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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영미식 '성장경제' 시대의 종말을 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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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영미식 '성장경제' 시대의 종말을 고했다" [강연]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이 말하는 '포스트 후쿠시마'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 최근 자국 내의 모든 원자력발전소 폐쇄를 결정했거나 재확인한 나라들이다. 지난 3월 일본 도호쿠(東北) 지방을 강타한 대지진과 쓰나미의 여파로 발생한 후쿠시마(福島) 원자력발전소 사태는 세계적인 '탈(脫) 원전' 여론에 불을 지폈다.

재일동포 사업가인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사장이 대체에너지 생산에 적극 발 벗고 나선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일본을 대표하는 애니메이션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와 인기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 등도 공개석상에서 원전 반대 발언을 하는 등 그 흐름에 동참하고 있다. 미야자키 감독이 소속된 만화영화 제작사 '스튜디오 지브리' 사옥에는 '원자력발전소에서 만든 전기로 영화를 제작하고 싶지 않다'는 내용의 플래카드가 내걸리기도 했다.

그러나 후쿠시마 사태가 주는 의미는 이보다 훨씬 넓고 크며 근원적인 것이라고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은 강조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단지 원전 대신 화력발전소에서 생산된 전기나 대체에너지를 사용하자는 것은 근본적인 문제 해결과는 전혀 무관한 것이다.

김종철 발행인은 지난 4일 프레시안 사무실 이전을 기념해 열린 특별강연에서 1시간으로 예정된 강의 시간을 무려 1시간 30분이나 넘기며 열의에 찬 목소리로 원전의 문명사적 의미와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주는 경고의 메시지를 전했다.

김종철 발행인은 "원자력 산업이라는 것은 현 세대의 단기적인 이익을 위해 미래 세대를 재난에 빠뜨리거나 심지어 미래 세대의 생존 가능성 자체를 부정하는 막돼먹은 프로젝트"라며 "원자력 산업은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다"고 일갈했다.

그는 "막대한 전력을 소비하는, 미래가 없는 고도의 자본주의 공업사회를 유지하는 것은 어떤 폭력적인 군국주의 침략 노선보다도 더욱 폭력적"이라며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이 폭력적인 군국주의에 종말을 고했다면, 후쿠시마는 근본적으로 폭력적인 자본주의 산업체제의 종말을 예고하는 사건"이라고 말했다.

이런 맥락에서 '핵에너지를 반대하려면 시내를 질주하는 자동차 문명부터 반대해야 한다'는 생태주의 운동의 유명한 주장을 전한 그는 "후쿠시마 사태로 인해 그동안 미국·영국이 주도해왔던 경제성장 중심의 문명은 종말을 고하고 있다. 필요한 것은 진정으로 자유롭고 행복한 삶, 즉 근본적으로 소박하고 건강한 생활양식을 재창조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그의 강연 주요 내용이다. <편집자>


▲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이 4일 프레시안 강의실에서 강연하고 있다. ⓒ프레시안(손문상)

IAEA의 말을 믿어도 좋을까?

지난 3월 11일에 터진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는 엄청난 재앙이다. 체르노빌 원전 폭발과 동급인 '7단계'로 확정되었지만, 이것은 척도가 1~7까지밖에 없으니 그렇지, 만약 8, 9단계가 있었다면 그렇게 올라갔을지도 모른다.

이미 사고가 난 원자로들의 압력용기는 대부분 손상됐고, 지금 찬물을 끼얹고는 있는데 그게 다 증기가 돼서 날아오르거나 바다로 흘러내리고 있다. 사태는 지금도 진행 중이고 앞으로 언제까지 계속될지도 모른다. 더 큰 문제는 반드시 대규모 여진(餘震)이 온다는 것이다. 수마트라 대지진 때에도 3개월 후 큰 여진이 왔다. 도호쿠 대지진 3개월 후가 바로 지금이다.

우선 원자력과 방사능 문제에 대한 기본적인 사항을 살펴보자. 이 문제에 대해 국제적으로 권위를 인정받는 기관에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ICRP), 유럽방사선리스크위원회(ECRR), 세계보건기구(WHO) 등이 있다.

