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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고래와 한배 탄 인간, 우주를 경쾌하게 휘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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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돌고래와 한배 탄 인간, 우주를 경쾌하게 휘젓다! [김창규의 '기계 나비의 꿈'] 데이비드 브린의 <떠오르는 행성>
SF 작품은 거시적인 시각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창작자는 물론이고, 독자들도 작품의 재미를 십분 만끽하려면 그 시각에 동참해야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런 동참이 누적되면 어느새 쉽게 넘어서기 힘든 절벽이 형성된다. 통념이든, 과학교양을 등한시하는 사회 분위기든 간에 여러 가지 이유로 한 번 동참하지 못한 독자들은 그 절벽에 빨간 페인트로 '그들만의 문화'라는 글자를 적어놓고 등을 돌린다. 그러면 SF를 쓰는 이들과 좋아하는 이들은 이 절벽은 허상이라고, 존재하지 않는 거라고 설득하며 손을 내민다.

이 서평 코너의 이름을 빌어 비슷한 일을 해보자. 수가 꽤 줄어들긴 했지만 봄철이 되면 나비를 볼 수 있다. 우리 인간과 비교해 볼 때 나비가 얼마나 단순한 구조인지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얇은 날개, 간단한 내장 기관, 신체 길이와 비슷하게 뻗어 나온 더듬이. 우리 손가락 위에 앉아도 느끼기 어려울 정도의 무게. 하지만 그 가벼운 나비조차도 정교한 생물학적 기계이며, 100년을 간신히 들락날락하는 인간으로서는 단숨에 상상하기 힘든 천문학적 시간에 걸쳐서 진화한 결과물이다. 이제는 상식이 된 사실 하나를 더 짚고 넘어가자면, 진화에는 인위적인 목적성이나 방향성이 없다. 생물학적 진화는 적응과 생존과 탈락과 멸종과 우연과 변이의 역사이다.

그 진화 선상 어느 지점에 인간이 등장했다. 그리고 인간은 지적인 생명체와 그렇지 못한 생명체를 나누려고 한다. 우주로 눈을 돌리게 되자 아직은 물적 증거를 발견하지 못한 '외계인'이라는 존재에게도 '지적'이라는 말을 붙이기 시작했다. 왜냐면, 최소한 '말이 통해야' 같이 재미있게 놀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말이 통해도 재미있게 놀기는커녕 일방적인 대학살이 벌어진 경우는 인류의 역사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지만) 따라서 지성이란 최소한 소통 가능성을 전제하는 개념이다.

▲ <떠오르는 행성 2>(데이비드 브린 지음, 김옥수 옮김, 움직이는책 펴냄). ⓒ움직이는책
데이비드 브린은 여러 가지 거시적인 세계관 중에서 지성, 진화, 외계인이라는 세 가지를 융합해서 이른바 업리프트(uplift) 시리즈를 써냈다. 이번에 소개하는 <떠오르는 행성>(김옥수 옮김, 움직이는책 펴냄)은 이 시리즈 중에서 두 번째에 해당하는 을 번역한 작품이다.

<떠오르는 행성>의 재미와 가치를 전달하려면 내용 누설이라는 위험을 감수하고 업리프트 시리즈 전체의 설정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먼 옛날, 우주에는 이른바 '선조' 종족이 있었다. 그들은 과학과 기술 발전의 궁극을 달성했다. 자유롭게 우주를 여행하는 것은 물론, 아직 지성을 가지지 못했던 다른 외계 종족 중에서 유력한 후보를 골라 인위적으로 '지성화'를 시키는 것도 가능했다. 선조 종족이 그렇게 지성화를 시킨 '고참' 종족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선조 종족은 온갖 정보를 집약해 놓은 '도서관'이라는 데이터베이스까지 만들어 놓은 다음, 말 그대로 사라졌다.

고참 종족들은 (비록 기술 수준은 아직 선조 종족의 수준에 못 미치지만) 엄청난 자부심을 갖고 있으며, '보호' 종족을 지정해서 지성화 시키고 일정 기간 종처럼 부리다가 독립시켜주는 체제를 유지한다. 그리고 이런 식의 지성화는 대물림을 한다. 그런데 여기에 인류가 희대의 골칫거리로 등장한다. 고참 종족의 도움도 없이 지성화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비단 <떠오르는 행성>뿐 아니라 시리즈 전체에서 일종의 배경 역할을 하는 수수께끼이다. 인류가 일으키는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다. 인류는 (주인공 종족답게) 운이 좋아서, 선조 종족의 흔적이 남아있는 대규모 우주선단을 발견하게 된다. 고참 종족들은 그 영광과 자원을 탈취하기 위해 추격에 나선다. 그 추격의 먹잇감이 되는 지구 우주선 '스트리커 호'의 모험이 <떠오르는 행성>의 주된 내용이다.

