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전문가로 노무현 정부 시절 정동영 통일부 장관 정책보좌관을 지냈던 김연철 인제대 교수는 이날 "한반도 경제공동체 꿈 무너지는가? - 남북경제협력과 북중경제협력의 엇갈린 이중주"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김 교수는 중국 동북지방의 개발 계획과 맞물려 북중 경협이 질적으로 강화되는 양상에 주목했다. 그는 지금까지의 북중 경협은 시작에 불과했으며 앞으로 본격적인 경협이 이뤄지게 되면 그 효과는 생각보다 매우 클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북중러 3국은 경협을 통해 경제적 효과 뿐 아니라 동북아 역내의 전략적인 고려도 누리려 하고 있는 반면, 한국은 대북 제재에 매달려 경협의 기회를 놓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과거에는 한국이 북한에 들어가 노동력과 자원을 비교적 쉽게 확보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중국 자본과 경쟁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고 그는 개탄했다.
다음은 이날 강연의 주요 내용이다.
'2013년 체제와 한반도 평화전략'이라는 큰 주제로 열리는 2기 아카데미는 매주 화요일 저녁 7시부터 2시간 동안 인제대학원대학교에서 총 8차례 진행된다. 일곱 번째 강의는 10월 25일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이 "북핵‧평화협정, 대타결을 위하여"라는 주제로 한다. 강의에 관한 자세한 안내는 한반도평화포럼 홈페이지()를 방문하거나 사무국으로 전화(02-707-0615)하면 된다. 한반도평화포럼은 대북 화해·협력정책을 지지하는 연구자, 종교·시민사회 관계자, 전직 공직자들이 모여 만든 단체다. 제1기 한반도평화아카데미는 지난해 10~11월 5회에 걸쳐 진행됐다. <편집자> |
"값싼 북한 노동력, 한국→중국 자본으로 말 갈아타"
지난해 천안함 사건 이후 이명박 정부는 개성공단을 제외하고 모든 남북 경제협력을 중단시켰다. 이른바 5.24 조치로 인해 남북교역과 위탁가공이 모두 중단된 것이다. 남북경제공동체의 꿈은 사라졌다.
노무현 정부 당시 남북 교역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던 것이 북한산 건설용 모래였다. 특히 수도권 건설 시장에서 비중이 컸는데 이는 한국에서 환경 규제가 엄격해지다 보니 강에서 모래를 많이 채취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4대강 사업'에서 나온 모래 때문에 북한산 모래 반입이 중단돼도 건설자재비가 상승하지는 않았지만.
남북교역에서는 북한으로 반출하는 것보다 북한에서 반입하는 것이 더 많았다. 주요 품목은 모래 외에 주로 고사리, 버섯, 조개, 명태 등 농수산물들이었다. 교역이 중단되면서 조개구이 식당들이 많이 사라졌는데 북한산 조개 반입이 막힌 것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관련기사 보기)
일반 교역도 그렇지만 위탁가공은 더 심각하다. 5.24 조치의 가장 큰 희생양이 위탁가공 분야다. 위탁가공은 1988년 노태우 정부의 7.7 선언 이후 처음으로 남북경협이 시작될 때부터 경협의 중요한 형식 중 하나로, 남측이 원료와 자재를 주고 북측 노동력을 이용해 조립‧생산해서 가져오는 방식이다. 우리 경제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지만 남성복, 구두 등 몇몇 분야에서 영향을 끼치고 있다.
2010년 남북 위탁가공 액수는 6283만 달러로 전년(9318만 달러) 대비 32.6% 감소했다. 이마저 사실은 5.24 조치 전의 실적이 포함된 결과다. 조치 이전에는 매월 300~900만 달러를 기록했지만 6월에는 50만 달러까지 줄어들었고 11월부터는 0에 가깝다.
남측 기업의 주문 생산들 담당하는 북한 기관은 '은하무역총회사', '능라합영회사', '낙원성화피복 합영공사' 등이다. 하지만 경협이 중단되면서 이들은 중국 기업으로 말을 갈아탔다. 2010년 북한의 대중 섬유제품 수출은 두 배 이상 늘어났다. 2011년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위탁가공 계약은 최소 1년 단위이기 때문에, 남북관계가 풀려서 경협을 재개한다고 하더라도 곧바로 시작할 수 없다. 북한 기업들이 이미 중국과 계약을 맺고 생산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다시 남한 자본이 들어가려면 중국보다 더 매력적인 조건을 제시해야 한다. 과거에는 그냥 들어가서 하던 것을 이제는 중국과 경쟁하며 해야 한다. 이것만 보더라도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이 막대한 손해를 미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참고로 이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를 보면 개성공단도 역외가공지대로 들어가 있다. 개성공단 생산품도 미국으로 수출을 할 수는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관련 규정이 까다롭게 돼있다. 예를 들어 수출이 가능한 시점을 '북핵 문제가 해결됐을 때', '북한의 노동조건이 개선됐을 때' 등등 아주 포괄적이고 애매한 조건들이 붙어 있다.
