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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의 전쟁>의 그 '10대 소녀'가 궁금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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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의 전쟁>의 그 '10대 소녀'가 궁금하다면… [親Book] 존 스칼지의 <조이 이야기>
지난 주말에는 영화관에 가서 <본 레거시>를 보았다. 인기 있었던 3부작인 본 시리즈의 1편, <본 아이덴티티>와 같은 시기에 이루어진 다른 사건에 초점을 맞춘 영화라 한다. 나는 <본 아이덴티티>를 보지 않았지만, <본 레거시>를 꽤 재미있게 보았고, 조만간 <본 아이덴티티>를 보아야겠다고 생각하며 영화관을 나왔다.

이렇게 이미 나온 이야기를 다른 관점에서 다시 들려주는 평행 소설(pararell novel)은 과학 소설(SF)에서도 드물지 않다. 그러나 이 방식이 성공하려면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우선 본편이 재미있어야 한다. 최소한 다 읽고, 아, 이 사람들/사건들/상황에 대한 다른 이야기도 있으면 볼 텐데, 하는 생각이 들 만큼은 흥미를 끌어야 한다. 그리고 원래 이야기가 풍부한 편이 좋다. 본편이 다루는 시공간이 크고 인물과 설정이 어느 정도 갖추어져 있다면, 거기에서 완결성을 갖춘 다른 이야기를 새로이 빚어내기가 수월할 터다.

독자 입장에서 보아도 주인공 외에 몰입할 만한 보조 인물이 원래 이야기에 있어야 관심이 갈 텐데, 본편이 너무 작으면 이런 인물을 찾기가 어렵다. 또, 무엇보다 원래 이야기가 인기 있어야 한다. 이런 시도는 일단 원래 이야기의 보조 인물이 주인공이나 주요 화자로 다시 나선 이야기를 궁금해 할 독자들이 있어야 출판될 수 있다.

이런 시도를 했던 과학소설 중에 우리나라에 이미 소개된 책으로는 올슨 스콧 카드의 <엔더의 그림자>가 있다(나선숙 옮김, 루비박스 펴냄). (☞관련 기사 : 외계인 지구 침공 임박? 군대도, 경찰도 못 믿어!) 올슨 스콧 카드는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소설 <엔더의 게임>에서 시작해 엔더 4부작을 쓴 다음, 전략 천재 엔더의 옆에 그림자처럼 붙어 다니던 작은 소년 빈을 전면에 내세운 <엔더의 그림자>를 발표했다. <엔더의 그림자>는 <엔더의 게임>과 같은 시대, 같은 사건을 다룬 평행 소설로, 천재의 옆에서 몸을 낮추던 더 어리고 더 작지만 그만큼 똑똑한 한 소년에게로 초점을 옮겨, 엔더 시리즈에 새로운 힘과 인기를 불어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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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이 이야기>(존 스칼지 지음, 이원경 옮김, 샘터 펴냄) ⓒ샘터
존 스칼지의 <조이 이야기>(이원경 옮김, 샘터 펴냄)는 <엔더의 그림자> 이후 오랜만에 나온 과학 소설 평행 소설이다. 작가의 <노인의 전쟁> 3부작 중 마지막 작품인 <마지막 행성>과 같은 시대를 다룬다. 노인의 전쟁 3부작은 만75세가 되면 새로운 몸을 얻어 군에 입대할 수 있는 세상에서 우주 전쟁에 출전하게 된 노인 존 페리와, 특수부대원 제인 세이건의 싸움을 그린 흥미진진한 우주 활극이었다.

