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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저라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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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저라도 괜찮아! [親Book] <나를 행복하게 하는 친밀함>·<나를 사랑하게 하는 자존감>
6층에서 뛰어내린 A를 다시 치료실에서 만났다. 정말 죽을 마음은 아니었다고 했다. 그저 잠깐 숨고 싶었단다. 과거는 싹 지우고 새롭게 시작하고 싶었다고도 했다. 그의 얘기는 전부 사실일 거다. 안다. 숨을 곳이 필요했을 거고, 다시 시작하고도 싶었을 테지. 하지만 그를 만나는 일은 쉽지 않았다. 1년 동안의 치료를 의미 없게 만들어 버려서만은 아니었다. 다시 재연될지 모르는 2차 시도에서는 A가 죽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과 무력감이 엄습했다.

병원에서 일한 지 10여 년이 지났다. A처럼 뛰어내리거나, 팔목을 긋거나, 약을 먹거나, 목을 매는 방법으로 죽기를 결심한 이들을 여럿 만났다. 다행스럽게도 자살에 성공했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 하루 40여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걸 고려한다면 지독히 운이 좋았다고 밖에는 볼 수 없다.

작은 병원임에도 하루 내원 환자는 평균 100여 명을 넘나든다. 그 중 대략 여덟 명에서 열 명의 환자가 심리 치료를 병행한다. 상당수는 우울하고 불안하다. 더러는 무기력하다. 자기 마음도 뜻대로 되지 않고, 감정 조절도 어렵다. 죽고 싶다거나, 죽이고 싶다거나 혹자는 함께 죽어 달라고도 한다. 사람이 무섭고, 집 밖을 나서기가 두렵단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우울하고, 불안하며, 화나는 세상이다.

이래서 괴롭고, 저래서 아프다. 피로하고 무기력하다. 무엇이 이들을 몰아세우는 걸까. 비단 '환자'들만의 고통인 걸까. 병원 문을 나서도 행복감을 느끼는 이들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살만해서'가 아니라, '살아내는' 쪽에 가까운 듯하다. 늘 바쁘고, 숨차다. 가끔은 그들의 모습에 덩달아 긴장되고, 조급함이 들기도 한다. '너 그렇게 무르게 살면 안 돼.', '세상 물정을 이렇게 몰라서야'라는 얘기를 밥 먹듯 들었다. 괜찮은 척했지만, 내심 겁났다. 뒤처지는 느낌이 들어 뭐라도 해야 하나 싶을 때도 자주 있었다. 아예, '다르게 살겠다.'고 작정했지만, 다름을 택할 용기도 없었다.

자신감 넘치는 사람을 보면, 기분 좋다. 자존감은 어디서든 자연스럽고, 유연한 모습으로 드러난다. 헌데, 안타깝게도 이들을 만나기가 쉽지 않은 요즘이다. 겉으로는 씩씩해 보여도 내면이 취약하다. 학벌, 외모, 집안 배경, 능력, 경제력에 대한 열등감을 한두 개씩 가지고 있다. 결핍을 보완하기 위해서 기를 쓰고 질주하거나, 숨기려고 더욱 단단하게 무장한다. 이도 저도 안 되면 주저앉아 버린다. 결핍 없는 삶이 어디 있느냐고 하면서도, 그 결핍이 자신에게 있는 건 견디지 못하는 듯하다.

몸이 아프면 마음도 약해지듯이, 내면이 취약해져 있을 때면, 쉬이 상처받는다. 주눅이 든다. 세상과 주변이 자신을 무시한다고 느끼기 쉽다. 대기업에 다니는 40대 B는 직원에게 들은 '점심 드셨어요?'라는 말에 두고두고 분노했다. 자신이 밥도 못 얻어먹고 다니는 사람처럼 비쳤다는 게 견딜 수 없다고 했다. 자존감이 힘을 잃으면, B처럼 사소한 단서도 부정적으로 해석하고 받아들이기 쉽다. 피해의식과 인지 왜곡이 일어난다. 열등감도 깊어지면 병이 된다. 우울해지고, 무기력해지며 사회적으로, 정서적으로 고립된다. 이는 각종 정신 질환의 원인이 되니 악순환인 셈이다.