▲ 북한산 모래를 실은 화물차량이 경의선 육로를 통해 북측에서 남측으로 넘어오고 있다. ⓒ김연철 |
"개성공단, 비바람 부는 광야에 홀로선 촛불"
북한에서 위탁가공 사업을 하던 남측 기업들은 생산 거점을 대부분 중국이나 베트남 등으로 옮겼다. 물론 막대한 손해를 봤다. 북한의 경우 개성공단 최저임금이 월 65달러(약 7만4000원) 정도인데, 동남아 등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이 정도로 낮은 곳은 없다. 최소한 90~95달러 정도는 한다. 가공비 기준으로 최소 30% 정도 더 비싸게 줬다. 2011년 들어 중저가 남성복이나 단체복, 구두 가격이 오른 이유가 여기 있다.
또 임금이 싼 다른 나라는 언어, 문화가 다르고 거리가 멀다 보니 시간이 많이 걸리는데 북한은 말도 통하고 거리도 가깝다. 그런 장점들이 결코 적지 않다. 지금 5.24 조치 이후 6개월이 지나 상황이 어렵다고 하지만 개성공단에서 더 이상 사업 못 하겠다고 박차고 나간 기업은 하나도 없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왜냐? 그만큼 임금이 싸고 조건이 매력적이라는 것이다.
개성공단은 공장 부지도 평당 14만9000원으로 한국의 1/20이며 북측 노동자들의 숙련도도 좋고 무엇보다 노동자들의 이직 걱정이 없다. 한국 중소기업들, 특히 국내적으로 경쟁력을 상실한 봉제나 신발 같은 노동집약적 산업들의 마지막 비상구가 개성공단이다.
하지만 지금 개성공단은 그야말로 비바람 부는 광야에 서있는 외로운 촛불 같은 상황이다. 2004년 12월 시범업체 준공식 이후 현재 123개 기업이 들어가 있고 북한 노동자 4만6000명 정도가 근무하고 있지만 여전히 계획의 1단계에 머물고 있다. 1단계 100만 평도 현재 입주가 끝나지 않았다. 입주율은 37%에 불과하다.
개성공단이 개성 시가지와 거리가 좀 떨어져 있다 보니 출퇴근도 문제다. 일부 기업들은 자체 기숙사를 운영할 형편이 되지만 영세 업체들은 그럴 능력이 없다. 그래서 정부 투자 방식으로 기숙사를 짓겠다는 계획도 있었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 중단됐다. 남북관계의 영향을 고스란히 받은 것이다.
개성공단이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많은 과제가 있다. 개성공단은 지금도 인터넷이 안 된다. 은행도 우리은행 출장소가 나가 있지만 은행이라기보다는 그냥 돈 보관소 같은 기능밖에 못하고 있다. 이런 문제들이 해결되기 위해서는 북측이 풀어야 할 과제, 남측이 해야 할 과제, 남북관계가 좋아져야 해결될 과제 등이 산적해 있다.
개성공단을 살리는 첫 번째 길은 남북관계를 개선하는 것이다. 특히 통관, 통행, 통신 즉 '3통' 문제는 정부 차원의 관계에 달려 있다.
▲ 쉬는 시간 '업간(業間) 체조'를 하고 있는 개성공단의 북측 노동자들. ⓒ김연철 |
"북중 경협, 지금까지는 시작에 불과했다"
남북 경협은 이처럼 중단된 상태인데 북중 경협은 내년부터 더 본격적으로 속도를 올릴 것이다. 물론 북중 경제협력이 잘 되는 데는 물론 남북관계 악화 외에 중국 경제상황이 달라진 요인도 있다. 예를 들어 북한의 대중 무역 의존도가 높다고 하지만 한국도 높다.
1998년만 해도 북한 공장에는 조총련 등을 통해 들여온 중고 일제 기계가 있었다. 그런데 2000년대 중반부터는 전부 중국산으로 바뀐다. 이유는 북한이 돈이 없으니 비싼 일본제 또는 한국산 기계를 들여놓을 형편이 안 되는 것이다. 미국의 무역 제재도 이유 중 하나지만 말이다.