그러나 IAEA나 ICRP의 주장은 잘 새겨들어야 한다. 이들은 원자력산업을 추진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곧이곧대로 믿는 것은 위험하다. ECRR이 그나마 좀 중립적이라고 할 수 있다. ECRR은 유럽 과학자들이 중심이 돼서 구성된 방사능 전문가 집단이다.

후쿠시마 사태에 대한 ECRR의 관측은 매우 충격적이다. ECRR은 후쿠시마 사고로 인해 향후 30만 명의 암 환자가 추가로 발생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기존의 암 발생률에 따라 예상되는 환자 외에 '추가로' 40만 명이라는 말이다.

지난 3개월 간 미국 서북부 태평양연안 도시들의 유아사망률이 30% 증가했다는 보도가 있다. 후쿠시마와 관련이 있는 게 거의 확실하다. 그 외에는 유아사망률이 증가할 다른 요인이 없다. 미국보다 훨씬 가까운 한국은 어떨까? 아예 관련 조사가 없다.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일반인들이 가장 신뢰하는 WHO는 방사능 문제에서 원자력 산업계의 압력으로부터 전혀 자유롭지 못하다. 1959년에 WHO와 IAEA 사이에 맺어진 협약이 있다. 그 협약에는 "당사자 중 한 쪽이 다른 쪽의 이해관계에 관여하거나 그럴 가능성이 있는 분야의 계획 혹은 활동에 착수하고자 할 경우 서로의 합의에 바탕해야 한다"고 돼 있다. 이것은, 간단히 말해서, WHO가 독자적으로 방사능 관련 평가를 내려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이 협약 때문에 체르노빌 사태 이후 WHO가 2차례나 체르노빌 관련 방사능 보고대회를 추진했지만 IAEA의 반대 때문에 그 대회의 논문집조차 발간하지 못했다. IAEA는 태생 자체가 원자력산업의 세계적 확대를 위한 것이었다. 이 기구는 세계인들이 원자력에 부정적인 인식을 갖는 것을 극히 우려하고 있다.

이 기관들이 문제를 축소하고 있다는 것은 체르노빌 사태에 대한 조사 결과를 봐도 드러난다. IAEA와 WHO는 체르노빌 사태로 인한 사망자를 4,000명 정도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독립된 과학자들의 결론은 완전히 다르다. 최소 100만 명이 죽었다는 보고도 있고, 400만 명이 죽었거나 지금도 현재진행형으로 죽어가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체르노빌 사태로 큰 피해를 입은 국가인 벨라루스의 작가이자 언론인이 취재·편집한 <체르노빌의 목소리>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을 보면 참혹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나 그 유족들의 생생한 구술이 기록되어 있다. 벨라루스는 자기 영토 내에는 원자력발전소가 하나도 없는데도 우크라이나보다 오히려 더 큰 피해를 봤고, 전국토의 2/3이 심각하게 오염됐다. WHO와 IAEA가 겨우 4,000명이 죽었다고 하는 것은 어이없는 얘기이며, 피해자들에 대한 모욕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아는 사람만 아는' 방사능의 위험성

아직도 인공방사능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공인된 정설(定說)이 없다. 그것은 원자력의 위험성에 대한 논의가 객관적으로 이뤄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의과대학에서도 딱히 이렇다고 단정적으로 가르치지를 못하니 양심적인 의사가 독자적으로 공부하지 않으면 의사라고 해도 방사능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갖고 있지 못하기 쉽다.

그러나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었다. 이미 1940년대 미국의 원자탄 제조 프로젝트인 '맨해튼 계획'을 지휘한 오펜하이머와 페르미 등 과학자들은 매일 원자로가 있는 실험실에 들어갈 때마다 방사능 피해를 막기 위해서 특별히 조제한 영양제를 먹고 들어갔다는 얘기가 있다. 그 영양제가 효과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명한 방사선생물학자 헤르만 뮐러 박사는 1964년에 발표한 '방사선과 유전'이라는 중요한 논문에서 대기 중 핵실험 등에 의한 방사능 노출 증가에 따라 인류의 장기적 생존 가능성이 점점 축소되고 있다는 사실을 경고했다. 실제로 지난 수십 년 동안 세계적으로 남성들의 정자 수와 생명력이 크게 감소‧감퇴했다고 하는데, 이것도 인공방사능의 증가현상과 관련이 없지 않을 것이다.

