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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한반도에 대한 사유와 인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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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한반도에 대한 사유와 인식이 없다" [이수훈 칼럼] 새로운 외교안보 전략을 위하여 <1>
이수훈 경남대 교수가 향후 7편의 칼럼을 통해 차기 정부의 외교·안보 전략에 대한 제언을 내놓습니다.

이 교수는 12월 대통령 선거에 앞서 진보·개혁 진영의 대외 전략이 새롭게 마련되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으로 한나라당의 새 정강정책에 대한 비판(1편)을 시작으로 남북관계(2편), 한미관계(3편), 한중관계(4편), 동북아 협력 문제(5편), 중견국가론(6편), 국제협력 외교(7편)를 논할 예정입니다. 칼럼은 2~3주에 한편씩 소개됩니다.

이수훈 교수는 현재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장을 맡고 있으며 노무현 정부 당시 대통령 자문 동북아시대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한 바 있습니다. <편집자>

"잃어버린 10년"이라는 요란한 정치구호와 '퍼주기'라는 선동적 정치담론으로 전임 정부의 대북정책을 '실패'로 규정하고 단절 의지로 충만해 대단히 새로운 정책을 펼칠 것처럼 위세를 떨던 이명박 정부가 임기 4년째를 마감하고 있다.

지난 4년간 대북정책이 잘못되었으니 바꾸라는 많은 전문가들의 고언과 비판을 외면하고 오직 북한 붕괴가 임박했으니 기다린다는 전략으로 일관한 결과가 참담하기 이를 데 없다. 남북관계가 끊기고, 군사적 긴장은 한껏 고조되어 있으며, 핵문제는 이전보다 더 악화되어 있고, 보수진영이 그토록 강조했던 북한의 '변화'는 더더욱 찾을 수 없다.

아직 임기가 1년 이상 남았는데 집권 여당인 한나라당이 정강정책을 변경해 대북정책을 수정하겠다는 역설적 조치가 취해지고 있다. '비핵.개방.3000'이라는 허황된 간판을 내릴 때가 되긴 된 모양이다.

양대 선거를 앞둔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는 정치적 대세와 사회적 분위기에 편승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보수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온갖 언설과 정책 노선을 쏟아 내고 있다. 이른바 '좌클릭'으로 연일 국민들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는데 남북관계 분야도 예외가 아니다.

1월 30일에 언론에 소개된 정강정책 변경 내용에는 대북정책과 관련해 유연성, 실용, 신뢰, 인도적 지원 등의 정신과 내용을 반영하는 표현이나 의지가 담겨 있다. 박근혜 비대위원장 주변 인사들은 이 변화에는 박 위원장의 시각과 입장이 담겨 있다고 말하고 있다. 특히 이명박 정부가 내심 매달려온 '북한 체제 전환' 정책을 폐기한다는 부분은 진보 언론들로부터도 의미 있는 변화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 ⓒ뉴시스

그런데 이명박 정부가 초래한 남북관계의 일대 재앙은 이 정도의 교정으로 치유될 수 있는 성격을 넘어서고 있다. 기실 '유연성'이야 현 정부가 내걸고 있는 입장이어서 새로울 것이 전혀 없다. 그것은 자칫 미혹적 수사에 그치거나 속셈을 은폐하기 위해 동원된 근사한 표현일 가능성이 높다. 실용과 신뢰, 인도적 지원 같은 내용도 현 정부가 항용 강조해온 표현들이어서 진부하다. 북한 체제를 전환해 보겠다는 의욕은 일찍이 미국의 부시 행정부가 8년간 노골적으로 천명하고 정책적으로 추진한 바가 있는데, 아무런 실현가능성이 없는 허장성세였음으로 판명났다. 그런데 그런 정책을 한국 정부가 해보겠다고 나선 그 자체가 턱없는 인식과 정세 판단에 기초를 두고 있음이야 북한에 대해 초보적 이해가 있는 사람이라면 간단히 정리할 수 있는 문제다.

한나라당 비대위 측은 북한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그런 내용을 삭제했노라고 덧붙이고 있는 데, 북한을 자극하지 않고 신뢰를 구축하면서 남북관계를 점차 개선해나가겠다는 의지가 진정으로 있다면 그보다 훨씬 세련되고 현실성 있는 입장 표시를 해야 했다. 예컨대, 상호주의 문제는 어떻게 정리했나를 물을 수 있겠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실패는 단순히 이명박 대통령 개인이나 그 정부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아무리 대통령과 청와대가 주도했다고 하더라도 국정의 동반자인 한나라당이 정책 실패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상식적인 지적과 더불어, 대북정책을 강경 대립으로 몰아가는데 한나라당과 보수 진영 전체가 정치적 환경을 조성하고 사회적 분위기를 몰아가는 데 적극 가담했다는 뼈아픈 지적을 피할 수 없다. 환골탈태해 파탄난 남북관계를 새로운 정책을 통해 발전시켜보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이 부분에 대한 반성과 성찰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한나라당이 아무리 '쇄신'을 한다고 해도 화해와 협력을 통해 평화를 증진하고 공동번영을 도모하면서 통일에 다가가겠다는 철학과 마인드, 그것을 실행에 옮길 전략과 정책, 그리고 실천 능력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대한민국 보수와 이를 대변해야 할 한나라당은 이명박 정부가 생생하게 보여주었듯이 남북관계 발전이라는 험난한 여정이 요구하는 관용, 역지사지, 인내, 대화, 평화 같은 덕목들과는 본질적으로 거리가 멀다. 특히나 지금처럼 나락에 빠진 남북관계를 구하는 데 필요한 마음자세, 이론적 기반, 실행 전략과 역량은 상호인정, 상호존중, 상호이해를 바탕으로 할 때 비로소 발휘될 수 있다고 보겠는데 한국의 보수와 한나라당이 이런 폭의 사유와 인식을 갖고 있느냐에 대해 심히 의문인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고 해서 진보나 야당이 이런 역량을 갖추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포용정책이 실패했다'라는 비판이 완전히 가신 것도 아니거니와, 이른바 '2013년 체제'는 이전의 민주정부 10년 시기보다 한층 더 발전적으로 진화된 남북관계 정책시스템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 한반도와 동북아의 엄연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남북관계를 위한 소통의 복원, 대화를 위한 최소한의 신뢰 구축, 남북경협의 재개 및 확대, 대북정책에 있어 국민 불안 최소화, 비핵화 문제, 주변국들과 정책적 공조 등등 남북관계를 획기적으로 진전시키기 위한 정책시스템을 준비하기 위한 노력은 무한지경이다. 따라서 이런 시대적·국가적 요구가 가하는 압박은 2013년을 준비해야 하는 진보민주 진영에 한층 위중하다.

그나마 천만 다행인 점은 이명박 정부가 워낙 유별나고도 삽시간에 남북관계를 파국으로 몰아넣는 바람에 진보개혁 진영의 자각과 문제 의식이 조기에 발동했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는 포용정책 추진 10년으로 말미암아 남북 화해·협력의 사회적 토대가 상당히 넓고 굳건했기에 가능하였다. 진보 개혁진영의 화해·협력 노선은 이미 점화되었다. 이제 발본적 정신으로 남북관계 개선을 통한 한반도 평화증진에 필요한 정책시스템 개발을 가동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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