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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4월, 이런 나라에서 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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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4월, 이런 나라에서 살 수 없다" [현장] 세월호 특별법 정부 시행령안 반대 416시간 농성

오후에 내린 비로 광장 아스팔트 바닥에 빗물이 괴었다. 다 멎은 줄 알았던 비는 저녁 8시가 지나자 얄궂게도 다시 내리기 시작했다. 우산을 펴 겨우 촛불을 살렸다. 세월호 유가족들의 '416시간 농성' 이틀째인 31일 밤엔 봄비가 내렸다.

'4월 1일 비오다 갬'. 서울 광화문 광장 인근 신문사 전광판에 '내일의 날씨'가 떴다. 봄비가 멎는 다음날이면 4월이다. 잔인한 4월을 하루 앞둔 유가족들의 심정은 착잡하기만 하다.

"내일이 벌써 4월이라네."

오후 7시 촛불집회를 준비하느라 분주한 손을 멈추고 '지성이 아빠' 문종필 씨가 전광판을 올려다봤다.

이날 집회 사회를 맡은 세월호 국민대책위원회 공동운영위원장 최훈근 목사도 "오늘이 지나면 4월이 된다"고 했다. 그렇지 않아도 쌀쌀하게 가라앉은 공기가 더 무거워졌다.

▲30일 공무집행 방해죄로 경찰에 연행됐다가 풀려나온 동수 아빠 정성욱 씨, 성호 아빠 최경덕 씨. ⓒ프레시안(서어리)

"짱돌을 들고 간 것도 아닌데 왜 길을 막나"

광화문 광장에 모인 100여 명의 시민들이 서로 초에 불을 옮겼다. 100여 개의 초가 다 환해지자, '동수 아빠' 정성욱 씨, '성호 아빠' 최경덕 씨가 시민들 앞에 섰다. 두 아버지는 전날 기자회견 뒤 청와대로 행진하다 경찰과 실랑이를 벌이던 중 공무집행 방해죄로 경찰에 연행돼 유치장에서 하루를 지내고 풀려나왔다. 경찰이 세월호 유가족을 현행범으로 체포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동수 아빠는 "저희가 청운동으로 간 건 시행령뿐 아니라 인양 문제를 이야기하고 싶어서 간 것"이라며, "일반 시민은 갈 수 있는 길을 유가족이 가려 하면 (경찰이) 방해를 해 어쩔 수 없이 끌려갔지만, 저는 떳떳하다"고 했다.

전날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는 과정에서 다리를 다친 성호 아빠는 절뚝거리는 걸음으로 나왔다.

"저희더러 공무집행 방해라고 합니다. 그래서 화를 냈습니다. 그게 정당한 공무집행입니까. 청와대 민원실에 민원 넣으러 걸어서 가겠다는데, 짱돌을 들고 간 것도 아닌데… 막는 이유를 물어도 누구도 답하지 않습니다. 작년부터 계속 그랬습니다. 저는 이런 나라에서 살 수 없습니다. 제가 이런 나라에서 계속 살아야 하는지 이유를 묻고 싶습니다. 저는 내일도 가고 모레도 갈 겁니다."

최 목사는 유가족을 대하는 경찰의 무자비한 태도를 규탄했다. 전날 청와대 인근 푸르메 재단 건물 앞에서 노숙 농성을 하던 유가족들에게 경찰은 침낭, 깔개 반입조차 허가하지 않은 것. "혹여 반입을 시도할까 봐 건물 안까지 경찰이 난입해 모든 통로를 차단하고 심지어 화장실조차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행태를 보였다"는 것이 최 목사의 설명이다.

그는 "지난해 유가족들이 특별법을 요구하며 청와대로 향했던 그 날과 전혀 다를 것이 없는, 오히려 그때보다 더한 정부의 태도를 보면서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시민들 손에 들린 촛불. ⓒ프레시안(서어리)

"저희는 자식을 잃었지만…"

또 다른 유가족인 '세희 아빠' 임종호 씨는 "다른 때는 떨리지 않았는데, 분노가 치밀어 올라 떨린다"고 했다. 세희 아빠는 지난 27일 해양수산부가 입법예고한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안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관련 기사 : "세월호 특조위 무력화 철회"…유가족 416시간 농성 돌입, 세월호 유족들 "박근혜 '눈물의 약속'은 어디로?")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특별법이 통과됐습니다. 그런데 지금 (정부) 시행령은 특별법 위에 있는 시행령이 됐습니다. 좋습니다. 저희들은 더 이상 잃을 게 없습니다. 자식을 잃었는데 뭐가 더 잃을 게 있단 말입니까. 하지만 국민은 아직 행복한 가정을 지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대한민국이 안전한 나라가 될 때까지 저희와 함께해줄 것을 부탁드립니다."

집회가 끝나고, 유가족들과 촛불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함께 이순신 동상을 지나 광화문 북단으로 향했다. 일부 유가족들이 '독립성과 중립성은 특별조사위의 생명이다', '정부 시행령 폐기하라'는 피켓을 들고 찬 바닥에 앉아 있었다. 자리한 유가족은 고작 십여 명에 불과했지만, 그들 뒤로 수백 명의 경찰이 줄지어 서 있었다. 세월호 유가족들의 풍찬노숙이 또 다시 시작됐다.

▲광화문 광장에서 노숙하는 유가족과 그 뒤에서 유가족들을 막고 선 경찰들. ⓒ프레시안(서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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