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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문이 열렸다! 살아남을 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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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문이 열렸다! 살아남을 길은… [변방의 사색] 박노자의 <우승열패의 신화>
박노자의 <우승열패의 신화>를 읽는다. 2005년, 이 책이 나왔을 때, 공부 좀 해 볼 요량으로 잡았다가 그만 둔 기억이 있다. 개화기 역사에 대한 이해가 거의 없다보니 읽다가 지쳤던 것이다. 책꽂이에서 이 책을 볼 때마다 언제 다시 붙잡아야지, 마음만 먹고 있었다. 그런데, 후쿠시마 사고 이후에 이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일과 이탈리아가 원자력 발전을 포기한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지금 재앙 속에 던져진 당사국 일본도, 세계 최대의 핵발전소 밀집지가 되어버린 한국과 중국은 그렇지가 않다. 재앙을 지금 겪고 있어도 핵발전소 르네상스의 물결은 이곳 동아시아에서 격랑으로 출렁거린다. 그 사이 핵 발전에 대해 체르노빌 사고에 대해 조금 알게 되면서 나는 이 흐름에 기가 막히고 질려버릴 지경이다. 핵 문제뿐인가. 오늘까지 275일째가 되는 한진중공업 사태를 봐도, 끝내 완공 직전까지 와 버린 4대강 사업을 봐도 그렇다. 이곳이 사람이 사는 곳이 맞는지를 괴롭게 자문해야할 때가 너무 잦다.

이 사회는 하나의 생존 방식으로 통일되어 있다. 승자독식, 우승열패, 경쟁과 적응, 요람에서 무덤까지 누군가와 끊임없이 힘의 크기를 재며 살아야 하는 정글의 삶이다. 사회 맨 꼭대기에는 출세와 기득권 수호를 위해서라면 뭔 짓이든 할 것 같은 '또라이'들이 진을 치고, 밑에서는 생존을 위해서라면 누구와도 싸울 준비가 되어 있는 남녀노소의 '또순이'들이 있다. 이 끔찍한 사회의 뿌리를 더듬어보고 싶다. 지옥을 탈출하려면 지옥문을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기독교와 서구 근대

앉아서 나는 한 번 둘이 대면해보고 싶습니다. 누가 더 많이 헌금을 했는지, 헌금 계산을 한번 해보자, 헌금을 얼마나 내었는지, 내었으면 그걸 가지고서 사랑한다는 증거를 내세워야 되는 것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고 증거가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닌 것입니다.

요즘 장안의 화제인 <나는 꼼수다>에 등장하는 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님의 말씀이다. '빤쓰 목사님'도 계시는데, 글로 옮기기에는 좀 민망하다. 나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포복절도했다. 너무나 적나라해서 즐겁기까지 했다. 조용기 목사님, 빤쓰 목사님, 그들이 오늘날 한국 기독교의 정신 구조를 솔직하게 드러낸다. 그것은 지난 100년 사이 이 땅에 뿌리내린 서구 근대의 정직한 얼굴이기도 하다.

▲ <우승열패의 신화>(박노자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 ⓒ한겨레출판
박노자가 이 책 <우승열패의 신화>에서 자주 언급하는 두 사람, 유길준과 윤치호가 있다. 한국 사회에 서구의 사회 진화론을 수입해 온, 느리디 느린 이 조선 땅에 '빨리빨리'와 '힘센 놈이 장땡'이라는 경쟁의 논리를 오리지널로 들여온 최초의 지식인들이다. 물론 그의 자손들은 지금도 명문거족으로 떵떵거리고 있고.

박노자는 특히 윤치호를 꼼꼼하게 묘사한다. 그는 유교적 가치를 겉으로나마 추종한 유길준과 달리 철저한 반(反)전통주의자이고, '힘이 곧 하나님의 정의'임을 맹신하는 이 나라 '개독'의 원조다. 그가 미국 유학 시절 겪었던 일을 묘사한 일기의 한 대목을 보자.

우연인지 아니면 가까이 있던 어느 바보의 장난인지 모르지만, 내 코트의 팔자락이 나사못 사이에 끼였다. 이 거북한 처지에서 빠져나오려는 나의 행동이 남녀 촌달들을 아주 기쁘게 해 주었다. 그들은 배를 움켜잡고 킬킬대거나 조롱하였고, 웃어대거나 재갈거렸으며, 손바닥을 치거나 춤을 추면서 함께 그들의 기쁨에 참여하라는 듯 옆 사람들을 불러대었다.

