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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 2ℓ? 물 타령하다 진짜 물먹는다!
[낮은 한의학] 수독과 메니에르 병
의사 입장에서 제일 긴장하는 순간 중 하나는 단골 환자가 지인 손을 끌고 올 때다. 물론 이렇게 지인 손을 끌고 오는 환자의 대부분은 여성이다. 또 그렇게 같이 한의원을 찾는 이들은 대개 같은 질환으로 고생한다. 드문 일이지만 친구의 강력한 권유로 용하다는 의사를 찾았다가 병이 낫기는커녕 심해져서 친분이 깨지는 경우도 보았다. 그러니 긴장이 될 수밖에.지난
대국으로 끌려간 왕자들, 슬픔이 큰 병이 되다
[낮은 한의학] 효종의 이명 ①
효종은 인조의 두 아들 가운데 둘째다. 맏아들 소현세자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죽고 나서, 인조의 뒤를 이었다. 그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인조는 소현세자의 아들인 원손이 왕권을 계승해야 한다는 신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효종을 후계자로 지목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며느리 강빈, 손자는 모두 죽임을 당했다.효종은 청을 공격하자는 '북벌론'으로 유명하다. 그래
무능한 통치자의 최후? "왼쪽 귀가 들리지 않아!"
[낮은 한의학] 선조의 이명 ②
☞관련 기사 :선조의 이명 ① 이순신 진짜 라이벌, 열다섯 번이나 "왕 못 해 먹겠다!"선조는 임진왜란 7년 동안 무려 열다섯 차례나 양위 파동을 일으킨다. 성군이 되라는 신하에게 왕 노릇 못하겠다며 지청구를 놓은 것이다."나는 원래 심장병이 있는데, 지금은 병 뿌리가 굳어졌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고, 머리가 아프며, 귀가 멍하다. 나이도 노쇠기에 접
이순신 진짜 라이벌, 열다섯 번이나 "왕 못 해 먹겠다!"
[낮은 한의학] 선조의 이명 ①
1567년 선조(1552~1608년)가 즉위했다. 문정왕후와 명종의 척신들 사이에서 억눌려 있던 선비들이 열망하였던 사림의 시대가 열렸다.이 시기는 택리지를 쓴 이중환의 평가를 굳이 빌리지 않더라도 인재가 수풀처럼 많은 조선 유학의 전성기였다. 이황(1501~1570년), 조식(1501~1572년), 이이(1536~1584년), 기대승(1527~1572년)
사도세자 이선의 죽음, 영조의 귀는 알았다!
[낮은 한의학] 영조의 이명 ②
(☞관련 기사 : 영조의 이명 ① 영조가 귀지 제거에 집착한 까닭은?)영조는 이 이중탕 처방에 녹용과 우슬 등의 약재를 더해 '건공탕'이라고 부르며 평생을 가까이하면서 늘 복용하였다. 약 이름만 봐도 영조가 얼마나 애착을 가졌는지 짐작할 수 있다. 오죽하면 약 이름을 '나라를 건국한 공로가 있다'고 붙였겠는가? 아무튼 영조가 천수를 누렸으니, 이 약은 이름
영조가 귀지 제거에 집착한 까닭은?
[낮은 한의학] 영조의 이명 ①
9월부터 '낮은 한의학'이 새로운 연재를 시작합니다.조선 왕조 실록 등 기록을 통해서 조선 왕의 건강을 초점을 맞췄던 '왕의 한의학'에 이어서 현대인을 괴롭히는 질병 중 하나인 이명(귀 울림)의 모든 것을 살펴봅니다. '왕의 한의학'을 연재하면서 축적된 이명의 옛 기록과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의 오랜 임상 경험을 씨줄과 날줄로 '역사'와 '인간'과 '의학'
왕의 비명 "죽은 며느리 탓에 귀에서 홍수가 났다"
[낮은 한의학] 인조의 이명 ②
아들·며느리·손자까지 죽인 왕, "귀가, 왼쪽 귀가…"
[낮은 한의학] 인조의 이명 ①
안동 김 씨의 '종마'로 키워진 강화도령
[낮은 한의학] 철종의 건강학
조선 왕의 건강을 살펴보는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전 대구한의대학교 교수)의 '낮은 한의학' 연재가 매주 수요일 계속됩니다.이상곤 원장이 조선 왕의 건강에 초점을 맞춘 이유는, 당시 왕들의 모습이 오늘날 현대인의 그것과 아주 흡사하기 때문입니다. 왕들은 산해진미를 섭취하였지만 격무와 스트레스, 만성 운동 부족 등으로 건강 상태는 엉망이었습니다. 이 원장은
단종의 어머니가 세조에게 침을 뱉었다면…
[낮은 한의학] 세조의 건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