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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이 금융자본화 하면 한국경제는 '게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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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이 금융자본화 하면 한국경제는 '게임 끝'" [인터뷰] 장하준 "신자유주의는 가짜 성장주의"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가 '국가-재벌-노조의 사회적 대타협을 통해 북구식 사회민주주의 국가를 만들자'는 주장을 할 수 있었던 전제는 재벌들이 고용과 성장 등에 기여하는 건전한 산업자본으로 남아 있을 경우이다. 하지만 이 재벌들이 고용, 성장 등은 도외시 한 채 오로지 이윤만을 추구하는 금융자본이 된다면?

"게임은 끝나버린다."

장하준 교수가 현재 한국경제의 흐름에서 가장 걱정하는 대목이 바로 이 지점이다. "단기 이윤 내라고 닦달하고 주식시장 통해 기업에서 돈 빼가는 식이면 자본의 국적이 무슨 상관이냐. 미래에셋이 메릴린치보다 낫다고 할 수 있냐."

자본시장통합법, 금산분리 완화가 문제가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삼성, 현대차, LG 등 국내 재벌이 현재 세계 1등인 상품을 하나 이상씩 갖고 있지만 판도 변화는 순식간에 일어날 수 있다. 잭 웰치가 이끌었던 GE의 운명이 이를 잘 말해준다. 장 교수는 "우리나라 재벌들도 하루 아침에 변하지는 않겠지만 금융자본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서비스산업을 새 성장동력으로 삼겠다는 윤증현 경제팀의 노선에 대해서도 "서비스산업으로 먹고 사는 나라는 룩셈부르크 등 진짜 규모가 작은 나라밖에 없다"면서 "서비스업은 대부분 수출이 안 되기 때문에 국제수지를 유지할 수 없다. 미국은 그렇게 서비스산업이 발달했지만 계속 무역적자"라고 비판했다. 여전히 한국경제의 살 길은 제조업에서 찾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전통적인 제조업 강국인 일본, 독일 등과 달리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착취하는 구조인 한국에서 제조업 육성 전략을 어떻게 짜야 할까? 장 교수는 '국가'의 역할에 주목했다. 국가가 시장의 '심판'으로서의 역할 뿐 아니라 산업정책이라는 큰 그림을 갖고 경제를 이끌어 가야 한다는 것.

지금처럼 정부가 공정한 '심판'으로서의 역할을 포기하고 규제완화 등 신자유주의 노선을 밀어붙인다면?

"저성장 양극화가 고착돼 남미화될 것 같다. 실제로 점점 남미화 되고 있다. 90년대 중반만 해도 한국의 가계저축률이 국민소득 대비 25%로 세계 1, 2위를 다퉜는데 지금은 1% 정도밖에 안 된다. 브라질도 가계저축률이 7~8%는 된다."


장 교수와 인터뷰는 6일 오후 서울의 한 호텔 커피숍에서 박인규 대표가 진행했다. 이날 인터뷰의 후반부를 싣는다. (☞인터뷰 전반부 : "대공황보다 더 큰 위기…극복 전망이 안 보인다")

지난 10년 금융자본의 승리로 요약 가능

프레시안 : 이제 한국경제 얘기를 좀 해봤으면 한다. 현재 한국경제가 처한 위기가 미국발 금융위기라는 외부 요인의 영향도 받았지만, 더 큰 원인이 우리 내부에 있었다는 시각도 있다. 어떻게 보나?

▲ 장하준 교수. ⓒ프레시안
장하준
: 위기의 내용을 무엇으로 정의하느냐에 따라 다를 것이다. 지난해 4분기 산업생산이 10% 감소하고 수출이 8% 감소한 것 등은 외부 요인이 더 크다. 중국, 미국 등 수출대상국의 경기침체로 수출이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위기를 이런 일시적 쇼크가 아니라 더 크게 규정해 '왜 경제성장률이 자꾸 떨어지고, 고용이 불안해 온 나라 젊은이들이 의사, 변호사만 되려고 하고, 자살률이 OECD 2위이고, 출생률 감소가 세계 1위냐'. 이런 것을 위기로 규정하면 외부 요인 때문이 아니라 지난 10년 내지, 좀 더 길게 보면 김영삼 정부 때부터 15년간 추진돼 온 신자유주의적 시장개혁 때문이라고 얘기할 수 있다.

