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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死 가른 철학 전쟁, 열두 고비 대장정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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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老病死 가른 철학 전쟁, 열두 고비 대장정 시작! [프레시안 books] 강신주의 <철학의 시대><관중과 공자>
시리즈 하면 우리는 보통 박경리의 <토지>, 조정래의 <태백산맥>, 최명희의 <혼불>과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 제국 쇠망사>와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등을 생각한다.

최근에 강신주가 전례 없이 중국의 고대 철학을 총12권의 시리즈로 기획하는 '제자백가의 귀환' 중 제1권 <철학의 시대 : 춘추 전국 시대와 제자백가>와 제2권 <관중과 공자 : 패자의 등장과 철학자의 탄생>이 출간했다. 그를 주목해온 사람이라고 해도 전작을 읽기에도 숨찰 정도인데, 쓰기에 거칠 것 없이 질주하는 저자의 필력에 다시 한 번 더 기대를 하게 만든다.

중국의 어떤 작가에게 쉴 사이 없이 글을 쓰느냐고 묻자 이상은의 "봄누에는 죽어야 실을 토하지 않고 촛불은 재가 되어야 눈물이 마르네."(春蠶到死絲方盡, 蠟燭成灰淚始乾, '무제(無題)')라는 구절을 인용하며 대답을 대신한 적이 있다. 강신주의 집필도 실과 눈물처럼 계속될 듯하다.

시리즈의 두 권은 상나라의 잔혹한 신정 정치가 주족(周族)과 강족(姜族)의 연합 세력에 의해서 무너지고 탁월한 이데올로그 주공이 설계했던 주나라의 예제가 깨어지면서 강족이 주도하는 춘추 전국 시대의 개막을 다루고 있다. 이 두 권만으로도 실로 많은 이야기를 쏟아내고 있다. 그 중에서도 중요한 내용을 살펴보자.

첫째, 제자백가를 유가·묵가·도가·음양가 등 학파의 틀로 이해하지 말고 공자·손자·장자 등 개별 사상가의 고유 명사로 재구성하자. 대부분 철학사에서는 학파에 따라 사상의 갈래를 나누고 그 특성을 밝힌다. 이는 전공자만이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익숙한 관행이다. 책에서는 이러한 학파 분류가 기껏해야 유가와 묵가를 제외하면 결코 사실이 아니라 한나라의 도서 분류 작업을 위해 세운 기준일 뿐이라고 본다.

학파는 '만들어진 전통'일 뿐 객관적 사실도 아니고 엄밀한 타당성도 없는 것이다. 제자백가들은 학파의 공통된 소속 의식을 가지고 사유 활동을 펼친 게 결코 아니라 실제로 개인의 지성으로 사회 질서의 원리를 찾거나 자유의 논리를 내웠던 것이다. 따라서 시리즈는 제2권을 관중과 공자로 시작해서 제3권을 손자와 오자를 다루는 것처럼 역사적 사실로 돌아가고 있다.

"한 제국 역사가들의 목소리를 소거하지 않는다면, 춘추 전국 시대 사상가들의 고유한 목소리를 경청하기 힘들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제자백가의 사상을 제대로 음미하기 전에 제자백가에 덧씌워진 한 제국의 아우라를 지워야한다는 것이다."(<철학의 시대>, 216쪽)

▲ <철학의 시대>(강신주 지음, 사계절 펴냄). ⓒ사계절
강신주는 아우라를 지우기 위해서 다소 지루하다고 할 정도로 <한서>와 <사기> 그리고 <회남자>의 제자백가 분류를 추적하면서 학파 분류의 폐해를 추궁하고 있다. 사실 사상가의 전면 배치는 서양 철학사의 서술 체제에 견주면 너무나 당연하고 자명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중국 철학사의 서술에서 무시되어왔던 점이다. 앞으로 나올 책에서 학파의 패싸움이 아니라 개인들의 진검 승부가 자못 기다려진다.

둘째, 제자백가는 한족(漢族)의 선행 형태로서 주족(周族)의 독무대가 아니라 오늘날에도 이어지는 주족과 강족의 대립 구도를 반영하고 있다. 오늘날 중국은 56종의 다민족 국가이지만 역사와 정치는 한족의 이름으로 기록되어 축적되고 있다. 이것은 사마천을 시작해서 중국인들이 은나라, 주나라, 진나라, 한나라로 이어지는 주류 한족 문화를 강조해온 과정에서 강화된 것이다.

중국 역사의 속살을 들여다보면 "중국 문화와 사상의 중핵에는 은나라의 상족이나 주나라의 주족과는 상이한 언어와 문화를 가졌던 강족의 정신이 강렬하게 살아 숨 쉬고 있었던 것이다." 아울러 "중국의 중심 권력과 그들이 몰아내려고 한 다른 종족들 간의 은밀한 갈등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철학의 시대>, 47쪽)

시리즈의 첫 두 권에서는 주나라가 상나라의 타도를 위해서 연합했던 강족의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서 건국 이후에 그들을 오늘날 산둥 반도의 변방으로 배치하고 그것도 모자라서 주변에 노나라 등을 통해 견제하고 감시했던 여정을 그려내고 있다. 특히 강족의 전통을 이은 제나라가 종이호랑이로 전락한 주족의 주나라를 대신해서 춘추 전국 시대를 열어가는 패자로 등장하는 과정을 흥미진지하게 다루고 있다.

