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 보면 뜨거운 3개월이었다. 올해 초 프레시안은 주주, 임원, 직원 심지어 몇몇 필자도 함께 뜨거운 토론을 벌였다. 연말에 한 대기업이 거액의 투자 제안을 했고, 그것을 수용할지 말지를 놓고서 갑론을박을 벌인 것이다. "'좋은 언론을 키우겠다'는 의도 외에 다른 목적은 없으며 편집권 독립도 보장하겠다"는 제안이 솔깃했다.
하지만 프레시안 구성원은 결국 이 제안을 거절했다. 토론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프레시안의 진로를 놓고서 토론이 벌어졌다. 지난 12년간 이미 "공공재"가 된 프레시안을 말 그대로 "사회에 돌리는" 방안으로 협동조합으로의 전환이 조심스럽게 제기되었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 한편으로는 설렜지만 또 한편으로는 두려웠다.
바로 그 때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프레시안 고문)이 협동조합 전환을 강력하게 권유했다. 김종철 발행인은 "기존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질서로는 더 이상 활로가 없다는 걸 깨달은 많은 사람이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다"며 "언론이 이런 변화를 지켜보고 전달하는 것을 넘어서 자신이 직접 '변화의 주체'가 되는 것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격려했다.
어려운 한걸음을 내디딘 지금, 다시 김종철 발행인을 만났다. 지난 17일 서울 종로구 사직동 녹색평론사에서 진행된 인터뷰를 2회에 걸쳐 나눠서 싣는다. <편집자>
▲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프레시안(최형락) |
보수와 진보의 불균형, 가파른 절벽
프레시안 : 협동조합 전환을 공표한 지 2주일이 지났습니다. 선생님께서는 프레시안의 협동조합 전환을 사실상 강력하게 권유하신 분 중의 한 분이시죠. (웃음) 이번 협동조합 전환 결정을 보시고 한 편으로는 기대가, 한 편으로는 걱정이 클 것 같아요. 지난 2주간 어떤 생각이 드셨습니까?
김종철 : 프레시안의 협동조합 전환의 의미에 대해 얘기를 시작하기 전에 요즘 상황을 약간 언급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프레시안이 협동조합 전환을 공표한 지난 주에 마침 이 시대 상황의 바로미터가 될 법한 두 가지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지난 금요일(10일)예요.
프레시안 : 손석희 씨가 <중앙일보>의 종합 편성 채널 JTBC의 보도 담당 사장으로 옮긴 일과 대통령 방미 수행 중에 일어난 청와대 전 대변인 윤창중 씨의 성추행 사건이요?
김종철 : 맞아요. 두 사건의 구체적 진실이나 그것이 가져올 정치 사회적 파장은 앞으로 더 지켜봐야겠죠. 하지만 저는 그 두 가지 일이 예사롭게 느껴지지 않아요.
우선 손석희 씨에 관한 얘기부터 해보죠. 이번 일이 단순히 손석희 씨의 소속 변경 문제로 환원될 수 없는 문제라는 건 말할 것도 없죠. 손석희 씨가 언론인으로서 예민한 감각과 탁월한 능력을 소유한 이라는 건 다 알고 있는 사실이죠. 게다가 그는 1992년 문화방송(MBC)의 파업 때부터 진보 언론의 아이콘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그런 손석희 씨가 자신의 수십 년 언론 인생의 다음 단계를 보수 언론에서 일하기로 선택한 겁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그를 전혀 알지 못하지만, 이 결정에는 우리 언론과 정치의 전망에 대한 그 자신의 예측이 반영됐다고 봅니다. 즉 5년, 10년 후에도 지금과 같은 상황이 변화할 가능성이 별로 없다고 판단을 한 게 아닌가 합니다.
