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한 사건이 일어난 지 두 달도 채 되지 않았던 2010년 5월 20일, 정부가 구성한 합동조사단은 '1번 어뢰'라는 고철 덩어리와 '과학적' 데이터라는 걸 '결정적 증거'라고 들고 나와 천안함은 북한 잠수정이 침투해서 쏜 한 방의 어뢰에 침몰됐다고 주장했다. 그 후 한반도와 주변 정세는 급속히 얼어붙었고, 신(新)냉전과 같은 미국-중국의 힘겨루기가 한반도를 중심으로 일어났다. 20세기 초 우리가 겪었던 치욕의 역사를 연상케 하는 상황이었다.
과연 '북한 어뢰설'은 과학적으로 맞는 주장인가. 이 질문에 대한 과학적인 결론은 이미 나와 있다. 합조단이 제시한 '결정적 증거물'이란 '1번 어뢰'는 허깨비에 불과했고, '과학적' 데이터의 일부는 명백히 조작되었다는 사실이 여러 전문가들에 의해 밝혀졌다. 필자와 용기 있는 두 지질학자들(캐나다 매니토바대학의 양판석 박사, 안동대 지질과학과 정기영 교수)이 행한 각자의 독립적인 연구가 내린 일치된 결론이었고, 2010년 11월 <한겨레21>과 KBS <추적60분>에 의해 보도됐다.
이러한 결론에도 불구하고, 2년이란 짧지 않은 세월이 흐른 지금 정부와 '조·중·동'으로 대변되는 소위 '주류' 보수언론들은 합조단의 잘못된 주장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하고 있다. 과학자로서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비이성의 극치다. '주류' 언론들은 깨어 있는 시민들과 전문가들이 제기해 온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의문과 연구 결과들을 외면하고 합조단의 잘못된 주장만 되풀이하면 진실이 드러나는 것을 막을 수 있으리라 여기는 모양이다. 그 구시대적 사고의 뻔뻔함에 기가 질린다.
합리적인 토론이 불가능한 불통의 사회. 특히 마지막 터부인 안보 문제에서 합리적인 사고에 기초한 문제 제기를 하면 종북좌파로 매도하는 정부와 수구세력의 광기. 이러한 비이성적인 양태가 21세기 대명천지에, 지난한 현대사에 많은 분들의 희생으로 민주주의로 나아가고 있는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은 매우 슬픈 일이다.
▲ 평택 2함대 사령부에 있는 천안함 ⓒ프레시안(최형락) |
다행히도 이러한 비합리적인 상황이 장기적으로 고착화되기에 한국 사회는 너무 성숙해 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뜨거운 언론 자유의 분출을 보라. 사상 초유로 MBC, KBS, YTN, 연합뉴스가 파업에 들어가 있다. 어떤 언론사에서는 해외 특파원들조차 사상 최초로 이 자유를 향한 외침에 가담하고 있다. 이 언론인들의 외침에는 지난 4년 동안 보였던 자신들의 나약함에 대한 뉘우침과, 더 이상 물러서기엔 최소한의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다는 다짐이 녹아있다. 또한 <나는 꼼수다>와 같이 21세기 테크놀로지를 이용한 새로운 형태의 언론이 등장하는 것도 한국 사회의 성숙을 말해주는 증거다.
지난 24일 <나꼼수> 대구 공연에 간 적이 있다. 아무리 인기 있는 공연이라지만 보수의 메카라는 대구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일까 걱정했다. 그러나 내 생각은 기우에 불과했다. 공연 시간이 가까워지자 커다란 강당에 1000여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모였다. 대부분 20대에서 40대까지의 젊은이들이었다.
공연은 흥미로웠다. 심각한 주제들을 전혀 심각하지 않게, 발랄하고 자유롭게 다루는 프로그램이었다. <나꼼수> 멤버들의 새로운 레페토리뿐만 아니라 밴드와 성악가의 공연, 탁현민 교수의 재담 등을 보면서 이렇게 자유로운 사고와 행동을 보여주는 젊은 세대들에겐 몰상식과 불통을 수없이 보여준 현 정부와 소위 '보수 집단'이 이질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졌다. 김어준 총수가 잠깐 천안함 사건의 진상 규명을 언급하자, 관중석에서 환호가 터져 나왔다. 그곳은 대구였다. 이 젊은 희망이 '주류'인 시대가 3월의 봄처럼 이미 우리 곁에 와 있음을 보았다.
천안함 사건은 단순히 한 척의 군함이 침몰한 군사적 사건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 사회의 모든 문제점들이 얽히고설켜서 형성된 단면을 보여주는 총체적인 사건이다. 따라서 천안함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는 것은 이 사회 전반의 문제점들을 조금이나마 의미 있게 해결할 수 있는 출발점이자 핵심 고리가 되어버렸다.
누가, 왜 과학을 정치에 이용해 데이터 조작을 명령하고 거짓 결론을 내리게 했는지 낱낱이 밝히는 일은 한국 사회에 민주와 평화의 시대를 활짝 열리게 할 지름길이다. 역사는 진실의 편이라고 한다. 정확히 말하면, 역사는 진실을 기억하는 자들의 편이다. 천안함 사건을 잊지 마시길 바란다.
■ 참고 자료
1. <과학의 양심, 천안함을 추적하다>(이승헌 씀. 창비 펴냄)
4. 천안함 1주기 당시 필자 인터뷰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