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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복 입은 긴 머리 소녀 보면 숨도 못 쉬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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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교복 입은 긴 머리 소녀 보면 숨도 못 쉬겠어요" [고잔동에서 온 편지<3>] 단원고 2학년 2반 김수정 학생 이야기
"애기야…"

키도 늘씬, 어엿한 숙녀 얼굴을 한 수정이를, 엄마는 "우리 애기"라고 부릅니다.

엄마 눈엔 애기였지만, 수정이는 참 어른스러운 소녀였습니다. 대학 들어가는 언니에게 "인맥 관리를 잘해야 한다"고 훈계를 늘어놓을 정도로요.

▲수정이네 방. ⓒ프레시안(서어리)
▲수정이가 1학년 때 "카메라 스태프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적은 자기소개서. ⓒ프레시안(서어리)

학교 좋아하던 '친구 부자' 수정이

진로도 일찌감치 정했습니다. 방송 일을 하고 싶어 했습니다. 중학교 때도 방송반이었던 수정이는 고등학교 때도 어김없이 방송반에 들어갔습니다. 수정이가 쓰던 노트북에는 수정이가 밤을 새워 편집한 영상들이 빼곡합니다.

수정이는 어렸을 때부터 '알아서 척척척, 스스로 어린이'였습니다. 수정이는 학원 한 번 간 적이 없었습니다. 부모님이 공부하라는 잔소리를 하지 않아도 야무지게 제 할 일을 해냈습니다.

"친구들이 시험 보고 나면 우리 애 점수를 제일 궁금해했대요. 학원 안 다니는데도 공부 잘하니까요. 언젠가는 애들이 진짜 학원 안 다니나 뒷조사도 했나보더라고요."

공부하랴, 방송반 활동하랴, 수정이는 언제나 바빴습니다. 수정이 방은 늘 새벽까지 불이 환했습니다. 부모님은 안쓰러웠지만, 수정이는 바쁜 생활을 그저 즐겼습니다.

수정이는 항상 입버릇처럼 학교 가는 게 즐겁다고 말했습니다. 공부하는 것도, 방송부 일 하는 것도 좋아했지만, 수정이는 무엇보다 친구들 만나는 걸 좋아했습니다. 수정이 방에는 친구들한테서 받은 선물상자가 가득합니다. 인맥을 중요하게 여기던 수정이답게, 장례식 때 전국 각지에서 친구들이 찾아와 부모님은 당황스러울 정도였습니다.

"나중에 얘기를 들어보니, 친구들이며 선후배며 수정이를 좋아하고 잘 따랐던 것 같아요. 수정이가 길에 쓰레기 버리거나 무단횡단하는 걸 안 좋아했는데, 애기가 갔는데도 선후배들이 '수정이가 보니까 쓰레기 함부로 버리지 말자'라고 하더라고요."

▲수정이가 생일에 친구들한테서 받은 선물 상자. 상자 겉면에 친구들의 생일 축하 메시지가 적혀 있다. ⓒ프레시안(서어리)

'만능 소녀' 수정이는 집에서도 만점짜리 딸이었습니다. 늘 부모님을 먼저 생각하고, 용돈 타령, 반찬 타령 한 번 해본 적 없습니다.

"수학여행 가던 날도 혼자 6시에 일어나서, '엄마 내가 밥 다 먹고 목욕도 했으니까 엄마 더 자고 천천히 일어나'라고 하더라고요."

수정이는 일 나가는 엄마에게 늘 미안해했습니다.

"우리 애기가 저한테 대학 졸업할 때까지 조금만 참으라고 했어요. 대학 졸업하면 엄마 용돈 많이 주겠다고요. 참 기특한 딸이었어요."

▲수정이 어렸을 때부터 모아 놓은 증명 사진. ⓒ프레시안(서어리)

"헬기 오고 있다고 했는데…"

42번. 수정이의 마지막 번호입니다. 수정이가 몇 반인지 몰라 사고 뒤 온 학교 책상을 다 뒤졌던 부모님은 이 번호만큼은 압니다. 수학여행 간 딸이 싸늘하게 식은 채로 엄마, 아빠 품에 돌아온 순서입니다. 지우고 싶은, 그러나 평생 잊을 수 없는 번호입니다.

수정이 어머니는 "우리 애기는 몇 번째인지 말도 못 한다"고 합니다. 수정이는 비교적 일찍 나와서, 다른 가족들한테 미안해서입니다. 수정이를 가슴에 묻은 부모님은, 사고 1년이 다 되어가도록 자식을 가슴에도 묻을 수 없는 실종자 가족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미어집니다.

4월 20일. 엄마는 수정이가 돌아온 그 날의 마지막 모습을 기억합니다.

"검안실 대기실 소파에 앉아있는데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느라 문이 열리니까 그 사이로 고개가 딱 보이는 거예요. '우리 애기구나' 하고 바로 알았어요."