강신주는 춘추 시대에 일어난 주족과 강족 역전의 화룡정점을 기원전 667년의 규구 회맹으로 보고서 이를 "강족의 제나라는 한때 자신들을 찔렀던 비수로 주나라의 심장을 찌르게 된 셈이다"(<관중과 공자>, 89쪽)고 묘사하고 있다. 사실 기독교 문화가 '이단' 문화의 흡수를 통해서 이루어진 것만큼 한족 문화도 종족 간의 협연을 부당하게 전유한 결과이기도 하다. 한 편의 드라마와 같은 주족과 강족의 대립과 혼종을 통해 제자백가의 다양성을 새삼 실감할 수 있다.

셋째, 제자백가의 특성을 정치철학 또는 사회 철학의 문맥에서 조망하고 그 동력을 국가와의 동화와 이화로 파악하고 있다. 상나라의 신정 체제가 무너진 뒤로 주나라는 동성 제후의 협력을 통해 집단 방어 체제를 구축했다. 주나라의 통제력이 약화되자 개별 제후들은 읍제(성읍) 국가의 특성을 탈피해서 부국강병의 국가 건설에 경쟁적으로 뛰어들었다. 그 과정에서 제자백가는 혼란의 수습과 질서의 수립을 위한 자신만의 사상을 빚어내게 되었던 것이다. 그 안에는 상앙과 같은 국가주의부터 양주와 같은 아나키즘까지 실로 모든 것에 가까운 철학의 향연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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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중과 공자>(강신주 지음, 사계절 펴냄). ⓒ사계절
제2권 <관중과 공자>에서 강신주는 읍제 국가 이후와 관련해서 관중과 공자를 각각 현실적 정치와 이상적 정치를 대변하는 인물로 분류하고 있다. 여기서 그는 통상적인 철학사 서술이 공자로 시작하는 것과 달리 관중으로 시작하고 있다. 이러한 전복의 이유는 두 가지 오해를 불식시키려는 데에 있다. 공자로 철학사를 시작하면 "제자백가의 사상에서 공자를 대표로 하는 유학 사상이 주류였다는 그릇된 인상을 주기 쉽"고 "제자백가의 사상이 정치철학적 관심을 통해서 발전해왔다는 사실을 간과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관중과 공자>, 25쪽)

왜 관중을 제자백가의 개막을 연 인물로 보아야 할까? 관중은 귀족을 특별하게 대우하지 않고 민중의 주동적인 역할을 부여해서 춘추 시대의 시대정신인 부국강병을 선취했던 인물이다. 반면 공자는 관중의 문제의식을 공유하면서도 귀족 중심의 사회 질서를 수립하려고 했던 보수적 특징을 드러냈다.

사실 서양 철학사는 소크라테스의 인문 철학으로 시작하면서도 소크라테스 이전 자연 철학자의 존재를 결코 소홀히 하지 않았다. 대부분 중국 철학사가 공자 또는 노자로 시작하면서 그 이전을 소홀히 했던 경향을 고려한다면 공자 이전 관중의 발견은 주목할 만한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이외에도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있다. 관중의 국가주의에 깃든 자발적 복종이 현대 사회에도 재연되는 맥락과 기제를 오롯하게 그려내고 있다. 제자백가의 시리즈가 연이어 출간되고 나중에 완간된다면 제자백가들이 빚어낸 고대 철학사를 지금보다도 훨씬 더 깊고 넓게 이해할 수 있으리라 의심하지 않는다. 아울러 우리는 이 시리즈를 통해서 서양의 근대 정신을 중국의 전근대에서 찾아내려고 했던 펑유란의 <중국 철학사>에서 느끼는 못한 정치철학의 묘미를 느낄 수 있다.

이 시리즈처럼 내용과 대상이 방대하다 보면 고루 관심을 집중하기 쉽지 않다. 보완했으면 하는 바람을 적어보자면 다음과 같다. 강신주는 <사기>의 육분류와 <한서>의 구분류를 검토하면서 "모두 병가를 제자백가에 넣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일까?"라는 의문을 던지고 있다.