▲ <나를 행복하게 하는 친밀함>(이무석 지음, 비전과리더십 펴냄). ⓒ비전과리더십
의학 박사이자 정신분석가인 이무석의 <나를 사랑하게 하는 자존감>(비전과리더십 펴냄), <나를 행복하게 하는 친밀감>(비전과리더십 펴냄)은 나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한두 번 들어 봤을 만한 익숙한 얘기이기도 하다. <30년 만의 휴식>(비전과리더십 펴냄), <정신 분석에로의 초대>(이유 펴냄) 등 다수의 책은 전공자뿐 아니라, 심리학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 제법 친숙할 터다.

전문 용어를 남용하지 않고 익숙한 사례를 들어 가볍고 재미있게 풀어내는 면이 저자의 장점이지 싶다. <친밀감>에서는 사회적 성취를 이루었음에도 대인 관계에서 긴장감이 떠나지 않았던 'Ms. A'의 분석 과정을 소개했다. 내면을 탐색하고, 스스로 원인을 밝혀내어,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모습이 인상 깊다. <자존감>에서는 열등감을 품고 사는 다양한 사례를 기술하였다. 이를 통해 독자도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들여다보라고 말하는 듯하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자신의 결점을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타인에게 투사한다. 관계를 어렵게 만들거나, 비틀어버린다. 공감 능력이 부족하니,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기도 유지하기도 어렵다. 거절을 두려워하여, 지나치게 헌신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사소한 거절에도 존재 자체가 거부당한 양 극심한 좌절감을 느낀다. 반대로 과도하게 성취 지향적인 모습을 보이는 부류도 있다. '과대 자기 상'을 만들어 타인의 희생을 당연시한다. 무시당했다고 느끼면, 분을 참지 못한다. 고맙다는 표현도, 미안하다는 사과도 수치스럽다고 여긴다.

저자는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모두 스타가 되고 싶은 욕심에 사로잡혀 있는 것 같다고 했다(<자존감>, 152쪽). 그러고 보면, 요즘 많은 이들이 중심에 있지 않은 걸 못 견디는 듯하다. 주인공이 될 수도 있고, 상황에 따라서는 배경이 될 수도 있어야 한다는 걸 인정하지 않는다. 관심이 집중되지 않으면 우울해하고, 의기소침해진다. '완벽'과 '최고'가 되어야만 가치 있는 삶이라고 믿는다. 겉모습과는 달리 내면에는 유약하고, 불안한 '어린아이'가 숨어 있다. '과대 자기'도, '과소평가된 자기'도 모두 열등감을 먹고 자란다 하겠다.

열등감을 관점의 차이라고 한 저자의 말에 동의한다. 객관적 조건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을 어떤 시각에서 보느냐의 문제란다. 그래서 관점을 바꿔볼 수 있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지속적인 노력'과 '용기'가 필요한 일일 터다. 여전히 주변에서는 더 안정된 미래를 위해 재테크를 하란다. 스펙을 쌓아두라고 부추긴다. 20대에도 외모가 경쟁력이 될 수 없었던 내게 자꾸만 젊고 아름다워질 것을 강요한다. 도태되지 않기 위해서라는 말도 빼놓지 않는다. 늘 그러했듯이 가끔은 흔들리고 더러는 솔깃이 빠져든다. 하지만 그렇게 채워질 수 있는 허기가 아님은 모두가 알고 있지 않는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이들을 무조건 살리는 일이 치료자의 몫은 아니다. 그럴 주제도 안 될뿐더러, 자살 선택권도 존중되어야 한다는 데 뜻을 같이 한다. 다만, 몰리고 쫓기듯 벼랑 끝에 서서 위태롭게 마지막을 선택하는 일은, 견뎌온 시간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할 뿐이다. 키가 작아도 '루저' 취급을 받는, 돈의 가치로 사람의 등급을 정하는 세상이 분명 상식은 아니다. 자기를 평가하고 판단할 수 있는 근거는 자신 외에는 없다. 그래야 맞다. 경쟁을 부추기고, 너나 할 것 없이 최고가 돼야 하는 우스꽝스러운 장단에 더는 맞춰 살지 않겠다는 용기가 필요한 때이다.

울고 싶고, 불안하고, 외롭고, 답답하고, 짜증나고, 화나고, 쉽게 상처받고, 온통 부족하고, 결핍투성이라 괴로운 '그' 혹은 '그녀'들에게 이무석의 <친밀감>, 그리고 <자존감> 두 권을 권한다. 그동안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다면, 스스로 하면 된다. '부족하고 서툰 당신, 그래도 멋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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