새누리당으로 대표되는 보수 정치 세력, 조·중·동 등 보수 언론, 그리고 재벌로 이루어진 삼각동맹에 의해 지배되는 이 사회의 정치 및 언론 상황이 앞으로 상당 기간 동안 변화할 가능성이 희박하다면,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써먹지도 못하고 고사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더 늦기 전에 넓은 운동장으로 가서 맘껏 기량을 발휘해 보자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거죠. 앞으로 언론계뿐만 아니라 각 분야에서 이런 식으로 생각하고, 위치를 바꾸는 사람들이 꽤 나올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손석희 씨의 경우는 첫 신호일 수도 있습니다. 전망이 보이지 않는 폐색 상황이 길어지면, 이대로는 더 이상 버티기 힘들다는 분위기가 점점 압도하게 될지 모릅니다.
지금 5·18 33주년을 앞둔 이 시점에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운영하는 텔레비전 채널에서 "광주 민주화 운동 때 북한군이 개입했다"는 식의 이상한 보도가 거침없이 나오는 것도 우연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물론이고 노태우, 이명박 정부 때도 아무리 보수 언론이라도 이 정도까지는 가지 않았어요. 최소한의 선이라는 게 있었죠. 그런데 이제는 그 선마저도 무너지고 있습니다. 손석희 씨의 JTBC행까지 묶어서 생각하면, 상황이 참으로 심각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프레시안 : 그런데 손석희 씨의 JTBC행은 윤창중 씨의 성추행 사건으로 제대로 토론되지 못했습니다.
김종철 : 윤창중 씨 사건은 앞으로 5년간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보여주는 또 하나의 중요한 신호로 봐야겠죠. 반 농담으로 하는 말이지만, 마치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되자마자 숭례문(남대문)이 불타고 그게 정권의 앞날을 예시하는 불길한 조짐이 되었던 것처럼. (웃음) 이 사건은 윤 씨 개인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현재 우리나라 지배층의 인간적 자질과 정신적 수준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건이죠.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권력에 대한 의지는 집요했을지 몰라도, 정작 나라를 운영할 기본적인 실력도 없는데다가 준비도 얼마나 부실했는지 보여주는 거죠. 그런데 이것이 그냥 조롱하고 끝날 일이 아니라, 시민들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두려운 일입니다.
국가 권력의 질이 낮으면 야만적인 통치가 될 가능성이 크잖아요. 더구나 남북 관계, 경제 위기, 환경 문제, 온갖 사회적 난제 등 간단치 않은 문제들이 실타래처럼 얽혀있는 상황에서 이런 수준 낮은 정부가 어떻게 문제를 풀어갈 수 있겠어요. 그 모든 피해는 고스란히 일반 국민이 감당해야 하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죠.
프레시안 : 이른바 진보 언론계가 더욱더 정신을 차려야 할 시점이군요.
김종철 : 그렇죠. 지금 우리 사회의 보수·진보 간 비대칭적 위상은 보수 쪽으로 '기울어진 운동장' 정도가 아니라 '가파른 절벽'이라고 해야 합니다. 한국방송(KBS), MBC 같은 공영 방송이 망가지면서 사실상 언론 지형은 90대 10의 상황이에요. 이런 상황에서 진보 언론은 대중이 알아듣기 쉬운 언어로 더욱 명확하게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벌써 우려스러운 징후가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어요. 예를 들어, <한겨레>가 <중앙일보>와 제휴해서 정기적으로 사설을 비교·평가하는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다고 합니다.
프레시안 : 이번 <한겨레>의 지면 개편 사고를 보니, 이명박 정부의 대표적인 인사였던 곽승준 고려대학교 교수(전 미래기획위원회 위원장)가 <한겨레>에 기명 칼럼도 쓰기로 했더군요.
김종철 : 이런 시도를 어떻게 봐야 할지, 저는 꺼림칙합니다. 진보와 보수 사이의 합리적인 소통 자체는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런 소통은 상대가 합리적으로 발언하고 행동한다는 기본 전제 위에서나 가능한 일입니다. <한겨레>는 이번 시도에 대하여 '균형 잡힌 시각' 운운하는데, 거의 완전히 보수 일변도인 언론 지형에서 그게 현명한 실험일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민주당이 대도시의 중산층을 껴안지 못해서 대선에서 실패했다며 자신의 정체성을 포기하고 새누리당과 닮아가고 있는데, 그것과 다르지 않은 결과가 될지 모릅니다. 민주당의 뿌리가 아무리 보수 우익(한민당)이라고 하지만, 기본적으로 야당의 역할이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 야당이 여당과 닮아 가면 그 존재 이유가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요?
