이, 북한과 중국의 경제협력이 가속화되고 있다"며 "북한을 벼랑 끝으로 몰아가면 중국과의 경협이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북한은 생존을 위해 중국과의 경협에 적극적인 것"이라고 말했다.
▲ 2011년 6월에 열린 북중 합작 황금평 경제특구 착공식 ⓒ연합뉴스 |
김 소장의 지적대로 북·중 경협의 증가는 북한에 대한 주도권을 중국에 내주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 김 소장은 이럴 때일수록 남북문제를 전략적으로 풀어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북한은 남한이 자신의 체제에 개입하면서 체제가 위협당한다는 불안함을 갖고 있다. 이를 없애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북한을 설득해야 한다. 안 그래도 겁을 먹고 있는 정권에게 계속 위협만 하면 북한이 세계사회로 나오지 않고 계속 움츠러들 것이다. 이것은 북한의 변화에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북한이 변화할 가능성은 있나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에서 김 소장은 북한 정권의 안정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현재 북한 정권의 변동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그는 "북한은 조선노동당 일당제다. 권력을 놓고 정치 엘리트 간의 싸움이 벌어지기가 힘든 구조"라며 "체제의 생존 자체가 어려운 상황인데다가 정치 엘리트들은 조선노동당에 다 속해있기 때문에 반란의 가능성은 제로라고 본다"고 잘라 말했다.
▲ 김형덕 한반도평화번영연구소 소장 ⓒ프레시안(이재호) |
북한과 관련한 시사 이슈에 대한 질문도 이어졌다. 리영호 인민군 총참모장 경질을 타의가 아닌 것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는 청중의 질문에 김 소장은 "리영호는 때가 돼서 물러났다고 본다. 북한도 우리 정부와 마찬가지로 세대가 바뀌면 물러나는 것이 일반적"이라며 "물론 타의로 물러나는 사람도 있고 자의로 물러나는 사람도 있지만 리영호는 물러나야 할 사람이었다. 김정일의 사람이다"라고 설명했다.
천안함 사건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는 "사건 규명 과정을 지켜봤는데 심정적으로는 북한이 한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천안함 사건이 나기 5개월 전 남북의 교전이 있었다. 그때 북한군 30여 명이 죽었는데, 북한이 이 정도 피해를 당하고 가만히 있을 집단은 아닌 것 같기 때문이다"라고 이유를 들었다.
그런데 김 소장은 천안함이 누가 했는지를 캐는 것이 그렇게 큰 의미가 있다고 보진 않는다고 말했다. 그보다는 천안함으로 인해 끊어진 교류를 복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 사건 때문에 남북간 교류가 단절됐다. 이는 제2의 천안함, 연평도 사건을 불러올 수 있는 것"이라 말하며 남북의 지속적인 교류가 천안함과 같은 비극을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제3차 한반도평화아카데미 다음 강의는 10월 9일 조영서 전 북한평화자동차총회사 총사장이 '오라스콤과 평화자동차'라는 주제로 진행한다. 수강을 원하는 이들은 한반도평화포럼 홈페이지()에서 신청이 가능하다. 문의 02-707-06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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