1963년 소련에서 대기 중 핵실험이 행해진 지 1주일 후 미국 과학자들은 미국과 캐나다의 포유류 동물들의 갑상선에 방사성 요오드가 함유된 것을 발견했다. 방사능에는 국경이 아무 의미가 없다. 암을 유발하는 방사성 물질은 빠르게 지구 전체로 확산된다.

<핵의 광기>라는 책을 쓴 호주의 헬렌 칼디콧은 원래 소아과 의사였다. 그런데 70년대 초부터 소아 백혈병‧암환자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생각해 보니 프랑스가 남태평양에서 핵실험을 계속하고 있다는 것 이외에 다른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칼디콧은 그때부터 열렬한 반핵운동가가 됐다.

방사능은 신체 내에서 축적·농축된다는 점 때문에 무서운 것이다. 먹이사슬에서 상위에 있는 생물로 올라갈수록 최고 100만배까지 농축될 수 있다고 한다. 더 심각한 것은 '방사능+중금속'의 상승효과로 인한 심각한 유전자 손상이다. 지난 50년 동안 430개의 원전이 생겨났고, 설상가상으로 거기에 열화우라늄탄도 등장했다. 위험이 점점 커져 가는 것이다.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일어났을 때 방사능이 가장 극심하게 방출된 것은 3월 15일이었다. 한 달이나 지난 뒤에야 이 사실이 알려졌다. 일본정부가 정직하게 발표했으면 많은 사람들이 피난을 갔을 텐데 정부만 믿고 앉아 있다가 무고한 사람들, 특히 아이들과 임산부가 대량피폭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말았다. 앞으로 5~10년 이후부터 엄청난 후유증이 발현할 것이다.

▲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프레시안(손문상)

내부피폭의 위험

정부나 원자력 추진파에 속한 전문가들은 X-레이 촬영보다 방사능 노출이 적다며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지만 이것은 '내부피폭'이라는 개념을 완전히 무시한 말이다. 물론 고농도 방사능에 노출되지 않는다면 당장에 직접적인 피해는 없을 수 있다. 그러나 호흡을 통해, 음식물을 통해 신체 내로 들어가는 방사능은 비록 미량이라도 잔류하고, 축적·농축되어 지속적인 피해를 끼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IAEA에서는 내부피폭에 대한 '역치'를 자꾸 얘기한다. 허용치를 넘지 않으면 괜찮다는 것이다. 그러나 ECRR의 과학자들은 방사능에는 역치가 존재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즉 역치는 0이라는 것이다. 극미량이라도 유해한 것이다.

겉으로는 멀쩡해도 몸속에 방사능이 있을 가능성도 있다. 그리하여 결혼해서 2세, 3세가 태어났을 때 어떤 증상을 일으킬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런 식으로 간다면 언젠가는 인류가 전면적인 피해를 면할 수 없는 단계에 도달할 것이다.

게다가 중요한 것은 원전은 가장 정상적으로 가동될 때에도 끊임없이 방사능이 유출된다는 사실이다. 미국의 한 조사를 보면 원전 주변 30마일(약 48km)내에서는 유방암 발병률이 30%나 높다고 한다. 유사한 조사결과는 여러 다른 연구자들에 의해서도 보고되었다.

일본의 저명한 유전학자인 이치카와 사다오(市川定夫) 교수는 자주달개비꽃이라는 식물이 저농도 방사선에도 민감하게 반응하여 돌연변이를 일으킨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리하여 정상적으로 가동 중인 원자력발전소 부근에 이 식물을 심어놓고 반응을 살핀 결과, 원전에서는 비록 미량이지만 일상적으로 방사능이 방출되고 있다는 사실을 명확히 입증했다.

