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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불금 못 받았다' 신고하니 소작지 빼앗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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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불금 못 받았다' 신고하니 소작지 빼앗더라" [현장] 분노에 속앓이까지…통곡하는 농민들
"직불금 못 받았다고 신고하니까 소작하던 땅을 바로 뺐겼습니다. 소작하는 다른 논에도 누가 쇠꼬챙이를 6개나 꽂아놨어요. 그것 때문에 콤바인이 고장나서 수백만 원 손해를 봤습니다. 땅 주인과 실랑이한 건 말로 다 못합니다. 이제 누가 자기 땅 소작하라고 나한테 땅을 주겠습니까?"

처음으로 쌀 직불금 문제를 감사원에 알렸던 농민 조종배 씨의 말이다.

수확이 한창인 10월 중순. 손 하나가 아쉬운 농번기이지만 농민들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고 했다. 불법적으로 쌀 직불금을 타간 숫자가 28만 명. 고위공직자는 물론 국회의원까지 끼어 있었다. 직불금을 떼어간 땅 주인들은 그 사실을 알린 소작농의 일까지 빼았아 갔다.

농민들의 분노는 행동으로 이어졌다. 17일 전국농민회총연맹과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소속 농민 15명은 서울 청계광장 앞에 모여 준비해 온 상복으로 갈아입었다. 이들은 '농민들의 피땀과 같은' 볏단을 지게에 지고 "차라리 다 죽여라"고 외치며 광화문 정부종합청사를 향해 나섰다.

그러나 경찰은 몇 걸음 떼지도 않은 이들을 인도에서 막아섰다. 한 여성농민은 "법을 어겨 잡아갈 사람은 따로 있는데 왜 여기 와서 이러냐"며 급기야 통곡을 했다. 경찰은 물러서지 않는 농민을 향해 방패를 휘둘렀다. 결국 한 시간 동안 전경에 둘러싸여 옴짝달싹 못하던 농민들은 도로 건너 동아일보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며 분통을 터뜨렸다.

"직불금 못 받은 거 하루이틀 아니다"…땅 뺏길까봐 말도 못해
"소작농이 많으니까 직불금 못 받는다고 신고를 하면 지주가 다른 사람을 세우면 그만이니까. 땅 주인이 땅 내놓으라고 할까봐 그거 무서워서 직불금 못 받아도 꾹 참고 있는 거죠." ⓒ프레시안

15명의 농민이 기자회견에 나서는 데는 큰 결심이 필요했다. 많은 수의 소작농들이 직불금을 떼이고 있지만 신고한 걸 알고 지주가 땅을 빼앗아갈까봐 나서지 못했다.

농사를 짓는 농민이 직불금을 손에 쥐지 못한 게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쌀 소득 보전 직불제가 도입된 지난 2005년 이후 농민들 사이에서는 직불금을 받지 못해 속앓이를 하는 농민들 얘기가 전해졌다.

"소작농이 많으니까 직불금 못 받는다고 신고를 하면 지주가 다른 사람을 세우면 그만이니까. 땅 주인이 땅 내놓으라고 할까봐 그거 무서워서 직불금 못 받아도 꾹 참고 있는 거죠."

조종배 씨의 말이다. 쌀 직불금을 받은 경우엔 임차료를 그만큼 올려받았다. 실제 조종배 씨 외에 다른 농민들은 직불금을 못 받았냐는 기자의 질문에 자신은 받았다며 다들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러나 심문희(41) 씨는 "지금 여기 올라온 사람들 중에도 직불금 못 받은 사람이 수둑룩한데 다들 익명으로라도 나가는 게 두려워 아무도 밝히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리 나라 농민 중 95%가 소작농이다. 심문희 씨는 "땅은 한정되고 소작농의 수는 많으니까 소작농끼리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며 "심지어는 직불금을 받지 않고라도 농사만 짓게 해달라는 소작농들까지 있으니 직불금 달라는 말 했다간 땅 뺏길까봐 말도 못 꺼낸다"고 말했다.

"사료값 올라 3할도 손에 못 쥐는데…먹고 살게는 해줘야 하지 않나."

농민들은 최근 사료값 폭등과 농기계비 상승으로 인해 그나마 버는 돈도 못 받는 형편이라고 토로했다. 올해 농사가 작년보다 풍년이지만 생산비는 더 올랐고, 농산물 가격은 되려 하락했다.

"논 200평 경작하면 세 가마니 정도가 나와요. 그럼 그 중에 땅을 이용한 돈(도지)을 지주한테 내야하는데 그게 한 가마니에요. 그리고 한 가마니는 비료랑 기계, 기름값에 들어가고 나머지 한 가마니가 농민한테 돌아오는 거에요. 1:1:1 이렇게 되는 건데, 요새 비료, 기름값 이런 게 엄청 오르면서 그 한 가마니도 농민한테 안 돌아와요."

논 1000평 당 30만 원의 직불금이 주어진다고 할 때, 1만 평이면 300만 원에 이른다. 농민들의 일년벌이가 고작 1000~1500만원인 걸 생각하면 농민들에게 적지 않은 돈이다. 고건영(40대) 씨는 한탄했다.

"지주 입장에서는 그냥 정부에서 주는 공돈이라고 생각하겠죠. 농민이 피땀 흘려 번 돈을 착취하는 건 도둑질이고 사기치는 거 아닙니까. 근데 농민도 먹고 살아야 하지 않습니까. 정말 딱 죽지 않고 살 만큼만 남게 하면 어떡합니까."

"양도소득세 안 내겠다고 농민 직불금 가져가는 파렴치한"

지주들이 직불금을 떼어가는 이유는 돈도 돈이지만 자경농으로 인정받아 양도소득세를 감면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8년 동안 자경농의 신분을 유지하면 오른 땅값의 60% 이상씩 내야 하는 양도소득세를 감면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농민들은 이런 게 있는지도 잘 몰랐다. 특히나 공무원들과 국회의원이 이런 짓을 앞장서서 했다는 데 대해 허탈함을 금치 못했다.

"농민들이 직불금 떼이고 있는 거야 알고 있던 거지만 공무원들이 4만 명, 또 국회의원들이 그랬다는 거 보고 어이가 없었습니다. 또 그 부재지주가 20%가 넘고 직불금 못 받고 떼인 돈이 7000억 원이나 된다니…. 사회지도층이 오히려 앞장 서서 농민 피멍 들게 하고 있는 거 아닙니까. 또 뼈 빠지게 농사져서 땅 투기하는 사람들한테 뺏기고…."

임은주 씨는 말을 하다 분이 삭이지 않는지 연신 숨을 가다듬었다.

"큰 거 바라는 거 아니에요. 그냥 내년에도 농사만 지을 수 있으면 좋겠다 생각하는 거죠. 매년 먹고 살기 힘들다고 자살하는 농민이 1000명인데. 농민으로서의 자부심 뭐 이런 거 말하면서 자식한테 농사지으라는 말 못합니다. 기자님 같으면 자식을 농민으로 키우겠어요? 평생 해온 농사일 남의 땅에 들어가 소작이라도 하는 것 그걸 바랄 뿐입니다."
"큰 거 바라는 거 아니에요. 그냥 내년에도 농사만 지을 수 있으면 좋겠다 생각하는 거죠. 매년 먹고 살기 힘들다고 자살하는 농민이 1000명인데. 농민으로서의 자부심 뭐 이런 거 말하면서 자식한테 농사지으라는 말 못합니다. 기자님 같으면 자식을 농민으로 키우겠어요? 평생 해온 농사일 남의 땅에 들어가 소작이라도 하는 것 그걸 바랄 뿐입니다."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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