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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은 박근혜정부 대북정책의 원칙을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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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은 박근혜정부 대북정책의 원칙을 묻고 있다 [한반도 브리핑] 북의 이산가족 상봉 연기가 뜻하는 것
북한이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일방적으로, 갑자기 연기했다. 이를 두고 류길재 통일부 장관은 "인륜의 문제조차 정치적 이유로 연기시킨 북한의 태도는 그 어떤 것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고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북을 꾸짖었다. 인륜을 앞세운 '원칙'적 자세에서 북을 꾸짖은 그의 발언은 일점일획도 고칠 것이 없다. 도덕적으로 골백번 옳은 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가 이산가족 상봉을 성사시키려면, '인륜'만 앞세우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북이 왜 갑자기 연기 결정을 내렸는지에 대한 현실 분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역설적이지만, 인륜에 충실하기 위해서는 현실에도 냉철해야 한다.

▲ 북한의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가 21일 대변인 성명을 통해 이산가족 상봉행사와 금강산관광 재개를 위한 실무회담을 연기하겠다고 발표했다. ⓒ조선중앙TV=연합뉴스

그러면 북은 왜 갑자기 이산가족 상봉을 연기했을까?

일각에서는 금강산 관광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북은 이산가족 상봉을 위해 금강산에 지어 놓은 이산가족 상봉 센터를 이용하고자 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그리고 일단 이산가족이 상봉을 위해 금강산에 발을 들여 놓으면 금강산 관광을 재개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는 분석을 덧붙인다. 북이 이산가족 상봉과 금강산 관광을 같이 제안했던 것도 이러한 분석에 힘을 실어준다.

그러나 북은 이러한 가능성을 아예 원천 봉쇄했다.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가 이산가족 상봉행사 연기를 선언한 성명서에서 "금강산관광 재개를 위한 회담도 미룬다는 것을 선포"한 것이다. 그 이유도 분명하게 못을 박았다. "민족공동의 사업인 금강산관광에 대해서는 그 누구의 '돈줄'이니 뭐니 하고 중상"하고 있고 "대결의 수단"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물론 북의 속내는 다를 수도 있겠지만, 그 속을 확인할 수 있는 다른 증거는 아직 없다. 그렇다면 금강산 관광을 재개하지 못하게 되어 이산가족 상봉을 파탄냈다는 주장은 근거 없는 추측이고, 그것도 북의 발언 및 행동과는 상반되는 추측인 것이다.

하여 일각에서는 북의 '강경파,' 보다 구체적으로는 군부를 운위한다. 북의 정책결정과정에는 강경파와 온건파 등이 참여하고, 강경파는 대화와 교류를 싫어하므로 이들이 이산가족 상봉에 몽니를 부렸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도 근거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강경파가 얼마나 힘이 센지는 모르지만 대화를 주도하는 조국평화통일위원회를 내세워 강경파의 입장을 대변하게 만들 정도라면 사실 정부를 마음대로 좌지우지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그럴 정도로 무소불위의 강경파가 왜 지금까지 숨을 죽이고 있었을까. 지난 며칠 사이에 친위쿠데타라도 일어나서 강경파가 정권을 잡은 것도 아니고, 쉽게 설명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지난 몇 달간 있었던 남북관계를 복기해 볼 필요가 있다.

국정원이 'NLL'과 관련한 남북정상회담 발췌록과 녹취록을 공개한 것은 국내 정치와 맞물린 사안이었지만, 국정원과 새누리당이 'NLL'을 통해 주장하는 북의 정체성은 한국의 영해를 호시탐탐 노리는 호전적 국가라는 것이다. 정상회담이라는 최고 수준의 회담을 하면서도 한국 영토의 완결성을 위협하는 것이 북이라는 인식이 정부 핵심에서 공개적으로 재생산되고 있는 것이다.

'이석기 사건'과 관련해서 이런 인식은 묘한 줄타기를 한다. 국정원이 주장하는 '이석기 사건'은 지난 4월과 5월 북이 전쟁위기를 조장하자 '이석기' 등이 무기를 동원한 '내란'을 모의 내지 선동했다는 것이다. 사실 이런 주장은 현실과 현격한 차이가 있다. 즉 북은 4월을 기점으로 미국과 대화를 모색하는 신호를 주고받고 있었고 (☞ 관련기사 : 북한 미사일 발사 예측은 왜 다 틀렸을까?), 5월에는 최룡해 인민국 총정치국장이 중국을 방문해 대화의지를 피력했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그 이후 북은 한국과 각종 회담을 제안하고, 6자회담에도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는 등 평양판 '햇볕정책'을 추진했다. 만약 '이석기' 등이 체포동의안에 적시된 것과 같이 "전쟁상황에서 ... 공산화혁명을 수행할 구체적 방안을 모색"했다면 북의 정책을 모른 채 '뻘짓'을 했거나 북의 정책과 반대되는 '반북행위'를 한 셈이 되는 것이다.

이런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김관진 국방장관이 등장한다. 김 장관은 9월 15일 인천에서 열린 국방정책 설명회에서 "북한은 종북세력과 연계해 사이버전, 미디어전, 테러 등으로 사회혼란을 조성하는 이른바 '4세대 전쟁'을 획책하고 있다. 통합진보당의 내란음모사건은 그 준비로 볼 수 있다"고 발언했다. 김 장관은 최근 북측이 대화에 유연한 태도를 보이는 것에 대해서도 "어려운 상황에서 벗어나 보려는 '전술적 공세'"라고 평가한 바 있다. 한 마디로 평양판 '햇볕정책'은 위장평화공세라는 것이다.

만약 국정원과 국방부 및 새누리당이 이러한 대북인식을 가지고 있다면, 박근혜 정부에서 추진하는 신뢰프로세스의 원칙은 무엇이냐는 질문이 나올 만하다. '북'은 대화를 하면서도 한국의 영토를 넘보고, 한국 안에서 종북주의자들에게 내란을 선동하며, 4세대 전쟁을 획책하고 있다고 보는 게 청와대의 입장인지 물어볼 만한 것이다. 이러한 '북'과 대화와 교류를 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 것인지, 무엇을 얻자고 하는 것인지 물어볼 만한 것이다.

이번에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이산가족 상봉을 연기하며 박근혜 정부의 '원칙'이 무엇이냐고 묻고 있다. 북의 '햇볕정책'이 무조건 계속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경고도 보내고 있다. 아마 6자회담에 대해서도 간접적으로나마 메시지를 전하는 것일 수도 있다.

북이 이런 질문을 꼭 이런 식으로 했어야 하는지 지탄을 받을 부분이 있다. 분단의 아픔을 온몸으로 끌어안고 살아온 이산가족의 상봉을 연기하며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용납될 수 없다. 하지만 북이 가지고 있는 인식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은 남북관계를 인륜에 합당한 길로 이끄는 필수요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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