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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 나, 그리고 우리가 싸운 인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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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 나, 그리고 우리가 싸운 인사동 팔레스타인과의 대화 <11> 수연에게
인사동에서 일어난 일은 내게 장소가 나의 의도와 인식을 벗어나버린 드문 경험이었습니다. 아마도 이건 내 상상이겠지만 나는 상상이 지식의 유효한 자원이라고 믿습니다. 때로는 장소가 갑자기 극단적으로 상반된 모습으로 변해버립니다. 친밀한 곳에서 낯선 곳으로, 친구에서 적으로, 안전한 곳에서 무시무시한 곳으로.

그 날 저녁 우리가 인사동에 처음 들어선 순간, 한 어여쁜 아가씨가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았습니다. 나는 그 응시를 호감이라고 해석했고 그 장면을 옆에서 본 친구 '바쉬르'에게 아랍어로 말했습니다. "저 두 눈 앞에서 시간이 멈춰버린다면 난 죽을 수도 있겠어."

나는 그 한 번의 눈길에 아주 빠져버릴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지만, 여기 한국에서 나를 이방인이 아니라 호감 가는 사람으로 봐주는 그런 눈길이 그리운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사랑과 고통의 불꽃이 내 눈 안에 꺼지지 않고 숨겨진 채 남았습니다. 그 저녁 인사동은 내가 한국에서 그리워했던 모든 것을 채워주었습니다. 모든 순간 인사동은 내게 새로운 보물을 보여주었습니다. 당신, 내게 '산적'1)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어 나의 시적 영혼을 깊이 건드린 김정환 시인, 술집, 아름다운 여주인, 그리고 모든 것이 매력적이었습니다.

그 정점에서 나는 사랑과 따스함, 어디서도 좀처럼 마음을 놓지 못하는 나 같은 사람으로서는 매우 드물게 안도감마저 느꼈습니다. 나는 내 자신에게 뛰어내릴 때 네 발을 딛는 고양이처럼 깨어 있으라고, 현실과 상상 사이를 용의주도하게 건너뛰어 한편으로는 쓰고 또 한편으로는 살아남으라고2) 중얼거렸습니다. 평소와 달리 나는 주의력을 완전히 풀어, 어떤 방패막도 걸치지 않고 행복감의 덫에 깊이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절대로 포기하지 않겠다고 스스로 맹세한 힘, 한국에 와 있는 여행의 외로움을 감추는 힘3)을 포기해 버렸습니다. 당신과 내가 언쟁을 하고 내가 숙소로 돌아가는 길을 못 찾아 헤매고 난 후에야 비로소, 나는 내가 인사동을 고향처럼 여긴 나머지 너무나 풀어져 버렸음을 실감했습니다.

나는 당황하고 낙심하여 온 밤을 걸었습니다. 골목은 미로 같았고 저절로 움직여 더 큰 미로가 되었습니다. 나는 마법에 걸린 물 위에 떠 있는 한 방울의 기름 같았습니다. 어느 골목으로 들어가거나 나가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었습니다. 방향을 가늠하기 위해 내가 어떤 지점이나 사물을 기준으로 삼으면, 그것들은 모래처럼 부스러져 사라져 버렸습니다. 새벽녘에야 나는 '팔레스타인을 잇는 다리'가 마련한 '팔레스타인 시 낭송회' 직전에 바쉬르와 내가 당신과 함께 편의점에서 맥주를 사 앉아서 마셨던 작은 노천극장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숙소로 가는 길을 찾았습니다.

나는 극도로 지쳐서 누구의 얼굴도 쳐다볼 수가 없었습니다. 길을 잃고 버려졌다는 느낌은 전날 저녁의 행복감과 정반대였습니다. 내가 그 장소를 더 이상 반기지 않자 장소는 자신의 모습을 부정적으로 바꿔버렸습니다. 그런데 한 밤을 헤맨 끝에 새벽녘에 당신과 맥주를 마셨던 노천극장을 본 순간, 지혜의 빛이 내 심장을 복구했으며 천천히 제 자리로 돌려놓았습니다. 숙소로 돌아가다 말고 나는 골목 모서리의 작은 마당에 웅크리고 누워, 두 손을 포개 베개 삼고 편안히 잠이 들었습니다. 깨어났을 때 인사동 전체가 내 집처럼 느껴졌습니다. 당신 때문에 길을 잃었지만 또 당신 덕분에 길을 찾았다는 생각에 나는 미소 지었습니다. 그 날 밤 내가 헤맨 건 분명히 당신을 화나게 한 데 대한 징벌이었을 겁니다. 나는 중얼거렸습니다.

"절정에 도달했을 때 겸손할지어다
햇빛은 서서히 밝아져서 오래 가나니
모든 보물은 액막이와 파수꾼이 있는 법
그러니 고분고분하고 경비원을 거스르지 말지니라."

