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강의에서는 2007년 통일부 정책홍보본부장을 지낸 고경빈 서울사이버대 교수가 'MB 통일담론 해체와 포용정책 업그레이드'라는 주제로 강의했다.
고경빈 교수는 통일 공론화 사업과 북한인권법 등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는 일련의 사업들에 대해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한편, 과거의 대북 포용정책에 대해서도 개선할 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또 그는 분단의 해소와 통일이야말로 지금의 '시대정신'이라며 이를 위해 남북 간의 적대감과 증오심을 극복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천안함'을 넘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고 교수는 천안함 사건에 대한 정부의 조사 결과를 신뢰하는지가 일종의 '신앙고백'이 돼버린 상황에 대해, 남북관계를 얼어붙게 만든 것은 물론 한국의 헌법이 보장하는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다음은 이날 강의의 주요 내용이다.
'2013년 체제와 한반도 평화전략'이라는 큰 주제로 열리는 2기 아카데미는 매주 화요일 저녁 7시부터 2시간 동안 서울 중구 저동에 위치한 인제대학원대학교에서 총 8차례 진행된다. 9월 27일 열리는 4강은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이 '2013년, 서해평화실현과 10.4 합의 이행전략'이라는 주제로 강연한다. 강의에 관한 자세한 안내는 한반도평화포럼 홈페이지()를 방문하거나 사무국으로 전화(02-707-0615)하면 된다. 한반도평화포럼은 대북 화해·협력정책을 지지하는 연구자, 종교·시민사회 관계자, 전직 공직자들이 모여 만든 단체다. 제1기 한반도평화아카데미는 지난해 10~11월 5회에 걸쳐 진행됐다. <편집자> |
▲ 고경빈 서울사이버대 교수 ⓒ한반도평화포럼 |
"천안함 사건, '신앙고백'이 됐다"
천안함 사건은 일종의 '신앙고백'이 됐다. 물론 정의의 법정과 안보의 법정은 다르다. 예를 들어 형사사건에서는 피해자가 목이 졸려 죽었다는 흔적이 있어도 정확하게 범인이 언제 어떻게 했다는 증거가 없는 한 무죄 판결이 난다. 하지만 안보 면에서는 북한의 소행일 가능성이 다만 몇 퍼센트만 있다 해도 거기 대비하고 최악의 사태를 대비한 의사 결정을 하는 것이 맞다. 오히려 가장 나쁜 결론은 '물증이 없다. 확신이 안 선다'고 헤메는 꼴이 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정부가 조사 결과를 공식 발표하기도 전에 일부 내용이 언론에 흘러나오는 등 정부가 신뢰를 잃게 행동한 면은 있지만, 이미 한 발표를 뒤집을 정도로 중요한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한편에서는 정권이 바뀌면 재조사해서 결론도 다시 내야 한다고 주장하는 모양이지만 이는 매우 위험하다.
문제는 다른 데에 있다. 천안함 사건에 대한 논란이 일면서 정부의 발표를 못 믿는 것이 '이적행위'로 둔갑했다. "당신은 천안함 사건을 북한의 소행으로 믿습니까?"라는 질문에 대해 답변을 시원찮게 하면 국가관이 없다, 친북세력이다 이런 말을 듣게 됐다. 국가정체성 내지 충성도 판단의 기준이 돼버린 것이다. 이런 상황은 곳곳에서 관측된다.
문제는 대답이 아니라 질문 자체다. 천안함 사건과 관련해 벌어진 어떤 공방에도 불구하고 바뀔 수 없는 사실은 우리 배가 침몰했다는 것이다. 어떤 주장에 입각해서 보든 우리의 '실점'이다. 자살골이든 다른 팀이 넣었든 마찬가지다. 북한 소행이므로 '수비수'는 책임이 없다는 식의 얘기는 굉장히 잘못된 것이다.
질문이 올바르게 되려면 '왜 실점했는가'를 물어야 한다. 지금 남북한은 휴전중이다. 기술적으로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은 상태다. 상대팀과 경기중이라는 것이다. 특히 과거 화해협력 정책을 왕성하게 추진하고 있을 때도 2번의 교전이 있었던 지역이 서해다. 남북관계가 악화된 상황에서 북의 도발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인가? 말이 안 된다.
