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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만 남기고 떠난 불쌍한 내 딸! 새누리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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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만 남기고 떠난 불쌍한 내 딸! 새누리당은…" [가습기 살균제가 짓밟은 행복] 세 살 딸 잃은 부부
지난 2011년 한국 사회를 뒤흔들었던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햇수로 3년째에 접어들었다. 일상 속의 생활용품이 영·유아(1~3세) 56명을 포함한 127명(2013년 5월 13일 기준, 질병관리본부 피해 접수 현황)을 죽음으로 이끌었다.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충격적인 사건에 대한 여론의 관심은 이내 사그라졌다.

하지만 무심코 가습기에 넣었던 살균제 때문에 소중한 아들딸, 아내, 남편을 잃고 남아 있는 가족도 건강이 만신창이가 된 피해자는 여전히 고통 속에서 신음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제조업체는 사건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피해자에게 사과 한마디 없이 시종일관 당당하다.

여론에 못이겨 대책을 마련하는 듯하던 정부와 새누리당은 "현대 과학기술로도 예측하지 못한 일을 정부가 책임지는 일이 맞는지 모르겠다"(윤성규 환경부 장관), "기본적으로 제조업체가 책임질 일이다"(새누리당) 등의 어깃장을 놓으며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구제 법안 처리에 어깃장을 놓고 있다.

1994년부터 판매되기 시작한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국민은 약 874만 명(전체 국민의 18.2퍼센트)에 달한다. 실제 피해 사례가 몇 건인지는 파악조차 할 수 없는 규모인 것이다.

<프레시안>은 모두가 외면한 채 신음하는 피해자를 만나 피눈물 나는 '그들만의 싸움'을 들었다. <편집자>


● 첫 번째 인터뷰 : 아내와 아기를 잃은 이 남자, "살인자는 바로…"
● 두 번째 인터뷰 : '옥시싹싹'이 망가뜨린 이 남자, 그 기막힌 사연은?
● 세 번째 인터뷰 : 삶이 파괴된 남자의 눈물 "그녀를 앗아간 회사는…"
● 네 번째 인터뷰 : 지옥에서 보낸 10년! 누가 '천사'의 날개를 꺾었나?
● 다섯 번째 인터뷰 : 돌 지난 아기의 싸늘한 주검, "살인자는 저들인데…"
● 여섯 번째 인터뷰 : 아내 잃고 딸도 포기, 이제 '김앤장'과 나홀로 전쟁!
● 일곱 번째 인터뷰 : 16개월 손녀을 앗아간 악마! 그걸 내 손으로…
● 여덟 번째 인터뷰 : 네 살 아들이 살해당했다! 모든 것이 사라졌다!

"엄마, 아죠아죠." 2006년 3월의 어느 날, "안아줘" 하는 딸아이의 울음소리가 윤소라 씨의 가슴을 쳤다. 의사들이 아이를 둘러싸고 기도 삽관을 하고 있어서 안아줄 수 없었다. 기도 삽관에 질겁해 엄마를 찾던 세 살 인서(2004년 생)는 그날 이후로 말 한마디 못하고 그 해 4월 20일 세상을 떠났다. 당시 둘째를 임신하고 있던 윤 씨는 이미 임신 9개월에 접어든 상태였다.

11일 오전, 경기도 김포시의 한 카페에서 인서의 부모를 만났다. 마음 같아서는 그저 잊고만 싶을 아픈 기억을 굳이 끄집어낸 이유는 무엇일까. 아버지 백승목 씨는 "책임져야 할 사람은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모두 피해자가 지쳐서 나가떨어지기만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백 씨가 이야기하는 '모두'에는 가습기 살균제 제조·판매 업체뿐만 아니라 정부, 또 우리도 포함된다.

▲ 온 가족의 귀염둥이였던 인서. ⓒ프레시안

감기인 줄 알았는데 피 토하며 기침

윤소라 씨는 아직도 2006년 3월 16일을 잊지 못한다. 친한 언니 아이의 돌잔치에 갔던 그날, 갑자기 건강하던 인서가 입술이 파래질 정도로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 설사 단순한 감기 증상이라도 부모로서는 예민할 수밖에 없죠?

윤소라 : 네. 그날 바로 아이가 태어난 병원 소아과로 가려고 했는데 주위에서 '너무 예민하다' 이런 식으로 말하더군요. 또 기침하다 나아지기에 그 날은 그냥 병원에 안 갔어요. 그런데 다음날이 되었는데 아무리 봐도 애가 이상한 거예요. 그래서 병원에 데려갔더니 의사는 괜찮다고 하고….

