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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O협약 외면하면서 '노사관계 선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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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ILO협약 외면하면서 '노사관계 선진화'? [13년 묵은 노조법, 어디로 가나?③] 한나라당의 노조법 개정안에 대한 법률적 검토
복수노조와 전임자 문제가 지난 4일 '3자 합의' 이후 국회에서 마지막 줄다리기 중이다. 13년 동안 묶여 있던 두 제도를 떨어트린 합의안은 그대로 국회를 통과할 수 있을까? 민주노총 및 야당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아니,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국회 논의가 진행 중인 가운데 프레시안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현장 노동자의 목소리를 통해 그 방향을 찾아보려고 한다. 6편의 글들은 3자의 합의안에 대한 평가를 중심으로 노동조합관계법의 올바른 개정 방안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다. <편집자>


노사정 3자 합의안과 한나라당의 개정안 내용은?

복수노조 및 노조전임자 급여 문제가 지난 12월 4일 이루어진 한국노총, 경총, 노동부의 노사정 합의로 전환점을 맞고 있다. 노사정 합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복수노조 문제는 ①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 설립규제를 폐지하되 교섭창구를 단일화한다, ② 복수노조의 교섭단위는 사업 또는 사업장으로 설정한다, ③ 소수노조에 대한 불합리한 차별을 방지하기 위해 교섭대표노조에게 공정대표의무를 부여한다, ④ 시행시기를 2년 6개월 정도 유예하여 2012년 7월부터 시행한다.

전임자 급여 문제는 ① 교섭, 협의, 고충처리, 산업안전 등 관련 활동에 대한 적정한 수준의 근로시간면제 제도를 운영한다, ② 2010년 7월부터 시행한다.

이에 따라 한나라당은 지난 12월 8일 안상수 의원이 대표발의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하 '노조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개정안은 복수노조 문제에 대해 ① 하나의 사업 또는 사업장에 복수의 노조(초기업단위노조 포함)가 있는 경우 교섭창구를 단일화한다, ② 교섭대표노조는 단체교섭권뿐만 아니라 단체협약체결권을 갖는다, ③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는 노조가 자율적으로 결정하도록 하되 일정한 기한 내에 결정하지 못한 경우에는 과반수 노조가 교섭대표노조가 되고 과반수 노조가 없는 경우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④ 교섭단위는 사업 또는 사업장으로 한다(당사자의 신청에 의해 교섭단위 분리결정을 할 수 있다), ⑤ 교섭대표노조는 교섭창구단일화 절차에 참여한 노조 또는 그 조합원 간에 부당한 차별을 하여서는 아니 되는 공정대표의무를 부담한다, ⑥ 교섭대표 결정절차 및 공정대표의무 위반 여부에 대한 분쟁은 노동위원회가 관할한다, ⑦ 쟁의행위 찬반투표는 교섭창구단일화 절차에 참여한 모든 노조를 대상으로 실시하기로 했다.

전임자 급여 문제는 ① 급여 지급 금지 조항(노조법 제24조 제1항)과 관련 부당노동행위 조항(노조법 제81조 제4호)을 그대로 유지한다, ② 유급근로시간면제 제도(time-off system)를 도입해 단체협약으로 정하거나 사용자가 동의하는 경우 임금 손실 없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범위에서 통상적인 노동조합관리업무 및 사용자와의 협의·교섭, 고충처리, 산업안전활동 등 노사 공동의 이해관계에 속하는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한다(제24조 제3항), ③ 노조나 노조업무종사자가 대통령령으로 정한 한도나 범위를 초과하여 임금지급을 사용자에게 요구하거나 사용자로부터 제공받아서는 아니 되는 조항(제24조 제4항) 및 그 위반에 대한 처벌 조항(제92조 제1호)을 신설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보다 먼저 나온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의 개정안

한나라당 뿐 아니라 민주당도 이미 이번 3자 합의 이전에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한 바 있다. 김상희 의원이 지난 11월 26일 대표 발의한 노조법 개정안이 그것이다.