대지주의 서자로 태어나 10대 후반에 고종 앞에서 통역을 할 정도로 고급 전문가 대우를 받던 윤치호가 신학생으로 공부하던 미국에서 이런 모욕을 당한다. 그래서 그는 '왜 하나님께서 백인종과 황인종, 흑인종에게 동등한 기회와 심신의 능력을 부여하시지 않았던가?'라며 고뇌하기도 한다. 그러나 태생적으로 약자에 대한 연민을 가질 수 없었던 그는 강한 인종이 약한 인종을 지배하는 것은 '하나님의 정의의 실현'이라고 정리하고 그 믿음대로 내달린다.

윤치호는 유교가 조선의 정신을 맷돌로 갈아버렸다면서 철저하게 경멸했고, 승려가 되는 이유는 딱 하나, 가난 때문이라고 믿었다. 동학 의병의 궐기에 공포를 느꼈고 경계해마지 않았다. 그의 희망은 기독교였다. 조선을 파멸로부터 구하는 길은 하루빨리 기독교 국가가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난 100년 사이 윤치호의 바람은 이 땅에서 충분히 성취되었다.

종교라는 이름을 들이대기가 부끄러울 정도로 속물적인 삶의 방식을 예찬하고, 힘과 금전을 숭배하며, 극우 이념을 선동하는 한국의 기독교. 이 나라는 한나라당 대표 홍준표의 어법을 빌자면, '사실상' 기독교 국가가 되었다. 무엇보다 우리 대통령께서 오늘날 기독교의 정직한 얼굴을 이렇게 잘 그려 주셨다. '나는 꼼수다'에서 들었던 '가카'의 육성이다.

장로가 시장이 되니까 얼마나 불편한지 몰라요. 아이쿠, 이럴 줄 알았으면 장로 안 될걸 그랬다 싶어요. 장로 시장이 뭐 저러냐, 이 손가락질 받기 싫어서. (…) 제가 서울을 봉헌한다고 했더니, 사방에서 달려들지요. 그때 많은 사람이 기도해준 덕분에 저는 큰일을 무사히 할 수 있었어요. 기도발을 많이 받는 거예요, 제가. 우리 집사람이 예수 안 믿고 결혼할라고 해서, 제가 '예수 안 믿으면 결혼 못한다' 그러니까 나한테 시집오려고 뭐 적당하게 예수 믿고 시집 왔어요. (웃음) 그런데 들어와서 우리 시어머니의 그 기도의 이야기를 듣고 난 다음에 기도 부인이 됐어요. 우리 집안은 다 권사 장로가 되고 다 부자가 됐어요. (아멘~)

현실주의

한나라당은 쿠데타와 민중 학살을 자행한 자들의 후예지만, 저들은 스스로는 조국 근대화와 경제 성장의 기적을 이끈 세력이라고 믿고 있을 것이다. 민주당을 포함하여 지금 집권을 꿈꾸는 자들은 저들에 맞서 싸운 세력임은 분명하지만, 또 그들은 지난 10년간 집권하면서 구조 조정과 정리 해고 따위 극약 처방으로써 외국 금융 투기꾼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외환 위기 이후 지난 10년간 한국사회를 생존 경쟁의 지옥으로 재편했던 당사자임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것은 '수출입국'이라는 논리로 농촌을 궤멸시키고 노동자들을 처절하게 수탈함으로써 이루어낸 박정희의 '조국 근대화' 정신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은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박정희와 전두환, 김대중과 노무현은 같은 반열 위에 서 있다.

철이 좀 지났지만, 잊을 수도 없고 잊어서도 안 되는 뼈아픈 기억의 한 자락을 들추어보자.

