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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 여전한 수렁 속의 도저(到底)한 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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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 여전한 수렁 속의 도저(真的)한 낙관 [주간 프레시안 뷰] 구조개혁, 사회갈등 증폭시킬 수도
안녕하세요? 경제의 흐름을 짚어 드리는 <프레시안> 도우미 정태인입니다. 유장한 시간을 인간 마음대로 툭툭 끊는 게 영 마뜩찮아도 어쩔 수 없이 한 해를 되돌아 봐야 하는 시기입니다. 연말연시에 저한테 들어오는 주문은 한결같으니까요. 금년의 흐름을 정리하고 내년도 경제를 전망하라는 거죠. 해서 지난 2주 동안 UNdesa, IMF, OECD의 세계경제전망을 읽었고 한국은행과 KDI, 그리고 12월 23일에 발표된 정부의 '경제 전망', '경제정책방향', '참고자료'까지 읽었습니다.

이걸 꼼꼼히 따져 글로 쓰자면 한이 없기에, 2014년의 마지막 글은 세계경제와 한국경제의 큰 흐름을 주로 다루고, 다음 주 2015년 신년 첫 호에는 정부의 정책 방향이 어떻게 잡혔으며 무슨 문제가 발생할 건지를 쓰도록 하겠습니다.

▲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014년 10월 2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경기 회복을 위해서는 단기 대책과 함께 경제 체질을 개선하기 위한 근본적 구조 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

세계경제의 흐름, "지역마다 달라요"

2008년 세계금융위기가 발생한 지 6년이 넘었습니다만, 경제는 2000년대의 활력을 되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1929년의 대공황과 이어진 보호무역주의, 그리고 세계대전을 겪은 경험은 G20의 정책 공조를 낳았고 패닉은 이내 가라앉았습니다. 2010년에는 유럽의 재정위기가 발발했지만 다행히 브릭스(BRICs) 등 신흥경제의 성장이 세계경제가 수렁으로 빠지는 것을 막았습니다.

2011년부터는 미국이, 그리고 이어서 유럽과 일본이 새로운 대응 방향을 찾아냈는데 바로 양적완화라고 불리는 비전통적 통화금융정책입니다. 정부의 장기 채권이나 자산유동화증권을 중앙은행이 사들여서 세계 곳곳의 폭탄에 불이 붙지 않도록 돈의 홍수를 만들어 놓는 겁니다.

이에 따라 세계경제 전체가 '제로 바운드'(선진경제의 명목금리가 0에 근접한 상태)라는 초저금리 상태에 들어갔고, 부채와 디플레이션이 악순환을 이루는 위기에선 벗어났습니다. 하지만 이자율이 떨어져도 투자와 소비는 좀처럼 반응하지 않고 인플레이션도 일어나지 않는 일종의 '유동성 함정'(최근에 일부 학자들은 '안전자산 함정'이라고도 부릅니다)에 빠져 있는 상태가 됐죠. 당장 삶의 위협은 느끼지 않지만, 부채라는 폭탄을 짊어지고 별 희망도 없이 생계를 유지하는 상태라고나 할까요?

이런 상황에서 국제기구의 전망은 번번이 빗나갔습니다. 아래 <그림1>은 국제기구가 2011년부터 계속 연초에는 희망적인 전망을 했다가 연말이 되면 1퍼센트포인트(%p) 내외의 하향 조정을 했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 <그림1> 2011-2014년 IMF 경제전망과 실적치. ⓒKDI

이 얘기는 과거의 모델이 현재의 경제 상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일전에 다소 자세하게 소개해 드린 '지속적 침체'(secular stagnation) 논쟁이 계속되고 있는 거죠. 즉, 현재 완전 고용과 적정 인플레이션율을 보장하는 '자연이자율'은 마이너스 실질 금리일 거라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명목이자율을 더 이상 낮출 방법이 없으니, 이제 인플레이션 타깃을 높여야 한다는 얘기(폴 크루그먼 등)가 나오는 실정이죠.

지속적 침체에 관해선 온갖 사람이 온갖 얘기를 하는 중이지만, 그래도 베이비붐 세대의 노령화와 저출산, 기술혁신의 속도 저하, 공공과 민간부문의 부채과다, 자산과 소득의 불평등을 공통으로 들고 있습니다.

이런 구조적 상황 때문에 또 하향 조정될 가능성이 높지만 일단 국제기구들의 전망은 다음 표와 같습니다.

▲ <표1> 각 기관의 2015년 세계경제 전망 ⓒUN/desa, OECD, IMF

1년 전 이들이 했던 전망에 비하면, 2014년 실적치(4/4분기의 전망치 포함)는 0.3%p 내지 0.4%p 정도 낮아졌습니다. 즉, 내년도 3% 초반대의 경제성장을 거둘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죠. 그것도 유로 지역이나 일본 경제가 디플레이션 상태에 빠져들지 않고, 중국의 성장률이 지금처럼 완만하게 떨어질 경우에 그렇다는 얘깁니다.