프레시안 : 일전에 싱가포르 국립대 신장섭 교수와 함께 쓴 <주식회사 한국의 구조조정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책을 유심히 읽었다. 이 책에서 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경제의 가장 큰 문제로 꼽은 것이 리스크 테이커(risk taker)가 없다는 것이었다. 즉 97년 이전에는 국가가 경제운용의 큰 그림을 그리고 이에 따르는 리스크를 떠맡으면서 경제성장을 이끌어왔다면, 위기 이후 국가를 대신해 이런 역할을 할 주체, 또는 시스템이 마련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는데, 지난 10년 동안 경제운용을 보면서 우리 경제가 어떤 변화를 모색했어야 한다고 보나?

장하준 :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아무 것도 안 했다고 보기는 힘들고, 소위 민주화 세력으로 대표되는 진영과 신자유주의 관료 세력 사이에 주고 받는 게 있었다고 보여진다.

부동산 정책은 민주화 세력이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킨 분야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는 신자유주의 세력에 완전히 말려든 것이고, 재벌개혁은 양쪽의 이해가 묘하게 맞아 떨어졌다. 민주화 세력은 재벌을 규제하고 사회정의를 바로잡자는 쪽에, 신자유주의 세력은 자본시장을 개방하는 쪽에 목적이 있었다. 개혁파는 재벌을 잡으니 좋고 시장파는 외국자본이 들어와서 좋고, 이렇게 보면 지난 10년의 과정은 결국 금융자본의 승리라는 요약이 가능하다.

프레시안 : 지난 15년간 지속돼온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금융자본의 권력이 강화되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이 강한 것 같다.

장하준 : 금산분리를 완화하자는 의견이 나오는데 금산분리를 완화하는 법안이 통과되면 제일 걱정스러운 게 재벌의 은행 사금고화가 아니다. 사금고화는 사실 제도만 잘 만들면 얼마든지 막을 수 있다. 금산분리 완화가 재벌의 금융자본화를 돕는다는 것이 더 걱정스럽다. 재벌들까지 금융자본화 되면 게임은 끝나버린다.

예전의 사회적 대타협 주장은 재벌의 금융자본화를 전제하지 않았던 것이다. 산업자본의 경우 원하건, 원하지 않건 금융자본과 다를 수밖에 없다. 재벌들을 산업자본의 틀에 얽어매놓고 사회복지를 강화하는 쪽으로 가자는 주장이었다.

그런데 재벌이 금융자본화하면 더 이상 한국 자본이 아니다. 노동자들이 자본가와 싸우려고 해도 금융자본화하면 힘들어진다. 지금은 재벌 총수가 누구인지, 무슨 짓을 하는지 다 알지만 사모펀드가 대주주가 되면 노동자들의 싸움 상대 자체가 모호해진다. 이 사모펀드를 누가 가진 것인지 알 수가 없지 않나. 지금 외국자본이 문제가 되는 게 주인이 외국인이라서가 아니라 제조업 주주와 행태가 다르니까 문제라는 것이다. 금융자본화되면 자본의 국적은 아무 상관이 없어진다. 단기 이윤 내라고 닦달을 하고 주식시장을 통해 기업에서 돈 빼가고 이러면 그 자본의 국적이 무슨 상관이냐. 예를 들어 미래에셋이 메릴린치보다 낫다고 할 수 있나. 아니다.

제가 보기에 이미 재벌의 금융자본화가 70-80%는 진행됐고, 자본시장통합법, 금산분리 완화, 한미FTA하고 나면 완전히 끝나는 거다.

GE·GM의 몰락을 보면, 1등 기업도 순식간이다

프레시안 : 정부도 개방과 규제완화를 명분으로 재벌의 금융자본화를 돕는 쪽으로 가고 있다. 정부는 제조업에 비해 금융산업의 경쟁력이 낮아서 개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금산분리 완화를 추진하면서는 금융에 외국자본이 너무 많이 들어와 국내자본이 역차별 당하고 있으니까 국내 산업자본에도 문호를 개방해야 한다는 다소 모순된 논리를 내세우기도 한다.

장하준 : 우리나라 금융 경쟁력이 낮다고 하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측면을 말하는지 모르겠다. 금융산업이 발전했다는 미국과 영국도 리스크 관리를 제대로 못해서 금융위기가 터진 것 아니냐. 얼마나 자산관리를 못했으면 독성자산이라는 말까지 나왔겠냐. 도대체 이들의 뭘 보고 배우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 ⓒ프레시안

정부가 진짜로 금융산업을 발전시키고 싶다면 제대로 유치산업화해서 발전시켜야 한다. 미국의 경우, 19세기말 뉴욕을 금융중심지로 발전시키기 위해 법으로 뉴욕주에 외국은행 개설 금지했다.