맨해튼 계획 당시 플루토늄을 생산하기 위한 원자로 9기가 있었던 워싱턴주의 핸포드 핵시설 인근에 리치랜드라는 소읍(小邑)이 조성되었다. 이는 미국 정부의 오만을 보여준다. 핵시설 근처에서도 사람들이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의도적으로 사막 한가운데에 제대군인들을 정착시켜 농장과 마을을 만든 것이다.

그 리치랜드 주민인 톰 베일리라는 이가 2001년에 히로시마에서 열린 '세계원수폭금지대회' 에 참가하였다. 그때 그의 증언에 따르면, 이 마을 주민들에게는 백혈병, 골수암, 각종 암이 유난히 많고 갑상선 질환도 부지기수라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리치랜드에 대규모 농장이 조성됐다는 것이다. 사과, 감자, 밀, 옥수수, 목초 등이 풍성하게 수확되는데, 이 작물들은 주로 패스트푸드 산업으로 납품되고, 일본의 식품상사들도 여기서 수입을 많이 해간다고 한다.

지금 서울의 강남에 있는 모 병원에는 큰 병동 하나 전체가 갑상선 전문병동이라고 한다. 그 정도로 한국에도 갑상선 질환자가 많다. 여기에는 사실 의심이 가는 대목이 있다. 정확한 조사가 없어서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체르노빌 사태로 인한 후유증이 아닌지 모르겠다. 더욱이 체르노빌 사고 때 유럽에서 폐기된 분유를 한국 업자들이 헐값에 사들여왔다는 소문도 한때 파다했다.

역학조사라는 것이 매우 어렵지만 엄밀한 조사를 해볼 필요가 있다. 갑상선 질환이 25년 전 어린아이였던 지금 젊은 세대들에게 많다는 점을 보면 의혹을 지울 수 없다. 예전에는 우리나라에서 갑상선 질환이 그렇게 흔한 질병이 아니었다.

이런 점에서, "TV 볼 때도 방사능이 나온다. 그러니 안심하라"는 정부기관의 말은 근본적으로 무지하거나 무책임한 말일 뿐이다. TV를 먹는 사람은 없다. 일시적으로 투과되는 방사선은 몸에 잔류되지 않는다. 문제는 내부피폭이며, 인체에 축적되는 방사능 물질이다.

<체르노빌의 목소리>에는 폭발 현장의 화재 진압에 투입된 소방관과 그의 아내 이야기가 나온다. 신혼이었던 아내는 임신 중이었다. 고농도로 피폭된 소방관은 결국 사망해서 납을 씌운 관에 들어가 모스크바 교외의 특별 묘지에 묻혔다. 그를 끝까지 간호한 아내도 남편과 계속 접촉했기 때문에 방사능에 심각하게 오염되었다. 그런 몸으로 나중에 아기를 출산했는데 아이는 태어난지 4시간 만에 죽었다.

기막힌 것은 정작 산모는 멀쩡했다는 것이다. 모체 속의 방사능을 태아상태의 아기가 모두 흡수해버렸던 것이다. 방사능 피폭에는 '어린이 우선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태아나 성장기의 아이들이 가장 방사능에 민감하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어릴수록 세포분열이 왕성하기 때문이다.

이번 후쿠시마 사태에서도 가장 걱정되는 것이 어린아이들과 임산부이다. <원전을 멈춰라>를 쓴 히로세 다카시(廣瀨隆)는 지금 모든 어린이들과 임산부들을 아예 일본 밖으로, 아니면 적어도 일본 서부지역으로 시급히 피난시켜야 한다고 절박하게 말한다. 어린이들이 실외에서 놀지도 못하게 하고, 일본산 농산물을 먹여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체르노빌 사태 후 심하게 오염된 지역에서는 토양 표면을 다 긁어내서 그 흙을 또 흙구덩이에다 묻었다. 방사능으로 인해 생겨난 기괴한 장면이다. 문제는 그래도 토양의 방사능 수치는 여전히 높다는 것이다. 그런 땅에서는 당연히 사람이 살 수 없지만, 다른 방법이 없으니까 그냥 온갖 건강장해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 이것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세계에서 가장 밀도 높게 원전을 가동하고 있는 한국에서는 특히 이런 상황이 언제든지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기막힌 것은 아직도 원전을 추진해온 권력층과 소위 전문가라는 자들이 별로 반성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매그니튜드 9라는 대지진은 예상을 초월한 것이므로 불가항력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문명생활을 포기할 수는 없지 않느냐 하는 식이다. 잘못한 것도 사과할 것도 없다는 것이다.