민주당의 개정안에서 복수노조 문제는 ① 사업 또는 사업장 단위의 복수노조 설립을 금지한 노조법 부칙 제5조를 삭제한다, ② 하나의 사업 또는 사업장에 2 이상의 노동조합이 설립된 경우 복수 노조가 연대하여 교섭대표단을 구성할 수 있도록 하되 교섭대표단 구성에 대한 절차와 방법 등은 노동조합 간의 자율로 정하도록 한다, ③ 사용자에 대해 조합 간 차별적 처우 금지 및 단일 교섭대표단 구성을 이유로 하거나 어느 하나의 노조와 교섭 또는 협약 체결을 이유로 교섭 및 협약 체결을 거부하거나 해태할 수 없도록 하고 그 위반에 대해 벌칙을 정한다.

▲ 복수노조 및 노조전임자 급여 문제가 지난 12월 4일 이루어진 한국노총, 경총, 노동부의 노사정 합의로 전환점을 맞고 있다. ⓒ연합뉴스

전임자 급여 문제는 전임자 급여 지급을 금지한 노조법 제24조 제2항 및 부당노동행위로 규정한 제81조 제4호의 관련 부분 및 부칙 제6조를 삭제하는 내용을 담았다.

민주노동당도 지난 11월 30일 홍희덕 의원 대표발의로 노조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 개정안에서는 복수노조 문제는 현행법을 그대로 유지해 2010년 1월 1일부터 시행하는 것으로 했다. 그러면 사업 또는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 금지조항의 유예기간이 도과되므로 그 제한이 해소되고 교섭창구단일화도 강제될 수 없게 된다.

또 전임자 급여 문제는 ① 사용자의 급여 지급 금지를 규정한 제24조 제2항을 삭제하고, 사용자의 노조 전임자에 대한 급여 지원 행위를 부당노동행위에서 제외한다, ② 사용자가 노동조합 간에 부당한 차별을 하는 행위를 부당노동행위로 정한다(제81조제6호 신설)고 했다.

복수노조 금지는 쿠데타와 날치기 입법의 잔재

이런 여러 가지 노조법 개정안과 별도로 각각의 역사적 맥락 등을 자세히 따져보자.

복수노조 금지 조항은 5·16 군사쿠데타 이후 1963년 개정된 노동조합법에서 처음으로 도입됐다. 이 당시 노조법은 "조직이 기존 노동조합의 정상적인 운영을 방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를 노동조합의 소극적 요건으로 규정했다.

1987년 노동조합법이 다시 개정될 때 복수노조 금지의 대상은 확대되었다. "조직이 기존 노동조합과 조직대상을 같이 하거나 그 노동조합의 정상적 운영을 방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도 복수노조를 허용하지 않게 된 것이다.

그러다 1996년 날치기 노동조합법 및 1997년 개정된 노조법은 본문에서는 자유설립주의를 채택하면서도 부칙에서 사업 또는 사업장 단위에 노동조합이 조직되어 있는 경우 그 노동조합과 조직대상을 같이 하는 새로운 노동조합의 설립을 금지했다. 이 부칙의 적용기간이 5년, 5년, 3년에 걸쳐 총 13년간 유예되면서 현재에 이른 것이다. 결국 사업 또는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 금지는 쿠데타 입법 및 날치기 입법의 소산으로서 조속히 폐지되어야 할 잔재라 할 수 있다.

복수노조를 법률로 금지하는 것이 헌법상의 노동3권(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본질적으로 침해해 위헌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1997년 노조법은 본문에서 노조자유설립주의를 채택했던 것이다. 다만 사업 또는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 허용으로 야기될 수 있는 혼란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한다는 명분으로 부칙에서 복수노조 설립을 일정기간 금지하고 노동부 장관에게 교섭창구단일화 방안을 강구할 것을 규정했다.

교섭창구단일화를 요구하는 취지로는 복수의 노조에 의한 개별적 교섭권의 행사로 인한 중복교섭과 교섭비용의 증가를 막고, 복수의 교섭으로 인한 불필요한 분쟁의 발생을 예방하며, 근로조건의 상이한 결정으로 인한 노무관리상의 어려움을 방지하는 것 등이 거론됐다. 그러나 위와 같은 요구는 정책적 고려사항에 불과하다.

