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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기어이 '햄릿'이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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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기어이 '햄릿'이 될 것인가? [안철수를 생각한다] '안철수의 상식'을 넘어서
지난 1년간 <프레시안> 지면에서 '안철수 현상' 또는 '대통령 안철수'를 놓고 여러 얘기가 오갔습니다. <프레시안>은 이런 글들을 갈무리해 최근 <안철수를 생각한다>(알렙 펴냄)를 펴냈습니다. 책으로 엮는 과정에서 다양한 배경을 가진 필자의 미공개 글들이 새롭게 집필되었습니다.

<프레시안>은 안철수 후보가 출마 선언을 하고 본격적인 대선 행보에 박차를 가하는 지금 이 글 중 일부를 공개합니다. '안철수의 생각'과 '안철수의 행보'를 여러 시선으로 독해한 이들의 글이 독자 여러분이 '대통령 후보' 안철수를 판단하는데 도움이 되리라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편집자>

안철수 후보가 쓴 <안철수의 생각>(김영사 펴냄)을 읽고서 맨 먼저 떠오른 단어는 '상식'이다. 그가 평소에 그 단어를 여러 차례 사용해서가 아니다. 최소한 사회 경제 정책에 한해서 안철수 후보는 한국 사회의 상식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내가 유력한 대선 후보인 안철수 후보를 놓고서 '기대 반, 걱정 반'인 것은 이 때문이다.

우선 '안철수의 상식'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살펴보자. 안철수 후보는 이 책에서 자신의 상식이 만들어진 계기를 크게 두 가지로 들고 있다.

하나는 자기의 경험이다.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지역에서, 비교적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한국 사회의 최고 엘리트 코스를 밟고, 급기야 사업가로 성공한 바로 그 경험 말이다. 물론 안철수 후보와 비슷한 경험을 한 많은 이들이 자기 잇속만 차리며 한국의 1퍼센트에 편입한 것과 다르게 안 후보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말한다. 따라서 그가 가진 상식은 '건전한 상식'이리고 통칭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 하나는 안철수 후보에게 정신적 영향을 끼친 멘토들이다. 빌 게이츠 같은 이들이 안 원장이 가장 선호하는 멘토다. 게이츠는 기업가(창업가) 정신으로 충만한 자본주의의 활력에 대한 가장 열정적인 옹호자이면서 동시에 자본주의의 본성인 탐욕과 이윤 추구가 공동체를 파괴할 가능성을 보면서 그 위험을 최소화하는 안전장치를 강조하는 인물이다. 말하자면 착한 자본주의를 만들자는 것인데, 넓게 보면, 미국 민주당의 리버럴 정도가 안 후보의 롤 모델인 것이다.

자신의 경험과 그리고 멘토의 자극을 두 축으로 하여 만들어진 안철수 후보의 상식은 곧 한국 사회의 상식과 만난다. 바로 그가 이 책에서도 강조하는 '복지, 정의, 평화'가 그것이다. 적어도 지금 한국 사회에서 이 세 가지를 명시적으로 부정하는 이들은 없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는 물론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도, 그리고 통합진보당조차도 "복지 국가", "경제 민주화", "남북 관계 개선"을 얘기하지 않나? 말하자면, 안철수의 상식은 한국 사회의 '건전한 보수'와 '합리적 진보'가 만나는 바로 그 지점에 있다.

그러나 안철수 후보가 내세운 비전은, 마치 상식이 흔히 그렇듯이, 전혀 새롭지 않다. 그렇다면, 진짜 문제는 '안철수의 상식'의 내용일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 지점에서 나는 기대 반, 걱정 반이다. 몇 가지 예만 들어보자.

