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한복판에서 벌어진 술래잡기였다. 광화문 분향소로 가겠다는 시민과, 이를 막는 경찰의 대치가 지루하게 이어졌다. 길이 막혀 행로를 틀면, 다시 그 길을 차벽과 경찰 버스가 막아섰다. 곳곳에서 충돌이 벌어졌다. 세월호 참사 1주기인 16일, 희생자 304명의 기일에 벌어진 일들이었다.
시민 6만5000여 명이 운집한 추모제가 끝난 오후 9시20분. 참가자들은 곧바로 서울광장에서 광화문 방향으로 도로 행진을 시작했다. 광화문광장에 마련된 세월호 희생자 분향소에 헌화를 하기 위해서였다. 손에는 촛불 대신 하얀색 국화꽃을 한 송이 씩 들었다.
그러나 이들이 곧바로 마주한 것은 2층 건물 높이의 견고한 차벽이었다. 행렬은 서울광장으로부터 200미터도 나아가지 못했다. 10차선 태평로를 다 막아선 거대한 차벽이 청계광장 교차로에 세워졌다. "집회 참가자 개별적으로 모두 채증하겠다"는 경찰의 경고대로, 차벽 위 채증 인원만 30여 명에 달했다.
'예은 아빠' 유경근 세월호 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은 "오늘이 무슨 날인가. 4월16일, 아이들의 1주기다. 침몰하는 배에서 구해주지 못한 게 미안해 꽃 한 송이 바치고자 가는 길을 경찰은 왜 또 막아서는가"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그러면서 "정부는 1주기인 오늘에도 여전히 '가만히 있으라'고 하지만, 이제 절대 가만히 있을 수 없다"고 했다.
유족들을 응원하기 위해 집회 현장을 찾은 가수 김장훈 씨도 마이크를 잡고 "시민들의 안전을 위한다면 경찰이 물러나야 한다"며 "여기서 생긴 불상사는 정부 책임"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가는 곳마다 차벽 설치…꽉 막힌 '분향소 가는 길'
차벽 트럭 10대를 동원한 경찰의 '철통 방어'에 참가자들은 청계천으로 방향을 틀어 종로 쪽으로 향했지만, 가는 곳마다 막아선 경찰에 여러 차례 충돌이 빚어졌다. 경찰은 청계천에서 인도로 올라가는 계단조차 막아섰다. 틈새 없는 방어였다. 광화문으로 가는 길은 모두 통제됐다.
세월호 참사 관련 집회 중 최대 규모였다. 종로3가, 종로2가를 따라 시민들의 행렬이 끝없이 이어졌다. 도로는 마비됐다.
하지만 분향소까지 가는 길은 멀었다. 오후 11시께, 종로2가 YMCA 건물 앞에서 전경버스 3대로 시민들을 막아선 경찰은 캡사이신 최루액을 살포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몸 싸움이 일었고, 집회 참가자 10명이 연행됐다. 분노한 유족 몇 명이 전경 버스 위에 올라 더 많은 시민들의 참여를 호소했다.
다시 거리에 고립된 세월호 유족…'분노'만 남았던 1주기
비슷한 시각, 세월호 유족 70여 명은 청와대를 향해 행진을 시도했다. 하지만 여지없이 경찰이 막아섰다. 유족들은 오후 11시께 광화문 앞에서 경찰에 둘러싸여 한 걸음도 더 나아가지 못했고, 해산하지 않을 시 전원 검거하겠다는 경고 방송에 스크럼을 짜고 연좌 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경찰은 광화문 현판 아래, 유족들이 보이지 않도록 버스를 동원해 이곳을 막았다. 이곳으로 향하는 집회 참가자들의 행렬도 모두 차단했다. 유족들은 또 다시 대규모 집회가 열리는 오는 18일까지 이곳에서 노숙 농성을 이어갈 계획이다. 고립된 도시의 섬에서, 아이들의 1주기가 지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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