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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과 詩, 보편 언어의 다이아몬드를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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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과 詩, 보편 언어의 다이아몬드를 향하여 [내가 옮긴 책] 말라르메의 <시집>
'프레시안 books'는 창간 3주년을 맞아 '번역 특집'을 준비했습니다. 열두 명의 번역가들이 어떤 식으로든 기억에 남는 자신의 번역서 한 권을 골라 그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편집자>

말라르메의 <시집>을 번역한다는 것은 오랜 동안 나에게 뛰어들지 말아야 할 모험처럼 생각되었다. 구체시나 문자시 같은 극단적인 실험시, 다시 말해서 해석이나 번역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불필요한 시들을 논외로 한다면, 절대적 순수시를 표방한 말라르메의 시는 문학사적으로 가장 난해한 시에 속하기에 내 역량을 벗어난다고 생각했던 것이 그 이유지만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말라르메의 시어는 의미를 지시하는 언어가 아니라 일체의 의미에서 벗어난 순수한 말, 그저 말일 뿐인 말이라는 사르트르 같은 사람의 의견이 늘 마음에 걸렸고, 따라서 말라르메의 시어는 그 최초의 언어인 프랑스어로만 존재할 수 있는 언어라고 믿었던 것이 또 하나의 이유였다. 말라르메의 시가 다이아몬드라면, 그것을 번역한다는 것은 그 원자구조를 살펴서, 다른 언어로 그 구조를 재조립하는 일일진대, 프랑스어를 벗어나면서 사라진 압력을 다른 언어로 복원하기는 불가능하니 번역으로 얻게 되는 것은 단연코 탄소덩어리에 불과하리라고 생각한 것이다. 어쩌면 두 번째 이유는 첫 번째 이유를 가리기 위한 변명이었을지도 모른다.

▲ 스테판 말라르메.
마침내 나에게 용기를 준 것은 "외국어 속에 마법으로 묶여 있는 저 순수언어를 자기 언어를 통해 풀어내고, 작품 속에 갇혀 있는 저 순수언어를 작품의 재창조를 통해 해방한다는 것"이 바로 번역가의 과제라는 벤야민의 말이었다. 이 말은 듣기에 따라서, 다이아몬드가 탄소덩어리로 변했다면, 그 책임이 번역자뿐만 아니라 프랑스어로만 다이아몬드가 되는 원시에도 있다는 뜻으로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나라의 언어는 그 나라의 방언일 뿐이라고 말했던 것은 말라르메 그 자신이다. 그 말을 구체적인 경우에 적용한다면, 프랑스어는 한국어가 아니라는 약점이 있고, 한국어는 프랑스어가 아니라는 약점이 있다. 하나의 방언으로 만들어진 다이아몬드는 그것이 아무리 순수하다고 해도 그 방언의 약점을 지니고 있으며, 다른 언어, 곧 다른 방언으로 옮겨질 때, 그 약점이 확대 증폭되어, 최초의 단단한 결정체가 탄소덩어리로 바뀌고 만다. 그러나 이 방언의 다이아몬드는 적어도 한국어와 프랑스어를 넘어선, 또한 다른 모든 언어를 넘어선, 어떤 보편언어의 흠 없는 다이아몬드를 미리 증명한다. 비록 흠결을 지녔을망정 방언으로 조립되는 다이아몬드가 어찌 보편언어에 부재하겠는가. 번역은 프랑스어로 된 다이아몬드를 한국어로 다시 조립하는 일이지만, 이 경우에도 그 목표는 시의 목표와 마찬가지로 저 보편적 언어의 다이아몬드에 있다.

(여기까지가 말라르메의 <시집>을 번역하려던 나의 번역론이라고 이를 만한데, 사실 이런 거룩한 말이 번역의 현장에서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야기를 다시 시작하자.)

내가 말라르메의 <시집>을 읽으려고 처음 용심을 낸 것은 대학교 3학년 때였다. <시집>을 책상 위에 펼쳐놓고 석 달을 넘게 고생하였지만 스스로 판단하기에 올바로 읽었다고 장담할 수 있는 시는 다섯 편을 넘지 못했다. 그 다섯 편이라는 것도 말라르메가 본격적인 난해시법으로 시를 쓰기 이전의 초기 시들일 뿐이었다.

그 무렵 학교 도서관을 뒤지던 끝에 '결정적'이다 싶은 참고서를 하나 발견했다. 말라르메의 시를 누군가 영어로 번역한 텍스트에 저 유명한 정신분석 비평가 앙드레 모롱이 주석을 붙인 책이었다. 서투른 사냥꾼인 나는 말라르메의 심장에 화살이라도 쏜 것처럼 들떠 있었다. 그러나 영어로 번역된 텍스트는 스무 편을 넘지 않았으며, 그것도 내가 어느 정도는 읽어낼 수 있었던 초기시가 태반이었다.

나는 말라르메를 접을 수밖에 없었지만, 책상 위에서 <시집>을 치우지는 않았다. 대학의 전임교원이 된 다음에도 이 상태가 크게 개선된 것은 아니었다. 말라르메의 시를 주제로 삼은 책들을 간간히 읽기는 했지만, 시와 씨름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그렇더라도 프랑스어의 지극히 세세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문법지식을 넓히려고 애쓰고, 만국공통문법이라고 불러야 할 시의 어법에 관해 그 온갖 변형을 다 파악하려고 노력했던 것은 불문학 연구자로서 당연한 일이기도 하지만, 그 뒤에는 늘 말라르메의 그림자가 있었다. 내가 읽은 책 중에는 <말라르메의 문법>이라는 책도 있었다.

