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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를 '천안함의 덫'에서 구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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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를 '천안함의 덫'에서 구출하라 [박근혜 시대 개막·④]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순항하려면
"최근 북한의 핵실험은 민족의 생존과 미래에 대한 도전이며 그 최대 피해자는 바로 북한이 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북한은 하루빨리 핵을 내려놓고 평화와 공동발전의 길로 나오기 바랍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밝힌 '북핵 불용' 원칙은 단호했다. 북한의 3차 핵실험이 이전의 1, 2차 핵실험과는 질적으로 다른 위협이라는 인식이다. 박 대통령이 언급했듯이 한반도의 안보상황은 분명 '엄중'하다. 이는 곧 박 대통령의 공약인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취임과 동시에 큰 시험대에 올랐음을 의미한다.

▲ 지난 25일에 열린 제 18대 대통령 취임식 ⓒ프레시안(최형락)

"국민의 생명과 대한민국의 안전을 위협하는 그 어떤 행위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는 박 대통령의 발언은 다분히 안보 보수층을 겨냥한 포석이다. <뉴욕타임스>는 "보수를 기반으로 한 그녀가 대북접근을 어느 정도까지 깊숙히 할 수 있을지는 회의감이 있다"고 박 대통령의 취임사를 조명했다.

이로써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양 축인 '억제'와 '대화'의 균형추는 무너진 것일까? 북한은 박 대통령의 취임한 지 나흘이 지난 지금까지 이렇다할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 대선 기간에 실명을 들어 박 대통령을 비난했던 것과 비교해보면, 북한은 당분간 박근혜 정부를 지켜보자는 관망으로 풀이된다. 실질적인 위협이라기보다는 남한의 지형을 고려한 정치적 메시지로 보고 있다는 뜻이다. 박 대통령도 "북한이 국제사회의 규범을 준수하고 올바른 선택을 해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진전될 수 있기를 바란다"며 '대화' 의지를 놓지 않았다.

관심은 박근혜 정부가 향후 북한에 보낼 실질적인 메시지다. 그에 따라 남북관계 5년의 큰 방향이 결정될 수도 있다. 이명박 정부가 시작할 때도 북한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다가 이 전 대통령이 북한 인권 문제를 제기하면서 격하게 반발했고 이후 남북관계는 급속도로 냉각되기 시작했다.

석연찮은 '최대석 사퇴', 그 후 외교안보 라인은

외교적으로도 박근혜 정부가 강경론으로 기울 것이라는 단정은 아직 이르다. 지난 26일 박 대통령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경축사절단장으로 방한한 톰 도닐론 미 국가안보보좌관을 접견한 자리에서 "북한의 핵무장은 결코 용인할 수 없으며, 북한의 도발에 대해 한·미 공조를 바탕으로 국제사회가 단호히 대응해 나가야 한다"는 원칙론에 머물렀다.

북한 핵실험의 국제적 파장이 가라앉지 않은 현재로선 박근혜 정부가 당장 북한에 유화적인 제스처를 보내기는 어렵다.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은 북한 3차 핵실험 직후 "유엔 대북제재 결의안 2087호를 강화하는 등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흐름을 막기는 힘들다. 국제여론에 떠밀려서도 안 되지만 그렇다고 우리만 역류할 수도 없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북미대화의 국면이 열리는 해빙기에도 현재의 강경론이 지속될 경우 또다시 북한의 '통미봉남(通美封南)' 전술을 넋 놓고 쳐다보기만 하는 신세가 될 수도 있다. 정 전 장관은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에 참여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북미관계 대화 국면이 열릴 때를 대비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핵실험 정국에서 이른바 '안보'만 강조한 채 다른 여지를 두지 않으면 북핵 문제가 대화의 국면으로 전환되는 시기를 대비할 수 없다는 우려다.

결국 박근혜 정부가 북핵문제에서 출구전략을 찾고 북한에 대한 레버리지를 회복하려면 미국과 중국에 대한 외교적 노력을 경주하는 한편 남북 간에 다양한 방식의 대화 채널을 갖는 게 필수적이라는 뜻이다.

