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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덕 "난 '네이버'만 써…미국 쳐다만 봐도 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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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고승덕 "난 '네이버'만 써…미국 쳐다만 봐도 괴롭다" [현장] 조희연 교육감 국민참여재판 방청기 ②
익숙한 법정에서 그는 불안해보였다. 하긴, '고시 삼관왕'도 증인 자리는 낯설었을 게다. 그래서였을까. 말실수가 잦았다.

서울 서초구 중앙지방법원 417호 법정.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의 운명을 결정짓는 국민참여재판이 열리는 곳이다. 재판 이틀째인 지난 21일 저녁, 고승덕 변호사가 법정에 섰다. 검찰 측 증인 자격이다.

고 변호사는 지난해 6월 지방 선거에서 서울시 교육감 후보로 출마했었다. 선거 운동 초기엔 지지율 1위를 기록했으나, 가족 문제 등이 불거지면서 지지율이 급락했다. 당시 제기된 의혹 가운데 하나인 '미국 영주권자' 논란이 결국 재판으로 이어졌다.

"미국 쪽으로 쳐다만 봐도 괴롭다"

검사가 묻자 답변이 유창했다.

"전처가 갑자기 아이들을 데리고 미국으로 갔다. 나는 아이들이 다닐 학교 이름도 몰랐다. 미국 쪽으로 쳐다만 봐도 괴롭다. 트라우마가 있다."

미국 영주권 관련 답변의 일부다. '교육감 선거 당시 제기된 미국 영주권 논란이 마음의 상처를 건드렸다'라는 취지다.

"(진보 성향 후보에게) '당신이 북한에 가지 않았다'라는 걸, 선거 열흘 전에 입증하라고 하면 어떻겠느냐"라고도 했다. 조희연 후보 측이 제기한 미국 영주권자 의혹을, 진보 후보에게 흔히 제기되는 종북 논란에 빗댄 것이다.

"난 네이버만 쓴다"

'고시 삼관왕'의 한계였을까. 딱 여기까지였다. 예상 밖 상황에선 확 무너졌다.

선거 당시 조희연 후보 측은 고승덕 후보에게 보낸 공개 서신에서 '데이비드 고'라는 영문 이름을 거론했다. 이에 대해 고승덕 변호사는 조희연 교육감 측이 고 변호사의 자서전을 읽어봤다는 증거라고 했다. 고 변호사는 '데이비드 고'라는 이름을 지금은 안 쓴다고 했다. 인터넷 검색 등을 통해선 찾을 수 없으며, 오로지 자서전에만 실려 있다고도 했다. 그리고 자서전에는 고 변호사가 미국 영주권을 신청하지 않았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고 했다. '조 교육감 측이 자서전을 읽었으므로, 이런 내용을 모를 리 없다. 따라서 조 교육감 측은 고 변호사가 미국 영주권자가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선거에 이길 목적으로 허위 사실을 유포했다'라는 논리다.

그런데 실제로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결과가 달랐다. 변호인이 조인스닷컴(Joins.com)에서 '고승덕'을 검색한 결과를 화면에 띄웠다. '승덕 데이비드 고'라는 영문 이름이 떴다.

고 변호사의 답변.

"나는 네이버만 쓴다."

재판을 방청하던 이들 몇몇이 실소를 터뜨렸다. 그 뒤론 "기억이 안 난다" "밝힐 수 없다" 등의 답변이 잦았다.

"허경영은 알아도 최경영은 모른다"

이날 재판은 오전 10시부터 밤 10시 50분까지 진행됐다. 오전에는 최경영 <뉴스타파> 기자가 증인으로 출석했다. 미국 영주권자 의혹의 최초 제기자다.

최경영 기자는 KBS 재직 시절 취재 과정에서 고 변호사와 통화한 기억이 있다고 했다. 이명박 정부 초기, 금융계 인사와 관련한 취재 중에 이뤄진 통화였으므로 2008년 봄으로 추정된다. 당시 고 변호사는 국회의원 공천 문제로 고민 중이었고, "(공천 못 받으면) 미국 가서 살면 된다"라고 말했다는 게다. 이 기억을 기초로, 최 기자는 미국 영주권자 의혹에 대한 질문을 트위터에 남겼다. 이 메시지가 미국 영주권자 의혹의 발단이 됐다.

그리고 이날 밤, 최 기자와 고 변호사의 대질심문이 진행됐다. 법정이 확 달아올랐다. 둘 중 한 명은 거짓말을 하는 셈이다. 고 변호사는 최 기자와 통화한 사실 자체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자신의 휴대폰에 저장된 전화번호가 5000개 이상이며, 단 한번이라도 연락한 기자는 반드시 번호를 저장하는데, 최 기자의 번호는 없다는 게다. "허경영은 알아도 최경영은 모른다"라는 말도 했다.