그 답을 문무(文武)의 분화 전통에서 찾으면서 춘추 전국 시대와 달리 한나라에서는 전쟁 기술에 능숙한 병가로서 사학 집단이 존재할 시간도 이유도 없었다고 본다(<관중과 공자>, 86~87쪽) 널리 알려졌듯이 진나라는 분서갱유와 협서율을 실시하여 민간에서 서적의 제작과 유통 그리고 연구에 제재를 가했다. 한나라가 수립된 뒤 협서율이 폐지되면서 각종 서적이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특히 한나라의 무제에 이르면 흉노족의 정책을 수세적 방어에서 공세적 섬멸로 바꾸면서 병법 관련 수요가 폭증했다. 이때 병서를 광범위하게 수집하면서 무제는 군정(軍政) 양복(楊僕)으로 하여금 <병록(兵錄)>을 정리하게 했다. 이것이 훗날 유흠이 도서를 분류한 칠략(七略)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 칠략에는 제자략만이 아니라 병서략(兵書略)이 들어있다. 이렇게 보면 두 역사서에서 병가를 제자백가에서 뺀 것이 아니라 넣지 못한 사연이 있는 것이다.

관중은 환공과 파트너가 되어 제나라를 춘추 시대를 주도하는 패권국으로 키워냈다. 관중이 먼저 죽고 환공이 2년 뒤에 죽자 환공의 다섯 아들이 후계자 싸움을 벌이느라 환공의 시신이 67일이나 방치되었다. 이후 제나라는 하락의 경향을 보이다가 전국 시대에 이르러 진나라에 무기력하게 패배하게 된다. 관중이 환공을 패자로 만들었지만 그 결실이 다음 세대로 이어지지 못했다.

"중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재상 가운데 한 사람으로 기억되는 출중한 정치가"(<관중과 공자>, 17쪽) 관중의 정치철학은 시대정신을 읽어냈음에도 불구하고 제나라의 장기적인 안정 내지는 제도화를 가져오지 못했을까? 이도 함께 다루었으면 좋겠다. 일찍이 장웨이는 이를 <제나라는 어디로 사라졌을까(芳心似火)>(이유진 옮김, 글항아리 펴냄)에서 그 원인을 밝히기도 했다.

공자와 관련해서 강신주는 "<논어>를 앵무새처럼 답습하기보다는 새로운 시선에서 숙고하고 조망할 수 있도록 또 다른 길을 열어볼 계획이다"(<관중과 공자>, 17쪽)라는 포부를 밝히고 있다. "군자와 인(人)은 귀족층이고 소인이나 민은 피지배층을 나타내는 용어였다."(<관중과 공자>, 47쪽)

이를 바탕으로 공자의 인(仁)은 인간에 대한 보편적인 사랑이 아니라 관용적인 귀족의 품성이나 고상함(nobleness), 예라는 행위 규범에 입각한 윤리적 사랑으로 풀이하고 있다. <경향신문>의 서평 기사를 보면 "강신주는 '공자의 인은 보편적인 사랑이 아니라 지배층, 즉 귀족 내부의 사랑'이라고 해석했다"라고 한다. 원래 이 주장은 그가 처음으로 밝혀낸 새로운 것이 아닌데 기사에서는 그런 것처럼 오해하고 있다.

책 뒤의 참고 문헌에 인용된 자오지빈의 <논어신탐>(1976년, 초판은 1950년에 나온 <고대 유가 철학 비판>이다. 한국어 번역본은 <반논어>(예문서원 펴냄)이다)과 앤거스 그레이엄의 <도의 논쟁자들(Disputers of Tao)>(1989년, 나성 옮김, 새물결 펴냄)처럼 길게는 60년 짧게는 30년이 된 오래된 책속에 나오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서양의 고대 철학자와 현대 인문학자는 실명을 거론하면서 논의를 진행하지만 동양의 주석자나 연구자의 성과는 원용하면서도 그 출처를 밝히지 않아 그 사정이 궁금하다.

강신주는 공자에 대해 정치적으로 보수적이고, 철학적으로 모든 것을 철저한 자기 반성하지 못해 비겁하고, 제도적으로 예의 신비한 힘을 확신 또는 맹신했다고 본다. 한 사상가를 분석할 때 그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동력을 무엇으로 보느냐에 따라 결론이 다를 수 있다. 아사노 유이치는 <공자 신화>(길훈섭·김종섭·신정근·함윤식 옮김, 태학사 펴냄)에서 공자의 정조를 니체의 '르상티망(ressentiment, 원한)'으로 읽어내고서 그가 노예 도덕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고 그의 제자들은 그를 왕으로 만드는 신화를 쓰게 되었다고 보았다.

강신주는 공자의 정조를 맹신으로 보기 때문에 그가 관중처럼 새로운 시대를 선취하지 못한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공자는 <논어>에서 이미 실패를 자인하는 말을 되풀이하면서 자신의 길을 고수하고 있다. 이는 관중이 모든 것을 흥정으로 보고서 성공을 기획하려고 했던 것과 달라 보인다. 르상티망으로 보든 맹신으로 보든 공자의 정조를 실패를 받아들이는 바보스런 운명애로 보는 것도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이런저런 아쉬움을 늘어놓았지만 풍부한 상상력과 폭넓은 사유가 그려내는 즐거움을 줄어들게 할 수는 없으니 일독을 권한다. 완간을 발돋움하며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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