안철수 후보는 책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복지 국가를 말한다. 그런데 그가 말하는 복지 국가는 딱 한국 사회에서 합리적 진보와 건전한 보수가 합의할 수 있는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따라서 그것은 스웨덴 수준의 복지 국가도 아니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의 복지 국가도 아니다. 도대체 그가 만들고자 하는 복지 국가가 '어떤' 복지 국가인지 한마디로 말하기 힘들다. 그리고 그런 복지 국가를 '어떻게' 만들 것인지에 대해서도 별 이야기가 없다. 한마디로, 복지 국가의 큰 그림이 없다.

우선 복지 국가의 첫 번째 조건은 복지 예산이다. 그러나 안 후보의 책에는 10년 뒤 아니 적어도 5년 뒤에 우리나라가 어떤 수준의 복지 국가로 가야 할지에 관한 장기적 국가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5년 뒤, 10년 뒤에 국내 총생산(GDP) 대비 복지 예산을 몇 퍼센트로 올릴지에 대해서도 말이 없다. 국민들 전체를 이끌고 가야 할 미래 비전이 약한 것이다.

안철수 후보는 국·공립 보육 시설을 늘리자는 제안을 책에서 했다. 하지만 국·공립 보육 시설 이전에 더 중요한 것은 임기 5년간 대한민국의 보통 어린이에게 어떤 행복한 세상을 열 것인지에 관하여 국민들에게 그 그림을 제시하는 것이다. 책에는 그런 그림의 제시가 없다. 그런데 이렇게 큰 그림을 국민들에게 제시하고 그에 대한 열렬한 지지 속에서 보육 정책을 이끌고 가지 않는 한, 결국은 어떤 개혁 정책도 예산 문제로 좌초하기 십상이다.

안철수 후보는 국민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도 언급한다. 그렇지만 지금 60퍼센트 정도 되는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을 임기 5년 동안 얼마나 늘릴 것인가에 대해서는 책에 언급이 없다. 그런데 한국의 국민건강보험은 지금 갈림길에 서 있다. 의료 공급자와 의료 수요자 등의 이해관계, 재정 문제 그리고 민간 의료 보험과의 경쟁 등을 염두에 둔 종합적이고 장기적인 큰 그림이 필요하다.

흔히 많은 사람들이 '안철수 후보가 기성 정당 혹은 기성 정치인에 비해서 긴 안목의 미래 비전을 가지고 있다'는 인상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적어도 <안철수의 생각>만 봐서는 집권 5년 뒤에 우리 국민들의 삶과 인생이 어떻게 바뀔지에 관한 큰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는다.

또 수준 높은 복지 국가를 만들려면 '복지 국가를 향한 정치 동맹'이 중요하다. 그런데 복지 국가 동맹은 안철수 후보의 정치 세력이 깃발 든다고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현실의 이해 당사자 집단과의 '딜'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안 후보의 책 어디에도 자신과 동맹을 맺고 복지 국가를 함께 만들어갈 노동조합과 같은 이해 당사자 집단에 대한 얘기가 없다.

루스벨트의 뉴딜 정책이나 1938년 스웨덴의 사회적 대타협의 중심에는 노동 정책이 있었으며, 산업별 노동조합을 활성화시키는 정책이 있었다. 그에 반해, 기업가로서의 경험에 갇힌 탓인지, 안철수 후보의 책에는 노동 운동과 어떻게 손을 잡을지, 노동 운동을 어떻게 재구성할 것인지에 관하여 고민한 흔적이 없다. 그렇지만 건강한 노동 운동과 함께 하는 길을 찾지 않는 복지 국가는 절름발이에 불과하다. 정말로 걱정되는 부분이다.

