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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구 속에서 '현실' 찾는 그대여, 지적 유희는 범죄가 아니라네
[김창규의 '기계 나비의 꿈'] 맞닿아도 괜찮은 평행선, 두 개의 태도
(아마도 편집자께서는 눈살을 찌푸리시겠지만) 국내에 번역되지 않은 책으로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차이나 미에빌(China Mieville)은 영국 판타지/SF작가로 어마어마한 수상경력을 가지고 있다. 필자는 차이나 미에빌을 좋아하는지라 국내에 번역되기에 앞서 읽기도 한다. 그의 최근작 중에 판타지인 도시와 도시(The City The City)가 있다. 도
유사과학 컬트 SF 무협지, 그래도 이 작가를 사랑한다
[김창규의 '기계 나비의 꿈'] 콜린 윌슨의 <정신기생체>
저자 콜린 헨리 윌슨은 영국의 저술가이다. 그는 노동 생활을 전전하면서 엄청난 독서량을 축적하고, 거기서 얻은 지식을 바탕으로 삼아 비평서 아웃사이더(1956, 한국어판 범우사 펴냄, 1997)를 내놓고 일약 스타가 되었다. 그는 이른바 '앵그리 영맨'의 일원으로 분류되었다가 인생의 부침을 일찌감치 경험했지만, 오히려 그 이후부터 그 자신의 이론을 꾸준히
우주의 언어 미로, 번역의 선글라스로 보다
[김창규의 '기계 나비의 꿈'] 새뮤얼 딜레이니의 <바벨-17>
계획적으로 수행해 온 작업은 아니었고 그다지 명시적으로 드러나지도 않았지만, 특정 지면을 할당 받아 서평을 싣게 된 이후 마감이 다가올 때면 어김없이 떠오르던 욕심이 있었다. 국내에 소개된 작품이든 아니든 가리지 않고, 고전이든 아니든 개의치 않고 SF의 특장점 하나와 대표작 하나를 일대일로 연결 지어 소개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그것이다. 그 생각은 현실적인
초인물은 '우생학'? 아니, 인간의 나은 미래를 말한다!
[김창규의 '기계 나비의 꿈'] 고마츠 사쿄의 <끝없는 시간의 흐름 끝에서>
현재까지 과학에 의해 알려진 바로는 '진화'란 인위적이거나 고의적인 방향성을 가지지 않는다. 진화는 오랜 시간에 걸친 변이의 누적이며, 생물의 복잡성은 환경이라는 요소 때문에 선택될 뿐이다(유전자의 이기성/이타성 논쟁은 여기서는 언급하지 않겠다). 이런 진화가 인간을 포함한 생태계 전반을 지배하는 원리이기 때문에, 과학적인 시각을 상상과 빚어내는 SF에서
손에 땀을 쥐다가 맥 빠질 수도 있다! 당신의 취향은?
[김창규의 '기계 나비의 꿈'] 휴 하위의 <울>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에는 매체에 따라서 차이가 있다. 그 중 ‘미드(미국 TV 드라마)’나 ‘영드 (영국 TV 드라마)’같은 약어로 통하는 영미권 TV 시리즈물의 경우, 시청자로 하여금 다음 화를 보지 않을 수 없게 만들려고 한 화의 말미에 새로운 사건이나 비밀의 존재를 암시하는 방식을 즐겨 사용한다. 딱 하나 예를 들자면 미국 드라마 로스트가 좋을 것이
'스타워즈'에 코웃음? 뇌의 '원뿔'부터 열어라!
[김창규의 '기계 나비의 꿈'] 이언 뱅크스의 <플레바스를 생각하라>
SF는 깔때기, 또는 원뿔에서 출발한다. 그 원뿔의 꼭짓점은 입자 하나에 맞닿아있고, 반대편은 평행우주를 훨씬 넘어서는 어딘가를 향해 열려있다. 그런 원뿔이 수십 수백 모여서 SF를 이룬다.한편 '스페이스 오페라'라는 SF의 '하'위장르가 있다. '하'라는 말이 조금 무색하게도 '스페이스 오페라는 시간/공간/물량적으로 가장 규모가 큰 SF일 것이다. 다른
읽는 게 고난인 재난물? 반만 참으면 빛이 보인다!
[김창규의 '기계 나비의 꿈'] 그렉 베어의 <신의 용광로>
'상상'은 긍정적일까 부정적일까?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있어 상상은 긍정적인 이미지를 줄 것이다. 또는 그래야 한다는 당위를 내세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상상이 긍정적이어야 한다면, 그 다음 질문은 '긍정적이란 건 도대체 뭘 말하는가?'이다. 바보처럼 웃고 입에서 침을 줄줄 흘리며 관제 언론의 방송 내용이 전부 진실이라고 믿는 게 긍정적인 삶일까? 꽃가루가
돌고래와 한배 탄 인간, 우주를 경쾌하게 휘젓다!
[김창규의 '기계 나비의 꿈'] 데이비드 브린의 <떠오르는 행성>
SF 작품은 거시적인 시각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창작자는 물론이고, 독자들도 작품의 재미를 십분 만끽하려면 그 시각에 동참해야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런 동참이 누적되면 어느새 쉽게 넘어서기 힘든 절벽이 형성된다. 통념이든, 과학교양을 등한시하는 사회 분위기든 간에 여러 가지 이유로 한 번 동참하지 못한 독자들은 그 절벽에 빨간 페인트로 '그들만의
광선총과 현미경을 든 미래 전사, 은밀하게 전진하라!
[김창규의 '기계 나비의 꿈'] 브루스 스털링의 <스키즈매트릭스>
대중성과 작품성(또는 작가주의의 밀도)에 대한 고민과 논쟁은 길가메시 서사시때부터 있었을 것이다. 물론 이 두 가지 요소의 경계는 한없이 불분명하다. 특히나 요즘에는 자칭 의견 선도자들이 너무나 많은 탓에 타인의 감상평을 자신의 의견이라고 (자발적으로) 착각하는 이들도 많다보니, 경계를 논하는 행위조차도 무의미하게 보이는 경우가 많다.거기에 장르의 특성이
땀이 흥건, 뇌가 섹시해지는 SF?
[김창규의 '기계 나비의 꿈'] 그렉 이건의 <쿼런틴>
극단적이고 노골적으로 편을 들어보자면 SF는 상상력의 극단을 가장 빈번하게 건드리는 장르다. 여기서 상상력의 극단이란 단 몇 줄의 문장으로 신의 존재 증명을 세우고 깨뜨리는 여러 철학자들의 정신활동과 비슷한 수준을 가리킨다. 상상은 뇌의 활동이고, 뇌가 '세계 전체'의 일부이기 때문에 그 어떤 상상도 결국은 세계의 일부이다. 이렇게 단정을 지어 놓으면 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