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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기 없는 연쇄 살인…이것이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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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기 없는 연쇄 살인…이것이 '인간'이다! [2011 가을, 정희진의 선택] 트루먼 카포티의 <인 콜드 블러드>
"시는 말씀이 아니다. 말하는 형식이다. 그러므로 장르는 운명이다."

김혜순의 <불쌍한 사랑 기계>(문학과지성사 펴냄) 첫 장을 넘기자마자 이 말이 튕겨 나왔다. 비록 문학에 문외한이지만 그간 장르를 우습게 봤던 나는 잠시 당황했다. 내용과 형식의 관계에 대한 가장 '올바르고' 빼어난 저서인 마샬 맥루한의 <미디어의 이해>를 밑줄 그어가며 읽다가 지쳐서 아예 필사(筆寫)해서 읽었지만, 나는 여전히 매체가 곧 메시지라는 말을 이해 혹은 동의하지 못하는 것 같다.

'표현의 자유(freedom of speech)'는 오역이다. 표현의 자유, 말의 자유보다 중요한 것은 생각의 자유다. 그것은 '자유'가 아니라 사유의 독창성이다. 생각의 자유가 없는 표현의 자유는 대체로 '욕설', '직설', '직언', '무례'한 말이 되기 쉽다. 내가 글을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문장력이라기보다 글쓴이의 '생각 용량'이다.

내겐 언제나 목소리, 정치학, 입장, 관점이 중요하다. 그러니, 예술에 무지하고 글 솜씨가 없을 수밖에.

▲ <인 콜드 블러드>(트루먼 카포티 지음, 박현주 옮김, 시공사 펴냄). ⓒ시공사
트루먼 카포티의 <인 콜드 블러드(In Cold Blood)>(박현주 옮김, 시공사 펴냄)는 내 평생의 텍스트다. 너무 거창한가? 이 책은 '글', '나', '나의 글'에 대한 내 모든 관심사가 꺼지지 않고 연기(煙氣)를 피운다. 개가식 도서관의 색인 카드식으로 말한다면, 책의 정보는 다음과 같다.

카포티(1924~1984년)는 <티파니에서 아침을> 작가로 유명하며, <인 콜드 블러드>는 1959년 미국 캔자스 주의 작은 마을 홀컴에서 발생한 일가족 4명 피살 실화를, 사건 발생 지점부터 범인의 사형 집행 시간까지 실시간으로 묘사한 '소설'이다. 허먼 멜빌의 <모비 딕>이 고래의 생태와 포경술, 바다에 대한 섬세하고 방대한 묘사 덕분에 처음에는 문학 서가가 아니라 수산업 분야 서가에 꽂혀 있었다고 한다. 역자 해설에 따르면, <인 콜드 블러드>도 미국에서 문학 강좌보다 저널리즘 관련 학과에서 교재로 널리 사용된다고 한다.

이 책이 내 인생의 이슈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장르.

이 책은 소설과 신문 기사, 소설과 논픽션, 소설과 르포의 차이는 무엇인가? 혹은 차이가 있는가? 하는 논쟁을 불러 일으켰는데, 읽어보면 정말 논쟁이 일어날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동시에 논쟁의 무의미함을 깨닫게 되는데, 어떤 장르로 읽어도 빼어나기 때문이다.

학계에는 보통 논문과 '잡문'에 대한 구별이 있다. 이것은 교수 임용과 유지에 필수적인 것이다. 학회에 기고하는 논문의 '형식미'는 그야말로 '예술에 가까운 완벽한 장르'에 가깝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어쨌든 학회 투고용 글의 형식은 철저하다.

학문과 사회 공동체 간의 관계는 늘 논란거리지만, 논문의 내용과 주장을 사회적 의미, 역할, 기여를 중심으로 생각한다면 논문과 '잡문'의 차이는 글의 형식이 아니라 '품질'로 구별되어야 하지 않을까? '순수 문학', '정통 예술'가들에게 르포와 소설은 어떻게 다르며, 또 다르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인 콜드 블러드>는 질문한다.

둘째, 작가 자신.

모든 소설(글)이 그렇겠지만 이 책은 작가의 캐릭터 그 자체이다. 트루먼 카포티의 삶은 영화 <카포티>를 참조하라. (필립 시모어 호프먼이 카포티로 나왔다.)

동성애자로 알려진 작가는 집필을 위한 취재 도중, 범인과 사랑에 빠졌다. 범인이 자기 스토리를 제공하는 대신 작가는 구명 운동을 약속했으나 이뤄지지는 않았다. 관련이 있는지 없는지 밝혀지지 않았지만, 범인이 처형되고 격찬 속에 책이 출간된 후 20여 년 동안 그는 글을 쓰지 못하고 알코올 중독으로 사망했다.

소설 속 주인공과 작가의 관계, 취재원과 '기자'(말 그대로 쓰는 자)의 관계, 연구 대상자와 연구자와의 관계는 정치적이면서 정서적이다. 글을 쓰는 사람들은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나는 가정 폭력 피해 여성들과 가해 남성들을 5년 동안 상담하고, 이 후 성 역할과 인권 개념을 주제로 석사 논문을 썼고 논문은 책으로 출판되었다. 이 과정에서 나는 그들에 대한 분노, 죄의식, 연민, 동일시, 부담감 등의 감정으로 반쯤 미쳐 있었다.

셋째, 동기 없는 범죄.

인간 행위 중 정신 질환, 인격, 습관, 범죄와의 관계. 인간 몸(정신)의 어떤 상태가 인격적 미성숙의 문제이고, 어떤 증세가 질병일까? 그것은 어떻게 분류되는 것일까? 예를 들어, 우울증의 주요 증상은 우울이라기보다는 무기력증으로 인한 불성실과 무능력인데, 이 상태가 '증상'인 사람이 있고 원래 그런(?)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소설 주인공(범인)의 행동과 심리는 범죄와 인격 장애의 경계를 묻는다.

다중 인격(multiple personality) 장애, 하나의 인격 안에 여러 개의 서로 모르는 자아가 있다는 이 질병은 오랫동안 정신 질환으로 여겨져 왔다. 용의자가 다중 인격 장애로 판명될 경우 연쇄 살인범이라 해도 무죄로 감옥 대신 병원으로 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최근에는 유죄로 판결되는 사례가 많다고 한다. 인간은 일관되고 합리적인 존재라는 근대적 주체, 근대적 인간관에 대한 사회 문화적 성찰과 철학의 변화가 법정에도 반영되고 있는 것이다.

역시 실제 사건인 '조디악 킬러'의 경우, 모든 물리적 증거가 완벽했음에도 용의자는 법의 심판을 받지 않고 자연사했다. 그의 죽음과 함께 그 스타일의 연쇄 살인도 멈췄으나, 법정이 그를 번번이 놓친 것은 피살자와 용의자가 생면부지라는 이유에서였다. 죽인 증거는 있지만 모르는 사이이므로 죽일 동기가 없다는 것이다.

이후 범죄에는 반드시 동기가 있다는 논리는 도전받고 있다. "묻지마 살인"은 이제 그다지 새로운 뉴스가 아니다. 미국의 경우 연쇄 살인범의 인구학적 특징은 중산층에 고등 교육을 받은 백인 남성이다. '어렸을 때 학대 받은 불우한' 이들이 아닌 것이다.

<인 콜드 블러드>의 주인공의 행동이나 이에 대한 작가의 서술 역시 인과적이지 않다. 인간사에서 왜? 라는 질문은 재심문 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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