안철수의 상식을 의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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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철수를 생각한다>(프레시안 기획, 알렙 펴냄). ⓒ알렙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5년간 "내가 해봐서 아는데……"를 남발하면서 시민들로부터 조롱을 받았다. 그런데 자칫하면 안철수 후보도 그 전철을 밟을까 봐 걱정이다. 왜냐하면, 그가 말하는 '정의'와 '공정한 시장 질서'의 구체적인 내용이라고 할 수 있는 경제, 산업 정책의 많은 부분이 '안철수연구소 사장'을 지냈던 자신의 경험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문제를 열거하자면, 한두 가지가 아니니 여기서는 몇 가지만 살펴보자. 안철수 후보는 한국 경제를 "삼성 동물원"에 비유하면서 "결국은 재벌 기업에 경제력이 집중돼 있는 것"이 핵심적인 문제라고 수차례에 걸쳐서 되뇐다.

하지만 대기업의 역할을 놓고는 좀 더 섬세한 접근이 필요하다. 안철수 후보는 "한국에서는 독일의 글로벌 중견 기업과 같은 '히든 챔피언'을 찾아볼 수 없다"고 개탄한다. 과연 그런가? 물론 안철수연구소와 같은 소프트웨어 업체 중에서는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한 글로벌 중견 기업이 없다. 그런데 이것은 우리만 그런 것이 아니라 제조업 중심국인 독일, 일본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안철수 후보의 주장과는 달리,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히든 챔피언' 기업들이 많다. 예를 들어 현대·기아자동차에 헤드램프를 납품하는 한 회사는 동종 업계 세계 6위의 글로벌 중견 기업이다. 이 기업은 국내 자동차 공장 외에도 GM, BMW 같은 외국의 자동차 업체에도 상품을 공급한다.

안철수연구소가 속한 소프트웨어 업종은 내수 서비스업이고, 이런 경우에는 재벌들의 전속 거래 요구와 하청 단가 인하 문제가 극심하다. 재벌들의 나쁜 행태가 가장 크게 문제되는 곳이 내수 서비스 업종이다. 그 업종들의 경우 중소기업들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당연히 재벌들의 행태는 규제받아야 한다.

그렇지만 자동차나 전자제품 같은 수출 제조업의 경우에는 재벌 대기업에 납품하는 하청 기업으로 동반 성장하면서 기술력을 확보한 중소기업이 세계 시장을 선도하는 '히든 챔피언'으로 성장한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런데 안철수 후보의 책에는 이런 점들에 대한 언급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소프트웨어 업종에서 형성된 그의 체험적 관점이 그의 시야를 좁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안철수 후보는 책에서 "세계적인 기업 혁신의 90퍼센트가 중소기업에서 나온다"고 주장한다. 연구 개발의 사정을 조금만 아는 이라면 이 대목을 읽으면 헛웃음이 나올 것이다.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선진국들에서도 기업 연구 개발비의 80퍼센트 이상이 대기업에 집중되어 있는데, 기업 혁신의 90퍼센트가 중소기업에서 나온다니! 도대체 어떤 잘못된 통계를 인용했는지 궁금하다.

안철수 후보는 또 한국 경제의 일자리 창출 해법으로 창업을 지나치게 강조한다. 그런데 창업이 어디 그리 쉬운가? 소프트웨어 업종의 경우에는 창업이 상대적으로 쉬울지 모르겠다. 하지만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등 국민 경제에 훨씬 더 기여도가 높은 제조업의 경우 창업은 많은 비용과 그리고 실패했을 때 엄청난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창업을 강조하고 창업가 정신 즉 기업가 정신을 강조하는 것이 바로 자본주의의 역동적 생명력을 굳게 믿는 시장 자유주의의 관점이다. 그렇지만 청년 창업을 너무 권장하다가 청년 신용 불량자들을 양산한 것이 10년 전 일이다. 게다가 요즘에는 너무 많은 퇴직자들이 너무 많이 영세 자영업 창업을 해서 문제다.

더구나 안철수 후보가 모델로 자주 거론하는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창업이 권장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실리콘밸리에서 실패가 용인되는 문화가 존재하는 배경에는 미국의 국방부가 있다. 즉 실리콘밸리에서 창업에 실패한 기술자들의 패자 부활전이 가능한 것은 바로 미국 국방부가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식으로 지원을 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미국의 실리콘밸리에서는 미국 국방부가 실패한 벤처 창업자들을 위한 복지 국가 역할을 한다. 안철수 후보는 빌 게이츠를 낳은 실리콘밸리를 매우 찬양하는데, 이런 점은 지적하지 않고 있다.