소비재도 마찬가지다. 중국 단둥(丹東)에서 만난 중국 상인이 이런 얘기를 했다. "한국이 5000원 짜리 운동화를 만들 수 있겠습니까?" 한국에서는 보통 아동용 운동화도 몇 만 원씩 하는데 북한에서 그런 운동화를 살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나. 그러니 중국 소비재가 북한에 많이 들어가 있다. 북한 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중저가 소비재는 중국이 휩쓸고 있지 않나.
중국이 북한을 보는 관점은 두 가지가 있었다. 첫째, 변화론이다. 중국이 했듯이 북한도 개혁개방을 해야 하고 그런 면에서 중국의 대북정책도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주로 서방지향적 외교관들 사이에서 나오는 의견이다. 둘째, 지속론이다. 중국이 동아시아에서 영향력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기 위해서는 전통적인 우호관계를 잘 가져가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은 후자를 결론으로 택했다. 그때를 계기로 북중 경협은 질적으로 달라진다. 2009년 원자바오(溫家寶) 총리의 방북 이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지난해와 올해 중국을 세 차례나 오가면서 구체적 프로젝트가 시작됐고 그 성과가 내년쯤 나올 것이다. 그러니 본격적으로 시작됐다고 보는 것은 아직이다. 앞으로 크게 보면 무산, 황금평, 라진 세 지역이 중심이 될 것이다.
"중국, 무산의 자원과 황금평의 노동력을 얻을 것"
첫째, 무산이다. 북한의 상품별 중국 수출 비중을 보면 광물자원 비중이 매우 높다. 철광석, 아연 등 금속류가 15.5%이고 57.1%가 석탄 등 기타 광물자원이다. 나머지는 섬유제품 16%, 수산물 5% 전기전자 1.8% 등이다. 과거 구한말 서양 선교사들이 '동방의 엘도라도'라고 불렀을 만큼 북한은 마그네사이트, 덩스텐 등 광물자원에 비교우위가 있다. 희토류도 제법 있다. 작년 중일 영토분쟁 때 중국이 일본을 굴복시켰던 바로 그 희토류 말이다.
그런데 돈이 되는 것은 중국이 싹쓸이하고 있다. 과거에는 남북 간에도 광물자원 관련 협력 사례가 있었다. 자원 협력이야말로 가장 호혜적인 협력 분야이기 때문이었다. 지난 2005년에는 북한에 경공업 원자재 8000만 달러어치를 주고 그 대가를 광물로 받기로 했다. 실제로 2007년 두 차례 아연괴를 받았다. 품질도 괜찮아서 그걸 팔아 국고에 공업자재 대금을 납부했다.
이어서 2007년 하반기에는 좀 더 안정적으로 경제성 있는 광물을 가져오기 위해 조사단을 구성, 함경북도 신천 지역을 조사했다. 조사 결론은 이 지역에서 안정적으로 공급이 이뤄지게 하려면 물류가 필요한데 북한 철도가 낙후돼서 개량 공사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딱 그 시점에 정권이 바뀌고 관련 사업이 중단돼버렸다.
지금 중국 난핑(南坪)과 북한 무산을 잇는 철도 공사 지점을 보면 백두산 밑이라 완전히 시골 마을인데도 산과 산 사이에 다리를 놓고 터널을 뚫는 공사를 하고 있다. 무산 철광석의 안정적 수송을 위해 이 공사를 하는 것이다. (☞관련기사 보기)
중국의 동쪽 국경을 따라 놓이는 '동변도(東邊道) 철도' 중에서도 우선 공사 구간이 여기다. 이 구간은 올해 말에서 내년 초면 완공된다. 그러면 아시아 3대 철광석 광산 중 하나인 무산에서 나온 철광석이 난핑에서부터 교통망을 따라 중국 남북 지역 모두로 퍼져나갈 수 있다.
둘째, 황금평이다. 현재 북중 경협은 70%가 황금평 근처에서 이뤄지고 있다. 단둥-신의주를 잇는 지역이다. 이 곳은 평양에 가까우며 철도도 놓여 있고 인구도 많다. 일부에서는 중국이 라선을 통해 동해로 나오기 위해 황금평 개발이라는 북한의 요구를 받아들인 것으로 보기도 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황금평은 단둥의 보세가공구역 및 경제특구와 연계해 건설될 것이다. 즉 개성공단 같은 보세 또는 위탁 가공구역으로 개발될 것으로 보인다. 이 지역은 북한 노동력을 투입해 제품을 생산하는 공단 형태로 자리잡을 것이다.