노무현 전 대통령 취임 직전인 2003년 2월 미국 신용 평가사 무디스는 한국의 국가 신용 등급 전망을 '긍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내리겠다는 통보를 해옵니다. 주식 시장은 요동치기 시작했고 원-달러 환율도 1200원을 넘어 치솟기 시작합니다. 불안감을 느낀 노무현 정부는 당시 재경부 국장, 국방부 정책실장 그리고 반기문 청와대 외교안보보좌관 등을 무디스 본사로 급파해 대미 정책의 변화를 약속하며 두 달 뒤로 예정된 노 전 대통령의 방미 때까지 시간을 줄 것을 요청합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라크 파병을 선언합니다. 노무현 정부의 변화는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방미 기간 동안 존 루더펄드 무디스 사장 등과의 간담회에서 "개방, 규제 완화, 민영화, 노동 시장의 유연성 제고 등을 병행 추진해 나가겠다"며 경제 운용의 4대 원칙을 제시합니다. 이는 노무현 정부가 두 달 전 신용 등급 유지의 조건으로 내걸었던 약속을 지킨 것이자 출범 석 달 만에 스스로 월가를 찾아 신자유주의 정책 기조를 천명한 것입니다. ("노무현 정부의 운명을 바꾼 한편의 보고서, 그리고 새사연의 꿈"(2009년 6월 16일))

그리고 안타깝게도 유명을 달리했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재임 마지막 해였던 2007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눈앞에 두고 거의 절정에 달한 감각으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결국 저는 농산품도 상품이라고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상품이 아니라고 해도, 결과는 상품으로밖에 안 되게 되어 있고, 그래서 상품으로서 경쟁력이 없다면 농사를 더 못 짓게 됩니다. (농어업인 대상 '국민과 함께 하는 업무 보고'(2007년 3월 20일) 중)

지금, 한미 FTA는 비준을 눈앞에 두고 있다. 4년 전 허세욱 열사가 제 몸을 불태우던 기억이 선연한데, 그 사이 여당과 야당이 자리바꿈을 한 것 말고 달라진 것은 없는데, 그냥 체념해버린 건지, 야권 대통합에 찬물을 끼얹는다고 생각해서인지 너무나도 조용한 것이 의아하다.

한미 FTA를 저렇게 강력하게 밀어붙인 저들은 지금 다시 야권 대통합을 통해 집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경쟁력이 없으면 농사를 지을 수 없다, 상품이 아니라고 해도 결과가 상품이면 상품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철학. 무엇이 반성되고, 어떤 부분이 극복되었는가. 나는 알 수가 없다. 경쟁력이라는 신, 생존을 위한 길이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생존과 생존 방법 그 자체가 도덕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것이 그들의 현실주의다. 이 세력이 다시 집권해서 달라질 것이 무엇인지, 누가 이야기를 좀 해 주었으면 좋겠다.

이념이란

이념은 사회와 유기적 연관을 가지며, 사회에 대해 책임을 진다. 오늘날 현실주의는 말한 대로 '힘의 논리, 승자독식, 우승열패의 신화'이다. 존재하는 것을 당연으로, 필연으로 받아들이는 몽매함, '힘센 놈이 장땡'이라는 원색적인 감정 따위 특이한 열정들을 이념으로 불러도 되는 것인지.

일제 말기, 친일 우파의 지도적 인사였던 춘원 이광수는 극심한 분열증을 보여준다. 젊을 때는 톨스토이와 기독교에 귀의했고, 조금 더 나이 들어서는 전국의 사찰을 돌며 기도를 하고, 부처의 자비를 우주적 원리로까지 격상시킨 깨달음을 말했던 이광수가 또한 같은 시기에 이렇게 발작적인 시를 남기기도 했다.

힘!
오늘의 영광은 힘에 있다
기도 올리는 탑을 무너뜨리고
대포를 거는 포대를 쌓아라!
평화의 흰옷은 다 무엇이냐, 병대(兵隊)의 붉은 복장을 입고
몸과 맘을 모다 무장하여라


부처의 자비와 '평화의 흰옷이 다 뭐냐'는 전쟁광의 히스테리가 어떻게 한 사람의 정신 속에서 공존할 수 있었는지 아연할 지경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오늘날 우리들 또한 이러한 분열증을 공유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실적 경쟁에 촌음을 쪼개어 사는 비즈니스맨들이 한결같이 그림 같은 전원생활을 꿈꾸듯, 이광수에게 부처의 자비란 어쨌든 '이발소 그림'과 같은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이념과 생존 방식 사이에서 벌어지는 이러한 자기 분열은 이 땅 자식인들의 고유한 정체성의 하나인지도 모르겠다. 이 책에는 그런 예들이 많이 나온다. '항왜 투사'로서의 짧은 이력 말고는 당최 긍정적으로 평가할 데가 없는 이승만도 실은 1904년 "독립과 부국강병의 시초인 일본과의 강화 기념일을 경축일로 하자"고 기염을 토한 바 있다. '홍익인간'을 이념화시킨 초대 문교부 장관 안호상은 독일에서 공부한 철학 박사인데, 그는 자신이 정치 깡패 김두한을 싸고 돈 이유가 "그의 주먹이 믿음직했고" "그가 나를 보호해주어서 좋았"기 때문이라고 중학교 2학년 남자 아이처럼 솔직하게 고백하기도 했다.

