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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와의 전쟁, '美 헤게모니' 지키기의 마지막 안간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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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테러와의 전쟁, '美 헤게모니' 지키기의 마지막 안간힘" [9.11 기획 강좌]<1> 김민웅 성공회대 NGO대학원 교수
프레시안과 참여연대는 '9.11 이후 10년, 세계는 어디로 가는가'를 주제로 연속 강연을 마련했다. 지난 5일 시작된 이번 강좌는 매주 월요일 저녁 7시 서울 통인동 참여연대에서 5회에 걸쳐 열린다. (☞강연 상세 안내 보기)

'9.11의 역사적 기원과 테러와의 전쟁 10년'이란 주제로 있었던 김민웅 성공회대 NGO대학원 교수의 첫 번째 강연을 요약해 소개한다. 두 번째 강좌는 김재명 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가 '전쟁의 정치경제학 : 대테러전쟁의 논리와 실재'를 주제로 오는 19일 진행할 예정이다. 편집자


▲ 김민웅 성공회대 NGO대학원 교수 ⓒ프레시안 자료사진
9.11의 역사적 기원과 테러와의 전쟁 10년

한국 언론에 국제뉴스가 1면에 등장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러다 보니 국제적인 문제가 우리의 현실과 어떻게 유기적으로 얽혀 돌아가는지를 알기가 쉽지 않다.

100년 전 동아시아에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던 당시와 비교해 보면, 정보의 양은 많아졌을지 몰라도 이해력은 오히려 후퇴한 측면이 있다.

김구 선생이나 여운형 선생은 조선의 운명을 사고할 때 '상해는? 모스크바는? 동경은?' 이런 변수들을 고민하면서 세계적인 네트워크가 머릿속에서 작동했다. 그런 고민을 해야 조선의 정세를 풀어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평양에서는? 워싱턴은? 북경에서는?' 이런 고민을 별로 안 한다. 정보 공개 사이트인 위키리크스가 몇 년 뒤에 알려주는 정보만을 가지고 뒷북이나 치고 있다.

마찬가지로 9.11 테러는 왜 터졌고, 그 후 10년 동안의 정세는 어떠했는지를 정리하지 못하면 지금 우리가 당면한 문제의 정체를 알기 어렵다. 9.11 이후 미국이 밀어붙인 '테러와의 전쟁'은 우리의 행동반경을 제약하는 결정적인 사건이었다. 2000년 1차 남북 정상회담에서 발표한 6.15 공동선언을 이행하는 게 어려웠던 것도 9.11이라는 거대한 시스템이 작동했기 때문이다.

군사력의 지배에서 자본의 직접 지배로

좀 긴 시선으로 9.11 이전의 상황으로 돌아가 보자. 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 이후 세계적 패권의 상층부에는 미국과 소련이 있었다. 세계대전 당시 두 나라는 연합군을 형성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면서 그 관계를 더 이상 유지할 이유가 없어지면서 각기 가진 체제적 본질상 적대 관계로 돌아섰다..

1945~48년 한국은 미군정이 지배하고 있었다. 미국은 점령체제를 통해 자신들이 원하는 질서를 한국에 만들었다. 일본 식민지 체제에 협력했던 사람들을 정치적으로 복권시키고, 그걸 기반으로 미국이 원하는 질서를 만들었다. 거기에 치열하게 반대하는 민족주의자들과 좌파들은 제거했다. 파시스트의 정치적 복원이었다.

이러한 현상은 특히 한국에서만 있었던 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일어났다. 대표적으로 일본, 이탈리아에서는 파시스트와 가장 치열하게 싸웠던 사람들이 전쟁 후에 제거됐다. 이런 나라들에서 좌파가 집권하면 미국에 불리하니까 좌파를 제거하고 파시스트들을 다시 세운 것이다. 일본에서는 우파들을 결집시켜 자민당을 만들었다. 이처럼 냉전 체제는 파시스트 세력을 복구시켜 미국과 결합해 소련과 대치하는 체제였다. 이 시기 미국의 영향권에 있던 제3세계의 정권은 대부분 파시스트 군사정권이었다.

또한 2차 대전에 참전해 대공황을 극복했던 미국에 있어 전후의 평화는 미국 자본주의 체제에 위협이 되는 것이었다. 평화의 시기에도 전쟁을 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 했다. 그것이 바로 냉전체제다.

그런데 1980년대 말 냉전이 무너지면서 그러한 질서에 의지하는 방식이 의미가 없어졌다. 제3세계에서 군사정권 체제를 유지하는 과정에서 내부의 심각한 반발과 반미운동의 성장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또한 군사력을 앞세워 자본주의의 패권을 유지하려면 비용이 많이 들게 됐다. 따라서 냉전이 끝나면서는 자본이 직접 세계를 통치하는 체제를 구축하려고 했다. 그것이 바로 신자유주의 체제다. 노동은 통제하고 자본에게 무한한 자유를 주면서 자본이 직접 세계를 통치하는 시스템이다.

