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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집 마흐푸즈는 세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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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집 마흐푸즈는 세계였다" 팔레스타인과의 대화 <19> 한 소설가의 힘
몇 주 전 이집트 작가 '나집 마흐푸즈'가 세상을 떴다. 나는 아버지를 위로하려고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는 억누른 슬픔이 배나오는 목소리로 말했다. "내게 나집 마흐푸즈는 온 세상에서 가장 신성한 인물이었다." 당신의 어머니인 나의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보다 아버지가 더 슬퍼한다고 나는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다시 한 번, 나집 마흐푸즈는 거대한 만(灣)이 되어 나와 가족들을 갈라놓았다.

나는 대가족의 막내로 태어났는데 가족 모두가 게걸스럽게 책을 읽어댔다. 그래서 내 어린 시절은 비참하도록 지루했다. 어머니가 동네의 '더러운 꼬마 놈팽이들'과 놀지 말라고 했기 때문에 나는 친구가 없었고, 집에서는 언니와 오빠들이 책에 코를 박고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네 살 무렵 어느 날, 나는 언니 하나가 거실을 가로지르다 발작하듯 웃음을 터뜨리는 꼴을 보았다. 나도 웃고 싶어서 언니에게 웃는 이유를 묻자, 언니는 웃음을 멈추고 나를 내려다보더니 대답했다. 전에 책에서 읽은 것이 생각났을 뿐이라고. 그리고 언니는 방에서 나가버렸다.
▲ ⓒ란다 샤쓰

일찍부터 나는 내가 형제자매들과 웃음, 꿈, 그들의 세상을 나눌 유일한 방법인 읽기를 해낼 능력이 없음을 뼈아프게 의식해야만 했다. 그 소통의 열쇠를 얻기까지, 나는 자신이 가족과 어울리지 못하고 소외되었다는 느낌에 시달렸다. 그러나 마침내 내가 글을 읽을 수 있는 날이 왔다.

책을 고를 만한 지식이 없는 나로서는 서재 책장의 제일 아래 칸에서 시작하기로 했다. 책장은 다섯 칸이었으며,
내게는 한 칸마다 2년 치 읽을거리는 돼보였다. 첫 번째 칸에는 러시아,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 등등의 세계 고전 문학이 꽂혀 있었다. 그 칸을 다 읽고 두 번째 칸을 읽을 차례였는데, 거기 있는 거의 모든 책들의 저자 이름이 마흐푸즈였다.

뭐, 나는 생각했다, 그는 단지 한 명의 작가니까 내가 그를 건너뛰면 언니, 오빠들하고의 격차를 2년은 줄일 수 있을 거야. 내가 1974년이 아니라 72년에 태어난 것처럼 말이지. 꽤나 어려운 결정이었지만 내게는 문학에 대한 도취보다 언니, 오빠들하고 친해지려는 열망이 더 컸다. 다섯 번째 칸까지 다 읽고 마흐푸즈의 책들로 돌아오면 될 터였다. 내 중대한 결정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나는 세 번째 칸으로 손을 뻗어 첫 번째 책을 뽑아서는 읽기 시작했다.
▲ ⓒ란다 샤쓰

어느 겨울, 카이로로 여행을 가게 된 아버지는 가족들을 모아놓고 이집트에서 사다줄 선물 목록을 만들기 시작했다. 한 손에는 펜을, 다른 손에는 종이를 들고서 그는 우리 각자에서 뭘 갖고 싶은지 물은 후 요구사항들을 주의 깊게 적어 내려갔다. "아빠, 마흐푸즈의 이런 저런 책이요." "마흐푸즈의 이 책 저 책을 부탁해요, 아버지." 언니 둘은 서로 자기가 먼저 말했다고 다투기까지 했는데 왜냐하면 둘 다 같은 작가, 마흐푸즈의 같은 책을 원했으며 우리 집에서는 책을 사달라고 말한 사람에게 제일 먼저 읽을 권리가 주어지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둘 다에게 책 한권씩 사다주겠다고 약속함으로써 위기를 돌파했다. 나는, 반면에,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내 차례가 왔을 때 나는 잡지에서 기사를 읽은 적이 있는 다른 작가의 책을 부탁했다. 그러면서 내 안에서 이 마흐푸즈에 대한 깊은 원망과 그의 작품을 향한 적개심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나집 마흐푸즈, 현대 아랍 소설의 창시자로 일컬어지며 팔레스타인인들만이 아니라 모든 아랍인들의 가슴과 머리 한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이 작가.

1912년에 카이로에서 태어난 그는 그 도시를 벗어난 적이 거의 없다. 본인이 그렇고, 그의 소설 또한 그렇다. 카이로의 별명은 원래 '우주의 어머니'였는데 마흐푸즈의 글로 인해 '모든 아랍 문학의 어머니'로 바뀌었다. 칸 알 칼릴리로부터 제칵 알 메닥까지, 끊임없는 욕망과 유혹, 사랑, 공포에 울고 웃는 사람들로 북적대는 카이로의 그 거리를 그로부터 멀리 떨어진 마을에 살며, 마흐푸즈처럼, 제 고향을 떠나 본 적 없는 모든 이들도 함께 경험했다.
▲ ⓒ란다 샤쓰

마흐푸즈의 문학이 집으로 생생한 카이로의 축소판을 가져다줄진대, 누가 그 도시까지 피곤한 여행을 감내할 필요가 있을까. 카이로와 그 안의 삶에 대한 마흐푸즈의 글은 그 도시를 수많은 이들의 고향으로 만들었으며 그 중에는 나의 형제자매들도 포함됐다. 그들은 실제의 우리 동네, 카이로에서 먼 작은 마을이 아니라 마흐푸즈의 세계 속에 살았다. 그 세계는 너무나 자랑스러워서 내 유치한 실수를 고백하기에는 나는 너무 부끄러웠다. 그러므로 나는 그 세계에 들어갈 수 없었다.

2003년 여름까지 나는 마흐푸즈의 글을 하나도 읽지 않았다. 그때 나는 파리에 있었는데 들고 간 아랍어 책을 다 읽어버려 읽을거리가 필요했다. 할 수 없이 내게 숙소를 빌려주고 외국에 간 친구의 서재를 뒤지기 시작했다. 그의 책들은 대개 불어나 영어이고 두세 권만 아랍어였으며, 그 중 한권이 마흐푸즈의 '갈망의 성'이었다.

두려워 떨면서 나는 그 책을 뽑아 들었다. 내가 마흐푸즈의 작품을 읽지 않고 살아 온 그 오랜 세월의 무게가, 가족들이 그에게 바친 숭배가 내 두 손바닥에 얹혀졌다. "넌 스물아홉 살이야." 나는 혼잣말을 했다. "그때 이후로 충분한 시간이 흘렀잖아. 이제 읽을 때가 된 거야."

나는 읽기 시작했으며 그 책을 다 읽을 때까지 멈출 수가 없었다. 내가 책을 내려놓을 때 텅 빈 듯한 느낌이 나를 휩쓸고 지나갔다. "맙소사! 나집 마흐푸즈는 굉장한 작가야!"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돌아다녔다. 모두들 내가 미쳤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당연히 그는 굉장하지." 그들은 말했다. "새삼스럽게 왜 그래?"

<팔레스타인을 잇는 다리 (www.palbridge.org) 기획·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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