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국화가 시들다 못해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립니다. 서울대학병원 장례식장 1층 10호를 지킨 지 열여덟 날이 지났습니다. 세월호 참사로 온 나라가 비통함으로 빠져 들어가던 지난달 4월 17일 저의 소중한 친구도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그는 여전히 장례식장 영안실, 차디찬 냉동고에 안치돼 있습니다.
나이 쉰셋, 이름 송국현. 저는 이 분을 국현 형님이라고 불러왔습니다. 저는 서울 성동구에 있는 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중증장애인의 자립생활을 지원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자립생활이라는 말이 생소한 분들이 있을 텐데요. 중증장애인이 장애인생활시설이나 집 안에 갇혀 지내지 않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며 살아가는 것을 자립생활이라고 부릅니다. 중증장애인이 시설 밖으로, 집 밖으로 나오는 일이 그만큼 쉽지 않다는 뜻이겠지요. 일상 속에서 중증장애인을 만나기 어려운 만큼 자립생활이 쉽지 않은 일이기에 특별히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지요.
국현 형님은 지난해 2013년 10월 초 장애인생활시설인 음성꽃동네에서 나왔습니다. 형님은 음성꽃동네에서 나와 우리 센터가 운영하는 자립생활 체험 홈에서 지내기 시작했습니다. 체험 홈은 시설이나 집안에서 오랫동안 사회와 단절된 삶을 살았던 분들이 사회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당사자분들은 이곳에서 다양한 경험을 접하면서 자립생활을 준비해가는 공간입니다.
52세에 결정한 자립생활, 그도 살아보고 싶었다
시설에서 나온 국현 형님은 더는 소리 없이 시설 안에서 죽어갈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더 나이가 들기 전에 시설 밖에 자립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국현 형님은 20대 중반에 사고를 당해 장애를 갖게 되었습니다. 혼자 할 수 있는 것들이 줄었고, 그런 그는 점차 가족에게 짐이 되어갔습니다. 그렇게, 많은 중증장애인이 그렇듯, 국현 형님도 시설에 입소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어제와 오늘과 내일이 별다를 것 없는 시간을 보내다, 나이 쉰이 넘어 ‘탈시설’을 결심한 것입니다. 그도 정말 살아보고 싶었던 겁니다.
불과 한 달여 전만 해도 국현 형님은 우리 곁에서 자기의 삶을 꿈꿨습니다. 새 옷을 사 입고 나타나 우리에게 자랑하는 눈빛을 보내고, 맑은 웃음을 지어 보였습니다. 장애인 야학에 입학해 한글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함께 노래방에 가서 마이크도 쥐어보고, 벚꽃 구경도 하고, 극장에 가서 영화도 봤습니다. 그가 소리 내 할 수 있는 말은 “응” 하나였지만 그는 손짓과 눈빛, 온몸으로 마침내 살게 된 것이 행복하다는 표현을 했습니다. 저는 그것을 형님 곁에서 바로 얼마 전까지 지켜봐 왔습니다.
그래서 더 원통하고 억울합니다. 처참한 마음이 가시지 않습니다. 답답한 걸 싫어하는 국현 형님인데, 어서 자유롭게 하늘로 훨훨 보내야 하는데… 너무나 억울해서 그렇게 못하겠습니다. 이대로는 못 보내겠습니다. 국현 형님이 왜 이렇게 억울하게 우리 곁을 떠나야만 합니까.
세월호 침몰 다음날, 불길에 갇힌 장애인
지난 2014년 4월 13일 일요일 오전. 국현 형님이 살던 집에 불이 났습니다. 국현 형님은 혼자 있었고 천장을 타고 들어오는 불길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타는 냄새를 맡고 위층에서 내려온 집주인이 현관문을 열고 사람이 있느냐고 물었지만 국현 형님은 도와달라는 소리를 지를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국현 형님은 구급대가 올 때까지 불덩이가 떨어져 내리는 침대 위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얼마나 무서웠을지, 얼마나 뜨거웠을지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아픕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의 부름과 기도에도 불구하고 형님은 나흘 만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세월호가 어두운 바다 한가운데 멈춰선 바로 다음날인 17일 새벽 6시 40분, 송국현이라는 사람의 생도 중단되고 말았습니다. 어떻게 이토록 허망하고 안타까운 일이 벌어질 수 있는 걸까요?