▲ <시집>(스테판 말라르메 지음, 황현산 옮김, 문학과지성사 펴냄). ⓒ문학과지성사
그러던 중 내 은사이신 강성욱 선생님(독자들은 이 사적인 존경의 표현을 용서하시라)과 <프랑스 19세기 시>라는 별로 두텁지 않은 책을 번역할 기회가 있었다. 내가 초고를 만들면 선생님이 마뜩찮은 부분에 붉은 줄을 긋고 당신의 의견을 적어 내게 다시 돌려보내는 방식으로 작업이 진행되었다. 붉은 줄이 그어지지 않은 문단은 한 문단도 없었으니, 그 과정은 어리석은 제자에게 적지 침투 훈련만큼이나 혹독하게 느껴졌다. 말라르메의 항목에는 그의 난해시 가운데서도 가장 난해한 시로 꼽히는 시의 첫 두 연이 인용되어 있었고, 나는 내 역량과 관계없이 그 두 연을 번역해야 했다. 그런데 그 번역에 붉은 줄이 그어지지 않았다. 책의 번역을 끝내고 나는 말라르메의 악질적인 난해시 열 편을 골라 번역을 시도했다. 일주일에 한 편 내지 두 편 꼴로 내가 그 시를 번역하고 있었다. 내친 김에 나는 말라르메 <시집> 전체를 번역했다. 대산문화재단의 '대산세계문학총서' 사업에 내가 번역 지원을 신청했던 것은 이미 <시집>의 번역을 끝낸 후였다. 그러나 주석과 해설을 쓰는 데에 5년의 세월을 더 바쳐야 했다.

위의 두 이야기는 어조가 서로 다르지만 양쪽이 모두 어김없는 사실이다. 앞의 이야기가 말라르메의 번역자로서 내가 지녔던 언어 이념에 대한 술회라고 한다면, 뒤의 이야기는 그 실천적 측면에 대한 고백이다. 이 두 측면에서 내게 가장 많은 도움을 준 것은 물론 말라르메 그 자신이다. 말라르메는 이 소심한 번역자에게 한 나라의 언어, 한 집단의 언어를 넘어서는 보편적 언어의 개념을 이해하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한 언어의 문법과 시라고 하는 만국공통문법이 만나는 지점과 엇갈리는 지점, 그것들이 확대 개편되는 지점을 깨닫게 해주었다. 내가 선택하고 조직한 번역어에 어떤 힘이 있다면, 그 역시 말라르메의 시어가 지닌 권능에서 비롯된 것이다. 사실 내가 극단적인 직역을 선택한 것도 일차적으로는 낱말이 통상적인 의미에서 가능한 한 멀리 벗어나려하는, 그래서 말을 말로 번역해야 하는 말라르메 시의 성질을 의식한 결과이지만, 또 다른 측면에서는 원시에 내재한 힘을 번역어의 힘으로 삼으려는 번역 작전이었다고 할 수도 있다.

어느 경우에건 비교적 좋은 번역은 있어도 성공한 번역은 없다. 내 경우에도 말라르메 <시집>의 번역은 감행하지 말았어야 할 모험이었다는 생각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러나 번역에 실패한 번역자로서 나는 말라르메 자신도 스스로의 시 쓰기가 늘 실패에 이르고 말았다고 한탄하였던 사실을 상기하게 된다. 말라르메가 화자로서의 자신을 지워버리고 어떤 절대적 순수정신의 대응능력으로만 남으려 하였다면, 자기 언어의 상투적 성격을 누르고 원시에 대한 대응능력만을 남기려는 번역가의 작업에서 그 축소된 형식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비단 말라르메의 시뿐만 아니라, 시대를 넘어서서 읽어야 할 가치가 있는 모든 시들은 늘 그것이 기대고 있는 언어의 뿌리를 흔들어, 보편적 언어의 전망에서 일상적 의식의 전도를 시도한다. 하나의 언어가 다른 언어의 시를 번역하는 말이 되기 위해서도 그 언어에 내장된 보편적 표현력을 한계에 이르기까지 동원해야 한다. 이점에서 번역가의 일은 벌써 시인의 일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번역이 비록 한 편의 시를 흠집 없이 옮겨놓는 일에는 실패해도, 바로 그 흠집을 통해서 적어도 그 시의 언어 의식을 인상 깊게 체험하고 그것을 자기 언어로 구체화하려는 노력으로 보편적인 "시"의 길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질 수 있다는 점에서 모든 문학 번역의 번역 가능성을 전망할 수도 있겠다.

황현산의 주요 저서 및 역서

<얼굴 없는 희망>(문학과지성사 펴냄)
<말과 시간의 깊이>(문학과지성사 펴냄)
<잘 표현된 불행>(문예중앙 펴냄)
<밤이 선생이다>(난다 펴냄)

<라모의 조카>(드니 디드로 지음, 고려대학교 출판부 펴냄)
<시집>(스테판 말라르메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알코올>(기욤 아폴리네르 지음, 열린책들 펴냄)
<보들레르의 작품에 나타난 제2제정기의 파리>(발터 벤야민 지음, 김영옥과 공역, 길 펴냄)
<초현실주의 선언>(앙드레 브르통 지음, 미메시스 펴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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