사업 또는 사업장 단위에 복수노조가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우리 헌법이 단결권, 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근로자의 기본권으로 명문으로 보장하고 있기 때문에 각 노조는 각자의 고유한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권을 가진다. 그렇기 때문에 교섭창구단일화가 각 노조의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권을 배제하는 방식이 된다면 이는 위헌을 면할 수 없게 된다. 사업 또는 사업장 단위의 복수노조 설립 허용은 헌법상 보장된 근로자의 단결권을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현행법상의 위헌적인 상황을 개선하는데 목적이 있다. 위헌적인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복수노조 규제를 철폐하면서 또 다른 위헌적인 제도를 도입해서는 안 된다.

창구단일화 강제, 위헌 바로잡는다면서 또 다른 위헌 법률 만드는 꼴

그런데 노사정 합의 및 한나라당 노조법 개정안은 당연한 요청인 사업 또는 사업장 단위의 복수노조 설립규제를 폐지하면서도, 과반수 대표노조에 의한 교섭창구단일화를 법률로 강제하고 있다. 이는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첫째, 소수노조의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권을 본질적으로 침해하여 위헌이다. 과반수대표노조가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권을 독점함으로써 소수노조의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권은 사실상 무의미하게 되고 그 결과 단결권조차도 중대한 침해를 받게 된다.

과반수대표노조에 의한 교섭창구단일화 제도는 기본권 제한의 기본 원칙인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된다. 과잉금지의 원칙은 기본권을 제한하는 입법 활동이 합헌이기 위해서는 목적의 정당성, 방법(수단)의 적정성, 피해의 최소성, 법익의 균형성이라는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과반수대표노조에 의한 교섭창구단일화 제도는 그 목적이 기본권 제한의 목적인 국가안전보장이나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가 아니고 노사관계 안정이나 교섭비용 감소 등이어서 그 목적상의 정당성을 인정할 수 없다. 또 창구단일화를 통해 사용자가 부담해야 할 교섭비용을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데 불과하여 방법의 적정성도 인정되지 않는다. 소수노조의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권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이 얼마든지 가능함에도 이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것은 피해의 최소성 요건에도 위반이다. 이 제도로 침해되는 것은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인 반면 이득을 보는 것은 사용자의 편익에 불과하여 사익 보호를 위해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으로서 '보호하려는 공익이 침해하는 사익보다 커야 한다'는 법익 균형성 요건을 현저하게 위반한다.

둘째, 산별교섭체제를 부정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산별교섭은 동일산업 내 노동자 전체의 근로조건 균등화를 지향하고, 노동운동의 사회적 주체로서의 책임성과 경제적·사회적 지위를 강화하며, 교섭비용 절감 및 노동조건의 평준화라는 관점에서 창구단일화보다 중장기적으로 더욱 효과적이다.

그런데 교섭단위를 사업 또는 사업장으로 강제하고 산별단위노조의 경우에도 교섭창구단일화의 대상으로 하게 되면, 산별노조지부가 과반수 노조인 경우에도 대각선교섭만 가능하게 될 뿐이고 산별노조에 의한 통일교섭은 사실상 진행되기 어렵게 된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산별 통일교섭을 사실상 와해하고 기업별 교섭체제로 환원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이는 노동운동의 후퇴를 의미할 뿐만 아니라 사회적 파트너로서의 노조의 역할을 무력화하는 결과로 될 가능성이 높다. 지금 필요한 것은 오히려 산별교섭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초기업별 단위노조에 대응하는 사용자들에 대해 사용자단체 구성을 의무화하는 것이다.

셋째, 현행법 하에서의 운영보다 후퇴하는 결과를 초래할 우려가 있다. 현행법 하에서는 사업 또는 사업장 내에서 기업단위노조의 중복 설립만이 금지되고, 조직대상의 동일성이 인정되지 않는 산별단위노조에의 가입이나 지부 설립 등은 인정되고 각각 노조의 독자적인 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은 인정되는 방향으로 해석되고 있다. 나아가 여러 산별노조는 사용자들로 하여금 사용자단체를 구성하도록 요구하여 산별 통일교섭을 진행하고 있다.

그런데 한나라당 개정안에 의하게 되면 사업 또는 사업장 단위의 복수노조 금지가 해제되었다고는 하지만 결과적으로 노조의 설립형태를 불문하고 모든 소수노조의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권이 무력화되고 말아 현재보다 상황이 얼마나 개선되었다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지 않을 수 없다.

