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무심코 가습기에 넣었던 살균제 때문에 소중한 아들딸, 아내, 남편을 잃고 남아 있는 가족도 건강이 만신창이가 된 피해자는 여전히 고통 속에서 신음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제조업체는 사건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피해자에게 사과 한마디 없이 시종일관 당당하다.
정부도 "가습기 살균제 사용을 자제하라"는 권고 수준의 대책만 내놓은 채 피해자를 외면하고 있다. 1994년부터 판매되기 시작한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국민은 약 874만 명(전체 국민의 18.2퍼센트)에 달한다. 실제 피해 사례가 몇 건인지는 파악조차 할 수 없는 규모인 것이다.
<프레시안>은 모두가 외면한 채 신음하는 피해자를 만나 피눈물 나는 '그들만의 싸움'을 들었다. <편집자주>
지난 1월 28일 오후, 부산 시내 한 아파트 단지의 카페에서 만난 안성우 씨는 죽은 아내의 휴대전화를 들고 있었다.
이 휴대전화는 지난 2011년 1월 사망하기 전까지 아내가 사용하던 것이다. 아내의 번호가 없어지는 게 싫어서 버리지 않은 휴대전화의 바탕 화면에는 안 씨가 찍은 그녀의 사진이 있었다. 갑작스레 병원에 실려 간 뒤 7일 만에 사망한 그녀의 건강한 모습이 담긴 마지막 사진이다. 아내의 뱃속에는 7개월 아기가 있었다.
안성우 씨는 아내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쑥스럽게 덧붙였다.
"실물보다 좀 못 나온 것 같으니 모자이크 해줘요. 뭐 다 제 눈에 안경이지만…."
안성우 씨의 아내는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낳은 78명의 사망자 중 한 명이다. 사건 발생 초기에 열렬하게 사건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던 피해자의 상당수는 살균제 제조업체 측의 당당한 태도와 정부의 무관심에 지쳤다. 그러나 그는 예외다. "시간이 지날수록 지쳐서 다들 나가떨어지는 게 그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니까요." '그 사람들'이 누구인지 굳이 그에게 되묻지 않았다.
▲ 안성우 씨가 사용하는 휴대전화. 안성우 씨와 인터뷰한 1월 28일은 안 씨 부인의 생일을 110일 앞둔 날이었다. 액정 화면의 'D-110'이란 글자가 선명하다. ⓒ프레시안(남빛나라) |
정부가 하는 말 "억울하면 개별적으로 소송해!"
-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햇수로 벌써 3년째입니다. 이렇게 긴 싸움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나요?
"주위 사람들이 오히려 낙관적이었죠. 다들 '저렇게 떠드는데 해결되지 않겠느냐" 이렇게 말하더군요. 그런데 나도 사회생활해 본 사람이거든요. 선례를 봤을 때 금방 끝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사고가 발생하면 일단은 부인하고 은폐하는 게 한국 기업 생리잖아요? 삼성 반도체 백혈병 피해자를 보면서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리라는 것도 짐작했고요."
- 지난해 말 국무총리실이 정부 차원의 테스크포스(TF)팀을 꾸리겠다고 했었는데 결국 흐지부지됐습니다.
"뭔가 할 것처럼 시늉만 내다가 결국은 안 하더군요. 기막힌 일도 있었습니다. 당시 국무총리실에 찾아갔던 카페('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모임') 사람들 말로는, 한 공무원이 이렇게 말했데요. '억울하면 개별적으로 소송하시라' 그 말을 듣고서 정부에 가장 크게 실망했어요. 아직도 분노를 느낍니다."
안성우 씨는 현재 사용했던 '세퓨 가습기 살균제'의 제조업체(세퓨)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이 가습기 살균제는 지난 2011년 11월 △옥시싹싹 New 가습기 당번(한빛화학) △와이즐렉 가습기 살균제(용마산업사) △홈플러스 가습기 청정제(용마산업사) △아토오가닉 가습기 살균제(에스겔화장품) △가습기 클린업(글로엔엠)과 함께 정부의 강제 수거 명령을 받았다.
- 소송은 어느 정도 진행된 상태인가요?
"진척이 없어요. 검찰에서 아직 제조업체를 기소하지 않고 조사만 한 단계입니다. 제가 무슨 큰 보상을 바라고 소송을 하는 게 아니에요. 들리는 얘기로는 세퓨가 사업을 접었다고 하더군요. 단지 내 가족을 죽인 사람들이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고 있으니까 그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생각뿐이에요."