그러나 꼭 지식인들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우리는 '자유'를 그 자체로 존귀한 가치로 받아들이기보다 뭔가 단서와 유보 조항을 달지 않으면 방종과 다를 바 없는 것으로 생각한다. 경쟁 없이는 한시도 지탱할 수 없는 삶을 그렇게 피곤하게여기면서도 대한민국을 사랑하고 대한민국을 위해 뭉친다. 이것은 어디에서 연원하는 것일까.

박노자는 구한말 지식인들에게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중국 변법 운동의 이론가 양계초의 계급적 기반을 탐구한다. 양계초는 그 당대 동아시아 신흥 부르주아지의 희망이었다. 구세력과 싸울 수 있기 위해서 그리고 동학이나 의화단 따위 민중들의 저항을 진압하기 위해, 그리고 자신들의 재산을 지켜줄 무력이 필요했다. 국권 상실의 시대에 짝을 맞추어 양계초는 '국가를 위해 뭉치자'고 웅변했다.

'자유는 곧 힘 있는 자들만의 특권'이며, '더 큰 것을 위해 포기함으로써 얻게 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이게 무슨 '자유'인가. 그러나 그에게 이 모순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닥치고 단결'이라는 국가주의, '전체를 위해 유보된 개인의 자유'는 양계초 이후로부터 동아시아 근대의 이념이 되었고, 식민지와 독재 정권을 지나 신자유주의 체제가 끝자락에 다다른 지금까지 우리 사회와 우리의 내면을 지배하는 이념이다.

대국주의

세계에서 핵 발전을 가장 많이 하는 나라, 인류의 종말까지 함께 할 방사능을 내뿜는 인류의 가장 큰 골칫거리들을 지금 가장 왕성하게 굴려가는 나라는 미국, 프랑스, 일본, 한국, 중국이다. 이들의 공통점이 있다. 대국(大國)에 대한 지향이 그들의 근세사를 관통해왔다는 사실이다.

핵무기를 얻으려는 욕망이 핵 발전을 도입한 나라들의 주요한 의도임은 이미 상식이 되었다. 패전국 일본도 그랬다. 1954년 남태평양 비키니 섬에서 자행된 수소폭탄 실험으로 누출된 방사능으로 일본인 어부가 사망한 사고가 일어난 바로 그날, 훗날 총리를 역임하게 되는 청년 정치인 나카소네 야스히로는 "모두가 미적댈 때 나서는 것이야말로 정치인의 책무"라며 핵 발전을 위한 연구 예산을 통과시켰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로써 핵과 영원히 결별했어야 할 일본이 오늘날 후쿠시마 사고로 다시 한 번 재앙의 수렁에 빠지게 된 첫 단추가 꿰어진 날이다. 지진과 태풍이 상존하는 나라에, 세계 최초로 핵폭탄이 투하되어 미증유의 고통을 겪은 나라에 54기의 원자력 발전소가 작동되어온 것은 우익들의 핵무장에 대한 강렬한 열망 때문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진실이다.

관동군 장교 다카기 마사오(高木正雄)의 정체성을 일생토록 떨쳐내지 못한 박정희가 메이지 유신의 영광을 한국에서 재현하고 싶어 했다는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박노자는 박정희가 구체적으로 비스마르크 시대의 독일, 혹은 히틀러의 제3제국과 같은 모델을 꿈꾸었고, 그래서 서서히 미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핵무장을 준비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박정희는 이광수가 고독한 사무라이로 묘사한 이순신을 사랑했고, 자신을 이순신과 동일시하려 했다. 그리고 자신에게 적대적인 야당과 비판적 지식인들을 문약(文弱)에 젖은 채 붕당 정치로 찧고 까불던 사림 정치인들에 견주었다. 당연히 그는 "비판 일변도를 지양한 생산적이고 건설적인 지식인", 이를테면 국민교육헌장을 기초했다는 딸랑이 철학자 박종홍 같은 이들을 사랑했다.