천안함 사건 이후 이명박 정부는 5.24 조치를 내세웠다. 그러나 북한이 다시는 도발을 못하도록 했어야 하는데도 6개월 만에 또 연평도 사태가 터졌다. 이를 보면 한국의 어떤 대응 조치도 문제를 근본적으로는 풀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앞으로 더 이상의 실점을 막을 근본적인 방법이란 두 가지다. 첫째, 북한이란 '적'을 아예 없애버리는 것이다. 둘째, 북한과의 적대관계를 없애는 것이다. 이는 곧 북한과 화해협력 관계로 전환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 상황에서 두 가지 중 어떤 것이 합리적인가에 대한 결론은 분명하다. 탈냉전 이후 중국과 미국이 서로 세계시장을 공유하면서 경쟁하는 이 시기에 우리는 오히려 냉전시대를 다시 경험하고 있다. 이성의 시대에서 '믿습니까?'라는 신앙의 시대로 회귀하고 있다.
다른 견해를 갖는 사람은 국가관이 없다며 종북주의로 매도하는 것은 문제다. 우리 헌법은 자유민주주의를 지향하고 있다. 여러 시각과 다양한 가치관이 용인되는 것이 자유민주주의의 특징이다. 남남갈등이 왜 문제인가? 오히려 서로 다른 견해를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갈등의 존재를 부정하는 자세가 더 큰 문제다. 자기가 보는 현실 외에는 부정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에 반하는 태도이기 때문이다. 분단을 현실로 인정해야 극복할 수 있듯, 다양한 관점과 견해차를 인정하지 않고서는 갈등을 해결할 수 없다.
특히 이명박 정부가 끝나기 전에 이 문제가 어떻게든 풀려야 한다. 이 상태로 임기가 끝나고 다음 정권이 복원하려 한다면 엄청난 비용이 들 수 있다. 다음 정부가 한나라당이건 야당이건 마찬가지고, 특히 야당이 정권을 잡아 천안함 문제를 풀려 한다면 보수세력의 엄청난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꼭 이 정부 임기 내에 어떤 수준으로든 남북관계가 회복돼야 한다. 이명박 정부 하에서도 한번 풀 수 있는 접점까지 갔었던 적도 있다고 보인다.
"남북관계를 '갑을관계'로 바꾸겠다고? 이런 '갑'도 다 있나?"
또 일부에서 주장하듯이 화해협력 정책을 하면 안보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왜곡에 불과하다. 안보를 지키는 것과 화해협력 정책을 통한 남북관계 발전은 모순되지 않는다. 모두 잡아야 할 '두 마리 토끼'다.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이 처음 햇볕정책을 제시하며 제1원칙으로 튼튼한 안보를 들었다. 김대중-노무현 정권 동안 한국의 국방비는 정확히 2배로 늘었다. 안보의 기초가 없으면 화해협력이 불가능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서해상 북방한계선(NLL)에 대한 입장이 강경으로 선회한 것도 오히려 김대중 정부 시기다. 김영상 정부 때까지만 해도 NLL을 남북한의 경계선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당시 이양호 국방장관은 국회에 출석해서 북한이 NLL을 침범해도 정전협정 위반이 아니라고 답변한 적이 있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 들어 2번의 서해교전을 거치며 NLL은 사실상의 경계선이 됐다. 서해교전도 NLL을 침범한 북한 선박을 우리측 배로 밀어내는 작전을 하다가 총격전으로 이어진 것이다.
또 북한과 교류하면 우리 국민들이 동요할 것이라는 주장이 있는데 이는 1970년대식 사고방식이다. 지금 북한과 우리는 어느 모로 보나 비교 자체가 민망할 정도다. 국민을 믿지 못한다면 어떤 정책도 성공할 수 없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하면서 '실용'을 내세웠지만 대북정책에서만큼은 실용보다 이념에 집착했다. 이런 교조적 대북정책 자세 때문에 남북경협은 개성공단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없어졌다. 10년 동안 가꿔온 임가공 인프라들도 모두 사라졌다. 공장을 건설하고 북한 근로자를 교육시킨 성과가 고스란히 제3국에 넘어간 것이다. 또 내년에 쌀 차관 첫째분 상환이 도래한다. 그런데도 이명박 정부는 대북차관 상환 협상은 아예 무시하고 있다. 채권 관련 대북 협상도 전혀 알려진 바 없다. 누가 정말 '퍼주기'를 하는 것인가?