진보 언론이 '균형 잡힌 시각'을 들먹이며 보수의 논리를 수용할수록, 그나마 간신히 버티고 있는 진보 언론의 존립 기반은 완전히 붕괴될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현실을 보고 해석하는 눈이 별로 다를 게 없는데 굳이 독자들이 안 그래도 콘텐츠가 풍부하다고 할 수 없는 진보 언론을 볼 이유가 없잖아요?
프레시안 : 협동조합 프레시안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조언으로도 들립니다. 그렇지 않아도,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생명, 평화, 평등, 협동의 네 가지 가치를 새롭게 지향할 정체성으로 내세웠습니다. 그간의 프레시안의 중요한 기사도 이런 가치에 기반을 두고 있었고요. 앞으로도 조합원과 함께 더욱더 이런 지향을 강화해 나갈 예정입니다.
김종철 : 언론은 자기 성격을 명확히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진보 언론은 중립성에 대한 환상이 있어요. 사실은 기득권 세력이 장악하고 있는 담론 시장의 상투적인 논리를 답습하면서, 그걸 균형 감각이라고 착각하면 안 되잖아요. 하워드 진이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고 말했어요. 만고의 진리입니다. 기계적인 중립성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세계적으로 오랫동안 언론다운 역할을 하는 언론을 보면, 모두 자기 색깔이 분명한 언론이죠. 흐릿한 언론은 독자들로부터 외면을 받기 마련입니다. 망할 때 망하더라도, 자기 입장을 지키다가 죽는 게 좋잖아요. 어중간하게 이 눈치, 저 눈치 보다가 망하면 뒷맛도 안 좋죠. (웃음)
<프레시안>의 필자를 선정할 때도 이런 점을 신경 써야죠. 지식인들 중에는 허위의식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많아요. 자신은 마치 모든 세상의 이해관계에서 초탈한 것처럼 내려다보듯이 얘기합니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진짜 욕망은 숨긴 채 현실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뜬구름 잡는 말들만 늘어놓죠. 독자들은 단박에 알죠. "이거 시시하잖아!"
궁핍한 시대와 불화하는 언론
ⓒ프레시안(최형락) |
첫째 '협동'에 대한 불신이죠. 우리나라는 기본적으로 여럿이 무엇인가를 하면 결국은 실패한다는 불신이 있는 것 같아요.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둘째, 소유 구조가 개방되었을 때의 두려움입니다. 주인이 많아졌을 때 과연 프레시안이 애초의 정체성을 제대로 지킬 수 있을 것인가, 이런 질문을 많이 받죠.
김종철 : 오늘 인터뷰 때문에 세계 각국 언론의 소유 구조를 한번 살펴봤어요. 매일 기사가 업데이트되는 종합 일간지 중에서 협동조합은 찾아볼 수 없더군요. 영국의 <가디언>, 프랑스의 <르몽드> 모두 주식회사입니다. 사원들이 주식을 많이 소유하고 있기는 하죠. 그런데 월간지 등 잡지 중에는 협동조합 언론이 꽤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게 1973년 창간한 영국의 <뉴 인터내셔널리스트>입니다. 제가 이 잡지를 보기 시작한 지 20년이 넘는데, 꽤 리버럴하다고 알려진 세계적인 미디어에서도 좀처럼 보기 어려운, 급진적 민주주의적 시각에 충실한 잡지입니다. <프레시안>도 이 잡지에서 배울 점이 많을 거예요. 한국에서 이 잡지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죠? 요즘은 모르지만, 한 때는 우리나라에서 이 잡지를 구독하는 독자가 나 혼자뿐인 적도 있었어요. (웃음)
프레시안 : <녹색평론>에서 이 잡지에 실린 글을 몇 차례 소개한 적이 있었죠. 이 잡지의 편집자들이 기획해 펴내는 'The NO-NONSENSE Guide' 시리즈도 이후 출판사에서 나오고 있고요. 솔직히 말하면, 몇 해 전에 이 잡지의 한국어판 혹은 쉽게 풀어쓴 영어판의 국내 출간을 비공식적으로 검토한 적이 있습니다. 물론 예상 판매 부수가 적어서 접었지요. (웃음)
김종철 : 네, 바로 그 <뉴 인터내셔널리스트>를 펴내는 출판사(New Internationalist Publications)가 협동조합입니다. 이 잡지가 발행된 지 거의 3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지구적 정의(Global Justice)'를 추구한다는 자기 정체성에 매우 충실합니다. 이런 것을 보면, 언론이 협동조합이어서 제 역할을 못할 것이라는 걱정은 쓸데없는 걱정이죠.