엄마의 예감은 맞았다. 여느 감기가 아니었다.

윤소라 : 그 주 토요일에 우리 부부는 방에 있고 인서 혼자 거실에 있었는데 갑자기 아이가 피를 토하면서 기침을 했습니다. 병원에 가니 의사가 아이 목에 손을 짚더니 호흡 곤란 증세라며 큰 병원에 가라고 하더군요. 전날은 괜찮다고 하더니만. 정말 놀라서 이화여자대학교 목동병원으로 옮겼어요.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폐렴이라고 생각해서 큰 걱정은 하지 않았어요.

백승목 : 저는 이대목동병원에서 순간적으로 '이게 단순한 게 아니구나' 하고 느꼈어요. 응급실에서 어린 의사가 아이를 보고 어찌할 바를 모르더군요. 중환자실에 자리가 없다기에 고려대학교 구로병원으로 갔지요. 그 뒤 이야기는 아주 단순합니다. 다들 하는 이야기가, 폐렴인데 원인은 모르겠으나 예후가 좋지 않다는 것이었죠.

24시간 병실 지켰지만 끝내 사망

- 피해자 대부분이 급속도로 증세가 악화해서 사망합니다. 인서는 어땠나요.

백승목 : 인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폐는 굳어 가는데 원인을 모르니 제대로 된 치료를 받아본 적이 없지요. 너무 답답해서 전국의 유명한 소아과나 흉부외과 의사의 메일 주소를 찾아서 인서의 증세를 적어 보내기도 했어요. 하나같이 "학계에 보고된 바가 없다, 원인을 모르겠다" 이런 답만 돌아왔습니다.

윤소라 : 별생각이 다 들었어요. 인서가 병원에 가기 며칠 전에 동물원을 갔는데 거기에서 손바닥에 새를 올려놓고 무척 좋아했어요. 혹시 그 새가 조류인플루엔자에 걸린 새였나 생각했죠.

전쟁 같은 날들이었다. 백승목 씨는 "24시간 내내 병원에 있으면서 유난을 떨었다"고 회상했다. 인서의 이모부까지 직장을 그만두고 병실을 지켰다. 의사들은 "이모부까지 저러는 건 처음 본다"며 놀랐다. 집안의 첫 아이였던 인서는 그만큼 많은 사랑을 받은 아이였다.

출산을 앞둔 윤 씨는 의사와 남편의 만류에도 좀처럼 병원을 떠나지 못했다. 백 씨는 아내에게 차마 말하진 못했지만, 언젠가부터 인서가 세상을 떠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그는 조용히 아내에게 인서의 장기를 기증하자고 말했다. 각막 기증 동의서에 서명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인서는 세상을 떠났다.

백승목 : 기증받은 사람을 찾지 않겠다고 서명까지 했는데…. 인서가 세상을 떠나고 나니 그 눈을 받은 사람을 한 번만 보고 싶단 생각이 많이 들더군요.

"인서가 떠난 후, 둘째 아이 안지도 못해"

세 살 딸아이의 장례 과정을 백 씨는 굳세게 견뎌냈다. 마치 "중요한 행사를 치르듯" 장례 절차에서 모든 책임을 다했다. 그러나 그 과정이 끝난 후 견딜 수 없이 힘든 시간이 시작됐다. 은행에서 여러 사람을 관리하는 위치에 있었던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을 대하는 일이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윤소라 : 그 와중에 저는 둘째 아이를 낳았잖아요. 인서를 보낸 충격으로 젖이 한 방울도 안 나와서 둘째 아이는 모유 수유를 하지 못했어요. 인서가 마지막으로 안아달라고 했던 것이 생각나서 둘째 아이를 안을 수도 없더군요. 둘째 아이를 안으면 인서의 그 목소리가 귓가에 쟁쟁해서…. 그래서 아직도 둘째 아이에게 많이 미안해요.

그뿐이 아니었다. 뱃속에 있을 때 엄마가 너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은 탓인지 둘째 아이의 심장에 조그만 구멍이 생겼다. 백 씨는 이런 아내와 둘째 아이를 보며 힘든 기색도 하지 못하다가 결국 번듯한 직장을 그만뒀다. 남부러울 것 없이 유복하고 화목했던 가정이 산산조각 나는 것 같았다.