현재 중국과 북한 사이에도 임금 격차가 벌어졌다. 중국도 월 300달러(약 34만 원) 이하의 임금을 주고 사람을 쓰기가 어려워졌다. 임금 상승 속도도 빠르다. 이제는 중국도 북한의 싼 노동력을 매력으로 인정할 수 있을만큼 격차가 벌어진 것이다. 황금평 개발이 지금은 다소 정체돼 있지만 본격적으로 시작하면 효과가 만만치 않을 것이다.
▲ 러시아와 북한을 잇는 두만강 철교. 철교 밑으로 보이는 모래톱에 쳐진 철조망까지가 중국 영토이며 그 너머로 보이는 수평선은 동해 바다다. 중국에게 동해는 코 앞에서 닫혀 있다. ⓒ김연철 |
"중국에 라선이 갖는 의미 매우 크다"
셋째, 라진(나진)이다. 이곳은 굉장히 중요하다. (북한은 1991년 라진시와 선봉군(구 웅기군) 지역을 '라진-선봉 경제자유무역지대'로 지정했고 1993년 직할시인 '라진-선봉시'로, 2001년 '라선시'로 각각 개칭했다. 2004년 북한의 행정구역 개편으로 라선은 직할시에서 특급시로 바뀌었다가 2010년 1월 특별시로 승격했다. 행정구역 명칭은 라선이지만 항구 이름은 라진항이다. 기사에서는 편의상 라선과 라진을 혼용한다 : 편집자)
2009년 8월 중국 국무원 비준을 받은 창춘(長春)-지린(吉林)-투먼(圖們), 이른바 '창지투' 개발 계획을 보면 두만강 국제무역지대 건설, 창지투 국제내륙항구 등 물류망 구축 사업이 포함돼 있다. 문제는 창지투 지역에서 바다로 빠져나가는 출해 통로가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중국 입장에서도 북한과의 연계가 중요하다.
중국은 지금껏 태평양으로 나갈 방법이 없었다. 1990년대 두만강 개발계획이 추진되기도 했지만 북중러 3국의 입장이 달라 성과를 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속도를 내고 있다. 중국의 경제력이 성장하면서 동북 지역의 전략적 가치가 과거와 달라졌기 때문이다. 중국이 라선을 중시하는 것은 1860년 베이징(北京) 조약 이후 무려 150년 만에 동해 출해권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중국은 동북지방에 자원이 풍부하지만 정작 자원이 많이 필요한 건 남부다. 동북지방의 자원을 상하이 등 남부로 가져오는데 가장 싸고 빠른 방법은 해운이다. 내륙으로 운송하자면 보하이만(발해만) 인근의 다롄(大連), 칭다오(靑島)에서 베이징, 광저우(廣州)까지 이어지는 중국에서 가장 발전된 지역들을 통과해야 한다. 당연히 비용이 비싸다. 그러니 동해 출항권은 중국 국내적으로 동북지방과 남부의 경제 연계에 중요하다.
뿐만 아니라 드디어 태평양으로 진출할 권리가 생긴다는 것도 의미가 크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지난 8월 원산항에 중국 군함이 입항했다고 하는데 중국의 태평양 진출이 갖는 전략적 의미를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
중국은 이미 라진항 부두를 임차해 쓰고 있고 북한의 원정리와 중국 취안허(圈河)를 잇는 도로 공사도 이르면 올해 말 끝난다. 원정리에서 라진까지는 53km정도 거리다. 원정리-취안허 간 도로 공사는 모든 장비와 인력이 중국에서 북한에 들어가 하고 있다. 올해 말에서 내년 초 사이 공사가 끝나면 중국의 대형 화물트럭이 훈춘(琿春)에서 라진까지 왔다갔다 하는 때가 올 것이다. 그러면 라진항은 무역항으로 본격 활용될 것이다.
훈춘은 러시아 극동지방과 중국을 잇는 가장 중요한 세관이다. 러시아 극동지방은 인구가 없어 소비재 등을 다 외부에서 들여간다. 그래서 한때 한국의 부산으로 러시아 보따리 상인들이 많이 온 것이다. 지금은? 다 훈춘으로 간다. 이젠 배가 안 들어가기 때문이다. 블라디보스톡에서 부산으로 오는 길에 라진항, 청진항을 들를 수 없게 됐으니 선박 회사는 운항을 안 하고 러시아 관광객도 상인도 오지 못한다.