국내의 수많은 주식회사 형태의 언론은, 그럼 주식회사여서 과연 잘하고 있습니까? 사주 일가가 좌지우지하는 언론은 언론이라고 할 수도 없는 겁니다. 주식회사지만 <경향신문>이나 <한겨레>가 그나마 독립 언론으로서 역할을 하고 있는 것도 사원들이 주식을 대부분 갖고 있거나 국민주 형태로 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죠. 그렇다면 언론과 그 소유 구조 간의 관계는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협동조합 프레시안의 주체가 될 기자, 필자, 독자가 서로 머리를 맞대고 언론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킬 수 있는 틀을 마련한다면, 협동조합이어서 정체성이 훼손될 가능성이 클 것이라는 우려는 금세 사라질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프레시안 모델은 그 자체로 한국은 물론이고 세계의 독립 언론 운동에 영향을 줄 겁니다.
프레시안 : 그렇다면, 왜 협동조합 언론에 겁부터 내는 걸까요?
김종철 : 뿌리 깊은 식민지 후유증이죠. 우리는 자기 힘으로 국민 국가를 건설한 게 아니잖아요. 일본이 패망하면서 외부로부터 주어졌죠. 그리고 전쟁, 이어서 수십 년간의 독재가 계속되었죠. 물론 4·19(1960년)와 부마 항쟁(1979년) 그리고 1980년의 광주 항쟁과 1987년 6월의 민주 항쟁을 통해서 한국인이 스스로 국민 국가의 주체로 태어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한 번도 민주주의가 온전하게 승리한 적이 없어요. 늘 식민지 시대 이후 일관되게 권력을 독점해온 기득권 세력과 어중간한 타협으로 마무리되었죠. 그 결과 보수 우익 세력의 현실적 지배력이 끊임없이 연장, 확장되는 쪽으로 귀결되어 왔어요. 그러니까 우리들의 잠재의식 속에는 우리 자신의 힘만으로는 안 된다는 타율적 심리가 끈질기게 남아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 100년간 실제 현실 속에서 무엇인가를 자율적으로 만들어 성공해본 경험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으니까요.
그래서 정부 혹은 재벌이 던져주는 돈 없이 뭔가를 시작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거죠. 풀뿌리의 힘으로 뭔가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다는 자신이 없으니까요. 더구나 프레시안은 12년간 주식회사 형태로 유지해온 중앙 언론 아닙니까? 이런 프레시안이 국내는 물론이고 외국에서도 드문 협동조합 언론으로 전환을 한다고 하니 불안이 왜 없겠습니까?
프레시안 : 아까도 언급했지만, 선생님께서는 애초 프레시안의 협동조합 전환을 강하게 권유했던 분이십니다. 왜 협동조합 언론입니까?
김종철 : 프레시안의 협동조합 전환 결의문에서도 밝혔듯이, 지금 언론의 가장 중요한 과제가 바로 권력과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입니다. 지난 12년간 프레시안이 이 독립성을 지키고자 고군분투해온 것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눈살을 찌푸리는 '지저분한' 광고도 따져보면 그 고군분투의 흔적이죠.
제가 아는 지식인, 작가나 교수들 중에는 프레시안 같은 매체 얘기가 나오면 흔히 하는 얘기가 있습니다. "요즘 (지저분한) 광고가 너무 많아서 잘 안 들어간다." 그런 말을 들을 때면 속으로 혀를 찹니다. '정부나 기업으로부터 광고를 받지 않는 프레시안이 그런 광고라도 없으면 살림을 어떻게 꾸려나가나?'