가장 가증스러운 것은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전 일본총리의 반응이다. 나카소네는 1956년 청년 의원 시절부터 총리를 지낼 때까지 원자력발전기금 설치 등 원전사업을 주도적으로 밀어붙인 장본인이다. 그런 나카소네가 뻔뻔스럽게도 이번 사태에 대해 "천만 유감"이라고 남의 말하듯이 발언했다. 게다가 "세계의 '공공재'인 원자력을 포기할 수는 없고 앞으로 더 진흥시키는 계기가 돼야 한다"는 말까지 했다.

그러나 이런 행태는 일본의 서민들의 자세와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지금 일본의 잡지들은 후쿠시마 주민들을 비롯해서 수많은 생활인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아내기 시작하고 있다. 그들은 전력을 풍요롭게 쓰는 생활보다도 비록 가난하게 살더라도 사람과 생명을 손상시키지 않는 생활에 대한 한결같은 동경을 표현하고 있다. 얼마나 소박하고 건강한 자세인가.

한 마디로, 원자력산업이라는 것은 현 세대의 단기적인 이익을 위해 미래 세대를 재난에 빠트리거나 심지어 미래 세대의 생존 가능성 자체를 부정하는 극히 야만적인 산업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원자력산업은 결코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다.

문제는 원자력이 아니라, 원자력을 낳은 '체제'

원자력은 극단적인 경우지만, 현대 산업체제와 그것을 뒷받침하고 있는 과학기술체제가 기본적으로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식량위기를 해결한답시고 생명공학을 통해 유전자 변형 작물을 대량생산하고 있지만, 이 생명조작 기술이 장기적으로 어떤 두려운 결과를 초래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쩌면 지구 생태계 전체가 교란을 당하고, 멸망할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몇몇 거대기업과 기득권층의 단기적인 이익을 위하여 이 위험천만한 짓들이 계속되고 있다. 이처럼 근시안적인 이윤추구 때문에 장기적인 인류의 삶을 희생시키는 현대 산업체제의 핵심에 원자력발전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최근 일본의 정기간행물 <주간 금요일>에 '우리 안에 있는 원자력 발전 체제'라는 글이 실려 있어서 보았다. "원자력 발전에는 아무것도 없다. 철학도, 비전도, 시(詩)도 없다. 있는 것은 돈뿐이다. 우리 마음속에도 꿈도 몽상도 없고 돈만 가득하다." 그런 내용이었다.

월간지 <세카이>(世界) 최신호에서도 "일본의 피해도 막대하지만 일본이 세계에 죄를 짓고 있다"면서 "풍요로운 소비사회를 접고 소박한 사회로 돌아가자"는 고령 독자의 절절한 호소가 실려 있는 것을 보았다.

한편에서는 이런 얘기가 나오면 "원시시대로 돌아가자는 말이냐"는 반론이 어김없이 나온다. 그러나 <세카이>의 그 독자는 1960년대를 생각해보라고 말한다. 1960년대가 원시시대였던가. 사실, 그 무렵의 전력만큼만 써도 원자력발전은 전혀 필요없다. 화력발전 수요도 많이 줄일 수 있다. 따져보면 집집마다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이 있어야 할 이유가 없다. 장래를 내다보는 사회라면 전력수요를 자꾸만 높여 갈 게 아니라, 소박하고 건강한 생활이 주류가 되는 사회시스템을 궁리해야 한다. 재생가능한 에너지를 개발하고 확대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간소한 생활방식이다.

2차대전 후 일본은 소위 '평화산업'을 통해서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룩함으로써 전쟁 전의 군국주의 노선이 아니라 평화적인 방법으로 나라를 일으켜 세웠다는 자기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심지어 상당수 일본 좌파 지식인들도 이에 동조해왔다.