대국에의 열망, 민주주의와 지식 분자에 대한 한없는 혐오, 근대 이전의 농업과 마을 공동체에 대한 염증으로 일구어진 것이 바로 이 '조국 근대화'이다. 그리고 아직도 이 땅 지식인과 다수의 민중들은 그의 소망을 '사실상' 공유하고 있다.

경쟁 이념은 수입품

그러나 분명히 해 두어야 할 것이 있다. 과연, 민중이 이 '힘의 이념'을, 부국강병에 대한 소망을 불러들였는가. 민중이 기차와 대포를, 핵발전소를 원했던가. 민중은 원하지 않았다. 자본가와 그들을 대변하는 국가가 원해서 들여왔던 것이다. 그리고 이들을 '삶의 당연'으로 쑤셔 박아 놓고는 이젠 '어쩔 수 없잖아'라며 민중들을 결박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형국이다.

세상 어디에서나 그러했듯 강요된 경쟁의 이념, 원치 않게 끌려 들어온 근대 문물 앞에서 민중들은 저항했다. 경인선 철로가 처음 개통되었을 무렵, 기차에 치여 죽은 아이의 장례를 치르고 난 뒤 인천의 민중들이 기차를 가로 막고 불태우려는 무력 시위를 벌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런 식이었다.

제국주의 근대는 깡패였고, 그 나팔수가 바로 '힘의 사상'이었다. 우매한 민중을 계도하는 역할을 자임한 이른바 계몽 지식인들이 살판이 났을 뿐이다. 이광수의 <무정>에 나오는 유명한 대목이다.

저들에게 힘을 주어야 하겠다. 지식을 주어야 하겠다. 그리하여서 생활의 근거를 완전하게 하여 주어야 하겠다. '과학! 과학' 하고 형식은 여관에 돌아와 앉아서 혼자 부르짖었다. 세 처녀는 형식을 본다. "조선 사람에게 무엇보다 먼저 과학을 주어야 하겠어요. 지식을 주어야 하겠어요." 하고 주먹을 불끈 쥐며 자리에서 일어나 방 안으로 거닌다. "여러분은 오늘 그 광경을 보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말에 세 사람은 어떻게 대답할 줄을 몰랐다. (…) 병욱은 자신 있는 듯이, "힘을 주어야지요! 문명을 주어야지요!" "그리하려면?" "가르쳐야지요! 인도해야지요!" "어떻게?" "교육으로, 실행으로."

삼각관계의 세 남녀가 소설의 마지막에서 해후한다. 이 뻘쭘한 상황을 돌파하는 남자 주인공 이형식의 명분은 바로 '민중 계몽'이다. 양반 사대부들의 위세를 그대로 물려받았고, 계몽을 무기로 무식한 백성 위에서 군림할 수도 있었으며, 신흥 자본층의 절대적인 지지와 엄호를 받았고, 국권 상실 후에는 힘의 논리를 좇아 외세에 납작 엎드린 이 계몽 지식인들.

한 번 더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 모든 근대적 삶의 방식은 강요당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우리가 원했던 것이 아니라, 저들이 갖고 들어와 우리에게 강제로 입힌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해야 한다. 그리하여 일생토록 끔찍하게 경쟁만 하며 사는 것이 숙명이 아니라는 사실을 자각하는 것은 이 경쟁의 지옥으로부터 빠져나오기 위해 견지해야 할 천금처럼 중요한 진실이다.

우리는 근대를 중세로부터의 해방이라고 배웠다. 근대에 대해 문제 제기하면 중세의 어둠으로 되돌아가고 싶냐고 겁박을 당했다. 그러나 20세기가 시작할 때까지 근대 세계의 첨단이라는 영국에서도 무산 대중과 여성들에게는 참정권조차 허용하지 않았고, 그들이 지배하는 식민지의 민중들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통을 겪어야 했다.

20세기 후반기에 이르러서야 미국의 흑인들은 참정권을 보장받았다. 우리가 개화기 역사를 배우며 주입 당했고, 한미 FTA 비준을 눈앞에 둔 지금까지도 저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써먹는 논리는 '문명개화 vs 야만'의 이분법이다. 야수의 이빨 앞에서 활짝 열어야 문명이라니,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닫으면 야만이라니, 아직도 그걸 믿고 살아야 하다니.