하지만 <그림1>에서 보듯이 서서히 성장률이 낮아지고 있는 게 장기 추세라고 봐야 할 겁니다. 이렇게 세계의 총수요 부족이 지속된다면, 석유와 원자재 가격은 떨어질 수밖에 없겠죠. 더구나 미국의 셰일오일이 경제성을 얻어서 석유 수입량보다 더 많이 생산되고 있으니까요. 이에 따라 석유나 원자재 수출국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설상가상으로 우크라이나 사태를 일으켜 국제제재를 받고 있는 러시아는 또다시 금융위기 직전까지 가 있는 상태입니다.

전체적으로 봐서 미국 경제가 상당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건 청신호라고 할 수 있지만, 만일 예고한대로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하반기에 금리를 인상한다면 신흥경제는 2013년의 '버냉키 쇼크'(버냉키 당시 연준 의장이 미국의 양적완화 속도를 늦추겠다고 말하자 세계 금융시장이 요동을 쳤죠)와 같은 사태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물론 현 옐렌 의장은 충분한 예고를 한 뒤에 서서히 금리 인상에 나설 가능성이 높습니다. 미국의 실업률이 떨어진 게 사실이지만, 많은 부분 경제 활동 인구 자체가 줄었고 파트타임이 늘어난 결과니까요.

문제는 총수요 부족이 설비 투자 감소로 이어져서 점차 잠재성장률 자체가 떨어질 거라는 데 있습니다. 즉, 한번 쇼크를 맞아서 GDP의 절대 수준이 떨어진 뒤 다시 과거와 같은 속도로 성장을 하는 게 아니라 저성장이 당연한(new normal) 상태가 될 수 있다는 거죠. 그래서 국제기구와 경제학자들은 입버릇처럼 구조개혁(structural reform)을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노령화와 저출산, 기술혁신 등은 단기의 개혁으로 어떻게 해 볼 수 있는 부분이 아닙니다. 지금은 규제완화를 한다고 해서 실물투자가 늘어나는 상황이 아니고 미국에서도 금융이나 주택 등 자산에 대한 투자가 주로 일어나고 있는 형편이니까요.

물론 부채의 축소나 불평등의 축소 역시 쉬운 일은 아닙니다. 이 정책의 성공 여부는 사회적 역관계와 정치가 결정하니까요. 하지만 거꾸로 바로 그 때문에 단기적으로 문제를 바로잡을 수 있는 분야일 수도 있습니다. 자산가들 입장에서도 현재의 상태가 지속되면 더 이상의 축적이 불가능해질 거라는 걸 깨닫고, 동시에 하층의 힘이 강력해져서 사회적 합의를 이룰 수 있을 때 비로소 사회개혁은 가능해지고 지겨운 침체의 수렁에서도 벗어날 수 있을 겁니다. 어느 나라가 이런 합의, 또는 '혁명적 전환'을 이룰 수 있느냐가 관건인 셈입니다.

즉 세계는 단기 회복 국면으로 보이지만 전체적으로 잠재성장률 자체가 저하하는 장기침체로 향하고 있다고 보는 게 옳을 겁니다. 어느 한 나라나 지역이 총수요를 끌어 올려서 세계전체의 성장을 주도하는 2차 대전 후의 상황은 당분간 보기 어려울 겁니다. 각국이 동시에 자국의 내수를 늘리는 게 유일한 길일 텐데 현재 선진 각국은 자국 통화를 절하해서 발등의 불을 끄는데 전력을 기울이는 상황이라서 앞날이 그리 밝아 보이지 않습니다.

한국경제의 흐름 - 도저(到底)한 낙관과 맹신

12월 23일 정부는 '2015년 경제전망', '경제정책방향', '참고자료'를 발표했습니다. 모두 합치면 무려 205쪽에 이르는, 촘촘한 보고서입니다.

▲ <표2> 한국 경제 전망. ⓒ기획재정부, KDI

2013년 12월 27일의 전망(<표3>)이 3.9%였던 데 비하면, 또 한 번 경제예측이 0.5%p 정도 틀렸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제가 보기엔 4/4분기 실적이 나오면 3.3% 정도로 더 떨어질 겁니다). 매 분기 확인해 드렸지만 이번에도 이런 오차가 발생한 주된 원인은 소비에 대한 '도저한 낙관'입니다.