후쿠시마 사태는 이런 이미지가 허구임을 단적으로 드러냈다. 막대한 전력을 소비하는, 미래가 없는 고도의 자본주의 산업사회를 유지하는 것은 어떤 폭력적인 군국주의 침략 노선에 못지않게 폭력적이라는 것이 후쿠시마 사태로 증명됐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이 군국주의의 종말을 고했다면, 후쿠시마는 평화산업이라는 이름의 폭력적인 자본주의 산업체제의 종말을 고하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현실사회주의 산업시스템도 마찬가지였다. 레닌은 사회주의를 '소비에트 권력+전력화(電力化)'로 정의했다. 그 역시 소련의 시골마을 구석구석까지 냉장고와 에어컨이 보급되고, 개인 자동차를 굴리는 게 사회주의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 문제에 있어서는 자본주의나 사회주의가 별 차이가 없다.

▲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프레시안(손문상)

문명사적 전환이 필요하다

미국이 원자력발전을 시작한 여러 동기가 있지만 그중 제일 중요한 것은 핵무기 제조에 필요한 플루토늄을 양산하기 위한 것이었다. 한국을 포함한 다른 국가들도 원전을 건설하고자 했을 때, 거기에는 부분적이나마 이러한 군사적 야심이 작용했을 것이다. 단지 전력생산만이 목적이 아니었을 것이다.

흔히 원전이 이산화탄소 배출로 인한 기후변화를 막는 청정에너지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주장이 사실이 되자면 2050년까지 지금보다 화석연료 비율이 60% 감소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화력발전을 원전이 대체한다고 하면, 그때 필요한 원전은 15,800기가 있어야 한다. 어떤 미국의 반핵운동가가 조사한 결론이 그렇다. 이게 과연 가능하겠는가. 기후변화를 막는 에너지기술이 원자력발전이라는 말은 완전히 거짓말이다. 지금 현재 세계 전체에 원전이 약 430기 정도 있다. 이 상태로 가더라도 우라늄은 50년 후면 고갈된다고 한다. 그런데 15,800개의 원전이라니, 가당키나 한 일인가.

그런데도 왜 이런 미친 짓을 계속하고, 심지어 확대하겠다는 정부도 있는 것일까? 기득권층과 업계의 이해관계 때문이다.

일본에는 '원자력 마을'(原子力村)이라는 용어가 있다. 원자력 관계로 먹고사는 산업계, 정치인, 관료, 언론, 학자, 전문가로 얽힌 집단을 이렇게 칭한다. 생각을 해보자. 우선 원전은 건설하는 데 드는 비용만 해도 막대하고 공사기간도 10~20년이 걸린다. 가동 수명도 보통 20~30년인데 일부에서는 40년, 100년까지도 늘리려고 한다. 수명이 다 된 원자로를 폐로(閉爐)하는 데는 건설보다 더 오랜 기간이 필요하다.

발전소 하나 때문에 100년을 먹고 살게 된다. 동원되는 산업분야도 토목, 건설, 금속, 전자, 기계, 화학, 등등 온갖 분야가 다 동원된다. 게다가 원전에 관련해서 들어가는 천문학적 비용은 대부분 정부가 국민의 세금으로 메워주는 구조로 되어있다. 그러니 산업계에서는 군침을 흘리지 않을 수 없다. 그런 막대한 이해관계가 걸려있는 사업인데 이것을 쉽게 그만두려고 하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지금 원전을 2020년까지 모두 폐기하겠다는 결정을 내린 독일 사람들이 참으로 존경스럽다. 그런데 독일에 비해서 프랑스는 너무 대조적이다. 프랑스는 원전 중단은 생각조차 하지 않고, 계속해서 확대하겠다는 입장만을 표명하고 있다. 물론 원전 의존율이 독일은 23%이고 프랑스는 80%에 가깝다는 차이가 있긴 하지만 단지 그것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나는 지식인들의 책임이 크다고 생각한다. 온갖 난삽한 언어로 고도의 지적, 정신적 유희를 즐겨온 프랑스의 소위 세계적 지식인들이 특히 그렇다. 그들은 남태평양과 알제리에서 거침없이 핵실험을 하면서 무고한 약소민족과 지구환경을 손상시키는 자기 나라의 핵실험에 거의 대부분 침묵해 왔다. 원전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다. 내가 이들을 진정한 지식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독일 지식인들은 전통적으로 환경문제에 민감한 사람들이 많았다. 하이데거도 따지고 보면 걸출한 환경사상가라고 할 수 있다. 원래 동독의 저널리스트이자 저명한 맑스주의 철학자였다가 녹색사상가로 변신한 루돌프 바로는 한때 내가 특히 좋아했던 사상가이다.