<조이 이야기>의 주인공 조이 부탱-페리는 존 페리와 제인 세이건의 양녀로, 원래는 개척연맹의 배신자(?)인 샤를 부탱의 딸이다. 조이의 친부 샤를 부탱은 '의식'을 갈망하던 외계종족 오빈에게 의식을 주었다. 조이는 본편에 나오는 이런저런 이유로 오빈 종족 전체에게 자신의 감정과 경험을 공유해 주고 있다. 조이의 모든 경험은 의식 목걸이를 통해 히코리 디코리에게, 이들을 통해 저 우주 너머 수많은 오빈 종족들에게로 전달되고 기록, 저장된다. 이런 독특한 위치에 있는, 그것도 한창 반항과 첫사랑과 성장을 경험할 나이인 10대 소녀. 이 소녀가 일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재등장한 평행 소설이 바로 <조이 이야기>이다.

<조이 이야기>는 이 시리즈의 마지막 권인 <마지막 행성>에서 존 페리와 제인 세이건이 로아노크라는 개척지로 이주하며 조이와 함께한 모험을 재구성한다. 개척연맹과 콘클라베 사이의 알력 다툼은 예민한 나이에 낯설고 위험한 환경에 놓인 소녀의 투쟁이 된다. 일촉즉발의 상황은 조이가 오빈의 대표로 조이의 곁에 머물고 있는 히코리 디코리, 첫사랑 엔조, 단짝 그레첸, 엔조의 친구 메그디와 함께 겪는 또래 분투기가 된다.

<조이 이야기>는 본편보다 작고 소박하다. 조이의 눈을 거치며, <마지막 행성>에서 크고 중요했던 사건, 꼭 필요했던 정보는 작아진다. 노래 연습이나 얼마나 쓸모가 있을지 모를 단순한 호신술 연습이나 첫사랑의 줄다리기가 그 자리를 차지한다.

이런 점에서, 오랜만에 나온 하인라인풍 우주 활극이었던 <노인의 전쟁> 3부작을 읽은 다음 이런 이야기 더 없나, 하고 존 스칼지의 차기작을 기다렸던 독자들은 이 소설을 읽고 조금 아쉬워할지 모른다.

많은 죽음을 짊어진 ('소년'이 아닌!) 10대 소녀의 도전이라는 점에서 이 이야기는 여전히 흥미롭다. 허나 로아노크라는 작은 개척지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전말을 모두 아는 독자가 이 책을 재미있게 읽으려면, '우주 활극'이 아니라 '10대 소녀의 도전'에 방점을 찍고 시작하는 편이 좋으리라. 이 소설은 우주 활극이라기보다는 성장 소설로, <마지막 행성>의 평행소설이지만 <마지막 행성>과는 조금 다른 독자층에게 어필할 이야기이다.

독립된 이야기로서도 <조이 이야기>는 조금 애매한 자리에 있다. 이 소설은 본편에 있던 작은 구멍들을 메우고 조이라는 조연을 생생하게 살려냈다. 하지만 그러면서 원래 이야기가 자세히 언급한 결정적인 부분들을 생략해 버려, 어디까지나 보조적인 소설이라는 느낌을 준다. 본편이 절정에 달하는 부분에 갈수록 이 소설은 급히 진행된다. 본편이 이미 너무 많은 이야기를 했기 때문일까? <조이 이야기>는 원래 이야기인 <마지막 행성>을 읽지 않고는 이해하기 어려운 책이다.

<노인의 전쟁> 3부작을 읽은 독자라면 대개 <조이 이야기>도 집어들 것이다. 이 시리즈에는 그만한 힘이 있다. <조이 이야기>는 본편만큼 강렬하고 인상적이고 독자를 확 끌어들이는 책은 아니다. 그럴 수 없는 자리에서 출발했고, 그런 야심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노인의 전쟁> 3부작을 읽지 않고 <조이 이야기>를 보는 독자가 (아마 거의 없겠지만) 혹시 있다면, 이 책이 설명하지 않는 부분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노인의 전쟁>도 찾게 될 터다. 그리고 <노인의 전쟁> 시리즈는 어쨌든 정말 재미있으니, 이 '외전'은 이 정도로도 괜찮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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