한국이 걸어온 길도 정확히 그 추세와 일치한다. 냉전 시기였던 박정희-전두환 시절은 군사력이 중심이 되던 때였다. 노태우 시절은 군사력과 자본의 힘이 균형을 이뤘고, 김영삼 정부 시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하면서 자본시장을 개방함으로써 한국도 자본의 통치 시스템으로 들어갔다. 그 때문에 IMF 구제금융을 겪었고, 김대중 정부 시절 일정한 제약을 받았다. 노무현 대통령은 마침내 '권력이 자본으로 넘어갔다'는 말을 했다. 이명박 정부는? 자본 자체가 권력이 된 것이다.

냉전이 끝나면서 신자유주의는 복음이라고 선전됐다. 미국의 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역사의 종언'을 얘기하면서 지금까지의 모든 역사는 미국식 신자유주의로 오기 위한 변증법적 몸부림의 과정이었고, 이제 더 이상 새로운 역사를 꿈꿀 필요가 없다고 선전했다.

그렇게 해서 자본이 중심이 되는 시스템이 돌아가게 되었으나, 결국 도처에서 문제가 생겨났다. 중남미 국가들의 금융 위기가 잇달았고, 1997년에는 동아시아에서 금융위기가 발생했다. 투기 자본이 활개를 치고, 과잉생산이 구조화되면서 문제가 터진 것이다. 빚으로 쌓아올린 부채경제의 파산이었다.

한편으로 사람들이 이런 시스템의 문제를 알기 시작했다. 1999년 미국 시애틀에서는 세계무역기구(WTO) 회의를 열지 못할 정도로 강력한 시위가 일어났다. 자본의 통치가 부를 가져다주는 게 아니라 더 가난해지고 경제는 망가진다는 걸 외치기 시작한 것이다.

'테러와의 전쟁'이 진짜 의도한 것은?

그 과정을 거치면서 미국의 지배자들은 세계자본주의의 패권을 안정시키기 위해 다시 주먹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미국의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이다. 10여 년간 뒷방에서 쉬고 있던 조폭들이 조지 부시 대통령의 등장과 함께 다시 밖으로 나오게 됐다.

네오콘들의 핵심 세력은 베트남전쟁 당시 정책 결정자와 이론가들이었다. 베트남전에 대해서는 미국의 제국주의 전쟁이 실패한 것이라는 평가가 있었지만, 네오콘들은 '우리가 더 강하게 밀어붙이지 못해서 실패했다'고 본다. 세계는 갈등과 무력 충돌을 피할 수 없는데, 그걸 위해서는 어느 한 나라가 중심에서 군사적 헤게모니를 강하게 확보해야 한다고 본다.

그 와중에 중요한 일이 일어났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유럽이 통합되고 유로화가 통용되기 시작했다. 시간이 더 지나면 유럽합중국(United States of Europe)이 탄생할 수 있는 상황이 됐다. 그리고 중국이 부상했다. 미국이 지배하는 세계 자본주의 체제에 저항하는 세력이 많아지고, 체제의 비밀을 다 알게 된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을 단숨에 통제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길은 에너지원 장악이다. 독수리(미국)가 날개를 펴서 한 쪽 날개로는 유럽을, 한쪽으로는 중국을 압도하고, 발톱으로는 중동의 원유를 장악하면 유럽과 중국의 성장을 일정하게 저지할 수 있다. 프랑스가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반대했던 것은 그 나라가 정의로워서가 아니다. 미국의 의도를 알았기 때문이다.

9.11 이후 '테러와의 전쟁'이란 것은 미국의 바로 그러한 전략에 따라 진행된 것이다. 9.11 테러 사건 자체가 그것을 위해 만들어진 것인지, 아니면 하나의 계기가 됐던 것인지는 여러분들의 판단에 맡기겠다. 확실한 것은, 9.11 이후 미국의 외교정책과 네오콘의 전략은 미국 헤게모니의 동요를 차단하고 유럽·중국의 성장을 견제하는 것이었다. 그 행동의 원칙은 정신이나 자본의 힘으로 하는 게 아니라 군사력을 확실히 장악하는 것이었다.

9.11 이후 미국은 안보국가(Security State) 시스템으로 전환됐다. 9.11이 미국인들에게 준 엄청난 충격은 2차 대전 후 미국에서 불었던 매카시즘 열풍보다 더 강력한 일이 일어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줬다.

매카시즘은 한 마디로 냉전 체제가 들어서면서 미국 자본주의 체제와 그 대외정책에 반기를 들 좌파를 제거한 사건이다. 그러나 9.11 이후에는 그보다 더한 일이 벌어졌다. 미국의 시민적 자유가 축소되고, 안보를 위해 민주주의가 축소될 수 있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의회의 승인 없이 대통령과 소수의 정책결정자들이 전쟁 개시를 결정해 전 인류의 운명을 쥐고 흔들었다. 비판을 봉쇄하고 표현의 자유를 막음으로써 언론들은 숨을 죽였다.

