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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은 토니 블레어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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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은 토니 블레어가 되어야 한다" [문정인 강연 전문] "평화 위해서라면 누구라도 만날 수 있어야"
국제정치학자이자 한반도 문제 전략가인 문정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22일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가 마련한 조찬강연의 연사로 나왔다.

문정인 교수는 이날 강연에서 북한의 연평도 포격 사건과 남측의 해상사격훈련을 둘러싼 한반도 정세를 분석하고, 이명박 정부의 정책에 대한 제언을 내놨다.

문 교수는 특히 현 국면에서 '카드'를 가장 많이 쥐고 있는 인물이 이명박 대통령이라고 분석하고, 2003년 리비아의 핵개발 포기 과정에서 결정적인 중재자 역할을 했던 토니 블레어 당시 영국 총리의 길을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이날 강연 전문이다. <편집자>

주최측에서 '한반도 평화와 남북관계의 새로운 모색'이란 제목을 줬는데 어려운 제목이다. 한반도의 평화가 어렵다는 분위기가 만연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번 연평도 해상사격훈련은 상당히 다행스럽게 끝났다고 생각한다. 한국 정부 입장에서는 강한 억지력과 응징의 의지를 보여줬다. 북한은 북한대로 얻은 게 있다. 우선 북방한계선(NLL)을 중심으로 한 서해 지역이 분쟁지역이란 걸 국제적으로 부각할 수 있었다. 또 중국과 러시아가 강조했던 쌍방의 자제라는 측면에서, 북한이 (대응 행동을) 자제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오히려 남측이 더 도발적이고 북측이 자제한다는 인상을 <CNN> 같은 매체를 통해 널리 알렸다.

그런 점에서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까지 갔지만 우리 정부가 이번 기회를 잘 활용하면 새로운 가능성이 열릴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쌍방이 윈윈했다고 볼 수 있으니까. 앞으로 몇 개월 사이 이 모멘텀을 잘 활용해서 평화의 길로 나아가면 모든 게 좋아지겠고, 다시 주고 받는 싸움으로 나타나면 우리 안보와 평화에 상당한 위협이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지난 11월 G20 정상회의를 통해 우리의 국가 브랜드 이미지가 크게 향상됐는데 이번 연평도 사건이 이를 완전히 무효화한 것 아니냐하는 느낌이 든다. 여기서 평화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느낄 수 있다.

서해 분쟁 해결 없이 평화 없다

현 시점에서 한반도 평화의 핵심은 서해 문제, 즉 서해 5개 도서와 북방한계선 문제다. 이 문제를 잘 해소해야 한다. 우리 정부는 백령도에서 대청도, 소청도, 연평도로 이어지는 기선이 우리 영해라는 걸 분명히 해왔다. 그러나 북방한계선 문제가 역사적으로 어떻게 변천되어 왔는가를 다시 한 번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 특히 북측의 주장에도 귀를 기울이면서 새로운 화해와 평화 공존의 가능성을 찾아야 한다. 각기 자신들의 영해라고 주장하는 상황에서 대화를 안 하고 계속 군사적으로 대치해나가면 위기의 고조는 물론 한반도에 전면전의 가능성을 배제 할 수 없기 때문이다.

