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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를 울린 '선의'…안철수·박경철의 생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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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를 울린 '선의'…안철수·박경철의 생각은? [親Book] <누구도 대답하지 않았던 나눔에 관한 열 가지 질문>
치료실로 들어온 아이가 털썩 주저앉아 운다. 하도 서럽게 울기에 말 붙일 엄두도 내지 못했다. 기어이 말문을 열었다. "우리 아빠가 1만 2000원도 없을까 봐." 퉁퉁 부은 눈으로 죽고 싶단다. 중학교 2학년, 열다섯의 아이가 저리도 서럽게 우는 이유가 뭘까. 얼마나 고통스럽기에 살기 싫다고 하는 거며, 1만 2000원은 또 뭔가 싶었다.

수학여행을 앞둔 아이의 학급에서 반 티셔츠를 맞추기로 했단다. 여행이라곤 서울 밖을 나가본 일이 없으니 기대가 될 법도 한데, 가야 할지 말지는 고민 중이라고 했다. 워낙 숫기가 없고 무리에 어울리지 못했기에 이번 참에 애들과 친해질 수 있지 않을까 싶다가도, 버스에서 혼자 앉아가거나, 밥 먹을 때 어울릴 수 있을까 하는 염려 때문에 적극 가라고 권하지도 못하던 차였다. 괜한 상처만 더 받고 오면 어쩔까 싶어 내 마음도 아이와 다르지 않았다.

헌데, 문제는 출발하기도 전에 터지고 말았다. 여행을 앞두고 반에서 장기자랑 준비도 하고 단합의 의미로 반 티셔츠를 만들기로 했는데, 그 비용이 이것저것 합쳐 1만 2000원이었단다. 저소득층 지원 대상자로 수학여행 경비는 학교에서 내주는 모양이었다. 말끝에 아이에게는 티셔츠 값을 받지 말라는 얘기도 나온 듯했다. 그 사안으로 학급 회의까지 열렸단다. 아이 마음이 오죽했을까 싶었다.

한창 예민한 시기인 여중생이 아니더라도 그 자리에 앉아 있기란 만만치 않았을 터였다. 평소에도 말 없던 아이가 입을 꾹 다물고 있었을 걸 생각하니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나이 많은 아버지와 단둘이 사는 가난한 아이니까 돈을 받지 말아야 한다는 쪽과 스마트 폰을 가지고 있으니 1만 2000원은 충분히 낼 수 있다는 쪽이 팽팽하게 맞섰던 모양이다. 그 속에서 아이가 무슨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그뿐 아니었다. 학교에서 맺어준 멘토 선생님은 집요하게 아버지가 일하시는지에 대해, 100일도 안 되어 집을 나간 엄마에 관해 묻더란다. 말하기 싫다고 했더니 "다 너를 위한 일인데 협조하지 않으니 서운하다"라고도 했단다.

▲ <누구도 대답하지 않았던 나눔에 관한 열 가지 질문>(안철수, 조한혜정 외 지음, 김영사 펴냄). ⓒ김영사
아이가 돌아가고 온종일 마음이 복잡했다. 입맛도 없고, 괜한 짜증만 났다. 곤죽이 되어버린 마음으로 몇 달 전 우연히 읽었던 책을 다시 꺼내 들었다. <누구도 대답하지 않았던 나눔에 관한 열 가지 질문>(안철수, 박경철, 도법스님 외 지음, 김영사 펴냄)이 그것이다. 11명의 저자가 나눔에 대한 견해를 강연하고 이를 정리해 엮은 것이다. 전반부에는 일 대 일 결연 기부와 소외된 독거노인을 통해 도움 받는 상대를 '처리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인격'으로 봐야 한다고 문제 제기한다. 또한 '죄책감을 파는 모금'의 위험과 건강한 기부 행위에 대해 고민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후반부에는 '나눔에는 무엇이 필요한가'라는 물음을 통해 '시혜성 기부'와 '구제하는 사람과 구제 대상을 이분법으로 가르는 것'에 대해 비판적 질문을 던진다. 책은 200페이지 가량의 가벼운 분량이지만, 읽고 나면 묵직한 고민거리를 떠안게 된다.