또 정부에서 '제조업은 중국이 쫓아오니 금융산업을 발전시켜 도망가자'고 하던데 왜 쫓아오는 사람만 무섭고 도망가는 사람은 안 무섭냐. 우리가 금융업 쪽으로 나가면 미국, 영국이 우리한테 한 자리 내줄 거 같냐. 절대 아니다. 왜 자꾸 미국 따라다니면 되겠지 이런 생각만 하나.

프레시안 : 삼성은 반도체, 현대는 자동차, LG는 LCD 등 재벌들이 현재 세계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상품들을 하나 이상씩 갖고 있다. 그래서 재벌들은 금산분리 완화 법안이 통과된다고 해도 제조업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항변한다.

장하준 : 순식간이다. 제너럴일렉트릭(GE)이 예전에는 세계에서 제일 큰 회사였는데 지금은 다 껍데기만 남았다. 잭 웰치 회장이 GE캐피털 만들어서 기업을 금융화 시켰다. 그렇게 다 망쳐놓은 다음 이제 와서 '주주가치 경영은 가장 어리석은 일'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 재벌들도 하루아침에 그렇게는 안 되겠지만 금융화할 것이다. 1등 상품이 영원히 가는 것도 아니니까. GM은 일본이 막 치고 들어오기 시작할 때인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자동차 시장 점유율이 44%였다. 그런데 지금 몇 %인가.

프레시안 : 재벌들이 금융자본화가 진행됨에 따라 '사회적 대타협론'을 얘기하기 힘들게 됐다고 말씀하셨는데, 이번 경제위기를 맞아 최근 한국에서도 '노사정 타협안'이 발표됐다. 근데 대졸 초임 삭감 등 노동자들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결과만 낳았다. 경제위기 상황에서 노조의 힘이 약화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더욱 노사정의 대타협이 큰 틀의 변화를 이끌어내기 힘들어졌다.

장하준 : 노사정 대타협으로 신입사원 임금을 깎는 나라가 세상에 어디 있나. 지금 상태로는 사회적 대타협이 힘들다는 건 인정한다. 노조도 각종 불미스러운 일이 많이 터지고 해서 점점 발언권도 많이 잃어가는 것 같다. 저는 학자로서 화두를 던진 것이지 구체적으로 어떻게 엮어서 하자는 것은 정치인의 영역이다.

프레시안 :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많아지면서 결과적으로 지금 상황에서는 노사정 대타협을 이룬다고 해도 '정규직 노동자-대기업-정부'라는 각 분야의 기득권 세력의 타협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장하준 : 유럽도 비정규직이 많이 늘었지만 기본적으로 사회보장제도가 잘 돼 있어 생활은 된다. 하지만 우리는 사회보장제도가 형편 없어서 생활 자체가 불가능하다. 우리나라 상황에서 노사정 대타협을 하려면 노조에서 제일 먼저 비정규직 줄이는 것을 조건으로 내세워야 하는데 엉뚱하게 신입사원 임금 깎는 식으로 타협했다.

벌목회사인 노키아가 1등 전자회사가 되기까지…

프레시안 : 의미 있는 '노사정 대타협'이 가능하기 위해선 국가가 '심판'으로서 역할을 제대로 해줘야 한다. 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재임 중에 '권력은 시장에 넘어갔다'고 고백하는 등 국가의 역할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작은 정부'를 내세우면서 민영화, 규제완화 등 가속 페달을 밟고 있다. 이미 국가가 통제 수단을 상당 부분 놓아버렸다고 할 수 있다.

장하준 : 국가가 규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다시 만들면 된다. 전례가 없는 일도 아니다. 이승만 정부에서는 은행을 다 민영화했었는데, 박정희 전 대통령이 군사쿠테타 일으킨 뒤 그 은행들을 국유화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말한 것은 굉장히 무책임한 말이다. 그럴려면 대통령을 뭣하러 했나. 시장을 규제하라고 뽑아 놓은 게 정부다. 공무원들도 생각해봐야 한다. 맨날 규제완화만 하고 있다면 왜 월급을 받고 있는지.

프레시안 : 기업들은 관료가 경제성장을 주도하던 개발연대와 지금 상황이 많이 다르다고 강조한다. 지금처럼 산업과 기술의 발전 속도가 빠른 상황에서는 관료가 아무리 뛰어난 능력이 있어도 과거처럼 지도적 역할을 하기 힘들다고 주장한다. 선진국 제품을 모방해서 만들던 시절에는 엘리트 관료가 선진 기술과 정보를 빨리 입수해서 기업에 전달하고 기업을 지도하는 역할을 할 수 있었지만, 삼성, 현대 등이 독자적인 신제품 생산 능력을 갖춘 지금은 이런 전략이 통할 수 없다면서 정부는 가만히 있으라고 주장한다.