한국경제TV 창립 둘러싼 인연

최경영 기자는 한국경제TV를 둘러싼 고 변호사와의 인연을 소개했다. 고 변호사는 1999년 한국경제TV 창립 당시 주주였다. 개인 투자자 가운데서는 최대 주주였다. 당시 고 변호사는 증권 전문가로 이름을 날렸고, 방송 출연도 잦았다. 이 과정에서 친분이 생긴 KBS PD가 한국경제TV 창립에 주도적으로 참가했다. 그래서 고 변호사도 지분 투자를 했다. 돈을 꽤 벌었다. 최 기자는 "고 변호사의 주식 투자 가운데 가장 성공적인 경우일 것"이라고 했다. 최 기자는 당시 고 변호사가 한국경제TV '얼굴마담'이었다고도 했다.

최 기자 역시 한국경제TV 주주다. 고 변호사와 마찬가지로, KBS PD와의 인연 때문에 투자했다. 당시 KBS 직원 가운데 한국경제TV에 투자한 이들이 많았다. 최 기자는 한국경제TV 소액 주주 협의회 간사를 지냈다. 한국경제TV 주주 모임, 최 기자의 직장 선배였던 KBS PD와의 인연 등 고 변호사와 최 기자를 잇는 고리가 있다. 최 기자는 고 변호사와 통화할 당시 이런 인연을 언급했으며 고 변호사가 무척 반가워했다고 말했다.

반면, 고 변호사는 한국경제TV와 관련한 모임에 나간 기억이 없다고 했다. 주식을 샀을 뿐, 관계자들과 인간관계는 거의 없었다는 설명이다. 또 2008년 당시엔 기자들의 전화를 피하고 있었고, 특히 금융 관련 취재에 응할 상황은 아니었다고 했다. 주식 전문가가 아닌 정치인 역할에 전념하기로 결심한 상태였다는 게다. 정치를 하겠다면서 기자들의 전화를 피한 이유에 대한 답변은 두루뭉술했다. 전략 공천 문제를 놓고, 김덕룡 전 의원과 충돌하면 안 되기 때문이라는 취지였다.

고승덕 딸 페이스북 글이 '선거용 기획'?

대질 심문 과정에서 감정이 격해진 탓인지, 고 변호사는 몇 차례 막말을 해서 주의를 받았다. 최 기자를 '시정잡배'에 빗댄 발언이 대표적이다. 기자가 왜 기사가 아닌 트위터로 의혹을 제기하느냐며 한 말이다. 또 근거를 밝히지 않은 채 음모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지난해 선거 당시 화제가 된 조 교육감 아들의 편지, 고 변호사 딸의 페이스북 글 등이 일종의 '기획'에 따라 나왔다는 게다.

고 변호사는 선거가 끝나고 한참 지나서 조 교육감 캠프 관계자로부터 들었다고만 했다. 누구에게 언제 들었는지에 대해선 입을 다물었다. 이런 발언에 대해 재판장은 "(이런 기획에 따라 사건을 배치하는 게) 시기적으로 가능하겠느냐"라고 물었다. 구체적인 날짜를 꼽으며 따지는 재판장의 질문에, 고 변호사는 답이 없었다. 고 변호사 역시 근거가 불분명한 의혹을 공개적으로 제기한 셈이다.

그는 또 최 기자의 트위터 메시지가 활발하게 리트윗 된 게 조희연 캠프 측의 조직적 움직임 때문이라는 의혹도 제기했다. 하지만 근거는 없었다. "선거 때면 후보들이 'SNS 부대'를 운용하지 않느냐"라고만 했다. 이는 거꾸로 고승덕 캠프가 온라인 여론 조작을 위한 조직을 가동했다는 의혹으로 이어질 수 있다. 자기 발을 찍는 발언이다.

한편, 고 변호사는 이날 자신이 기자들의 전화를 피했다는 말을 자주 했다. 고 변호사는 지난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이명박 후보 측에 합류했었다. 당시 그는 이 후보에게 제기된 BBK 비리 의혹과 관련해 '방패막이' 역할을 담당했다. 그런데 고 변호사는 2007년 당시조차 기자들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고 했다. 전화가 오면 대부분 끊어버렸다는 게다. 당시 그의 역할을 고려하면, 납득하기 힘든 발언이다. 언론이 제기하는 온갖 의혹에 대해, 법률 및 주식 전문가 입장에서 해명하는 게 당시 그가 맡은 역할이었다. 이날 법정에서 그는 "말실수를 하면 안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는데, 사실 여부는 곧 가려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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