<조선일보> 인터넷 홈페이지가 왜 상대적으로 깨끗하겠습니까? 재벌 기업으로부터 광고를 받으니 굳이 방문자의 클릭 수에 몇 원씩 적립되는 '지저분한' 광고를 받을 필요가 없는 거죠. 그런데 과연 세련된 재벌 기업 광고가 그런 지저분한 광고에 비해서 정말로 깨끗하다고 할 수 있어요? 작가, 교수란 지식인들이 그렇게 생각이 없어요.
프레시안의 협동조합 전환은 그런 식의 생존마저도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인식 속에서 내린 결단입니다. 하지만 궁여지책이라고 폄훼해서는 안 됩니다. 살림이 안정되었다면 과연 협동조합으로의 결단이 가능했겠습니까? 독립 언론을 지향했기에 궁핍할 수밖에 없었고, 그런 궁핍함 속에서 이상을 포기하지 않고 지속적인 생존이 가능한 방식을 모색한 결과가 이런 결단이겠죠.
프레시안 : 궁핍한 시대와 불화하는 언론의 필연적인 귀결이 협동조합이라는 말이군요.
김종철 : 한국뿐만이 아닙니다. 영국에서는 공영방송 BBC도 협동조합으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자본과 국가 권력이 한통속이 되어 무소불위의 힘을 행사하는 상황에서 언론의 독립성 문제는 전 세계적으로도 중대한 과제입니다.
그런데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질문을 해볼 필요가 있어요. 실제로 지금과 같은 잔인한 경쟁 사회에서 지속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독립 언론은 과연 존립 가능할까, 가능하다면 어떤 방식들일까?
우선 누구나 쉽게 떠올리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부자의 호의에 기대는 것이죠. 우리나라에서도 빌 게이츠나 워런 버핏 식의 '자선'에 호감을 가진 이들이 꽤 있어요. '박애 자본주의'라는 말까지 있잖아요. 그런데 과연 이게 과연 윤리적으로 옳고, 또 지속 가능한 방식일까요?
며칠 전 <가디언>에서 재미있는 칼럼을 봤어요. (☞관련 기사 : ) <포브스>가 매년 부자 랭킹을 발표하잖아요. 그런데 언젠가 평소보다 순위가 떨어진 어떤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자가 <포브스> 편집진에게 연락을 해서는 자기가 큰 상처를 입었다고, 울고불고 했다는 겁니다. 이런 것 보면 부자들도 불쌍해요. 굉장히 고통스럽게 사는 것 같아요. (웃음)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자가 물론 예외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 이야기는 오늘날 부유층의 일반적인 정서를 반영한다고 생각합니다. 천문학적인 부를 쌓은 부자들이지만, 내면은 그렇게 빈곤해요. 이런 부자들의 호의에 기대서 독립 언론을 만든다? 과연 그들이 아무 대가도 바라지 않고 돈을 내놓을까요? 방법은 역시 협동조합밖에 없습니다.
사실 협동조합의 원리는 간단합니다. '이익보다는 인간'이라는 거죠. 협동조합은 처음부터 끝까지 인간관계에 의존하는 조직입니다. 협동조합의 성패는 자본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인간관계를 얼마나 많이 확보하고 풍요롭게 만드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니 협동조합을 추구한다는 건 곧 돈이 아니라 인간 가치를 옹호, 확대해 나간다는 뜻이죠.
주류 언론이 하는 방식대로 매체를 만들어봐야 결국 독자는 이윤을 얻기 위한 수단일 뿐입니다. 하지만 협동조합은 '독자-필자-기자 조합원'으로 구성된 네트워크가 바로 매체의 파워를 결정하는 동력이 됩니다. 2주 만에 2500명 정도가 프레시안 조합원으로 가입했다죠.
거기서 시작해도 충분합니다. 앞으로 기자들과 그 2500명이 똘똘 뭉쳐서 좋은 기사를 만들어내고, 또 필자-독자와의 교류를 통해서 새로운 대안 언론의 역동적 모습을 보여준다면 그 때는 비약적으로 네트워크가 확장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당장 조합원 가입 희망자가 기대에 미치지 않는다고 비관할 필요는 없어요.