즉, 안철수 후보가 경탄해 마지않는 실리콘밸리 모델의 성공 비결은 '복지 국가'가 아니라 '국방 국가'이다. 국방부에서 엄청난 국방 예산에서 나오는 연구비를 마구 퍼주니, 창업도 자연스럽게 장려가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실패에도 불구하고 국방부에서는 계속 퍼주기 때문이다.

안철수의 진정성을 의심한다!

<안철수의 생각>을 읽으면서, 안철수 후보의 진정성이 의심되는 대목도 있었다. 예를 들어서 안철수 후보는 미국, 영국 그리고 한국에서 득세하는 '주주 자본주의'를 비판하면서 독일과 같은 '이해 관계자 자본주의'를 지향할 뜻을 밝힌다. 그리고 주주 자본주의를 규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아마도 이것은 진심일 것인데, 안철수 후보 자신이 안철수연구소를 성공적으로 코스닥에 상장시켰고, 코스닥 시장에 난무하는 적대적 기업 사냥의 폐해를 직접 체험하였을 것이다. 그렇지만 <안철수의 생각> 어디에도 주주 자본주의를 어떻게 규제해야 한다는 건지 그 방안을 말하지 않고 있다. 아마도 자신의 생각이 없는 것 같다.

더구나 주주 자본주의 규제와 관련하여 안철수 후보의 진정성이 의심되는 대목이 또 있다. 안 후보는 민영화된 포스코의 이사회 의장을 몇 년 동안 지냈다. 그 당시 박원순 서울시장도 그 이사회의 이사였다. 그런데 포스코는 안철수 후보가 반대하는 '공기업'을 민영화'('사영화'라고 해야 정확한 표현이다!)한 대표적인 기업이 아닌가?

이뿐만이 아니다. 민영화가 되고 나서 포스코는 대표적으로 주주 가치를 최우선에 놓는 주주 자본주의 경영을 함으로써 여러 차례 구설에 올랐다. 그런데 포스코가 그렇게 주주 가치 우선 경영을 할 때 도대체 이사회의 의장이었던 안철수 후보는 무슨 역할을 했었나? (똑같은 질문을 박원순 서울시장에게도 물어보고 싶다.)

안철수 후보의 '주주 자본주의' 비판이 진정성이 있으려면 최소한 이런 부분에 대해서 자신의 생각을 진솔하게 밝혀야 하지 않을까? 예를 들어서 이런 식으로라도 말이다. '그때는 주주 자본주의의 폐해에 대한 성찰이 깊지 못했으나 지금은 확실히 생각이 바뀌었다. 어쩌고저쩌고…….'

안철수 후보의 주주 자본주의 비판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또 다른 이유는 주주 자본주의의 폐해를 교정하는 방법으로 그가 '기업의 사회 책임 투자'를 얘기하는 대목에서다. 왜냐하면, 잘 알려져 있다시피, 사회 책임 투자라는 것은 주주 자본주의의 폐해를 교정하는 방법이 아니라 오히려 주주 자본주의의 치부를 가리는 '아담의 무화과 잎사귀'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사회 책임 투자라는 게 무엇인가? 기업의 '주인'인 주식 투자 펀드들로 하여금 적나라한 수익성 추구만 하지 말고 지역 공동체와 인권, 환경 등을 최우선에 놓는 기업에 더 많이 투자하라는 것이다. 즉 투기적인 주식 투자 펀드들을 운용하는 펀드 매니저들의 힘을 선량하게 이용해서 '착한' 기업, '착한 자본주의'를 만들어보자는 발상인데, 어떻게 이런 생각으로 주주 자본주의를 억제하겠다는 건가?