여기까지 배경 설명을 읽고 나면 온갖 외계인의 압박에 꿋꿋하게 대처하는 인간 승무원들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하지만 스트리커 호의 선장은 돌고래이다. 승무원에는 인간과 돌고래를 비롯해 침팬지도 있다. 이처럼 인류는 돌고래와 침팬지를 지정해서 보호 종족으로 삼겠다고 표명했지만 실은 노예처럼 부리는 것이 아니라 대등하게 대하고 있다. 세 종족이 섞여있다 보니 위기 상황 속에서 또 다른 갈등이 등장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 갈등 또한 시리즈 전체의 주제와 관련되어 있으며, 설정과 세부적인 사건이 정교한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들어가는 데에 일조를 하고 있다.

압도적이고 기발한 설정으로 융단 폭격을 하는 작품들은 극적인 사건 진행이나 소소한 재미가 약간 부족한 경우가 종종 있다. 한 꺼풀씩 벗기면서 설정을 드러내는 재미만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떠오르는 행성>은 예외적으로 두 가지 재미를 모두 갖추고 있다. 돌고래와 인간 소년의 우정, 인간 남녀의 위태로운 사랑, 인간 종족에게 쏟아지는 외계 종족의 시기와 질투, 끝없는 모욕 속에서도 꿋꿋이 제 갈 길을 가는 인류 등 다소 고전적이라 할 수 있는 갈등들이 전체 설정과 자연스럽게 엮이면서 화려한 아라베스크 무늬를 이룬다.

저자인 데이비드 브린은 어느 인터뷰에서 왜 SF를 썼냐는 질문에 '재미있는 SF를 다 읽고 나니 남은 게 없어서 썼다'고 한 바 있는데, 업리프트 시리즈는 그 대답에 걸맞게 지적인 상상력과 원초적인 흥미를 동시에 자극한다. <떠오르는 행성>이 휴고, 네뷸러, 로커스 상을 수상하고 후속격인 가 휴고, 네뷸러 상을 수상한 데에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는 얘기이다. (참고로 휴고상과 네뷸러 상을 동시에 거머쥔 고전 SF로는 <링 월드>, <듄>, <뉴로맨서>, <엔더의 게임> 등이 있다)

그리고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또 하나의 덕목이 있다. 애호가들 중에는 공감하지 못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상당수의 SF들이 우울하고 어두운 정서를 기본으로 삼는다. 범지구적인 상징체계에서 '밤'이 환상과 상상력의 터전이라 그런 것일까? 거시적인 안목에는 거시적인 불안감이 필수라 그런 걸까? 디스토피아 적인 세계관이 SF의 배다른 형제라 그런 것일까? 어쩌면 그 전부가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로버트 하인라인의 <여름으로 가는 문>(김혜정·오공훈 옮김, 마티(곤조) 펴냄)처럼 주인공이 온갖 고난을 다 겪는데도 자유롭고, 즐겁고, 속이 시원하며 때로는 무릎을 치게 해주는 SF는 (특히 장편의 경우)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떠오르는 행성>은 그 예외에 속한다. 데이비드 브린은 이 작품 내내 밝고 경쾌하며, 우울함에 빠지지 않는 리듬감과 낭만을 유지한다. 주인공들이 닭머리를 한 고참종족에게 붙잡혀서 우적우적 씹어 먹힐 수도 있건만 우리는 <떠오르는 행성>을 보는 동안 그에 필적하는 장면이 등장해도 낙관적으로 미소를 지을 수 있다.

흔히 업리프트 시리즈라고 하면 세 개의 장편을 가리킨다. 간단하게 소개하면 는 우리가 매일 같이 보고 있는 태양 속에 생물체가 사는지 확인하기 위해 고참 종족 조사단이 태양계로 모이는, 일종의 추리물과 같은 작품이다. 는 선조 종족들이 인류의 거취를 결정하기 위해 (그리고 압력을 행사하기 위해) 지구로 내려오는 가운데 지성화의 목전에 선 침팬지들이 활약하는 이야기이다. 에 화려한 활극이 부족하다는 점만 빼면 업리프트 시리즈 3부작은 유머와 진지함과 거시적인 상상력이 고루 갖춰진 80년대 스페이스 오페라의 대표 시리즈라 할 것이다.

이렇게 칭찬을 해놓고 나서 김이 빠지는 결론이지만, <떠오르는 행성>은 오래 전에 절판되어 지금은 헌책방에서도 구하기가 불가능에 가까운 작품이다. 언제가 될지 모르나, 필자가 <듄>과 함께 매우 높게 평가하는 시리즈이니 만큼 세 권 전부를 직접 번역해서 소개할 기회가 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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