1953년 8월 클라크 당시 유엔군사령관은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휴전협정 체결 거부하고 남측에서 북에 대해 공격적으로 나오니까 그걸 통제해야겠다고 생각해서 북방한계선 (NLL)이라는 일종의 통제선을 그었다. 해양경계선 개념은 아니었고, 작전상의 통제선이었다. 당시 해군력이 약했던 북한으로서는 이를 내심 반겼지만 합의를 해 준 것은 아니다. 그리고 휴전협정에 따르면 서해 5개 도서를 우리 측 영토로 귀속되도록 했는데 이 섬들 사이에 선을 긋지는 않았고, 국제해양법에 의거해 각 섬의 3해리 지역을 남쪽의 영해로 보았다. 일종의 면 개념이다. 때문에 북쪽은 우리 측 영해가 아닌 해상을 일종의 공해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시간이 가면서 남북관계가 경색되고 냉전 구도가 심화되면서 우리쪽에서는 NLL을 하나의 경계선으로 봤고, 그 경계선은 이내 봉쇄선이 돼버렸다. 북측 선박이 해주에서 공해에 접근하려면 웅진반도, 장산곶까지 북측으로 올라가야 하는 상황이 됐다. 그러니 북쪽으로서는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또 1973년부터 국제해양법 회의가 시작됐는데 북한이 전통적으로 주장했던 12해리 영해 조항이 국제해양법에서 받아들여지면서 북한이 지속적으로 문제 제기를 해왔다. 1973년 한 해만도 40차례 이상 북측 선박이 NLL 밑으로 내려오면서 계속 문제가 되다가, 1999년과 2002년에 두 차례의 연평해전까지 벌어지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김대중 정부 때는 2002년 교전 이후 남북 해군 간에 핫라인을 가설해서 무력 충돌의 재발을 막는 조치를 취했다. 그러다가 2007년 10월 4일 남북 정상회담에서 채택된 정상선언 5항에서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라는 걸 만들었다. 해주항을 경제 특구로 만들고, 남측과 북측 배가 직항으로 갈 수 있도록 하고, 공동어로구역도 만들고, 한강 하구도 공동 개발함으로써 선의 개념을 가지고 남북이 싸울 게 아니라 이 지역을 남북이 공동으로 개발하고 경제적인 협력을 통해 군사적인 갈등을 극복해 평화를 만들자고 했다. 그런데 남쪽에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이 사실상 무효화됐다. 지금의 긴장은 바로 그런 관점에서 이해 되어야한다. 이미 서해 지역에 대한 평화 협력 방안이 존재하고 있는데 이를 무시 한데서 남북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것이다.

서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상당히 어려운 상황에 봉착할 것이다. 이틀 전에 패트릭 크로닌이라는 미국의 저명한 안보 전문가가 <CNN>에 기고를 했는데, 5년 내 한반도에 3가지 형태로 전쟁이 발발 할 수 있다고 전망한 바 있다. 서해에서 우발적으로 전쟁이 발생할 경우,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남측이 북한에 대한 군사적 억지력을 갖지 못했을 때, 즉 북한이 핵 무장력을 강화했을 때 전쟁이 발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북한에 정권 교체가 일어나고 내분이 발생했을 때도 전쟁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 경우, 미국과 중국의 개입과 충돌 개연성도 배제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처럼 이번 연평도 사건을 통해 세계 언론은 한반도가 고강도 분쟁지역으로 전쟁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지역임이 크게 부각 되었다. 서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한반도의 전운은 계속 될 수 있다는 것이다.

▲ 문정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프레시안 자료사진
평화로 가는 세 가지 길

그렇다면 한반도의 평화는 어떻게 마련될 수 있는가? 평화로 가는 길은 세 가지가 있다. 첫째, 평화를 유지하는 것(peace-keeping)으로 기본적으로 군사적 억지력을 통해 가능하다. 군사적 억지력의 핵심은 자주국방력의 증강이다. 그런데 한국은 항상 북한보다 군사력이 약하다고 하면서 한미동맹의 강화를 주장해 왔다. 우리 자체의 군사력과 미국과의 동맹, 즉 연합전력을 통해 대북 억지력을 구축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군사적 억지력을 통한 평화 유지는 불안전한 평화밖에 가져다주지 않는다. 전쟁 발발 가능성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군사적 억지력을 통한 평화 유지는 전쟁 발발 가능성과 동전의 양면과 같다. 군사적 억지력, 대북 응징을 통한 평화 유지는 평화가 아니라 전쟁의 가능성을 높여 왔다. 여기에 안보 딜레마가 있는 것이다. 김대중·노무현 두 정권 때 평화 유지만으로는 안 되니 평화를 만들어야겠다는 발상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지금 정부가 다시 군사적 억지력과 한미동맹을 통한 평화 유지에 역점을 두면서 상황이 이렇게 어려워졌다고 본다.

