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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냐? 나도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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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냐? 나도 아프다! [프레시안 books] 멜러니 선스트럼의 <통증 연대기>
대개 서평을 청탁받으면 출판사에서 책을 보내준다. 하지만 나는 "번잡스럽게 그러지 마세요" 하며 오프라인 서점에서 정가 2만원에 이 책을 샀다.

'원래의 나'는 편집자의 비평을 받기 위해 마감 며칠 전에 글을 보내는 '범생' 기질의 필자였다. 지금은 매번 마감을 전후해 "원고가 늦어 정말 죄송합니다" 메일을 보내고, 문장의 기본인 비문(非文)여부나 맞춤법을 놓고 전전긍긍하는 처지다. 이 책은 서평 때문이 아니더라도 꼭 읽고 싶은 책이었다. 그런데 사 놓고 어디에 둔지를 몰라 글쓰기 부담보다 더 괴로운 집안 청소를 해야 했다.

위 세 가지 사연은 모두 나의 지병으로 인한 통증 때문이다. 책을 배달받지 않고 사는 게 통증 때문이라고?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내 질병은 국민 건강 보험 적용이 어렵고 환자마다 증상이 다양하고 심지어 정반대인 경우가 많아서 병의 인지와 진단 자체가 어려운 병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공통적인 증상은 분명하다. 일상의 무능력과 불성실. 무능력과 불성실이 성격, 인품의 문제가 아니라 병의 증상인 것이다.

주변 사람들은 "네가 말 안 해도 사람들이 (이미) 다 알아" 하고 비웃지만, 나는 여전히 내가 아프다는 것을 말하기 어렵다. 내가 아픈 것이 창피하고, 내 병이 알려지는 것이 두렵다. 나는 내가 살아있는 한 남들이 다 쳐다보는 벽장(closet) 속에서 혼자 아파야 하는 신세다. 서두에 개인적인 '앓는 소리'를 내는 것이 부끄럽지만, 서평이 이렇게 고통 호소로 시작되는 것 자체가 이 책의 중요성이 아닐까 생각한다. 안 아픈 사람이 있는가?

▲ <통증 연대기>(멜러니 선스트럼 지음, 노승영 옮김, 에이도스 펴냄). ⓒ에이도스
멜러니 선스트럼의 <통증 연대기>(노승영 옮김, 에이도스 펴냄)의 긴 부제는, 이 주제에 대한 통찰과 글쓰기의 어려움(suffering)을 말해주는 듯하다. "The Pain Chronicles : Cures, Myths, Mysteries, Prayers, Diaries, Brain Scans, Healing, and the Science of Suffering." (역자는 pain을 주로 "통증"으로 옮겼지만, 나는 "고통"이라는 표현이 익숙해서 이글에서 혼용해서 쓰겠다).

책의 제목에는 'pain'과 'suffering'이 모두 들어 있다. 서구 근대 철학에서 'pain'은 신체적 아픔을 'suffering'은 정신적 괴로움을 의미했고, 이는 몸과 마음의 이분법으로 위계화되었다. 의식 작용을 수반하는 정신적 괴로움(suffering, 고뇌)이 몸의 고통보다 우월하다고 본 것이다. "통증"은 이러한 구분에 문제 제기하기 위한 적합한 용어가 아닌가 싶다.

제목이 책 내용을 제시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책이 그렇다. 이 책은 통증에 대한 백과사전이다. 저자의 일기이자 통증의 미스터리, 종교성, 치유책 등 (서구 문화를 중심으로 한) 통증의 모든 것이다. 이 책은 주제나 내용에 상관없이 책 읽기를 즐기는 '전방위 독서광'들이 좋아할 만한 정보로 가득 차 있다. 통증이라는 이슈는 다학제, 간학제일 수밖에 없기 때문일 것이다.

미국인 5명 중 1명이 만성 통증을 앓고 있다, 진통제로서 마약과 중독 물질로서 마약의 차이, 마취 없는 수술의 역사와 외과 의사의 지위변화, 고문, 우울증, 편두통 등 모든 쪽이 흥미진진하다. 이는 책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이 책은 고통에 대한 저자의 철학적 사유, 정치적 입장을 피력하기보다는 인류가 고통을 다루어온 방식, 인식해온 역사에 초점을 두고 있다. 고통에 관해서라면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이만한 지식을 담고 있는 저작도 드물 것이다.

