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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망루에 아직 난쟁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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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망루에 아직 난쟁이가 있다" [용산 참사 범국민장 릴레이 기고②]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아저씨."
신애는 낮게 말했다.
"저희들도 난쟁이랍니다. 서로 몰라서 그렇지, 우리는 한편이에요."

조세희,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공>(이성과힘 펴냄)


2009년 내내 망루에 오르고 있었다.

수 십 년을 살아온, 수 십 년을 일해 온 무너지는 자신의 집, 무너지는 가게터 옥상에 올린 망루 위로 난쟁이와 함께 우리 모두 힘겹게 오르고 있었다. 그들로 인해 알게 되었다.

계절을 잊은 훈훈한 아파트가 들어선 이곳은, 예전에 작은 맹꽁이들도 살았고 수 백 년 깊은 그늘의 소나무도 있었다는 것을. 늦은 저녁이면 얼큰한 술 한잔에 검은 봉지 속에 붕어빵도 사오고 귤 3000원어치도 사오던 아버지의 퇴근길도 있었던 것을. 가난한 아버지가 살고 싶었던 집. 아버지가 지키고 싶었던 가게에 들이닥친 행정대집행 딱지. 한참 어린 용역깡패 녀석들의 주먹다짐 때문에 우리도 사람이다.

▲ 용산 참사가 발생한 남일당 건물. ⓒ프레시안(사진=최형락)

그렇게 무너지는 마음으로 올린 망루가 있었다는 것을. 아파트 브랜드의 가치가 품격을 말한다는 모진 이 시대의 망루에 아직도 울고 있는 가난한 난쟁이 하나 있다는 것을. 목숨을 바쳐 지키고 싶고 돌아오지 못해서 미안하다, 미안하다 목 놓아 울고 있을 가족이 있었던 그들을. 2009년 1월 20일. 용산. 그 망루에서 기어코 내려오지 못한 우리는 모두 알게 되었다.

사람이 있다네 사람이 있다네
여기 사람이 있다네

중국집 김사장, 금은방 김사장, 복집주인 양사장
삼십년 갈비집 이사장은 막내랑 같이 올랐지
살기 위해 올라갔지 살기 위해 올라갔지

깡패녀석들 온동네 자기 집처럼 우리동네 망쳐놨어.
하루종일 두두려맞은 70대 이사장, 경찰불러도 소용없는데
상해진단서 20만원, 30만원 무슨 소용있냐고
구청사람 소용없어 시청사람 소용없어
우리 동지밖에 소용없어, 살기 위해 올라가자

떠날 곳 없는 사람들
도망갈 곳 없는 사람들
마지막으로 올라간 곳, 그 사정...사람들은 알줄 알았지

무서워서 내려갈 수 없었어
호랑이같은 깡패녀석들, 테러범 잡는다는 경찰나리들
두들겨 맞고 끌려가는 사람들, 동지들,
죽어도 여기서 죽겠구나 내려갈 수 없었지

그래도 그럴 줄 그때는 몰랐어
여기 사람이 있는데
여기 내가 있는데
우리도 사람인데 그때는 그럴 줄 몰랐어

도망갈 수 없었던 숨 막히던 가스
그건 무엇이었을까
막내 놈 살아서 내려갔겠지
우리 도와주러왔던 양사장, 이사장.
동지들은 무사했을까.

사람들아, 여기 사람이 있다네
내가 있다네, 내 아들이 있다네, 내 동지들이 있다네
그러면 안되는 거였다네

우리는 여기, 살기 위해서 올라왔었다네

사람이 있다네 사람이 있다네
여기, 사람이 있다네


1년. 불에 탄 시신은 냉동고에 갇혀있었다. 그래도 해를 넘기지 않고, 참사가 해결된다는 소식은 마음에 진 빚 같았던 무거움을 조금 달래주었다. 여전히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고 3000쪽에 숨겨진 비겁은 아들을 아직도 감옥에 가둬두고 있지만. 언젠가 진실도 우리 모두의 외로움도. 가진 것 없어 떼를 쓸 수밖에 없는 우리 같은 사람들의 사정을, 그 아픔을 사람들도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만. 죽지 않기 위해서 지르는 비명조차 시끄럽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 틈에서 이건 지금 절규라고, 우리도 사람이라고 지르는 피를 토하는 아픔이라는 것을…. 그래, 언젠가는 모두 알게 되겠지.

'폭력이란 무엇인가? 총탄이나 경찰 곤봉이나 주먹만이 폭력은 아니다. 우리의 도시 한 귀퉁이에서 젖먹이 아이들이 굶주리는 것을 내버려두는 것도 폭력이다.' 조세희,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공>(이성과힘)

싸움은 이제 시작이라고. 엄마는 이야기했다. 순화동에서 온, 용인에서 온, 수원에서 온, 내 이웃들의 아픔은 이제 막 시작되고 있으니까.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화려한 도시의 재개발 현수막. 뉴타운 애드벌룬. 도시정비 사업의 축포. 아파트 평수를 넓히고 좋은 대학을 가고, 누군가 죽어도 어쩔 수 없어. 우린 모두 앞만 보고 가야해. 그렇게 외면하는 사람들 마음의 폭력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으니까.

엄마는 이제 싸움을 다시 시작하자고 한다. '디자인 서울'이 만들어지면, 가난조차 디자인 하지 못한 우리는 정말 갈 곳이 없어. 세련되고 화려하게 새 옷을 입는 건물들 틈에서 벌집 같은 쪽방. 슬레이트 지붕을 흩뿌리는 빗소리. 잠 못 들던 소리조차 막아주던 집마저 없어지면, 이제 정말 우리는 갈 곳이 없어져.

보상금. 작지 않지. 그런데 그것 때문에 지금까지 싸운 게 아니야. 살인자의 아들로, 테러범의 가족으로 살게 하고 싶지 않았어. 그깟 보상금 때문이라면 지금까지 싸우지도 않았어. 보상금 싸들고 와서 우리를 회유하려던 놈들이 나서서 언론에 떠들지. 우리가 보상금 받으려고 떼를 쓴 거라고. 나쁜 놈들. 아버지를 죽인 사람이 아들이라고 누명을 씌우고, 법을 앞세워 진실은 공개하지도 않았지. 용역들이 저지른 폭력과 경찰들이 지은 죄는 모두 덮어주면서 여적 내세우는 것은 법이라더라. 보상금 몇 억? 다시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난 아버지를 수백억 원하고 바꾸라면 바꾸고 싶겠냐고, 그들의 두 눈을 보고 똑바로 말해라. 우리는 너희들과 달리 사람이라고. 인간이라고. 우리는 돈이 아니라고.

그래, 엄마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어요. 그 망루에는 아직 난쟁이가 있어. 신부님, 용산 남일당 레아에서 시와 노래를 불러준 시인님, 정운찬이가 한 사과가 거짓이라고 똑 부러지게 말씀해준 야당 의원님들, 아직 아버지가 내려오지 못했어요. 어느 외로운 새벽 농약을 들이켰던 할아버지, 자기 몸에 불을 지피며 울부짖었던 택시노동자 아저씨, 최저임금만 받다가 해고된 우리 언니. 그들 모두 망루에 같이 올랐어요. 아직 내려오지 못한 사람들. 그들을 위해 아직도 노래를 해주고, 기도를 하고, 싸워주세요.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고. 감옥에 갇힌 사람들, 이제 곧 장례를 치루면 감옥을 가야하는 사람들. 그들은 키 작은 우리 아버지와 함께 망루에서 내려오지 않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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