장하준 : 기업들이 그런 얘기하려면 어려워질 때 정부에 손 벌리면 안 된다. 물론 과거와 상황이 달라졌으니까 똑같이 규제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아예 간섭을 말라는 것은 다른 얘기다. 국가가 큰 그림은 그려줘야 한다. 미국의 경우 연구개발비 지출 중 정부가 차지하는 비율이 40%가 넘는다. 한국은 20%에 불과하다. 지금 미국 주도 기술 중에 정부 돈이 안 들어간 게 어디 있냐. 다 정부 돈으로 키운 것이다.

프레시안 : 앞뒤 가리지 않는 금융화는 위험하다, 여전히 제조업 중심이어야 한다는 주장인데, 일본, 독일처럼 전통적인 제조업 강국은 오랜 전통을 지닌 기술 중심 중소기업이 활성화 돼 있고 이들 기업이 대기업과 공존하는 기업 생태계를 꾸리고 있다. 반면 한국에서는 이런 뿌리가 약하다. 기술력 있는 중소기업이 오래 버티기 힘든 구조이고 신규 창업도 시들하다. 2000년 무렵까지 세계 1위로 꼽혔던 기업가 정신도 급격히 쇠퇴했다. 실력 있는 기술자들도 진로를 바꾸기 일쑤다. 중소기업이 대기업의 하청 역할 이상을 하기 힘든 구조다. 이런 환경에서 제조업 육성을 외치는 목소리는 자칫 공허할 수 있다. 우리 실정에 맞는 제조업 육성 대책이 뭘까?

장하준 : 제조업이 강한 일본, 독일, 이탈리아 등을 보면 중소기업 위주의 기계부품산업이 강하다. 우리나라는 이 분야를 주로 일본에서 수입하고 있다. 사실 일본이나 이탈리아도 처음부터 그랬던 것이 아니다. 다 국가에서 키운 것이다. 일본도 초기에 대기업들이 우리나라 재벌들처럼 중소기업을 착취했다. 그런데 정부가 이를 방지하는 법을 만들고 대기업들도 결의해서 기술 전수도 해주고 투자도 하고 이런 식으로 하면서 키웠다.

이탈리아는 대기업 하청인 중소기업보다 독자 중소기업이 많은데, 대부분 지방정부 지원을 통해 성장했다. 그러다보니 이탈리아는 지역 특화가 잘 돼 있다. 지방정부에서 정보도 제공해주고 수출도 도와준다.

우리나라도 가만히 앉아서 중소기업을 키워야 한다고 말만 하면 클 수 있나. 지원을 강화하기는 커녕 과거 중소기업은행도 슬쩍 이름 바꿔서 기업은행으로 만들지 않았나. 법을 만들어 더 과감하게 지원해야 한다.

핀란드의 노키아는 처음에 벌목회사였다. 벌목공들의 신발을 사주다가 이 비용을 줄이기 위해 신발을 만들고 이런 식으로 성장했다. 노키아가 전자제품을 만든다는 게 당시 시장 기준으로 보면 말도 안 되는 얘기였지만 기업 내부에서 전략을 세우고 돈을 지원하는 등 장기적 투자를 통해 오늘날의 노키아가 됐다. 적자에서 흑자로 전환하는데 17년이나 걸렸다. 우리도 중소기업 기반이 더 강화될 필요있다고 생각하면 그런 식으로 장기적 전망을 갖고 지원해야 한다.

▲ ⓒ프레시안
프레시안
: 제조업 중심 체제로 가게 되면 금융산업의 역할도 달라질 수 밖에 없다고 본다. 금융산업은 어떻게 변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보나?

장하준 : 단기 주주의 이익이 우선시 돼서는 안된다. M&A가 자유화되고 외국인 주식시장이 자유화되면서 기업이 단기이윤을 극대화하고 주주들에 대한 배당을 극대화해야만 하는 분위기가 됐다. 이를 일부 되돌려야 한다. 그래야 기업으로 자금이 들어가게 된다. 또 은행이 기업들에게 돈을 많이 빌려주게 해야 한다. 90년대 초만 해도 우리 은행 대출의 90% 가까이가 기업 대출이었는데 이제는 40%도 될까말까한 수준이다.