또 지난 14일 라진항과 러시아 하산을 잇는 철도가 개통됐다. 정상운행은 내년 초부터 하고 이날 시범운행을 한 것이다. 공사 진척 속도가 굉장히 빨랐다는 것은 러시아 입장에서도 항구로서 라진항의 가치가 중요함을 의미한다.
▲ 중국 훈춘(琿春)의 버스 터미널. 북-중-러 3각 경협의 진전을 상징하듯, 간판이 한글과 중국어, 러시아어로 돼 있다. ⓒ김연철 |
"이명박 정부 대북정책의 가장 큰 잘못은 실기(失機)"
이같이 북중러 3국은 경협을 활성화하고 있다. 문제는 남북관계가 잘 될 때 경협이 활성화되면 한국도 참여 기회가 있지만 남북관계가 끊어진 상황에서 진행되는 경협은 우리에게 기회의 상실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북한의 광물, 노동력, 항구는 한정돼 있다. 다른 나라가 먼저 차지하면 우리가 활용할 수 있는 것은 없어진다.
이제는 남북관계가 좋아져도 힘들다. 이미 중국 기업이 북한 노동력을 확보하고 광산 채굴권도 다 갖고 있다. 이 상황에서 한국이 끼어들려면 비싼 대가를 지불해야 할 수밖에 없다. 이명박 정부 대북정책이 갖는 여러 문제 중에서도 이것이 가장 크다. 북방 경제영토를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경협도 때가 있고 그 때를 놓치게 되면 기회의 상실로 인해 큰 비용을 치르게 돼 있다.
▲ 김연철 인제대 교수 ⓒ프레시안 자료사진 |
PNG를 하는 이유는 가격이 싸기 때문이다. 그런데 러시아가 북한을 통과하는 수송의 안정성까지 책임진다면 그 리스크를 감당하는 대신 그로 인한 비용을 가격에 포함시킬 것이다. 물론 러시아에서야 북한 통과를 책임지라고 해도 그만큼 돈을 더 받으면 되니까 싫다고 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그렇게 들여오는 것이 한국 입장에서 얼마나 경쟁력이 있을지는 모르겠다.
또 한국이 20년 전부터 PNG를 추진해 왔던 것은 남북 간 에너지 상호의존을 심화시키는 것이 평화 정착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그런 전략적 목표는 포기하고 오랜 역사를 가진 가스관 사업의 목적과는 차이가 있는 접근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남북관계가 좋아져야 가스관 사업을 할 수 있는 것이지, 가스관 사업을 한다고 남북관계가 좋아지는 게 아니다. 지금 남북 간에는 서해의 평화정착, 금강산 관광 재개, 이산가족 상봉 등 현안이 쌓여 있다. 이런 문제들은 다 놔두고 가스관만 따로 떼서 하겠다? 아마 어려울 것이다.
이제는 5.24 조치의 출구전략을 모색할 시점이다. 예를 들어 북한의 라진항에서 미국이나 유럽으로 가려면 중간에 허브 역할을 할 항만이 필요하다. 동북지방에서 상하이나 싱가폴까지 내려가는 것은 경제성이 없다. 그래서 역내에서는 부산항을 허브항만으로 생각하고 있다. 러시아도 동해 쪽 화물이 부산을 거쳐 라진항으로 들어가 시베리아횡단철도(TSR)를 타기를 바라고 있고, 중국 투먼 등의 지역정부도 미국 수출길에 라진을 거쳐 부산항을 활용하게 해달라고 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5.24 조치 때문에 라진에서 출발해 북한 해역을 통과한 선박은 부산항에 입항할 수가 없다. 이런 상태가 지속된다면 거리가 좀더 멀더라도 다른 항만을 허브로 쓸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항만이라는 것은 한번 결정되면 편의성 때문에 잘 바뀌지 않는다. 한국이 또 '실기'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남북 간의 경협이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이뤄진 것도 사실 늦은 감이 있었다. 노태우 정부 때 시작됐으면 훨씬 효과가 컸을 것이다. 원래 경협이란 것은 해당 국가 간의 기술 격차가 벌어지면 협력의 여지가 적어지게 돼있다. 그런 면에서 지난 5년 간 허송세월한 것은 매우 뼈아프다. 잃어버린 기회의 후유증은 결코 만만하지 않을 것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