넷째, 창구단일화과정에서 많은 분쟁과 혼란 및 비용의 증가를 초래하고 결과적으로 노조의 약화로 귀결될 우려가 높다. 어용노조에 의한 단체교섭권의 독점, 대표노조 선정과정에서의 사용자에 의한 개입과 노노분쟁, 노동위원회의 개입에 의한 노조의 자주적 운영 원칙의 왜곡 등 수많은 문제점이 예상된다.

복수노조 문제의 원칙은 기본권 보장에 충실하는 것이다

복수노조 문제는 기본권 보장이라는 원칙에 충실하게 해결하는 것이 최선이다. 복수노조를 유예 없이 전면적으로 인정하고 각각 노조에게 헌법상 보장된 독자의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권을 인정하면 된다. 위헌적인 상황을 개선한다면서 또 다른 위헌적인 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복수노조의 자율교섭권을 인정할 경우 야기될 수 있는 폐단으로는 중복교섭으로 인한 혼란과 비용 등이 거론되고 있으나, 이러한 정책적 고려사항들은 운영과정에서 적절하게 조정할 문제다. 복수노조가 합의에 의해 공동교섭단을 구성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고, 그렇게 되지 않는다고 해도 합리적으로 조정될 수 있을 것이다. 단체협약의 규범적 부분에 대해서는 통일적으로 규율될 필요가 있고, 근로조건을 노조 간에 차별하면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할 수도 있으므로 결국 다수노조와의 관계에서 체결된 단체협약을 조직대상이 동일한 전체 근로자에게 적용하는 방식으로 처리될 가능성이 높다. 채무적 부분에 대해서는 각각의 교섭을 통해 조합원 수에 비례하여 편의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조정하면 될 것이다.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는 복수노조 반대하는 재계 '입막음' 용

노조전임자 문제도 꼼꼼히 살펴보자. 노조전임자의 급여 문제는 원래 법률에 명문의 규정이 없고 노사가 단체협약을 통해 자율적으로 결정해왔다. 기업별단위노조 체제가 강제되던 시기도 있어 노조의 재정적 여건이 열악했기 때문에 노조의 투쟁에 의해 사용자가 노조전임자의 급여를 보전해온 것이다.

그런데 1996년 날치기로 노동조합법을 개정하면서 사업 단위의 복수노조 설립 허용과 연계해 전임자에 대한 급여 지급을 부당노동행위로 규정하여 전면적으로 금지했다. 1997년 노조법을 제정하면서 이를 그대로 유지한 이래 다만 부칙으로 사업 또는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금지와 연계되어 그 적용시기를 유예하여 왔던 것이다.

결국 법률에 의한 노조전임자 급여 지급 금지는 날치기 입법의 소산으로서 아무런 연관도 없는 복수노조 금지 조항의 폐지과정에서 경영계의 요구를 반영하여 도입된 것이다.

▲법률에 의한 노조전임자 급여 지급 금지는 날치기 입법의 소산으로서 아무런 연관도 없는 복수노조 금지 조항의 폐지과정에서 경영계의 요구를 반영하여 도입된 것이다.ⓒ연합뉴스

국제적 기준은 명백히 '법으로 정하는 것은 안 된다'는 것이다

노조전임자 급여 지급과 관련된 국제노동기준은 ILO 제135호 협약(기업내 노동자대표의 보호와 편의에 관한 협약, 1971년 채택)과 제143호 권고라 할 수 있다. 제135호 협약은 "근로자대표가 그 직무를 신속·능률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기업으로부터 적절한 편의가 제공되어야 한다"며 사업장 단위의 노동자대표에 대하여 사용자가 필수적인 편의를 제공할 것과 부당한 차별 취급을 하지 않을 것을 규정하고 있다. 편의제공의 방안이나 정도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나라의 현행 노조법과 같이 전임자 급여 지급을 전면 금지하고 부당노동행위로 규정하는 입법이 위 협약과 권고에 위반되는 것만은 분명하다.