네오콘들은 그렇게 해서 이라크를 침공했는데, 사람들은 이라크 다음엔 동아시아의 북한을 손 볼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러자 북한은 핵과 미사일 전략을 더욱 강화하는 길로 들어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예상대로 되지 않았다. 이라크 전장에서의 저항이 생각보다 강력했기 때문이다. 이라크인들의 치열한 저항이 역설적으로 동북아시아에서의 평화를 가져다줬다고 할까.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전쟁도 생각보다 어려웠다. 미군 병사들은 전장 투입 주기가 길어지면서 지쳐갔고, 전쟁의 트라우마를 가지게 됐다.

또한 사람들은 전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게 됐다. 결국 미국은 전 세계에서 두 개의 전선을 동시에 감당할 수 있다고 큰 소리쳤던 '두 개의 전선전략'(Two Fronts Strategy)을 포기할 수 밖에 없게 되고 말았다. 제국의 군대는 하나의 지점에만 집중되어야 했다. 그러나 국가적 부담은 덜어지지 않았고 오히려 점점 더 심각해졌다.

그 정치적인 결과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당선이었고, 체제적 부담은 2008년 금융위기로 드러났다. 그러나 오바마가 이 문제를 한 번에 풀기에는 굉장히 어려운 구조적인 문제가 있었다. 오바마가 급진적인 선택을 하기가 어려운 시스템이다. 그래서 오바마 개인으로는 정치적으로 희생당할 가능성이 높다. 지금 미국의 정치 현실을 보면 실제로 그렇게 되어 가고 있다.

▲ 2003년 5월 1일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이 항공모함 애이브라험 링컨호에서 이라크 전쟁 종전을 선언했다. 그러나 이라크 전쟁은 아직까지도 끝나지 않고 있다. ⓒ프레시안

한반도, 미국의 양대 지배 전략이 중첩된 곳

동북아시아와 한반도로 시각을 좁혀 보자. 앞서 설명한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한반도에는 미국이 요구하는 전쟁 시스템이 구축됐다. 6.15 공동선언과 2007년 10.4 남북 정상선언 같은 것들은 그 시스템을 돌파하기 위한 시도였다. 하지만 부시 정부는 한미 FTA를 통해 한국 내 시장의 주도권을 장악하려고 하는 등 한반도를 그냥 놔두려 하지 않았다.

한반도는 미국의 네오콘적인 군사 시스템과 미국 자본의 질서가 지배하는 방식이 중첩되는 곳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그에 대한 문제 제기나 저항의 강도는 상대적으로 낮다. 유럽처럼 진보적 사회운동의 결과로 형성된 높은 사회의식 속에서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하려는 힘이 약하다.

한국은 세계 1~2위를 다투는 미국의 중요한 무기 시장이다. 한반도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바꾸는 게 안 되는 이유를 미국의 군수산업적 이해와 관련해서 보면 당연하다. 평화체제를 만드는 순간 미국은 최대의 무기 시장을 잃게 된다. 우리의 입장에서 보자면, 미국 자본의 이익과 군사적 이익이 중첩된 상황을 해결하지 못하면 남북관계도 안 되고, 우리의 살림살이도 거덜나는 것이다. 대학 등록금도 화끈하게 낮출 수 없고, 제대로 된 복지정책을 펴는 것도 힘들다.

교육비, 병원비, 노후 보장 같은 걸 하려면 우리의 재정 구조가 평화적인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 엄청난 군사 시스템을 돌리기 위해 돈이 쏟아 부어져서는 복지가 실현될 수 없다. 복지 문제뿐만 아니라 환경 문제도 마찬가지다. 제주 해군기지 논란을 보면 환경, 평화, 복지의 문제가 같이 돌아간다는 걸 알 수 있다.

이 시스템을 개혁하고 변화시키려면 미국의 패권 시스템을 정확히 이해하고 분석하고, 그것과 우리의 관계를 잘 짚어 내서, 그 문제를 풀어나갈 고리를 하나씩 풀어야 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분단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연평도에서 군사적 충돌이 벌어지면 우리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우리는 작년에 충분히 경험했다.

한반도의 분단에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과 군사적 장치가 압축적으로 담겨 있다. 이걸 풀어내는 과정은 이 땅에 여러 가지로 중첩되어 있는 미국의 패권적 지배체제의 압박을 해결하는 것이며, 평화체제가 가져올 새로운 미래의 토대를 마련하는 작업이 된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민주주의가 세계적 시민의 권리와 위상을 획득하는 기초가 될 것이다. 이걸 도외시하는 일체의 정치와 운동, 그리고 교육과 학문은 이 시대 동아시아가 얽혀 있는 모순을 타파하는 능력을 갖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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