평화로 가는 두 번째의 길은 평화를 만드는 것(peace-making)이다. 평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신뢰 구축이 필요하다. 신뢰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유럽의 사례에서 보듯 경제적·사회문화적 신뢰를 구축하고, 그를 통해 정치적 신뢰를 구축하고, 나아가 군사적 신뢰 구축을 해야 한다. 군사적 신뢰 구축은 군사훈련의 쌍방 통보 및 참관, 직통전화 가설, 정보인력 상호 교환, 공동위기관리센터 설치, 나아가서는 공세적 무기의 후방배치라는 군사 배치의 조정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게 잘 되면 자연히 군비 감축이 이뤄지고, 더 나아가서는 무장해제까지 갈 수 있는 것이다. 또한 휴전협정, 평화협정도 peace-making의 대표적 사례이다.

이와 관련해 남북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문건은 1992년 채택된 남북기본합의서다. 기본합의서는 정말 좋은 문건이다. 남북한의 신뢰 구축을 위해 정치·사회·문화뿐만 아니라 군사적 신뢰 구축의 과제까지 다 들어가 있다. 기본합의서는 북측이 준수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은 사실상 작동하지 않는 상황인데, 어쨌든 기본합의서에는 신뢰 구축을 위한 모든 대안들이 다 들어있다.

또한 6.15 공동선언도 그렇지만 10.4 정상선언을 보면 경제 부분에서 남북한의 신뢰 구축에 대해 상당히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다. 또한 2007년 12월 1일 남북 총리회담에서 합의한 45개 사항이 있다. 만약 이 45개 합의가 제대로 이행되었다면 지금 경제 부분에서 실질적 협력과 통합이 이뤄지고, 북한 자체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오지 않았을까 한다. 이런 평화 만들기의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두 차례에 걸친 남북 정상회담이었다.

그러나 평화를 만드는 그 자체만으로 영구적이고 안정된 평화가 오지는 않는다. 따라서 국제정치학에서는 이런 평화를 조성하는 것을 평화의 구조화(peace-building)를 말한다. 그것은 칸트가 얘기했던 영구평화론에 기초한다. 칸트의 영구평화론은 세 가지 축으로 구성됐는데 첫째는 자본주의를 하는 국가 또는 무역을 하는 국가끼리는 싸우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평화론이라는 표현을 쓴다. 둘째, 민주주의 국가끼리는 싸우지 않는다는 것이다. 민주주의를 하는 국가끼리는 대내적인 견제와 균형이 있기 때문에 싸움을 하기 쉽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를 민주평화론이라 한다. 칸트는 세 번째로 평화연방(pacific federation)을 얘기했다. 쉽게 말해 자본주의, 민주주의 하는 국가끼리 일종의 안보공동체를 만들면 전쟁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보수·진보 시각의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우리가 지향해야 할 가장 큰 목표는 북측에도 시장과 민주주의가 들어가서 잘 살게 되고 우리와 생각이 같아지고, 그래서 남과 북이 연방제든 연합제든 단일민족국가든 통일로 가면 전쟁을 할 이유가 없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평화로 가는 세 가지 길을 염두에 두고 역사의 흐름을 보면, 냉전시대에 평화 유지가 중심이 되다가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가까스로 평화 만들기로 갔는데, 역사의 반전이 이뤄지는 것처럼 다시 평화 유지로 돌아가고 있다는 점이 안타깝다. 군사적 억지는 결코 평화를 가져오지 못한다.

군사적 억지를 넘어 서로 신뢰를 구축하고 군비를 감축시키고 공존으로 나아가야 평화의 가능성이 열리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서 남북한의 교류·협력을 많이 하면 북한도 변화해서 우리처럼 잘살게 되고 그렇다면 통일의 길이 열리는 것이다. 한반도 통일은 주변 4강의 역학에 관계없이 우리 스스로 만들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지금 정부는 불행히도 평화 만들기에도 관심이 없는 것 같고 구조화 노력은 더더욱 없는 것 같다.