그럼에도 새 정부 출범을 전후해 쏟아지는 우려는 박근혜 정부 외교안보 라인의 성향에 기인한 탓이 크다. 외교·안보 분야의 컨트롤 타워 역할을 맡을 국가안보실장에 대북 강경론자로 손꼽히는 김장수 전 국방장관이 내정되면서 새 정부의 대북 정책 방점이 대화보다는 제재, 억제에 방점이 찍혔다는 평가가 중론이다.

김 내정자는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이건 뭐건 모든 것은 튼튼한 안보를 기본으로 해서 추진한다는 것이 기본"이라는 입장을 밝히며 유화 정책보다는 안보 강화에 초점을 맞출 뜻을 내비쳤다. 또 그는 지난 21일 인수위 국정과제 발표 뒤 국방예산 증액과 관련 "북한의 3차 핵실험에 따라 킬체인(미사일 타격체계) 구축이나 억지력 제고 등을 충족시킬 예산은 시기를 당겨서라도 추가 확보돼야 한다"며 대북 억지력 강화에 무게 중심을 싣고 있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여기에 지난 1월 최대석 인수위원의 갑작스러운 사퇴도 새 정부에서 대북 강경론이 힘을 얻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최대석 전 위원은 북한과 대화를 중시하는 이른바 '온건파'로 분류된다. 최 전 위원은 5.24 조치 해제와 대북지원 필요성 등을 토론회 자리 등에서 공공연히 밝힌 바 있다. 그의 사퇴로 새 정부 내 강·온의 균형이 깨졌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 국가안보실장으로 내정된 인수위원회 외교·국방·통일분과간사 김장수 위원(왼쪽)과 박근혜 대통령 ⓒ뉴시스

'천안함의 덫'에서 빠져나오려면

국내의 정치지형도 박 대통령이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순항을 예상하기 어려운 조건이다.

보수 세력은 천안함 폭침에 대한 사과 없이, 5.24조치 해제 없이 북한과 대화 물꼬를 트는 것에 대한 반감이 있다. 이런 반감은 국내 정치상황과 맞물려 대통령에게 강한 압박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이명박 정부가 '천안함의 덫'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까닭이기도 하다. 북핵 국면이 국제사회의 대화 분위기로 전환되는 시점에 대한 대비 없이 국내 정치에 매몰될 경우, 박근혜 정부도 한반도 문제에 대한 어떤 지렛대로 갖지 못한 채 이명박 정부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우려다.

이와 더불어 북핵 문제를 군사적 억제의 방식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목소리가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는 것도 박 대통령이 전향적인 대북 정책을 취하는 데 있어 어려움을 주는 요인 중 하나다. 여권 일각에서는 미국 전술핵의 한반도 배치, 전시작전권 전환 및 한미연합사 해체시기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주장과 더불어 핵무장론까지 공공연하게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박근혜 의지가 남북관계 핵심 변수

이처럼 박 대통령의 정치 기반이나 외교·안보 라인의 인선을 보면 박근혜 정부의 대북 접근법이 제재 일변도의 무리수로 기울 가능성은 상존한다. 그러나 남북문제에 있어 박 대통령이 가진 정치적 자산에 주목하는 기대도 있다.

우선 박정희 전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은 1972년 최초의 남북 간 공동 성명인 7.4 남북 공동성명에 합의한 바 있다. 이 성명을 두고 남북이 당시 조성됐던 냉전 해빙의 분위기를 각자의 체제 유지를 위한 기회로 이용하려는 의도가 있었다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남과 북이 분단 이후 최초로 통일과 관련한 합의를 이루고 그 사항을 발표했다는 역사적 의미는 부정하기 힘들다. 박 대통령 본인도 2002년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면담한 바 있다.

박 대통령이 이런 자산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남북관계는 경색이냐 유화냐의 향방이 갈릴 것으로 보인다. 5.24 조치 해제 없이, 천안함 폭침에 대한 북한의 사과 없이 대화를 진전시킬 수 없다는 보수 진영의 반감을 설득해내고, '신뢰 프로세스'를 가동시켜 북핵 문제의 국면 전환을 이끌어 내는 핵심적 위치에 박 대통령이 서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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