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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MB 정부에 '의료 민영화' 지침서 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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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삼성, MB 정부에 '의료 민영화' 지침서 줬나? 의료 민영화 저지 범국본, 삼성경제연구소 보고서 공개
지난 3월 25일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이 '삼성전자 회장'이라는 타이틀로 경영에 공식 복귀했다. '삼성 특검' 재판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지 8개월, 지난해 연말 단독 사면된 지 불과 3개월만이었다. 세계적인 경제 불황과 급변하는 산업구조 속에서 삼성의 위기를 헤쳐나가기 위한 '결단'이라고 했다.

이건희의 신수종 사업과 삼성硏 보고서…"의료 민영화 싸움, 이제 2라운드"

한 언론사 편집인이 "한 편의 시"라 극찬했던 이건희 회장의 복귀 메시지, "지금이 진짜 위기다. 앞만 보고 가자"의 구체적인 청사진은 두 달 뒤인 5월에 발표됐다. 2020년까지 23조3000억 원을 투자해 태양전지, 자동차용 전지, 발광다이오드(LED), 바이오 제약, 의료기기 등 친환경 및 건강증진 사업을 신수종 사업으로 육성하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의료 민영화 저지 및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위한 범국민 운동본부(범국본)가 6일 서울 정동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공개한 삼성경제연구소의 보고서는 조금 다른 면을 보여준다.

지난 5월 발표된 삼성의 청사진은 단지 특정 기업의 '새로운 먹을거리'를 찾기 위한 시도 차원이 아니라는 것이다. 보다 긴 흐름, 즉 지난 정부에서 시동이 걸린 '의료 민영화' 흐름이 보다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낸 것으로 봐야 한다는 이야기다. 범국본 측은 의료 민영화를 둘러싼 싸움이 '2라운드'에 접어들었다고 밝혔다.

범국본이 민주노동당 곽정숙 의원실로부터 제공받은 보고서는 총 600쪽 분량이며, 삼성경제연구소가 지난해 11월 보건복지가족부로부터 용역을 의뢰받아 지난달 완성한 것이다. 지난 7월 '제8회 HT 포럼'에서 이 보고서 내용의 일부가 발표된 바 있다.

▲ 의료 민영화 저지 및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위한 범국민운동본부가 6일 서울 정동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삼성경제연구소가 보건복지부의 용역을 받아 연구한 '의료산업 선진화 방안' 보고서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프레시안(김봉규)

인구 고령화, 의료 수요 폭증…재벌이 'HT'에 눈독 들인 배경

'미래복지사회 실현을 위한 보건의료산업 선진화 방안'이라는 제목의 이 보고서에서 눈에 띄는 단어는 'HT(Health Technology)'다. 보고서는 HT를 "건강증진 또는 질병의 예방·치료를 위한 제반 기술"이라고 정의했다. 기존 의료기기 및 제약 산업은 흔히 'BT(Bio Technology)' 영역에서 주로 다뤄졌다. 그런데 굳이 'HT'라는 개념을 제시한 것은 건강보험·의료정보시스템·원격진료 등까지 아우르려는 의도다.

보고서가 특히 강조하는 내용은 건강관리서비스의 시장화와 원격의료의 도입이다. 한국이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면서, 의료 수요가 폭증한 게 그 배경이다. 이런 수요를 공공 부문이 아닌 기업이 감당하도록 하겠다는 것. 인구 고령화로 병에 시달리는 사람이 늘어난다는 점을 이윤 창출의 기회로 삼는다는 이야기다. 보고서는 예방 및 재활의학·건강검진 등 정부가 제공하던 서비스를 민간 영역으로 넘기고, IT(정보기술)를 기반으로 원격 진료를 도입해 환자의 질병 정보를 데이터베이스화 하자고 제안했다.

보고서는 이를 바탕으로 정부가 HT산업 활성화를 위해 규제를 완화하고 정부 지원을 늘려야 한다고 제안했다. 연구중심병원을 키우기 위해 보건의료기술진흥법을 개정하고 병역특례와 같은 인력 유인책을 도입하는 한편, 병원의 연구투자에 건강보험 재정을 지원하고 세금을 감면하는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게 주된 내용이다.

MB정부와 삼성의 합작품

그런데 이런 주장이 낯설지가 않다. 현재 국회에 상정돼 있는 건강관리서비스법과 의료법 개정안의 골자가 건강관리서비스 시장화와 원격진료의 전면 허용이다. 삼성경제연구소의 보고서와 내용이 같다. 이게 과연 '우연'일까. 그렇지 않다는 게 범국본의 주장이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은 "영리병원 도입을 내세운 의료 민영화 계획이 2008년 촛불 시위 당시 논란이 되면서 가로막혔고 이후 부정적인 여론을 우회하기 위해 택한 게 건강관리서비스와 원격의료"라며 "결과적으로 삼성과 정부는 현재 치료를 제외한 모든 의료분야에 기업이 참여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와 삼성의 합작품이 이 보고서라는 이야기다.