근대 세계가 더 발달하면, 산업 생산력이 증대되고 물질적 부가 보편화되면 좌파는 좌파대로 피억압자인 노동자 대중을 해방시켜주리라 생각했고(마르크스), 우파는 우파대로 폭력에 덜 의존해도 되는 평화의 세계가 오리라(스펜서) 예측했다. 그러나 두 예측 모두 빗나갔다. 지금의 세계가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전쟁과 수탈, 원시적인 폭력이 지배하는 야만은 달라지지 않았다.

혼란이 필요하다

이 책을 다 읽고 뇌리에 남은 묵직한 질문을 끄집어내본다. 무엇이 문제인가. 내가 얻은 답은 이러하다. '힘의 논리' 그 자체가 문제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힘의 논리'로부터 우리 자신을, 우리의 사회를 분리시켜야 한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선(善)한가? 이게 현실이면 우리는 이 현실을 따라야 하는가? 현실에는 물질 세계만 존재하지 않는다. 현실 속에도 정신과 도덕의 몫이 있다. 현실로부터 자신의 정신과 도덕을 분리시키는 과업에 성공했던 역사의 선구자들을 살펴보자.

신채호, 구한말 <대한매일신보>를 수놓은 비분강개의 열혈 논객이었고, '국가를 내 집으로 생각하라'는 영락없는 국가주의자였다. 그러나 안중근을 포함하여 뜻있는 지식 분자들이 대부분 일본을 중심으로 다가오는 인종 간의 전쟁을 위해 조선·일본·청나라가 힘을 모아야 한다는 이른바 '아시아주의'에 빠져 있을 때, 그는 아시아주의가 결국 일본 침략의 도구가 될 것임을 알아보았다. 그것은 그가 국수(國粹)를 목숨처럼 여겼던 민족주의자이기 이전에 그의 정신이 침략자의 발톱이 할퀴어드는 현실 속에서 가장 큰 고통을 겪고 있는 조선 민중의 자리로 분리되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윤치호와 한용운은 이 대목에서 극적으로 대조된다. 윤치호는 냉정한 현실주의자였다. 일제 강점기로 접어들 무렵에는 "열강들이 고작 조선의 독립 문제 따위로 일본의 심기를 건드리려 하지 않을 것이다. 힘으로 독립을 얻어낼 자신 없으면 약자로 사는 법을 배우라"고 했다. 과연 그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볼 줄 알았다. 그래서 그는 강한 쪽에 붙는 일에 열심이었고, 일제에 철저히 협력했고, 그의 자손들도 지금껏 떵떵거리며 잘 산다.

그러나 만해 한용운은 현실로부터 자신의 믿음을 분리했다. 그는 "약한 자의 가슴에 눈물을 뿌리는" 자비의 신을 믿었다. 그리고 모든 개체가 누려야 할 본원적인 자유를 믿었다. 그리하여 그는 그 당시 누구나 우주의 법칙으로 믿고 있던, 그리고 지금도 믿고 있는 '우승열패의 법칙'으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었고, 내면과 실존적 차원에서라도 한 시대의 지옥을 탈출할 수 있었다. 냉방에서 영양실조로 죽어갈 자유를 실천한 그의 삶은 윤치호의 완전한 대척점에 놓인다.

차라리 혼란이 필요하다

이 책에서는 이야기하지 않고 있지만, 나는 이 힘의 세계로부터 탈출하기 위해서는 분리와 함께 반드시 '혼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싶다.

한진중공업 정리 해고자들은 곧장 복직되어야 한다. 핵 발전은 당장 폐기되어야 한다. 학생인권조례는 당장 시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거기서 생겨날 혼란을 함께 겪어야 한다. 한진중공업 정리 해고자들이 복직되면서 그 회사 안에서 생겨날 자본가의 손실, 예정된 구조 조정이 무산됨으로써 생겨난 혼란 속에서 그동안 자본이 일방적으로 편취해왔던 이익의 분배 구조가 제자리로 돌아올 길이 모색되어야 한다.

핵 발전을 포기함으로써 생겨날 전체 전력 3분의 1의 부족으로 초래될 불편과 손실이 계산되고 함께 나누어져야 한다. 학생인권조례가 시행됨으로써 생겨날 문화적 충격과 아이들의 분출로 인한 곤란한 상황들 속에서 교사와 어른들은 '맷집'을 키워야 한다. 그동안 아이들에게 해 온 게 있지 않은가.