입원 7일 만에 사망한 아내와 아기
안성우 씨 가족은 부인이 임신 3개월이던 2010년 10월경부터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했다. 사용한 지 3개월 만에 부인이 감기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미열이 올랐고 자꾸 가래가 나왔다. 숨쉬기도 힘들어 했다. 그런데 원래 임부의 체온은 보통 사람의 체온보다 약간 높다지 않은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혹시나 해서 찾아간 산부인과에서도 엄마와 아기 모두 괜찮다고 했다.
- 언제부터 증상이 눈에 띄기 시작했나요?
"2010년 11월부터인가 호흡이 가쁘다는 말을 부쩍 자주 했어요. 첫째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고 오면 숨이 가쁘다고 했습니다. 아내가 "첫째 때보다 더 힘드네" 하고 말했고 저도 그러려니 했어요. 하도 힘들어할 때는 병원에서 2시간 정도 수액을 맞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듬해(2011년) 새해 첫날 갑자기 상태가 악화됐어요.
원래 그날 부산에 있는 제 친가에 저녁 늦게 내려갈 계획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우리 가족이 살고 있던 충청북도 옥천의 집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어요. 집사람은 그날도 갑갑하다고 거실에서, 나는 첫째 아이와 안방에서 잤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나를 부르는 소리가 엄청나게 크게 들리더군요.
허겁지겁 거실로 뛰어나갔더니 아내가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 헐떡이고 있었어요. 급하게 119를 불러서 안산 고려대학교 안산 병원으로 갔습니다. 그날 엑스레이를 찍고 심장 초음파까지 했는데 아무 이상이 없었어요. 일반 병실로 옮겼죠. 아내는 산소마스크를 끼고 있었지만 나와 대화도 하는 등 상태도 괜찮아 보였고요."
- 병원에서 그렇게 아무 이상이 없다고 했는데 갑자기 상태가 악화되었나요?
"일반 병실로 옮기고 2, 3일 후에 갑자기 청색증에 호흡 곤란이 와서 중환자실로 옮겼어요. 그런데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폐가 완전히 망가졌다더군요. 처음 실려 온 날만 해도 아무 이상이 없었는데 고작 2, 3일 사이에 눈에 보일 정도로 폐가 심하게 손상된 거예요. 원래 CT를 찍어 볼 계획이었는데 중환자실로 들어가 버리는 바람에 찍지도 못했고….
그나마 중환자실에도 4일밖에 못 있었어요. 그렇게 병원 들어간 지 7일 만에 아내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뱃속 아기와 함께요."
안성우 씨의 아내는 중환자실로 옮겨질 때부터 사망할 때까지 수면 유도제에 취한 상태였다. 병원에 들어간 후 정신이 맑았던 순간은 일반실에 있던 며칠뿐이라 그는 아내와 마지막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아내가 위독하자 뱃속 아기를 제왕절개로 강제 출산했지만, 호흡과 맥박이 멎어서 살려내지 못했다.
▲안성우 씨. ⓒ프레시안(남빛나라) |
"가습기 살균제가 원인이었어? 정말이요?"
- 2, 3일 사이에 상태가 급격하게 악화되었는데 그때까지도 의사는 원인을 찾지 못했나요?
"중환자실로 들어갔을 때 의사가 '두 달에 한 번꼴로 임신부가 이런 증세로 실려 오는데 원인을 모르겠다. 아무튼 생존율은 1퍼센트도 안 된다' 이렇게 말하더군요.
- 의사들이 비슷한 증세를 자주 봤다면, 그런 환자 중 가습기 살균제의 피해자가 상당수 포함돼있을 가능성도 있지 않나요?
"맞아요. 게다가 12월이면 건조한 겨울철이라 가습기를 한창 많이 사용할 때잖아요. 하지만 처음에는 저도 가습기 때문에 아내가 저 지경이 되었다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어요. 처음에는 패혈증을 의심했습니다.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니 병원에서 패혈증에 걸릴 수 있다기에 '혹시 그거 아닌가' 하고 생각했죠."
- 패혈증까지 생각하면서도 가습기 살균제가 원인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군요.
"네, 어느 누가 집안의 가습기가 바로 살상무기라고 생각할 수 있겠어요. 어느 정도였느냐면…아내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 제 어머니가 큰 아이를 봐주려고 부산 집으로 데려갈 때 이야기입니다. 내가 큰 애 짐을 챙기면서 어머니에게 '큰 애가 감기에 걸린 것 같으니까 가습기 잘 틀어주세요' 이렇게 당부하면서 바로 그 가습기 살균제를 짐 가방에 넣어줬어요.
만약 언론에서 가습기 살균제가 임신부 연쇄 죽음의 원인이라고 보도하지 않았다면 영원히 몰랐을 거예요. 가습기 살균제가 원인이라고는 절대로 생각하지 못했을 거라고요. 어쩌면 가습기 살균제에 아내와 아기를 잃은 것도 모른 채, 이번 겨울에도 그것을 넣은 가습기를 가동하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안성우 씨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가습기 살균제가 원인이라고 생각을 하지 못한 정도가 아니라, 아내가 감기 증상이 있다고 해서 오히려 더 가습기를 틀었어요."