1970년대 말 동독에서 서독으로 추방되자마자 녹색당 창립에 힘을 기울였던 루돌프 바로는 1983년 반핵운동 단체의 초청을 받아 미국 뉴욕에 갔을 때, 강연에서 "반핵운동이 알맹이 있는 것이 되려면 뉴욕 시내를 질주하는 자동차 중심 생활방식에도 반대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발언함으로써 미국의 좌파운동가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바로는 말했다. "우리는 안전을 추구하되 무기를 버려야 하고, 화학물질을 쓰지 않는 보건위생을 추구해야 하며, 산업적 고용 바깥에서 생계수단을 강구해야 한다. 그리고 땅과 숲을 위해서 자동차와 짐승고기를 포기해야 한다. 그러지 않는 한, 우리는 모든 생명의 적이며 사탄이다."

루돌프 바로는 현대사회가 문명의 최종단계로서 '절멸주의'의 단계에 도달해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런 상황에서 전통적인 좌우 논리로 사태를 파악하는 게 얼마나 무의미한 것인가를 되풀이해서 말했다. 중요한 것은 자본주의냐 사회주의냐가 아니라, 생명을 보존하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우리시대의 핵심적인 과제라는 것이었다.

루돌프 바로는 생애 최후에 이르러 인류의 구원은 '세계의 현인들'로 구성된 일종의 세계정부에 의한 강력한 통치밖에 없다는 말을 하곤 했다. 일종의 에코파시즘적 발상이라고 할 수 있는 이런 아이디어 때문에 그는 특히 좌파 지식인들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았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것은 인류 절멸이 임박했다는 그의 절박한 상황 인식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물론 '지혜로운 엘리트'에 의한 세계통치를 제안한 바로의 생각에 동조할 필요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될 것이지만, 그 절박한 상황 인식만은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1970년대 말부터 80년대 중반에 걸쳐서 바로가 보여준 산업주의 문명의 근본적인 반생명성과 지속불가능성에 대한 예리한 통찰은 지금도 유효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당대의 어떤 사상가의 발언보다도 깊이 경청해야 할 심오한 메시지를 포함하고 있었던 것이다.

독일 녹색당은 창립 당시부터 내부에 '현실주의'와 '근본주의'라고 불리는 두 그룹으로 나누어져 대립하고 있었다. 현실주의파의 대변자격인 요시카 피셔는 나중에 사회민주당과 적록(赤綠) 연정을 이루어 1997년부터 2002년 동안 독일연방정부의 외무장관을 역임했다. 요시카 피셔는 외무장관 재임 중에 나토에 의한 코소보 공격을 승인하고, 미국을 도와 아프가니스탄에 독일군을 파병하는 데에도 협력하였다. 철저한 평화주의에서 출발한 녹색당이 이렇게 되자 많은 사람이 실망을 했고, 나 자신도 독일 녹색당이 생명을 다한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런데 이번에 후쿠시마 이후 독일이 세계에서 가장 선진적으로 탈원전 정책을 표명하는 것을 보면서, 녹색당 원래의 창당정신이 독일사회 내부에서 죽지 않고 살아있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그것은 그동안 현실정치에서는 밀려나 있었다고는 하지만 역시 녹색당 내부의 '근본주의' 그룹의 공적일 것이다. 루돌프 바로는 그 '근본주의'의 대변자였다. 바로는 1985년에 '현실주의파'와 심각한 논쟁 끝에 녹색당을 탈당했는데, 그 논쟁은 동물실험의 전면적인 금지를 강령으로 채택해야 한다는 그 자신의 제안에 의해 촉발된 것이었다.