한국 경제가 망한다, 한국 교육이 망한다, 전력 대란(大亂)이 일어날 것이다, 이딴 소리 다 겁주려고 하는 소리인 줄 알고 있다. 이런 종류의 혼란으로 인해 세상은 망하지 않는다. 역사가 증언하듯 저들의 탐욕으로 인해 망했으면 망했지, 정의와 진실을 위해 민중들이 분출함으로써 생겨난 혼란으로 세상이 망했던 적은 없다. 혼란은 한 사회가 거듭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치유의 비용이 될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여러 차례 권정생, 무위당 장일순 그리고 전태일이 생각났다. 이 분들은 유길준, 윤치호, 서재필, 이승만에서 시작되어 이광수, 최남선을 거쳐 박정희와 박종홍에 이르는 힘의 철학, 강자의 논리, 우승열패의 신화 반대편에 세워야할 민중의 사상가들이다. 힘없고 약한 것들에 가해지는 고통에 아파하고, 그들의 운명을 자신의 것으로 끌어당긴 정신의 큰 스승들, 풀뿌리 민중의 세계에서 면면히 내려온 연민과 모성의 사상을 생각한다.

생전의 리영희가 "이렇게 훌륭한 사람을 본 적이 없다" 했던, 깊은 안목과 너른 품을 가졌고 또 한없이 겸손했던 사상가 무위당 장일순은 원주에서 협동과 상호부조, 농촌살림의 운동을 열고 이 일을 돌아갈 때까지 도우셨다. 서예가이기도 했던 그가 남긴 '개문류하(開門流下)'라는 글귀, '문을 열고 아래로 흘러라'는 말씀 속에 담긴 민중 정신과 넉넉한 개방성을 생각한다.

마지막 순간까지 이 세상 굶주리고 고통 받는 어린이를 생각하며 기도한 권정생은 바로 이 강자들이 만든 식민지와 전쟁, 분단과 기아의 고통을 몸으로 겪었고, 거기서 얻은 육신의 병을 일생토록 짊어지고 다녀야 했었다.

그리고 전태일이 있다. '고독한 사무라이' 박정희가 쌓아 놓은 착취와 수탈의 제단 위에서 자신의 육신을 불태움으로써 이 제단을 무너뜨려버린 전태일. 그가 남긴 일기장 속의 한 글은 어쩌면 이 <우승열패의 신화>를 넘어 우리가 만들어야할, 그리고 지금 당장 이 야만의 세계로부터 분리하여 혼란 속에서도 그 삶의 방식을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될 어떤 새로운 세계, 오래된 미래의 모습인지도 모르겠다.

저에게는 휘앙 찬란한 물질 문명의 베일보다는 왼(외)딴 초가집의 끄름끼는 등잔 밑에서 노활아버지의 고담이 더욱 좋읍니다. 밤이 되면 형형색색의 내온싸인이 불야성을 이루고 자동차의 행렬이 불꽃성을 이루는 도시의 소음보다는 귀뜨라미 소리 단조로운 사랑방에 동내방내 친구들과 사랑의 토론이 얼마나 멋있을까요. 친구여, 나는 그토록 많은 시간을 그토록 허무하게 보냈습니다.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 131쪽)

힘의 논리, 짓밟고 어떻게든 이기고 살아남아야 한다는 강퍅한 논리를 걷어내면 지금 우리에게도 살 길이 보이지 않겠는가. '국익, 경쟁력' 따위 민중들을 쥐어짜내기 위해 개발된 헛소리에 주눅 들지 말고, 같이 나누고 같이 살자고 말하자.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으로 상징되는 저 자본의 탐욕을 응징하는 정의를 위해 싸우자.

만약 정리 해고를 도저히 기업이 풀어내지 못하거들랑 시골에서 농사짓고 함께 살 수 있을 기반을 마련해 달라고 하면 어떨까. 밤에는 불 끄고 일찍 잠자리에 들고, 여름엔 좀 덥고 겨울엔 좀 춥고, 미친 듯 쓰는 사회를 지나 함께 참으며 살아가는, 그런 사회를 향하여, 이제는 걸음을 내딛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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