"우리는 나눔이라고 하면 남을 돕는 것, 혹은 내가 가진 것을 남에게 조금 나눠주는 것쯤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나눔은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다. 도움을 주는 사람들은 받는 사람들에 대한 섬세한 배려를 우선해야 하며 나눔의 방법에 대해 철저한 고민과 성찰을 해야 한다. 우리는 나눔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늘 나눔은 본질적으로 올바른가라는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그러나 나눔의 본질적 의미나 방법, 옳고 그름을 떠나 나눔은 나의 삶에 새로운 관점을 만들고 타인의 삶에 새로운 시선을 던지게 한다. 나눔은 다른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고, 그것을 통해 나를 되돌아보게 하는 새로운 가능성이다."(5~6쪽)

"선의가 선행을 낳지 않는다"라는 이선재(유네스코한국위원회 협력 사업본부장)의 말도 곱씹어 볼 만하다. 아이의 반 친구들, 멘토 선생 역시 선의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겠는가. 나는 그네들과 다르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질문해 본다. 너무 쉽고 간단하게 도움과 나눔을 말했던 게 아닐까. 내 방식대로 해석하고 마음대로 행했으니 오히려 좌절감을 준 일은 없을까. 자기만족이었던 듯하다. 상대방의 마음과 입장은 채 헤아릴 생각도 못 했으니 말이다.

"일 대 일 결연에 대한 비판 중에 제일 첫 번째 문제는 후원받는 대상과 그에 따른 왜곡입니다. 아마 대부분 이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후원하는 입장에서는 '나는 있는 사람이고, 괜찮은 사람이고, 착한 사람이고, 주는 사람이다'라는 생각을 하기 쉽고, 후원받는 대상은 '어렵고, 도움이 필요하고, 좀 불쌍한 사람이다'라는 뭐 이런 이분법으로 구분을 짓기도 합니다."(21쪽)

'멘토'라든가 나눔, 일 대 일 결연이 상용될 만큼 익숙한 말이 되었다. 헌데 이 역시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한다. "내가 도와주는 그 아이를 세상에서 가장 형편없는 아이"로 만들어 놓는다는 것. "그 아이를 굉장히 비참한 존재로 만드는 것은 큰 문제"라는 구절은 스스로 묻고 답을 해야 할 중요한 대목이라고 생각한다.

나눔을 '제법' 실천하는 축에 드는 사람이라고 착각했었다. 그 이면에는 '꽤 괜찮은 사람'이라는 우월감도 꿈틀거렸는지 모른다. 어릴 때부터 용돈은 친구와 함께하는 거라 교육받았고,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기부단체에 동전 모은 저금통을 보내는 것이 일상이었다. 수입이 불안정했던 시절에도 일 대 일 결연으로 매월 일정 금액이 자동이체되어 나갔다. 그러나 그 돈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단지 3명의 아이를 10년 동안 지원하고 있으므로 도리는 다했노라고 자부했다. 대상은 '그저 숫자'에 불과했다. 그 숫자에 혼자 만족하며 위안을 얻었다.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의 자존심에 상처를 내고, 절망감을 주었을지도 모르면서 허상에 도취되어 있었다. 모두 행동에 대한 통찰과 신중함이 부족했던 탓일 터다.

붉게 충혈된 눈을 하고 나간 아이의 뒷모습을 보고서야 깨달았다. 가끔 아이가 끼니를 거르고 오거나, 밥 대신 라면을 먹고 왔다 하면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크게 다그쳤던 일, 공부하기 싫다 소리 나올까 봐 마음을 끓이면서도 좀 더 나은 성적을 은연중에 강요했던 일. 이 모든 잔소리가 치료사의 경계를 넘나드는 일인 줄 알면서도 '가난하고 가진 것이 적으므로' 그리해야만 벗어난다는 빈약한 논리를 앞세워, 그것만이 최선일 거라 믿고 밀어붙였다. 부끄럽다. 서슴없이 상식과 원칙을 말하고, 나눔을 주장하는 내 모습이 얼마나 보잘것없으며, 불충분한 근거와 편견에서 비롯된 건지 깨닫고 나니 얼굴이 후끈거린다. 무지하였다는 핑계로 면죄부가 될 수 있을까. 상대를 위한다던 선의가 도리어 상처가 되었던 건 아닐까. 공감한다고 생각했지만, 섬세함이 부족했다. 그래서 아이의 눈물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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