어렸을 때는 고통이 삶의 요소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그 다음엔 "고통은 삶의 필연"이라는 말에 수긍했다. 그러다가 탈식민 페미니스트 글로리아 안잘두아의 책에서 고통은 "삶의 방식(way of life)"이라는 구절을 발견하고 완전히 절망했다. 어떻게 그렇게 산단 말인가? 삶의 반대는 죽음이 아니라 고통이며, 죽음의 반대 상태는 삶이 아니라 일상이다. 이 책의 주제가 이렇다고 볼 수는 없지만, 삶과 고통의 관계는 책에 인용된, "지금 뭘 하고 있나요"라는 물음에 "아프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한 알퐁스 도데가 요약하고 있는 것 같다.

가장 논쟁적인 부분은 '통증은 무엇인가?'(331~337쪽)이다. 나는 통증을 정의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이러한 시도와 접근 방식이 전제한 사유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인간관계의 줄임말이지만, 동시에 인간은 각기 다른 몸들이다. 통증은 개인의 몸에서 일어나는 주관적인 현상일 수밖에 없다. 통증의 개념을 정의하는 것보다 이를 둘러싼 물리적 권력 관계, 권력과 지식, 인식과 치유 과정의 사회성, 정치학, 언어가 '통증학'의 핵심 주제가 아닐까.

저자는 "통증은 감각일까, 정서일까, 관념일까? 통증은 생물학적 산물일까? 문화의 산물일까?" 하고 질문한 뒤, 통증을 영적인 표지로 본 고대의 통증관과 생물학적 기능으로 본 19세기 통증관을 화해시킨다. 나는 통증의 개념보다는 통증의 문제를 왜 연구해야 하고, 인간이 피할 수 없는 문제인데도 왜 금기시되어 왔으며, 왜 덜 다루어지고 있는지에 대해 관심이 있다.

저자를 비롯하여 이제는 거의 모든 전문가들이 통증의 원인은 생리적(육체적), 심리적, 사회적 상호 작용이라는데 동의한다. 문제는 정치적 연대(solidarity)와 투쟁을 통한 통증의 변형 가능성이다. 통증은 치유, 경감, 다르게 해석될 수 있고, 또한 그래야만 한다. 이것은 이미 프로이트의 지론이었다. 수술이나 투약이 아니라 말로 육체의 고통을 치료(talking cure)할 수 있다는 그의 이론은, 상담 심리의 기술이라기보다는 고통과 사회의 관계에 대한 혁명이었다.

'정신대 할머니'의 경험, 성폭력 피해 여성의 모욕, 정신 질환자의 통증, 암 환자의 고통, 장애인의 '불편'은 변화될 수 있다. 삶은 통증이지만 우리는 덜 아플 수 있고, 통증에 대한 대처에서 좀 더 평등할 수 있다. 내가 알기론, 이 책에도 수없이 언급되는 일레인 스케어리의 은 이 주제를 집중적으로 다룬 바이블이다. 이 책이 번역되기를 갈망한다.

<통증 연대기>는 영어와 우리말 모두에 능란한 번역의 수려함과, 뛰어나고 성실한 수고로운 편집으로 독자에게 행복감을 준다. 나는 특히 저자의 참고 문헌 중에 한국어로 번역된 책을 병기한 이런 책을 좋아한다. 개인적으로 고통과 몸은 내 인생과 공부의 평생 주제인데, '동지'들이 있다면 이 책과 더불어 다음을 읽기 권한다.

외국 필자에 국한한다. 올리버 색스, 앤드루 솔로먼,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 안드레아 드워킨, 오오누키 에미코, 존 사노, 사라 러딕, 미리암 그린스팬, 도미야마 이치로, 버니 시걸, 케이 레드필드 재미슨. 번역으로 인해 읽기가 통증인 책도 있지만 저자마다 대개 2권에서 7권까지 번역되어 있다.

비윤리적 내용의 걸작, 고문에 관한 영화지만 관람이 고문인 영화 <마터스-천국을 보는 눈>도 함께 권한다. 마터스(Martyrs), 순교자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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