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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이 불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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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이 불쌍하다 [데스크 칼럼] 정상회담 대화록 공개, 민주당의 소탐대실
전직 대통령을, 그가 고인이 된 뒤에도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못하는 적의가 'NLL 논란' 아래로 흐르는 반공보수의 정서다. 이들에게 노무현은 '반드시' 북한 김정일 앞에 굴종한 빨갱이어야 한다. 이명박 정부가 국가정보원을 활용해 2007년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을 들여다보고, 박근혜 정부가 남재준 국정원장을 앞세워 대화록 전문까지 공개한 건 명백한 전직 대통령에 대한 부관참시다.

민주화 이후 뿌리내린 줄 알았던 헌정 질서의 연속성을 부정하는 반공보수의 습관적 쿠데타를 발본색원하기 위해 더 치열하게 싸워야 한다. 5년의 합법적 권력을 위임받은 대통령의 통치 행위를 제 멋대로 왜곡해 비상식적인 방법으로 욕보인 국정원과 일부 의원들의 행위도 어떤 식으로건 단죄받아야 한다.

그렇게 보면, 국가기록원에 보관 중인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원본과 사전 준비자료 일체를 공개키로 한 정치권의 결정은 일견 속 시원하다. 기왕에 이렇게 된 마당에 대화록 사본이 만들어진 과정에 훼손과 왜곡이 있었는지, 있었다면 누가, 무슨 목적으로 그랬는지도 명명백백하게 밝혀지면 좋겠다.

그러나 이게 최선인가 하는 뒷맛을 떨치기 어렵다. 남재준 국정원장이 국정원 보관본을 공개할 때만해도 정상 국가에서 일어날 수 없는 폭거라고 했다. 국정원의 정치공작이자 지난해 대선 개입에 이은 또 다른 정치 개입이라고 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국정원 직원이 들고 온 자료를 수령조차 거부했다. 국정원의 불법적 행위를 용인할 수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수십년 뒤에나 역사적 평가 자료로 공개되어야 할 정상회담 대화록이 느닷없이 공개되는 초유의 사태가 몰고 올 파장을 우려했던 이유도 있었다.

절차의 적법성 측면에선 정치권이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얻어 대화록 원본을 공개키로 한 데에 시비를 걸 수는 없다. 민주당 정성호 원내수석부대표는 "이번 회의록 공개는 국정원의 대통령 기록물 공개 행위가 불법적 과정에서 이뤄진 것이고 정치관여 행위라는 점을 확인 한 것"이라고 했다. 민병두 전략홍보본부장은 "이 안건 처리의 가장 큰 의미는 적법하게 대통령 기록물을 공개하는 절차를 밟았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민주당의 이런 논리는 세계 외교 역사에 길이 남을 초유의 사태가 한번은 불법적으로, 한번은 합법적으로 발생했다는 사실을 재확인한 얘기로 들린다. 국정원과 반공 보수의 천박한 광기에 법리적 정당성을 부여한 듯한 느낌도 든다.

국민들 다수가 확인했듯이, 국정원이 (훼손하고 왜곡해) 공개한 대화록에조차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포기' 발언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북한에 주권 팔아먹은 대통령도 없었다. 서해에 평화지대를 구축해 젊은이들의 피와 죽음을 막아보려는 대통령의 간절함이 외려 절절했다. 이걸로 부족한 진실이 무엇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대화록 원본이 공개된들,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는 이들의 눈과 마음이 달라질 리도 만무하다. 그동안 억울하게 당한 'NLL 매카시즘'에 통쾌한 역전의 KO펀치라도 작렬하고 싶은 심산이겠지만, 수십년간 켜켜이 쌓여온 왜곡된 안보 논리가 그렇게 쉽게 무너질 수 있으리란 기대는 착각이다.

▲ '노무현의 눈물' ⓒ노무현 재단


'노무현의 명예회복'을 위해서라면 더 조심했어야 했다. 남북관계의 화해와 발전이라는 '대화록'에 담긴 유지를 읽어내지 못한 측근들의 결정에 고인인들 기뻐할까 싶다. 위법을 무릅쓴 대화록 공개 결정으로 영면은커녕 현대판 정쟁의 한 복판에 끌려나온 데다, 대화록 공개의 파장이 남북관계에 미칠 악영향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기록관리단체협의회가 2일 "이 공개결정으로 국민의 기본권과 국제적 신뢰를 잃었다"고 비판하는 성명을 냈다. 이들은 이를 "21세기 무오사화"라고 했다. 또 "대통령기록 관리의 원칙이 훼손된 자리에 남아 있을 대통령기록은 없다"며 "지금 이 모습도 기록돼 부끄러운 역사로 남게 될 것"이라고 했다. 노무현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싫어하는 사람들이 손을 잡고 '대통령기록물'을 제 멋대로 들여다보고 공개하겠다며 대통령기록물관리법을 무력화시킨 위법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문재인 의원은 자서전 <문재인의 운명>에서 2003년 노무현 정부가 대북송금 특검을 수용한 배경을 설명했다. 한마디로, 당시 한나라당의 특검 발의는 부당했으나 어디로 튈지 모를 검찰 수사에 넘어가지 않도록 단속하기 위한 '차선책'이었다는 것이다. 십분 양보해도 이는 '차악'이었다. 남북정상회담이라는 대통령의 고도의 통치행위를 몇 년이 지나지 않아 법의 심판대에 올린 비루한 정치현실과 맞서는 게 옳았다. 10년 만에 비슷한 역사의 반복이다. 반공보수의 마르지 않는 색깔론 레퍼토리를 민주당이 지게의 지겟대처럼 받쳐든 건 아닌지. 굽은 것을 펴려다 반대쪽으로 구부러뜨리는 우를 민주당이 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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