ILO는 한국정부에 대하여 '노동조합의 재정은 노동조합이 스스로 부담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그렇다고 노조전임자의 급여지급에 대해 입법이 개입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전달했다. 1998년 3월 제271차 이사회에 제출된 보고서에서 "전임자 급여지급의 문제가 입법적 개입의 문제가 아니며, (…) 노조법 제24조 제2항을 폐지할 것을 잠정 결론으로 권고"하는 내용을 포함했다. 2002년 나온 결사의 자유위원회 제327차 보고서도 487항에서 "노동조합 전임자 급여지급의 금지는 입법적 관여사항이 아니므로 현행 노조법 상의 관련규정을 폐지할 것을 권고"했다. 2004년 11월 제291차 이사회에 제출된 보고서에서도 "전임자의 급여지급을 단체교섭에 맡겨두는 것이 적절한 방안"임을 지적한 바 있다.

기업별노조 체계가 아닌 유럽의 산별노조 중심 국가들에서도 다양한 형태로 사업장 단위에 전임자가 존재한다. 또 이들에 대한 급여 지급 또는 유급근로시간면제 제도가 존재한다. 기본적으로 각국의 노조전임자 급여 문제는 노사자율 원칙을 지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사업장에서 조합원을 대표해 노조업무에 전념하는 자 또는 노조임원에 대한 유급근로시간 면제의 최소한을 정한 경우는 있지만, 이는 최저한도를 말하며 그 이상을 단체협약으로 정하여 보장할 수 있다. 또한 노동자 대표에 대한 유급근로시간면제의 한도를 법률로 정하는 것은 노조활동을 법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것이지, 노동자대표에 대한 급여 지원을 제한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한나라당 개정안, 과잉제한에 형벌권 남용…노조 활동 약화 가능성도 높다

그런데 노사정 합의 및 한나라당 개정안은 노조전임자에 대한 급여지급 금지 조항 및 이를 부당노동행위로 규정하는 조항을 유지하면서 유급근로시간면제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이의 문제점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노사자율로 결정할 사항을 법률로 금지하고 특히 부당노동행위로 규정해 노조의 요구에 응하여 급여 지원을 한 사용자를 형사처벌하도록 한 것은 과잉제한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부당노동행위 제도의 취지가 노조의 자주성을 보장하는 데 있으므로 전임자에 대한 급여 지급을 바로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아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대법원 판례의 입장과 같이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실질적으로 노조의 자주성을 침해하는지 여부의 관점에서 다시 판단되어야 한다. 해석론을 통한 합리적 운영이 가능할 수도 있으나 노조전임자 급여 지원을 부당노동행위로 명시적으로 규정한 입법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둘째, 유급근로시간면제의 범위가 불명확하고 노조활동을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운영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한나라당 개정안은 유급근로시간면제가 인정되는 활동으로 통상적인 노조관리업무를 나열하고 있으나 '노사 공동의 이해관계에 속하는 활동'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다. 노조전임자의 활동 중 '노사 공동의 이해관계에 속하는' '통상적인 노조관리업무'의 범위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되는지 애매하기 짝이 없다. 노사가 자율로 결정하면 될 유급근로시간면제의 범위를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것도 과도한 개입이다.

셋째, 형벌권의 남용이다. 노조나 노조업무종사자가 대통령령으로 정한 한도나 범위를 초과하여 임금지급을 사용자에게 요구하거나 사용자로부터 제공받아서는 아니 되는 조항 및 그 위반에 대한 형사처벌 조항까지 신설한 것이 그렇다. 노조업무종사자는 전임자보다도 확대된 개념이어서 조합원도 처벌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법률에 정한 유급근로시간면제는 노조활동의 보장을 위해 최소한의 기준을 정한 것이고, 노사가 합의하여 법률의 기준 이상을 지원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하는 것이 선진국의 입법례와도 부합한다.

간단명료한 방안은 노사자율…자기 노력 없이 법에 기대는 사용자, 비겁하다

▲자율적으로 해결할 지위에 있는 사용자가 그에 상응한 노력을 하지 않고 입법이나 국가권력에 의존하여 처리하려는 자세는 정정당당하지 못하다.ⓒ프레시안
노조전임자의 급여 문제에 대한 올바른 해결 방안은 원칙대로 노사자율에 맡기는 방안이다. 사용자의 전임자 급여 지급을 부당노동행위로 규정하고 또한 이를 전면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조항을 삭제하면 된다. 가장 간명하고 원칙적인 방안이다.