그는 현대의 제약 및 보건의료산업이 잔혹한 동물실험을 토대로 구축되어 있다는 사실을 환기하고, 이 현실을 용인하는 녹색정치는 위선이고 거짓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녹색당의 주류에 의해서 자신의 주장이 거부되자, 그는 몇몇 동지들과 당을 떠났다.

그 이후에는 비록 소수의 노력일지라도 자급적 농업코뮨을 만들어 산업체제로부터 벗어난 '해방구'를 건설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입장을 토로하였다. 그의 이런 발언은 "우리는 거대 산업체제의 외부에 드러난 방종한 행태들에 맞서서 싸울 것이 아니라, 그것을 안으로부터 키우는 자양분의 공급을 중단해야 한다"는 생각에 연결되어 있었다.

지금 우리가 이러한 바로의 생각에 찬동을 하느냐 마느냐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보기에 따라 비현실적이라고 여겨지는 이러한 생각에 당대의 많은 독일 젊은이들이 공명했다는 사실이다.

독일통일 이후 루돌프 바로는 베를린의 훔볼트대학에서 생태정치철학을 강의하다가 1992년 62세에 혈액암으로 사망했는데, 그의 강의실은 언제나 학생들로 초만원을 이루었다고 한다. 현실정치에서는 소수파였는지 모르지만 루돌프 바로가 대변했던 근본 녹색주의 메시지는 독일 시민들에게 잠재적이나마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있었던 게 분명하다. 그 명확한 증거가 국가적 차원에서 표명된 이번의 탈원전 선언이 아니겠는가.

독일이라고 해서 원자력산업과 연계된 강고한 기득권 동맹이 없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독일에서도 이번 결정을 두고 찬반 논쟁이 많았고, 결정이 내려진 뒤에도 산업계 쪽에서는 상당한 반발이 계속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정부뿐만 아니라 의회에서도 압도적인 표차로 탈원전 계획이 가결되었다. 이것은 결국 시민적 양식과 생태적 교양 수준이 그만큼 성숙해 있다는 증좌이다. 독일인들은 이제는 경제발전이 아니라 생명의 보호가 시대의 핵심 과제가 되었음을 거국적으로 표현한 셈이다.

이제, 후쿠시마 사태로 인해 지난 두 세기 동안 영미국가가 주도해왔던 성장경제 중심의 문명은 종말을 고했다고 볼 수 있다. 지금부터는 미국도 영국도 프랑스도 중국도 러시아도 더 이상 선진국이 아니다. 이제부터 세계를 이끌고 갈 자격이 있는 참된 선진국은 탈원전을 명확히 선언한 나라들, 즉 독일, 이태리, 스위스, 그리고 이미 1985년에 원전 도입 자체를 거부했던 덴마크라고 할 수 있다.

스리마일과 체르노빌, 그리고 이제 후쿠시마라는 엄청난 재앙을 겪고도 구태의연하게 경제성장을 운위하고, 대량생산, 대량소비, 대량폐기의 악순환을 끊임없이 반복·확대하는 것 외에 어떠한 새로운 문명도 꿈꿀 능력이 없는 국가와 개인들은 여전히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무능과 어리석음의 필연적인 귀결은, 말할 것도 없이, 인류 사회의 전체적 공멸이다.

후쿠시마의 교훈을 진정으로 살리려면, 우리는 현재의 단기적인 이익 때문에 다음 세대들의 삶의 토대를 망가뜨리는 어리석은 구조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안 된다. 필요한 것은 진정으로 자유롭고 행복한 삶, 즉 근본적으로 소박하고 건강한 생활양식을 재창조하는 일이다.

생각하면, 이제는 이 지상에 오염되지 않은 곳은 아무 데도 없다. 만약에 이 지상에 유토피아를 건설할 수 있는 가능성이 아직도 남아있다면, 그것은 결국 '방사능으로 오염된 유토피아'일 것이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더 이상의 방사능 오염은 절대로 허용해서는 안 된다. 그게 인간으로서의 우리의 책임이다. 이 책임을 우리가 얼마나 깊이 느끼는가에 '포스트 후쿠시마' 시대의 희망이 걸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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