그러나 인사동의 이야기와는 다른 결말도 있답니다. '고향'4) 텔 아비브에서 나는 끝내 고향을 느끼지 못 했습니다.
▲ 숫자와 공포 위에 새로 세워진 이스라엘 정착촌(위쪽)과 오래된 팔레스타인 마을(아래쪽) ⓒ 프레시안)

내 사랑하는 이가 사는, 적들의 수도

나는 그녀를 사랑했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니에마트이지만 나는 그녀를 리타5)라고 불렀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자신들의 정체성을 '유대계 팔레스타인인'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들은 400년 전에 알제리에서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해 왔습니다. 리타와 나는 같이 살기로 했으며, 점령한 자와 점령당한 자라는 이분법적인 구도 말고 또 다른 미래를 함께 만들어보고자 했습니다. 그녀가 라말라로 옮겨 오기 전에 마지막 주를 우리는 텔 아비브6)에서 같이 보냈습니다. 나는 거기 합법적으로 갈 수가 없기 때문에, 그녀는 자기 차 트렁크에 나를 숨겨야만 했습니다. 검문소를 지나고 나서야 나는 '인간'으로서 앞좌석으로 옮겨 왔으며, 라말라로부터 고작 몇 백 미터 떨어진 텔 아비브가 너무나 달라서 놀랐습니다. 우리의 사랑은 꽃 피었고, 나는 텔 아비브를 적의 수도라기보다는 내 사랑하는 이가 사는 곳으로 보려고 노력했습니다.

나는 실패했습니다. 군에 입대하러 떠나면서 연인과 작별 인사를 하는 이스라엘 젊은이들을 보면, 팔레스타인 도시와 거리에 들어와 있는 이스라엘 군인들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내 인간성을 찢어발기러 가기 때문에 나는 그들에게서 인간성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나는 히브리어를 말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언어와 화합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나로서는 그 언어를 수용소 아니면 검문소에서만 들어 왔으며, 양쪽 다에서 사람 취급을 받아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 도시를 편히 돌아다닐 수 없었습니다. 그 도시가 숫자7)와 공포 위에 세워졌으며, 군부대처럼 적대적인 노란 불빛으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나를 나가라고 떠밀기 때문에, 나는 그 도시를 사랑할 수 없었습니다. 처음에 나는 원래는 나의 장소였던 그곳에서 적들이 살고 있기 때문에, 장소가 나를 배신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와 그들, 그 장소에 대해 어렵사리 다시 평가해본 끝에야 나는 깨달았습니다. 장소 자체는 아무 죄가 없습니다. 모든 도시는 자연으로부터 강탈한 것입니다. 더군다나 텔 아비브는 두 번, 자연으로부터 그리고 원래의 거주자들로부터 강탈한 장소입니다. 거기서 나는 사물의 이면, 자연이 보내는 징조를 읽어야 함을 배웠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에 눈길을 주고 들리지 않는 것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습니다.

"강은 깊고 길은 길어
동이 터 오르니 나는 집에 가고 싶어

아침에 일어나면
동포의 혀가 묶여 있고
밤에 꿈을 꾸면
그들에게 마음을 중독 시키는 책이 주어진다네

강은 깊고 바다는 넓어
누가 우리에게 징조를 읽는 법을 가르쳐줄까

지구는 우리의 어머니
우리에게 빛을 껴안도록 가르치지
이제는 유일신이 주인
어머니는 영원한 밤을 고통스럽게 겪고 있어

당신이 우리의 귀를 막고
당신이 우리의 눈을 뽑고
당신이 우리의 혀를 자르고
거짓말을 우리에게 먹이네.

오, 신이여." 8)

필자 주

1) 고대 아랍에는 '살릭 Sa'aleeq'이라는 시인 전사의 전통이 있었다. 그들은 부유한 대상들을 털어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었다.

2) 글을 쓰려면 민감해야 하지만 생존을 위해서는 대개 감각을 약화시켜야 한다.

3) "나는 내 영혼을 파괴하는 슬픔을 억누르고 여행의 외로움을 감출 수 있다"(후세인 바르구티, '푸른 빛')

4) 나는 난민이다. 우리 집안은 1948년에 북부 팔레스타인에서 쫓겨났다.

5) 리타는 마흐무드 다르위시가 유대인 연인에게 붙인 이름이다. 여러 시편에서 그는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팔레스타인인과 유대인의 사랑 이야기를 다루었다.

6) 텔 아비브는 '풀 우거진 언덕'이라는 뜻인 아랍어 '탈 엘 라비 Tall El Rabee'의 히브리어 번역이다.

7) 텔 아비브의 친구를 방문하려면 여러 숫자로 이루어진 정보를 알아야만 한다. 거리의 번호, 건물 번지수, 층수, 호수 따위. 그래서 장소의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는다. 반면에 라말라를 생각하면 장소가 눈에 떠올라 그 장소에 대한 애정 또한 떠오른다.

8) 밴드 'Dead Can Dance'의 노래 '빼앗긴 자의 노래'

<'팔레스타인을 잇는 다리' 기획·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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