주식시장과 은행의 행태를 안 바꾸면 자금이 필요한 기업은 자금 얻기 힘들고, 돈 있는 기업은 투자 안하고, 투자가 줄어드니까 고용 창출은 안 되는 게 계속될 것이다.

또 우리 제조업이 지금 잘 나가는 거 같지만 주축산업이 다 80년대 개발된 것이다. 새 성장동력이 나오지 않는다.

서비스산업은 신성장동력으로 한계가 있다

프레시안 : 그래서 정부는 의료 영리법인 허용 등 서비스업을 새 성장 동력으로 삼겠다고 하고 있다.

장하준 : 서비스업은 기본적으로 기계화가 어려워서 생산성 향상이 불가능하다. 이발소에서 생산성 향상을 어떻게 시키겠나. 금융, 교육, 의료 등을 얘기하던데 금융은 지금 금융위기로 다 엉망이 된 상태고, 교육은 우리나라가 지금 다 해외로 내보내는 상황 아닌가. 대학에서도 미국이나 유럽 이론을 그대로 전달해주는 수준에 그치는데 누가 우리나라에 배우러 오겠나.

또 서비스산업으로 먹고 사는 나라는 룩셈부르크 등 진짜 규모가 작은 나라 밖에 없다. 서비스업은 대부분 수출이 안 되기 때문에 이걸로 국제수지를 유지할 수 없다. 미국은 그렇게 서비스산업이 발달했지만 계속 무역적자다. 우리는 복지서비스 말고는 별로 확대할 게 없다.

프레시안 : 한국은 수출주도형 국가라서 현 경제위기에 큰 영향을 받고 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내수 확대 쪽으로 구조를 변화시켜야 한다고 하지만, 양극화가 심화돼 내수 확대가 쉽게 일어날 것 같지 않다.

장하준 : 우리나라는 이런 식으로 나가면 저성장 양극화가 고착돼 남미화될 것 같다. 실제로 점점 남미화 되고 있다. 한국이 90년대 중반만 해도 가계저축이 국민소득대비 25%로 세계 1, 2위를 다퉜는데 지금은 1%도 안 된다. 브라질도 가계저축률이 7~8%는 된다. 물론 부자들 입장에서는 미국이나 남미 같은 사회가 더 살기 좋은 사회겠지만 말이다.

프레시안 : 여러 차례 강연에서 한미FTA 등 FTA에 대한 반대 입장을 밝혔다.

장하준 : 정부에서 다른 나라에서 있지도 않은 'FTA 허브'니 이런 구상을 얘기하던데 걱정스럽다.

프레시안 : 한미FTA의 가장 큰 문제는 뭔가?

장하준 : 다 문제다. 국가-투자자 소송도 엄청난 문제고, 지적재산권 문제도 마찬가지다. 또 농업 보상책도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상태다. 또 우리나라가 제조업 많이 발전한 것 같지만 평균생산성을 따지면 아직도 미국의 40%밖에 안 된다. FTA하면 망할 산업 많다.

프레시안 : 개인적인 얘기를 좀 묻겠다. 최근 한나라당 초청 강연을 하기도 했다. 재벌에 대한 입장 등 장 교수의 평소 지론이 한국의 지형 내에서는 여러가지 논란을 낳는 대목이 있다. 국내 좌파-우파 논쟁에 대해 어떻게 보나?

장하준 : 어느 나라나 좌-우, 진보-보수 이런 개념이 역사적 맥락 속에서 형성되기 때문에 나라마다 개념이 다르다. 우리나라에서는 소위 좌파라는 사람들이 과거 관치금융의 폐해 때문에 중앙은행을 독립시켜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유럽에서는 우파들이 하는 얘기다. 또 우리나라에서는 재벌하고 싸우는 게 좌파들이지만, 스웨덴에서는 재벌을 제일 비판하는 게 보수정당인 자유당이다. 스웨덴에서는 자유당이 주로 중소기업을 대변한다. 개인적으로는 좌우 편가르기가 비생산적이라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한국의 보수세력에서는 장 교수가 '성장론'에 방점을 찍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장하준 : 성장도 여러 가지 측면에서 볼 수 있다. 과거 포드주의처럼 물건을 만들면서 수요를 확대하는 식으로 성장하면 좀더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보는 것이고, 신자유주의는 말로만 성장을 얘기한다. 진짜 성장에는 관심없다. 가난한 사람들을 더 착취하려고 성장을 얘기하지만 실제 성장률은 옛날보다 떨어진다.

프레시안 : 긴 시간 좋은 말씀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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