북의 진정한 변화를 가져오려면 북한을 인게이지(engage. 개입)해야 한다. 교류·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 그들에게 우리의 생각도 전하고, 그들의 생각을 듣기도 하면서 공동의 사업을 해 나가면 진정한 변화가 온다고 본다. 북을 변화시키겠다고 하면 북은 변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반야심경에 나오는 반어(反語)의 변증법처럼 변화라는 말을 하지 않고 북과 교류, 협력해 나갈 때 북을 쉽게 변화시킬 수 있다고 본다. 그게 북한과 우리가 관계를 설정하는 가장 중요한 포인트인데 그걸 터득하지 못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 무엇이 문제인가

평화를 만들고 구조화하기 위해서 남북관계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참 어려운 일이다. 지난 10년, 아니 정확히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 비준 이후 남북관계의 길은 분명히 보였다. 어려운 길이 아니었다. 쉬운 길이었다. 눈앞에 바로 보이는 선명한 길이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왜 자꾸 어렵고 더 먼 길로 돌아가는지, 그 과정에서 우리 모두에게 불안감과 안타까움, 좌절을 조성하는지…나는 이게 이해되지 않는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간 했던 것 중에서 버릴 건 버리고 취할 건 취해고 나가면 얼마든지 남북관계가 개선되고 평화의 토대를 마련 할 수 있을 터인데 왜 지금 이렇게 우리가 고통스런 길을 걸어야 하는가. 그게 안타깝다. 쉬운 길, 가까운 길이 있는데 왜 어렵고 먼 길을 택할까. 쉽게 평화롭게 갈 수 있는 길이 있는데 왜 고통스럽게 가야 할까.

그 이유에 대해 나름대로 분석하자면, 현 정부의 첫 번째 문제는 북한에 대한 정보 실패(intelligence failure)에서 오는 게 아닌가 한다. 북한의 능력을 너무 과소평가하고, 의도를 너무 왜곡하고, 의지를 너무 간과하는 것 아닌가 한다.

연평도 사건도 그렇고 핵 문제도 그렇다. 북한은 작년 4월 농축우라늄을 추진하겠다고 분명히 얘기했다. 미국이나 한국은 '북한이 과연 할까?' 했는데, 북한은 했다. 연평도 공격도 '빈 말 아니다. 타격하겠다'고 했는데 '과연 그럴까' 하는 사이에 타격을 가해 왔다. 또, 북한은 기름도 없고 경제적으로 못살아서 능력이 없다고 했는데, 지난 10월 조선노동당 창건 65주년 평양 열병식을 보면 우리가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최신 병기들 다 나왔다. 북한 정보를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분석하는데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북한에 대해 희망적인 관측(wishful thinking)을 가지고 북을 재단해온 게 아닌가 한다.

왜 정보가 중요한가? 한비자를 보면 한 국가의 안전과 위험은 그 국가의 강함이나 약함에 있는 게 아니라 시(是)와 비(非)를 잘 가리는데 있다고 했다. 전쟁에서 공헌한 사람과 공헌하지 않은 사람을 잘 가려서 상훈을 내려야 한다는 의미였는데, 지금의 맥락에서 다시 해석하면, 주어진 안보 환경에 대해 얼마나 냉철하게 분석하고 시비를 가리느냐가 국가의 안전과 위험을 가르는 것이지 군사력·경제력만 강하다고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 정부의 북한 정보 수집과 분석에는 문제가 있다고 본다. 대북 억지의 핵심인 북의 능력, 의도, 의지에 대한 냉철한 분석과 판단이 결여되어 있다.

둘째, 개인간의 관계도 그렇지만 상대방을 인정해주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을 보면 어떨 때는 북을 인정하고 또 어떨 때는 완전히 무시한다. 최근 북한의 후계체제 구축 과정을 보면서 느낀 것은, 북한의 내부 문제는 너희들이 알아서 하고 우리는 너희를 정상국가로 간주할 테니 대화·협상하자고 해야 하는데, 사사건건 내정간섭을 하면서 협상하자고 한다. 북한이 곧 붕괴한다고 믿고, 북한 지도부를 악마처럼 인식하고, 대북 심리전을 전개해 북한 체제의 변화를 모색하려는 남쪽 정부를 북은 어떻게 볼 것인가. 역지사지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 북의 정체성을 인정하고 그에 따른 대화·협상이라는 기본 틀에 대한 인식이 현저히 부족하다.