▲ <표3> 한국 경제 전망. ⓒ기획재정부
2013년에 민간소비가 3.3%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지만 실적치는 1.7% 정도입니다. 여기서만 0.7%p 이상 성장률을 갉아 먹은 거죠(민간소비가 전체 GDP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니까요). 설비투자가 전망치보다 많이 늘어나서 어느 정도 만회했지만, 수출은 기대 이하였습니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의 민간소비에 대한 믿음은 맹신에 가까울 정도입니다. 내년에도 민간소비가 3.0% 늘어날 것이라고 예측했으니까요. 2014년에는 특별히 KDI의 전망을 나란히 표에 집어넣었는데, 과거와 달리 정부와 상당히 다른 견해를 발표했기 때문입니다(상당히 정확한 예측을 하던 국회예산정책처가 이번엔 정부와 별다를 바 없는 전망을 내놨습니다). KDI는 소비증가를 2.3%로 낮춰 잡았고, 그래서 전체 경제성장률도 0.3%p 낮습니다. 보통 한은이나 정부보다 경제를 더 낙관적으로 전망하고, 이를 근거로 긴축정책과 채무관리를 요구했던 KDI로선 이례적인 일입니다.

더구나 KDI는 "2015년 세계경제 전망에는 하방 위험이 큰 것으로 보이며, 이 경우 우리경제의 성장세도 예상을 하회할 가능성"이 있고 "대내적으로도, 확장적 거시경제정책이 적극적으로 추진되지 않거나 충분한 효과를 발휘하지 못할 경우" 3.5%도 어렵다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저는 KDI 쪽이 더 현실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정부는 고용률이 높아져서 실질국민소득이 증가했으므로 민간소비가 증가할 거라는 작년과 똑같은 이유를 댔습니다만 고용률이 높아진 건 50대 이상 연령층과 여성의 저임금 일자리가 늘어난 결과라서 가처분소득은 그리 늘어나지 않았고 더구나 금년 하반기에 폭발적으로 증가한 가계부채까지 고려한다면 민간소비는 1%대 증가에 머물 겁니다.

설비투자 역시 세계경제가 완연한 회복세를 보이지 않는 한 폭발적으로 증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자금의 여유가 있는 대기업들도 금년 초에 계획했던 투자에 비해 4% 정도 축소할 정도니까요. 가동률이 70%를 넘지 못하는 등 당장 유휴설비가 있는 상황에서(현재 설비투자 조정 압력은 0에 가깝습니다),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기는 어려울 텐데 더구나 재벌기업마저도 매출액과 수익성이 떨어지고 있는 상태니까요. 오히려 내년엔 기업의 도산을 걱정해야 할 상황입니다.

미국을 향한 수출이 증가하고 있습니다만 과거와 같은 높은 증가율을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중국의 최종재에 들어가는 중간재 수출이 주춤하고 있기 때문이죠. 중국은 부품 국산화, 산업첨단화라는 강력한 산업정책을 시행하고 있고 실제 통계상으로도 그 효과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유로지역이나 일본에서 수출이 획기적으로 늘어나는 건 기대하기 어렵겠죠. 기타 원자재 생산국가도 어렵습니다.

물론 정부가 나서면 어느 정도 성장률을 끌어올릴 수는 있습니다. 시중에 남아도는 돈을 투자로 끌어들이는 방법은 역시 이들에게 평균 이상의 수익률을 보장하는 겁니다. 정부가 또다시 목숨을 건 곳은 건설입니다. '민간 임주택시장 활성화'와 '민간자본 참여 제고'가 그것입니다. 또 하나는 '핵심분야 구조개혁'인데 '공공부문 효율성 향상'과 '노동유연성, 안정성 제고'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결국 돈을 쏟아 부어서 성장률을 끌어올리는 동시에 노동시장 유연화와 공공부문 개혁, 즉 구조개혁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경기 반등은 그다지 성공하지 못한 채 사회적 갈등만 증폭시킬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이런 정부 정책이 어떤 결과를 낳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2015년 첫 호에 계속하기로 하겠습니다.

별로 신통치 않은 소식만 전해 드려서 죄송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만, 그래도 2014년 한해 마무리 잘 하시고 우리 경제와 달리 내실 있는 2015년을 설계하시기 바랍니다.

<주간 프레시안 뷰>는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만의 차별화된 고급 칼럼지입니다. <프레시안 뷰>는 한 주간의 이슈를 정치/경제/국제/생태/세월호 등으로 나눠 각 분야 전문 필진들의 칼럼을 담고 있습니다.

정치는 임경구 프레시안 기자 및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가 번갈아 담당하며, 경제는 정태인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 국제는 박인규 프레시안 편집인이 맡고 있습니다. 생태와 세월호는 각각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과 김익한 명지대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 원장이 격주로 진행합니다.

이 중 매주 한두 편의 칼럼을 공개하고자 합니다.

※ 창간 이후 조합원 및 후원회원 '프레시앙'만이 열람 가능했던 <주간 프레시안 뷰>는 앞으로 최신호를 제외한 각 호를 일반 독자도 내려받을 수 있습니다.(☞ <주간 프레시안 뷰> 내려받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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