이명박 정부는 남북관계를 '갑을관계'로 바꾸겠다고 한다. 하지만 역대 정부에서 모두 최우선 과제로 다뤄온 이산가족 상봉도 실제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리고 납북자‧국군포로 문제도 실종됐다. 이런 '갑'이 어디 있나.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납북자‧국군포로 문제에 최초로 실천적인 조치를 취한 것이 김대중-노무현 정권이었다. 김대중 정부 이전까지 우리 정부에 변변한 납북자 통계마저 없었고 부처마다 유지하고 있는 통계도 다 달랐다, 김대중 정부 때 국정원과 경찰, 해양수산부 등의 자료를 종합했고 가족에게 통보했다. '국군포로의 송환 및 대우 등에 관한 법률'도 김대중 정부 때 제정됐고 '납북피해자의 보상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은 노무현 정부 때 제정됐다.
김대중 정부의 대북정책이 '햇볕정책'이었다면 노태우 정부 당시 대북정책의 별명은 '맏형정책'이었다. 우리가 북한보다 우월한 입장이라고 과시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형이니까 책임을 많이 진다'는 차원이었다. 이명박 정부는 지난 정권 당시의 '퍼주기' 비판을 의식한 나머지 정책 차별성을 너무 무리하게 잡은 게 아닌가 싶다.
"통일세 담론은 '엉뚱한' 결론"
현 정부 안팎에서는 통일 담론이라는 명목으로 북한 붕괴론을 흘리고 통일세 논의도 시작하고 있다. 급변사태 대책은 노태우 정부 때부터 비밀리에 준비됐다. 이건 대북정책이 아니라, 전쟁시에 대한 대비책이 있듯 유사시에 대비한 비상계획이다. 이걸 공개할 필요는 없다. 문제는 붕괴에 매달려 현실을 돌보지 않는 태도다. 당장 북한 핵문제와 이산가족 등 현안들이 있는데 자꾸 후순위로 밀린다. 사실상 '아무것도 하지 않는 정책'에 다름아니다.
통일세도 그렇다. 통일 상황에서 비용을 어떻게 조달할 것이냐 하는 문제도 노태우 정부 이후로 지속적으로 연구된 사안이다. 대체적 결론은 재정 건전성을 유지해 나가면서 유사시 신축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미리 세율과 세목을 정해놓고 거둘 필요는 없다.
또 재정의 기본원칙에 따르면 당장 도로를 세우거나 학교를 짓는 것처럼 당대의 세대에서 혜택을 보는 사업은 수혜자 부담의 원칙에 따라 세금으로 재원을 조달하고, 착공은 지금 하지만 혜택은 10년, 20년 후에 돌아오는 사업은 채권을 발행하는 것이 맞다. 그렇게 보면 지금 통일세를 미리 걷는다는 것은 좀 엉뚱한 결론이다.
북한인권법도 논란이 되고 있다. 북한의 열악한 인권을 규탄한다는 측면에서 제한적으로 이해는 할 수 있다. 그러나 인권 촉구에 있어 남북관계의 현실을 보지 않고 문제를 제기한다는 것이 얼마나 실효성 있을지 의문이다. 예를 들어 친구 간에는 조언이나 비판을 편히 할 수 있지만, 싸우고 있는 상대방에 대한 비판은 비판받는 쪽에서 비판하는 쪽의 진정성 자체를 의심하기에 제대로 받아들여지지도 않을 것이다.
또 햇볕정책이 북한에 끌려다녔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실질적으로는 우리가 북한을 끌고 다녔다. 6.15 공동선언 이후에 후속 조치 시행을 감독하기 위해 남북 장관급 회담을 21차례 했고 합의사항이 200개가 넘는다. 이중 70%가 금강산, 개성공단, 철도 연결 등 남측이 주도적으로 추진한 사업들이었다.