이 방안에 대해서는 경영계가 반대하고 있으나, 사실상 사용자에게 전임자에 대한 급여지급의무가 인정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협상 과정에서 적정한 수준으로 조정하면 된다. 자율적으로 해결할 지위에 있는 사용자가 그에 상응한 노력을 하지 않고 입법이나 국가권력에 의존하여 처리하려는 자세는 정정당당하지 못하다.

공허한 정부의 '노사관계 선진화' 주장은 새 갈등만 부를 뿐

노사관계 선진화는 국제노동기준의 수용과 국제사회 권고의 이행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한국정부가 노사관계 선진화를 추진한다면 우선 ILO가 지금으로부터 60년 전에 채택하였고 또한 결사의 자유 보장을 위한 기본협약으로 지정한 제87호 협약(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에 관한 협약, 1948), 제98호 협약(단결권 및 단체교섭권의 적용에 관한 협약, 1949년), 제151호 협약(공공부문에서의 단결권 보호 및 고용조건의 결정을 위한 절차에 관한 협약, 1978년)을 비준하여야 한다. 또한 파업에 대한 업무방해죄 적용의 중단에 관한 ILO와 유엔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 위원회 등의 권고, 사업 단위 복수노조 금지 및 전임자급여의 법률에 의한 지급 금지 등에 대한 ILO의 시정 권고 등을 이행해야 한다. 이러한 조치 없이 노사관계선진화 운운하는 것은 공허하기 이를 데 없다.

또 하나 깊이 고민해야 할 것은 인권에 대한 관점을 새롭게 정립해야 할 필요성이다. 샌드라 프레드먼의 역작 <인권의 대전환>에 의하면 모든 인권은, 자유권이든 사회권이든, 국가의 세 가지 대응의무, 즉 존중할 의무(회피할 의무), 보호할 의무, 충족시킬 의무(지원할 의무)를 발생시킨다. 노동3권은 헌법이 보장하는 인권으로서 국가에 대해 위 세 가지 의무를 발생시킨다.

노조조직률이 10% 정도에 불과하다는 것은 국가가 인권을 충족시킬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따라서 국가는 노조조직률을 제고하기 위해 지원할 의무가 발생한다. 그런데 창구단일화를 강제하고 노조전임자 급여 지급을 금지하는 입법을 하겠다는 것은 국가가 지원할 의무를 준수하는 것은 고사하고 최소한의 의무인 침해를 회피할 의무조차 이행하지 않겠다는 의미이다.

사업 또는 사업장 단위의 복수노조 설립의 허용은 헌법상 기본권으로 보장된 단결권의 당연한 결과다. 위헌적인 현재의 상태를 개선하기 위해 복수노조의 설립을 허용하면서 교섭창구단일화를 강제하는 위헌적인 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선진화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오히려 산업별 단체교섭체제를 근본적으로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점에서는 개악으로 볼 수 있는 측면이 있다.

노조전임자 급여 지급 문제는 복수노조 설립 허용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으며 서로 연계해서 처리해야만 할 필연적인 논리도 없다. 여전히 기업 단위 노조가 주류를 이루고, 소규모 노조가 많은 상황에서 노사가 자율적으로 결정해야 할 전임자 급여 지급 사항을 법률로 강제로 금지하면 많은 노조들이 정상적인 활동을 할 수 없게 된다. 노동현장에서의 역학관계는 현저하게 불균형하게 될 수밖에 없다. 노사의 대등한 파트너관계는 붕괴되고 말 것이며, 이 역시 노사관계의 선진화와는 거리가 멀어지는 것이다.

한나라당 개정안대로 입법된다면 그 순간부터 바로 위헌 주장 및 폐지 요구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갈등과 혼란이 시작될 것이다.

김상희 의원과 홍희덕 의원이 대표발의한 노조법 개정안은 이러한 문제의식에 근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국회가 헌법과 인권의 가치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노조를 사회적 파트너로 용인하는 자세로 접근한다면 해결책은 쉽게 찾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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