안 씨의 아내는 그렇게 가습기 살균제에 포함된 독성 화학 물질을 입으로 모조리 들이마셨다. 그리고 그 화학 물질은 그녀의 폐를 서서히 망가뜨렸다.
- 가습기 살균제가 원인이라는 사실은 어떻게 알았나요? 처음 사실을 알았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지난 2011년 4월, 서울아산병원에 호흡 곤란 증세가 보이는 임산부들이 한꺼번에 몰려서 '미확인 바이러스 폐질환' 뉴스가 대대적으로 보도가 되었잖아요? 그때는 텔레비전을 바로 꺼버렸습니다. 아내 생각이 나서 도저히 못 보겠더군요. 그해 여름에 '미확인 바이러스 폐질환의 원인은 가습기 살균제'라고 한창 뉴스에 나올 때야 방송을 보고 알았어요.
얼마나 황당했는지 몰라요. 그런 살상 무기가 바로 내 집에서 두 사람을 죽인 거예요. 아까도 얘기했지만, 그런 사실이 밝혀지지 않으면 지금도 가습기 살균제를 쓰고 있겠죠."
안성우 씨는 아내에게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하자고 제안했다는 죄책감에 더욱 괴롭다.
"사무실에서 동료들이 책상마다 가습기를 틀곤 했어요, 2007년쯤에 한 동료가 가습기 살균제를 사 와서 다들 나눠 썼었죠. 편리하더군요. 그래서 내가 아내에게 먼저 가습기 살균제를 써보자고 했습니다. 내가 쓰자고 하지 않았으면 아내는 절대 가습기도, 가습기 살균제도 쓰지 않았을 거예요. 아내는 워낙에 성격이 깔끔해서 집이 건조하면 빨래를 널었지 가습기는 쓰지 않았습니다."
"5살 큰 아이, 텔레비전에 엄마와 아이 나오면…"
- 다섯 살 큰 아이도 간질성 폐렴 진단을 받았다고 들었습니다.
"간질성 폐렴 진단을 받긴 했지만 어린이집에 다니는 등 일상생활에는 문제가 없는 상태예요. 하지만 한동안 폐활량이 또래 아이보다 처지다가 이제 겨우 정상으로 돌아왔어요. 서울아산병원에서 석 달마다 계속 CT를 찍고 폐활량 검사를 했거든요. 내년(2014년) 11월까지는 별다른 검사 없이 지금 상태를 지켜볼 생각입니다.
그런데 간질성 폐렴이 쉽게 낫는 병이 아니래요. 병 자체는 계속 짊어지고 자라겠죠. 훗날 이 병 때문에 직업 선택에 제한이 있을지 걱정입니다. 게다가 이런 사건의 피해자가 아직 없어서 나중에 어떤 부작용이 나타날지도 걱정이 됩니다. 혹시 의사들이 미처 인지하지 못한 장애가 있을 수도 있잖아요?
실제로 폐활량은 괜찮아졌지만 아이가 감기 증세는 늘 달고 살아요. 의사도 "이 아이처럼 안 낫는 애는 처음 봤다" 이렇게 걱정을 합니다. 괜찮은 것 같아서 2, 3일 약을 안 먹으면 금방 도지거든요. 중이염도 너무 심해서 심지어 하루에 두 번씩 이비인후과에 데리고 가야 할 때도 있어요. 아픈 아이만 보면 안쓰러워요."
- 아이는 이 사건을 잘 받아들이고 있나요?
"전문가에게 물어봤더니 이제 엄마를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아이에게 알려주는 편이 아이 정서에 더 좋다고 해서 그대로 말해줬어요. 사람들이 엄마에 대해 물어보면 아이는 "하늘나라에 갔다"고 답합니다. 엄마 보고 싶단 말을 자주 하지는 않지만 저라고 왜 안 보고 싶겠어요. 텔레비전에서 엄마가 아이를 달래는 장면이 나오면 갑자기 제 품으로 안깁니다."
잠시 무거운 침묵이 흐르고, 안성우 씨는 큰 한숨을 내쉬었다. 손에는 아내와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아기의 사진이 담긴 휴대전화를 여전히 꼭 쥐고 있었다. 그는 "이제 큰 애 병원에 데리고 갈 시간"이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 누가 이 가족의 불행을 달래줄 것인가?
<프레시안>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의 제보를 받습니다. 피해 상황, 소송 상황, 정부의 대응 탓에 고통을 겪은 이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기다립니다. (이메일 : [email protect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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