대북 전단 살포도 심각한 문제다. 심리전도 전쟁의 일환이다. 물론 자유민주주의인 우리 법 체제 하에서 민간단체가 전단을 뿌리는 것을 규제할 근거는 없다. 하지만 (전방 확성기 방송과 국방부의 대북 전단 발송 등) 정부 차원에서 심리전을 재개한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남북 간에는 7.4 남북 공동성명과 1991년의 기본합의서 등 여러 약속에서 상호 비방을 하지 않기로 했다. 이는 정부 간의 약속이다. 우리 스스로 이를 위반하면 남북 합의사항에 대해 북한에 이행을 촉구할 명분이 서지 않는다.
"포용정책도 '업그레이드' 해야"
물론 포용정책이 다 옳았다고는 할 수 없다. 몇 가지 진전시키고 보완해야 할 부분이 있다. 먼저 통일을 지상 목표로 대하기보다는 국가 발전의 새로운 동력을 얻는 핵심적 수단으로 봐야 한다. 현재 우리 경제가 지속적 장기적으로 발전하는데 가장 큰 걸림돌은 인구 감소다. 이미 여러 통계가 있지만 2018년이 되면 절대인구가 감소하는 지점에 다다르고 저출산 고령화 문제로 노인 인구는 계속 늘고 있다. 남북 통합을 통해 보다 큰 (상품)시장, 보다 큰 노동시장을 확보해야 한다.
다른 하나는 평화를 기반으로 통일을 추진한다는 단계론적 사고를 수정해야 한다. 통일과 평화를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 북한 핵문제에 '올인'을 한 적도 사실 없었다. 북한이 간절히 원하는 것이 평화체제의 문제인데 이는 과거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에 비교적 조심스럽게 접근했던 부분이다. 좀 더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또 2007년 정점을 이뤘던 남북 교류협력도 거품을 제거할 필요가 있고, 북한 인권문제도 피하기만 해서는 안된다. 대북 규탄은 지양하되 북한을 돕는 관점에서, 북한이 가입한 국제규범과 북한 국내법에 보장된 인권보장 약속을 준수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시대정신은 통일…후손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해야"
독일 통일과 한반도 통일에는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다. 먼저 공통점은 '아직 진행중'이라는 거다. 통일을 '사건'이 아니라 '과정'으로 이해하면, 우리는 화해협력 정책을 시작으로 이미 통일 과정에 진입했다. 독일은 제도적 통합을 우리보다 빨리 이뤄냈지만 아직 사회적으로 화합 과정에 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독일 통일도 아직 완수됐다고는 볼 수 없다. 차이점은 독일이 평화 상태에서 통일을 추진한 반면 우리는 전쟁상태를 평화상태를 만들면서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2중 과제를 안고 있다.
'시대정신'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있다. 과거 일제시대를 뒤집어 얘기할 때 독립운동의 시대로 부르듯 분단시대는 뒤집어 얘기하면 분단 해소와 통일을 위해 노력하는 시대다. 과거 일제 치하에서 많은 사회적 과제를 완수했고 자본주의의 기초가 이뤄졌으며 시장화와 정보통신 등 한국의 근대화에 기여했다는 평가가 아주 틀린 얘기는 아닐지언정 우리에게 와닿지 않는 것은 당시의 가장 중대한 시대적 과제였던 해방과 독립을 도외시했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에도 많은 과제가 있다. 먼저 경제를 발전시켜야 한다. 녹색성장도 해야 하고 4대강인가 하는 것도 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 시대의 가장 중대한 과제는 분단을 해소하고 통일을 이루는 것이다. 그것을 도외시한다면 어떤 성과도 후대에서 평가받지 못할 것이다. 나중에 후손들이 "할아버지, 그때 뭐하셨어요?" 하는 질문에 "나는 당시에 국민소득 4만 달러를 위해 노력했지"라고만 답변하기에는 조금 허전하지 않을까. 일제 시대 열심히 주어진 일을 하고 학문적으로 훌륭한 성과를 냈던 사람들도 해방 이후 이런 기준에서 재평가되지 않는가.
특히 이 시대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통일 과정에서 남북 간의 복수심과 증오감을 극복하는 것이다. 적대감으로 충만한 안보에는 한계가 있다. 동족상잔의 비극이었던 한국전쟁을 겪었기 때문에 이런 적대감을 통제하고 해소하지 않으면 통일의 기회가 와도 더 큰 혼란만 맞이할 우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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