셋째, 북한이 붕괴할 것이라는 과도한 환상을 가지고 있다. 가령 '개념계획 5029'는 북한에 급변사태가 나면 한미 연합전력을 북에 보내서 북한을 안정화시킨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런데 김정일 유고가 발생한다고 해서 급변사태가 날까? 급변사태가 난다고 해도 북한에 군사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국제법적 근거가 있나? 북한은 주권국가이고 유엔 회원국이다. 유엔 안보리 결의안에 따라 평화유지군을 파견하거나 인도주의적 개입은 가능하겠지만 한미 연합전력의 군사적 개입을 정당화할 수 있는 아무런 근거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미 연합전력이 들어간다면 중국도 개입할 수밖에 없다.

포용정책을 통해 교류·협력이 많이 이뤄지고 민화협이 1년에 열 번 스무 번씩 북한에 갔을 때 북의 변화가 빨라지겠나, 아니면 지금처럼 차단하고 봉쇄하고 고립시킴으로써 변화가 빨라지겠나? 내 경험으로 보면, 남북이 교류·협력을 할 때 북한의 변화는 가속화했다. 고립하고 봉쇄할 때 북한은 멈춰 있었다.

넷째, 아무리 과거 정부가 밉다고 해서 과거 정부가 한 걸 맹목적으로 거부하면 안 된다. 남북기본합의서, 6.15 공동선언, 10.4 정상선언에서 좋은 건 택하고 나쁜 건 버릴 수 있어야 하지 않나? 이 문건들은 당시 시대정신의 반영이고, 당시 살았던 국민들의 의지의 발로였다. 새 정부가 들어섰다고 과거 국민들의 집단 의지를 일방적으로 부정할 수는 없다. 이게 가장 큰 문제다. 이미 모든 것을 거부해 놓았는데 지난 정부 정책을 다시 선택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거기에 이 정부의 고민이 있다고 본다. 가령 서해 문제도 10.4 선언 5항을 가지고 서해평화협력지대를 다시 논의하자고 하면 풀릴 수 있지만, 지금 정부가 10.4 선언 5항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상당히 회의적이다. 할 수 있다면 정말 획기적인 것이겠지만 그런 용기와 과감성이 이 정부에 있을까? 있으면 그 이상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남북 문제와 국가 안보 사안은 가장 비정치화되어야 한다. 지금 이 정부가 비정치화를 강조하고 있지만 실상은 가장 정치화하는 것 같다.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이 21일 <한겨레> 칼럼에서 손자병법 화공편에 나오는 "군주는 노한 김에 군사를 일으켜서는 안 되며, 장수는 성이 난다고 해서 전투를 해서는 안 된다. 이(利)가 있으면 공격하고, 이가 없으면 그만두어야 한다"를 인용했더라. 아주 적절한 표현이다. 전쟁을 해서 얻을 게(利) 있을 때 전쟁을 해야 한다. 그게 중요하다.

그런데 서해 군사훈련은 북에 대한 응징의 의지를 표현하기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국내정치적 함수관계에서 나온 것이기도 했다. 남북관계나 국가 안보가 정치화되면 정말 안 되는 건데 지금 정부의 대북정책은 너무 정치화됐다. 25~30%에 불과한 국민들의 생각을 그대로 남북관계에 옮기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된다. 평화 문제에 좌우가 어디 있나. 우리 사회가 분열되어 있지만 그 문제에서만큼은 컨센서스(합의, 동의)를 만들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그게 모자라다.

모든 카드를 쥐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

남북관계를 개선하는 최선의 길은 뭐냐? 전쟁이 벌어지는 상황에서도 북과 대화 채널을 만들고 대화해야 한다. 그러나 북한과 남측 정부의 성격상 각료회담 가지고는 되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정상회담을 얘기하는 것이다. 지금처럼 악화된 상황에서 정상회담을 어떻게 하겠냐고 하는데, 다른 대안이 없다. 두 정상이 만나서 한반도 평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헌법은 대통령에게 우리 생명의 안전을 지키라고 명령한다. 평화 통일을 추구하라고 했다. 이 헌법적 책무를 다하기 위해 대통령은 필요하다면 이 세상의 누구라도 조건없이 만날 수 있어야 한다.