▲수정이가 부모님께 보낸 마지막 문자. ⓒ프레시안(서어리)

모든 게 마지막이었습니다. 아빠는 수정이가 보낸 마지막 문자를 '잠금' 상태로 바꿨습니다. 마지막 통화는 16일 아침, 배가 기울어지던 시각이었습니다.

"구명조끼 입고 있다고, 밖에 나와 있었던 것 같았어요. 헬기 소리도 들렸어요. 그런데 '들어가서 가만히 있으라'고 했으니 들어간 모양이에요. 그 이후론 아예 전화 통화가 안 됐어요. 법정에서 들어보니, 증인들이 배 안에서도 전화 잘만 터진다고, 인터넷도 잘 돼서 영화도 다운받는다는데 왜 통신이 먹통이었을까요? 전파 방해가 있던 건 아닌지 의심돼요."

엄마, 아빠는 계속 '보내지 말걸'이라고 말합니다. 수학여행 가기 며칠 전 수정이는 감기에 걸렸습니다. 걱정스러웠지만, 한껏 기대감에 부푼 딸에게 '가지 마라' 할 순 없었습니다. "그래도 보내지 말걸 그랬어요."

▲수정이 납골함에 넣기 위해 수정이가 세상을 떠난 뒤 뒤늦게 찍은 가족사진. 왼쪽 수정이는 합성한 것. ⓒ프레시안(서어리)

"가족사진 한 장 찍어둘걸 그랬어요"

엄마 아빠는 후회되는 게 한둘이 아닙니다.

"마지막 인사도 제대로 못 했어요. 팽목항까지 갔는데도 살려줄 수도 없고, 물만 바라보고 울기만 하고…. 잘 가라고, 엄마 걱정하지 말라고 해야 하는데. 우리 애기가 엄마 걱정 많이 했거든요. 이렇게 갈 줄 모르고 엄마가 일하느라 잘해준 것도 없는데."

수정이를 보내고 보니, 납골함에 넣을 가족사진도 없었습니다. 수정이가 뭍으로 나온 지 일주일 되던 날, 네 식구는 사진관에 가서 수정이 자리를 비워두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넷이서 억지로, 정말 억지로 웃으면서 찍었어요. 가족사진 한 장 찍어둘걸. 다음에 찍자고 미루고 미루고 하다가 이렇게 될 줄 몰랐네요."

수정이는 나중에 합성했습니다. 그나마도 수정이 얼굴 나온 사진이 별로 없어 합성할 때 애를 먹었습니다. 수정이는 얼굴이 정면으로 나온 사진이 별로 없습니다. 그 나잇대 아이들이 으레 그렇듯, 예쁜 얼굴을 손가락 '브이'로 가리기 바빴습니다.

"사진 찍히는 거 싫어도 똑바로 찍으라고 할걸. 사진이라도 보고 싶은데 죄다 얼굴을 가리고 찍었어 왜…."

▲수정이가 동아리 친구들과 찍은 사진. 손가락으로 '브이'를 그리는 아이가 수정이. ⓒ프레시안(서어리)

"숨쉴 수가 없어요"

엄마, 아빠는 길거리를 다니는 게 힘겹다고 말합니다. 버스에서, 시장에서 오가는 학생들을 볼 때마다, 특히 교복을 입고 긴 생머리를 휘날리는 여학생들을 볼 때마다 울컥거리는 감정을 참을 수 없습니다. 분향소 가는 일 아니면 통 집을 나설 수 없습니다.

"숨쉬기도 힘들어요. 나는 남한테 악하게 안 했는데 왜 나한테 그런 일이 일어났나 계속 생각해요. 내가 죄를 지었나. 왜 내 자식이 그렇게 됐을까…."

마음의 병은 육체의 병으로 이어졌습니다. 아빠는 작년 10월 이후 급격하게 울화가 늘었습니다. 엄마는 시력이 나빠져 물건이 두세 개로 보이는 통에 안경을 새로 맞췄습니다. 또 혈압이 올라 아침마다 혈압을 재야 합니다. 울면 더 아픈 걸 알지만, 수정이 생각만 하면 눈물로 저절로 흘러내립니다.

"보고도 싶고, 만지고도 싶어. 수정아, 우리 애기야. 어디 간 거야"

수정이의 교복 위로, 수정이의 물건이 담긴 종이상자 위로, 엄마의 눈물이 점점이 자국을 남깁니다.

▲수정이 옷이 담긴 종이상자 위에 얼굴을 묻고 우는 수정이 어머니. ⓒ프레시안(서어리)

▲거실벽면에 걸려 있는 수정이 사진. ⓒ프레시안(서어리)

▲수정이 동아리 명함. 수정이가 수학여행을 가고 난 뒤에야 완성돼 집에 배달됐다. ⓒ프레시안(서어리)
▲수정이 학교 책상. ⓒ프레시안(최형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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