작년(2012년)에 우리나라에 왔다가 간 캐나다의 협동조합 이론가 그레그 맥레오드(캐나다 케이프브레튼 대학 명예교수)가 이런 말을 했어요.
"협동조합은 자기와 뜻을 같이하는 동지 한 사람을 만나면 절반은 성공이다."
그러니까 지금 프레시안이 이미 2500명의 조합원을 얻었으니 절반 이상의 성공은 거둔 셈이죠. 물론 아직 아무도 안 가본 길이기에 두렵고 불안하겠죠.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도전할 만한 가치가 있잖아요. 그 길을 통해서 어떤 활로가 열릴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설렘도 있고 짜릿한 흥분도 있겠지요. 흥분, 감동, 불안이 교차하는 이때야말로 가장 생기가 도는 순간이 아닌가요? (웃음)
ⓒ프레시안(최형락) |
작은 언론 네트워크가 대안이다
프레시안 : 협동조합의 길을 가는 프레시안을 놓고서 소수파 비주류의 길로 노선을 확실히 정한 것이냐, 이런 시각도 있습니다.
김종철 : 언제는 프레시안이 다수파 주류였습니까? (웃음) 하지만 프레시안이 소수파 비주류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되, 거대한 전쟁의 한복판에서 싸운다는 긴장된 자각은 놓쳐서는 안 되겠죠. 섬처럼 작은 고립된 공간을 만들어놓고 자족해서는 언론이라고 할 수도 없을 테니까요.
그렇다면, 협동조합 프레시안이 어떻게 거대한 주류 언론과 대적할 수 있을까요? '작은 언론(small media)'끼리의 연대가 답이라고 생각합니다. 프레시안 자체는 작은 독립 언론으로서 자립적인 힘을 기르면서, 동시에 비슷한 성향의 작은 언론들과 함께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거죠.
<녹색평론>과 같은 잡지도 그런 작은 언론일 테고, 앞으로 프레시안처럼 전국 곳곳에서 나타날 다양한 협동조합 언론들도 그런 작은 언론일 거예요. 기왕에 주식회사 형태이지만, 공공성을 표방하고 있는 매체들도 있고요. 주식회사라 해도 소규모라면 별로 나쁠 게 없어요. 또 특정 분야에서 뛰어난 실력을 갖춘 1인 미디어들도 있습니다. 이런 작은 언론들이 모여서 협동조합의 협동조합, 즉 협동조합 연합체를 만들 수도 있겠죠.
이렇게 전국 곳곳에 뿌리를 내린 작은 언론들의 연합체라면, 개별적으로는 미약하지만 결집했을 때의 힘은 엄청날 것입니다. 안타깝지만, 지금까지는 어느 진보 언론도 그런 연합체의 형성에 관심을 갖지 않았던 것 같아요. 앞으로 프레시안이 그 일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우리나라 진보 언론의 비중이 크게 강화될 것입니다.
저출산은 '문제'가 아니라 '현실'이다
프레시안 : 그런 말씀을 들으니 힘이 납니다. 하지만 프레시안이 협동조합 언론으로 전환하고 나서 다른 모습을 보이지 못하면 이 모든 게 말짱 헛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프레시안도 시대의 변화를 예민하게 포착하는 모습을 보이지 못한 것 같아서 부끄럽습니다. 쓴 소리도 부탁드립니다.
김종철 : 솔직히 말하면, 요즘 프레시안에는 읽을 만한 글이 예전보다 줄었어요. 물론 남재희, 정세현 선생 같은 분들의 인터뷰는 늘 흥미롭습니다. 하지만 젊은 기자들의 기사를 읽고 감탄한 게 언제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분발해야 합니다. 당대의 고통과 번민이 응축된 발로 뛴 젊은 기자의 글이 드문 건 큰 문제죠.
프레시안 : 시대 변화의 흐름 속에서 중요한 '사실'이 무엇인지를 파악할 능력이 모자라니 자꾸 기존 언론이 짜 놓은 프레임을 기웃거리게 됩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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