의료 민영화 최대 수혜자는 삼성…병원과 보험사, IT기업 거느린 유일한 재벌

▲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삼성은 의료 민영화의 최대 수혜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뉴시스
보고서 내용대로 의료 민영화가 추진된다면 최대 수혜자는 삼성이 될 가능성이 높다. 건강관리서비스와 원격진료는 모두 삼성의 '주특기'를 발휘할 수 있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거대 IT기업과 보험사, 병원을 동시에 갖고 있는 기업은 삼성뿐이다. 삼성의료원의 의료인력과 삼성생명의 가입자 정보 및 금융 서비스, 삼성전자 및 삼성SDS의 기술력을 한꺼번에 활용해 원격진료 시스템을 개발할 수 있다.

게다가 삼성은 신수종 사업 투자를 선언하면서 복제약 사업 및 신약 개발, U헬스케어 분야 등에 힘을 쏟기로 했다. 삼성이 이른바 'HT' 영역 전체를 망라하는 독과점 기업이 될 가능성은 충분하다.

"세계 최고 수준 의료비 지출, 삼성엔 신규 사업 기회"

이런 시도가 국민의 건강권과 인권을 해치지 않는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재벌 계열 보험사가 보유한 건강 관련 정보가 잘못 사용될 경우, 인권 침해 가능성이 크다. 또 가난한 환자를 위한다는 정부의 설명과 달리, 의료 공공성은 대폭 후퇴할 가능성이 크다. 의료비 지출 증가가 필연적이기 때문이다.

김창보 범국본 정책기획위원장은 "보고서를 보면 '세계 최고수준의 국내 의료지출 증가는 성장동력화 기회'라고 쓰여 있는데, 노인인구 급증에 따른 사회적 부담을 어떻게 대처해야하는가가 과제로 제기되는 마당에 성장의 기회로만 보는 상황인식이 기가 막히다"라고 말했다. 지금도 부담스러운 의료비 지출을 돈벌이 기회로만 여긴다는 게다.

김 위원장은 "현재의 의료비 증가 흐름을 이어가겠다는 뉘앙스의 내용대로라면 국민들의 의료비 부담은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의료비 지출, 더 늘어난다"

우 정책실장은 "원격의료의 경우, 학계에서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았다는 의견이 우세하다"며 "한국이 가난한 환자를 대상으로 최초로 도입하겠다는 게 현재 의료법 개정안"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는 건강관리서비스가 시장화 되면 민간 보험회사가 부대사업으로 진행할 수 있는 '돈벌이 포인트'를 원격진료로 잡겠다는 것"이라며 "이런 보고서를 채택하는 정부야말로 자신들이 추진하는 의료민영화가 국민 건강이 아닌 재벌의 이윤을 위해 지배된다는 걸 명확히 보여 준다"고 덧붙였다.

임준 가천의대 교수는 "의료기술이 발전하면 의료비 지출이 줄어든다는 정부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라고 말했다. "기술 개발에 따른 투자비용 때문에 의료비가 오히려 증가하는 현상이 선진국에서 나타났고 이 때문에 다른 국가들은 HT가 아닌 의료기술평가(HTA) 부문에 더 많은 재원을 쏟고 있다"라는 설명이다.

임 교수는 또 "주치의 제도가 없는 한국에서 원격진료가 도입되면 환자와 의사의 관계가 지속적으로 유지되기 보다는 코드화된 임상정보만으로 진단하게 될 것"이라며 "의료기술분야에서 R&D전략은 병원의 수익률 증가가 아닌 국민 건강 증진을 전제로 추진되어야 하는데 이 보고서는 이러한 특성을 무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왜 공개입찰 아닌 수의계약인가?"…"정부와 삼성 '짜맞추기' 아니고서야…"

보고서가 공개입찰이 아닌 수의계약 형식으로 이뤄진 것도 정부와 삼성의 '짜맞추기'가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김 위원장은 "복지부는 사업관리규정에 따라 최고의 연구팀을 구성해 정책적으로 추진할 사업의 경우 장관이 수의계약을 체결할 수 있다는 입장"이라며 "그렇다면 KDI나 보건산업진흥원, 보건산업연구원 등의 기관은 뭐가 되는 건가?"라고 비꼬았다.

이 보고서를 근거로, 범국본은 의료 민영화 반대 싸움의 대상을 '삼성과 이명박 정부'로 지목하고 건강관리서비스법 및 의료법 개정안 저지 운동에 나설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건강보험 및 의료체계 개혁을 위한 국민건강보험법 등 대안입법을 추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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