더구나 이런 기업의 사회 책임 투자가 과연 얼마나 힘을 발휘할 수 있을까? 예를 들어서, 국민연금이 사회 책임 투자를 최우선에 놓고 기금을 운용하면서 노동자들을 탄압하는 삼성이나 현대자동차 같은 우량 기업에 투자하는 것을 회피하라고 펀드 매니저들에게 요구할 수 있을까? 과연 주식 펀드들이 자신의 '이익'을 포기해 가면서까지 그렇게 '사회적 책임'을 민감하게 인식할까?

안철수 후보는 사회 책임 투자가 왜 주주 자본주의가 득세하는 미국과 같은 곳에서 활발하게 거론되는지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한다. 애초에 노동자, 소비자, 지역 사회 공동체와 같은 여러 이해 당사자들이 기업의 주인이라고 생각하는 이해 당사자 자본주의가 자리 잡은 독일과 같은 곳에서는 사회 책임 투자와 같은 접근 자체가 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열정 없는 책임감, 이념 없는 열정으론 부족하다!

안철수 후보의 책에는 한국 사회가 직면한 심각한 고뇌에 대해 자신이 답변해야 한다는 책무감이 느껴진다. 이는 분명 훌륭한 미덕이다. 그렇지만 그의 책에는 한국 사회를 이렇게 바꾸겠다고 하는 큰 그림이 보이지 않으며, 따라서 우리나라를 이렇게 바꾸겠다고 하는 미래적 열정이 느껴지지 않는다.

즉 5년 뒤, 10년 뒤 이 나라를 어떻게 바꾸겠다고 하는지 큰 그림이 뚜렷하게 보이지 않고, 따라서 그것을 향한 열정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냥 학습 능력이 뛰어난 모범생이 합리적 진보와 건전한 보수가 만나는 합일점에 대해 열심히 책임감을 가지고 공부한 느낌이다. 그렇지만 정치는 의무감과 책임감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며, 열정과 미래 지향성이 필요하다.

그리고 복지 국가를 제대로 만들기 위해서는 거대한 정치 경제적, 사회적 대립과 충돌의 한 가운데로 뛰어들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한다. 예컨대 우리나라 같은 자본주의 시장 경제에서 자본과 노동 간의 격렬한 노사 대립, 세금과 복지 혜택을 둘러싼 부자와 빈자 간의 격렬한 대립을 어떻게 조정할 것인가? 안철수 대통령은 자본과 부자의 편에 설 것인가, 노동과 빈자의 편에 설 것인가?

2008년 미국의 금융 위기 이후 21세기 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바로 이 문제에 나름의 답변을 내놓고, 실천을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진보도 아니고 보수도 아닌', '합리적 진보와 건전한 보수가 만나는 상식'의 수준에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만약 안철수 후보가 그렇듯 애매한 중도주의 입장에 줄곧 서 있겠다고 한다면, 그는 끊임없이 동요하는 우유부단한 햄릿 같은 지도자밖에 될 수 없을 것이다.

결국 안철수 후보는 합리적 진보와 건전한 보수가 모두 '상식적으로' 좋은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들을 나열하고만 있을 뿐 그것을 하나의 큰 그림으로 엮는 이념이 보이지 않는다. 물론 오히려 이념이 없으니 이것저것 다 나열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정말로 대통령이 되었을 때는 그렇게 나열하는 것만으로는 단 하루도 버틸 수 없다. 왜냐하면, 정책의 우선순위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시급하고 중요한가의 위계질서, 즉 가치관과 이념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안철수 후보가 과연 성공한 지도자가 될 수 있을까? 그러려면, 전문적인 정책 학습에만 열중할 때가 아니라 자신이 진정 만들고자 열렬하게 꿈꾸는 나라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뒷받침할 이념이 무엇인지 심사숙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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