현 상황을 완전히 반전시키고 새로운 평화의 가능성을 열 수 있는 분은 이명박 대통령밖에 없다. 6자회담도 한국 정부가 틀어서 지금까지 안 되고 있다. 남북대화도 북은 할 의도가 분명히 있는데 우리 정부가 여러 조건을 걸면서 안 되고 있다. 한편 미국은 한국 정부가 시키는 대로만 한다. 그러니까 이명박 대통령이 마음만 먹고 남북관계를 풀면 당장 한중관계가 풀린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돈독해진 북중관계에도 브레이크가 걸린다. 그러면 6자회담도 이명박 대통령이 희망하는 방향으로 상당히 많이 정리가 될 것으로 본다. 미국도 한국 정부의 족쇄에서 풀리면서 6자회담에 보다 전향적으로 나올 수 있다. 이 모든 카드를 가진 게 이명박 대통령이다.

리비아의 카다피가 핵을 포기할 때 어떻게 했나? 미국의 일방적인 외교를 통해 된 게 아니다. 토니 블레어 당시 영국 총리가 중재로 나서면서 돌파구가 마련되었던 것이다. 블레어 총리는 팬암기 테러 사건의 유족 보상금을 리비아 정부로부터 받아 내야 했는데, 미국의 경제 제재 때문에 리비아가 석유를 못 팔아서 돈을 마련하지 못했다. 그때 토니 블레어는 부시 대통령한테 '내가 책임지고 리비아의 비핵화 만들어 낼 테니 리비아에 대한 경제제재 풀어라'라고 했다. 그리고 블레어는 막후교섭을 통해 카다피의 둘째 아들 샤프 이슬람 을 설득해서 리비아가 핵을 먼저 포기하게 만들었고, 그 후에 미국이 대 리비아 경제 제재를 풀어주고 수교하게 했다.

그런 토니 블레어 역할을 이명박 대통령이 할 수 있다고 본다. 북측의 정상을 만나서 재래식 군비 문제와 서해 문제 등을 포함한 남북 문제를 타결하고, 이명박 대통령이 오바마 대통령하고 아주 가까우니까 남북 정상회담 한 두 달 후에 북미 정상회담을 할 수 있도록 해서 북한은 검증 가능한 비핵화를 하고 미국은 북한과 수교를 하고 북미간에 국교정상화에 관한 기본협약을 체결해서 그 안에 평화조약을 집어넣으면 모든 것이 순조롭게 풀릴 수 있다고 본다. 꿈같은 얘기일지 모르지만 이명박 대통령이 마음만 잘 먹으면 남북관계와 북미관계의 대반전을 가져올 수 있는 가장 큰 카드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반사적(reactive)이고 소극적인 외교로는 한반도의 평화나 동북아의 평화·안정을 보장하기 어렵다.

역사적 교훈을 새겨볼 필요가 있다. 어느 특정 국가와 지역에 대해 전쟁 가능성을 얘기하면 할수록 전쟁은 반드시 일어났다. 요즘 한반도가 그렇다. 전쟁 발발 가능성과 그 위험을 얘기 할수록 전쟁이 날수도 있다. 이걸 반전시켜야 한다. 평화에 관한 얘기, 남북간 교류·협력에 관한 얘기가 더 많이 나와야 전쟁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있다. 전쟁은 모든 걸 다 빼앗는다. 승자와 패자가 없다. 현대전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전쟁은 절대 빨리 끝나지 않는다. 장기화된다. 전쟁불사론을 펴는 분들은 정말 마음을 다시 먹어야 한다. 강한 군사력, 강한 동맹, 대북 응징, 전쟁의 길, 그것은 길이 아니다. 교류·협력, 신뢰구축, 역지사지. 평화의 길만이 길이다.

그러기 위해 우리 정책결정자들은 지혜를 가져야 한다. 고정관념, 편견, 억측, 자만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상상력으로 현실과 미래를 보는 것이 지혜다. 그런 지혜를 현 정부가 가졌으면 한다.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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