중복장애 3급, 송국현. 우리나라 장애인복지제도는 신체 손상의 정도에 따라 장애가 중증인 사람을 1급으로 해 6급까지 정도를 구분합니다. 장애가 심한 사람에게 복지서비스를 많이 지원하기 위해 이런 제도를 고안했다고 합니다. 국현 형님은 장애등급 심사에서 뇌병변 장애 5급, 언어 장애 3급을 진단받았습니다. 두 개의 장애를 합해 중복장애 3급이라는 최종 판정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 판정 때문에 국가 제도인 ‘활동지원서비스’를 받지 못했습니다. 활동지원서비스는 현재 1~2급 장애인만 신청할 수 있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방안으로 불길이 들이쳐도 도와달라는 말을 하지 못하고, 불길을 피해 집 밖으로 나올 수 없는 사람이었지만 그는 활동지원서비스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국현 형님은 자립생활을 시작하면서 이미 여러 어려움에 부닥쳤습니다. 편마비로 몸의 중심을 잡기 어려웠고, 혼자 걸음을 떼 움직이는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 늘 비틀거렸고 넘어지기 일쑤였습니다. 휠체어를 타면 그나마 조금 편했지만, 휠체어를 밀어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혼자서 밥을 지어 먹고, 빨래하고, 씻는, 일상의 여러 일도 혼자서 해내기엔 벅찼습니다. 활동보조인의 지원이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국현 형님은 장애 3급이었습니다. 활동지원서비스가 얼마나 필요한가와 상관없이 장애 3급이라는 이유로 그의 요구는 묵살되었습니다.
활동보조 거절당한 지 3일 뒤 화마 휩쓸려
사고가 나기 사흘 전인 2014년 4월 10일, 국현 형님과 동료들은 장애등급을 심사하는 국민연금공단 장애등급심사센터에 찾아가 지원을 호소했습니다. 국현 형님의 장애등급을 다시 판단해주든가, 장애 3급이어도 활동보조가 꼭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지원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문전박대를 당하고 돌아와야 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사흘 뒤 혼자 있던 국현 형님 집에 불이 난 겁니다.
이 나라는 가난에 허덕이던 ‘송파 세 모녀’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때, 복지서비스를 잘 몰라서, 제도의 문을 두드리지 않아서 그리되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주변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는지 찾아보고 나라에 알려달라고 캠페인을 벌였습니다. 그 일이 과연 복지의 문을 두드리지 않아서 생긴 일이었을까요? 그렇다면 살고 싶다고, 살려달라고 제도의 문을 세차게 두드린 국현 형님에게 이 나라가 한 일은 대체 무엇입니까? 이 억울한 죽음에 대해 누군가는 사과하고 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장애등급제가 사람을 죽였다
저는 이것이 분명한 사회적 타살이라고 생각합니다. 국현 형님이 제도의 문을 두드렸을 때 이 나라가 무언가 했더라면, 아마도 이렇게 허망한 죽음은 없었을 겁니다. 장애등급제라는 기만적인 이름으로 이 제도가 장애인의 삶을 쥐락펴락하지 않았더라면, 국현 형님은 우리 곁에서 오래 함께했을 것입니다. 국현 형님은 누구보다 살고 싶어 했습니다. 자기가 원하는 삶을 위해 글을 배우고, 사람들을 만나고, 그렇게 시설이 아닌 이 평범한 곳에서 살아가길 원했습니다.
하지만 이 나라는 그런 사람에게 절망감을 안겨줬습니다. 장애등급제라는 교묘한 제도로 그의 삶에 거대한 문턱을 만들었습니다. 예산 타령을 해가며 수렁으로 빠져가는 사람의 손을 의도적으로 잡아주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 나라가 고안해낸 장애등급제라는 기가 막힌 제도가 국현 형님을 죽였다고 생각합니다.
광화문역 안에서는 장애인과 가난한 이들의 목을 조르는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를 폐지하라며 620일 넘게 천막 농성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살기 힘들면 이 나라에 손 내밀라고 말하는 국가의 목소리가 역겨워집니다. 복지와 제도를 향해 끊임없이 문을 두드려대지만, 묵묵부답인 이 나라가 부끄러움도 없이 기만적인 선전을 해댑니다. 장애인도 사람입니다. 사람을, 제 나라 국민을 짐승 취급하는 국가는 존재 가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보건복지부 장관이 국현 형님의 이 억울한 죽음에 책임을 느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이 잘못된 정책에 대해 반성하고, 국현 형님 앞에 사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다시는 이런 죽음이 생겨나지 않도록 대책을 하루 빨리 내놓아야 합니다. 장애등급제는 반드시 폐지해야 합니다. 국현 형님과 같은 희생자는 또 다시 생기면 안 됩니다.
서울 시청 광장에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는 시민 분향소가 크게 세워져있습니다. 저도 그곳에 들러 희생자들 앞에 고개 숙여 조의를 표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그 옆에 국현 형님을 위한 분향소를 작게나마 차려놓았습니다. 국현 형님의 억울한 죽음에 대해 이렇게라도 말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마음 때문입니다. 여기에 잊지 말아야 할 또 하나의 죽음이 있습니다. 부디 기억해주시고 무엇이든 함께해 주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故 송국현 씨 장례위원회의 장례위원을 모집합니다장례위원 참여 방법- 단체와 개인 모두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공동장례위원장 및 장례위원은 소속단체가 있을 경우 단체명을 기재해주세요.- 공동장례위원장 (10만 원) / 장례위원 (단체 5만 원, 개인 1만 원)- 장례위원 명단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로 보내주십시오. (이메일 : [email protected] / 팩스 : 02-6008-5101)- 계좌 : 1005-102-474213, 우리은행, 성동장애인자립생활센터- 문의 : 010-9904-0777(임영희)/ 010-8661-1706(남병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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