다행히 이제는 둘째 아이의 심장도 건강하고 백 씨도 새로운 직장을 찾았다. 하지만 인서가 세상을 떠나기 전과 후가 같을 수는 없다.

- 2011년에 가습기 살균제가 '원인 미상 폐 질환'의 원인이라는 사실이 발표됐을 때, 바로 인서를 생각했나요?

백승목 : 애 엄마나 저나 망치로 머리를 꽝 맞은 것 같았습니다. 뉴스를 보자마자 알았지만 처음에는 서로 이것에 대해 말도 못 꺼냈습니다.

윤소라 : 전 차라리 아니었으면 했어요. 죄책감이죠. 애가 돌 때부터 가습기 살균제를 썼는데….다른 일에는 게으르면서 왜 가습기 살균제를 넣는 데는 그렇게 부지런했는지…. '다른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면 나에게 뭐라고 할까' 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이들 부부는 '홈플러스 가습기 살균제'와 '옥시싹싹 가습기 당번'을 사용했다. 가습기의 물통에 가습기 살균제 몇 방울만 섞으면 가습기의 세균이 제거된다고 했다.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사람이면 누구나 그렇듯이, 이들도 아이를 위해 가습기를 더 깨끗하게 사용하고 싶었다.

사망 진단서에 사망 원인으로 '가습기 살균제' 명시

너무 고통스러운 이야기는 꺼내지 않는 편이 견디기 쉽다. 1997년에 최초 출시된 이후 2011년까지 가습기 살균제의 연간 판매량이 약 60만 개에 달한 만큼, 아직 알려지지 않은 피해자는 많을 터다. 그럼에도 나서서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피해자가 비교적 적은 이유다.

이들 역시 처음부터 언론과의 인터뷰에 나서고 기자 회견에 참가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묻으려고 했다. 그러나 정부와 기업 측의 무관심에 지쳐가는 다른 피해자를 보면서, 올해 환경보건시민센터에 피해 사례를 제출했다.

이를 위해 고려대학교 구로병원에서 받은 사망 진단서에는 '사망의 원인'으로 '가습기 살균 소독제에 의한 폐 섬유화'가 명시돼 있다. 고려대학교 구로병원이 2011년 질병관리본부의 발표 이후 인서의 사망 원인을 가습기 살균제로 공식 지목한 셈이다.

"이제는 새누리당 의원을 만나고 싶다"

- 백승목 씨는 올해부터 기자 회견과 피해자 간담회 등에 참가하셨는데, 매번 정부에 대한 실망감을 표출하시더군요.

백승목 : '내가 무슨 잔 다르크라고 이러나' 하는 생각도 들곤 합니다. 그렇지만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누가 보더라도 나라가 책임져야 하는 사안입니다. 우리 아이가 여행 가지 말라는 위험 지역에 갔다 죽은 게 아니지 않습니까. 동네 집값을 올려달라고 떼를 쓰는 것도 아닙니다. 정부가 안전하다고 판매 허가를 내준 생활용품을 쓰다 120명이 넘는 사람이 죽었는데 어떻게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나요.

이 사건을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넘어가면, 비슷한 일이 생겼을 때 제2, 제3의 피해자가 나옵니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이 인체에 해로운 영향을 끼쳐서 수많은 피해자가 나오면, 그때는 어떻게 할 겁니까. 이상한 비유라는 것은 알지만 가습기 살균제도 스마트폰만큼이나 일상적인 물품이었고 당연히 무해하다고 인식된 생활용품이었습니다.

이들과 인터뷰하기 바로 전날인 6월 10일, 기획재정부와 새누리당 지도부의 반대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구제안을 6월 임시 국회에서 처리하려던 계획이 무산될 지경에 놓였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관련 기사 : "가습기 연쇄 살인, 피해 보상에 새누리당 어깃장") 이에 대해 백 씨는 할 말이 많은 듯했다.

"국가 기관인 보건복지부가 가습기 살균제가 유해하다고 결론을 내리지 않았습니까. 이럴 거면 차라리 무해하다고 하지 그랬나요.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관련해서, 슬픔은 슬픔으로 받아들이고 사실은 사실로 받아들여야 하는데 이제는 그저 정치인의 생색내기 혹은 싸움거리 소재가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구제 법안 처리에 반대하는 새누리당 의원을 만나고 싶습니다. 이제는 반대하는 사람들을 만나야 할 것 같습니다. 이런 자리가 꼭 마련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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