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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더기' 선거법 우려…민주-한국 '적대적 공생'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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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누더기' 선거법 우려…민주-한국 '적대적 공생' 부활? 민주당 후퇴한 협상안 부상, 또 '더불어한국당?'
정기국회가 자유한국당의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 신청으로 멈춰선 가운데, 정국 핵심 현안인 패스트트랙 법안, 그 중에서도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놓고 더불어민주당과 한국당이 막판 타협을 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된다. 민주당이 선거법 개정안의 골자인 '연동형 비례대표제' 적용률을 더 낮추는 안(案)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면서다.

3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 앞 로텐더홀에서는 자유한국당 의원총회가 열렸다. 이날 의원총회에서 가장 눈길을 끈 것은 나경원 원내대표가 아니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재원 의원의 발언이었다.

김 의원은 먼저 예산 심사에 대해 "지난달 30일까지 간사 협의체에서 심사를 진행한 결과, 감액 대상 496건 중 116건을 심사해 30건을 확정했고 466건은 아직 심사 대상이다. 증액은 시작도 안 했다"며 "이런 상황에서 (여당은) 위성·위장 야당과 '4+1' 협의체를 만들어 자신들만의 수정안을 만든다고 한다. 예산을 선거법·공수처법 처리의 뇌물로 사용하겠다는 것으로,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김 의원은 "민주당은 지역구 250석-비례대표 50석에, (비례대표) 50석 중 25석은 연동형 50%를 채택하고 나머지 25석은 현행대로 하는 수정안을 마련하고 있으며, 공수처법은 '공수처'라는 이름을 변경하고 바른미래당 권은희 의원 안의 '기소심의위'를 자문기구로 하는 안을 처리하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민주당이 우리 당에 협상을 요구하지만, 이미 다른 4당과 다 만들어 놓고 '한 자(字)도 고칠 수 없다'고 하니 협상이 가능한 게 하나도 없다. 무슨 협상을 하겠느냐"고 말했다.

김 의원은 황교안 한국당 대표의 핵심 참모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예결위원장이라는 직위의 특성상 청와대·여당 측과도 접촉이 잦을 수밖에 없는 처지다. 차기 원내대표 후보군으로도 꼽힌다. 이런 김 의원의 발언은 형식상으로는 여당을 규탄하고 비판하는 것이었지만, 민주당이 마련하고 있는 선거법 수정안의 구체적 내용을 언급했다는 측면에서 주목을 끌었다.

실제로 민주당에선 지역구 250석·비례대표 50석에 패스트트랙에 오른 선거법 개정안보다 연동률을 10% 낮춰 40%를 적용하는 방안, 연동률을 50%로 두되 비례대표 50석 가운데 일부만 연동형비례제 적용 대상으로 하는 방안 등이 검토되고 있다. 이는 원안보다 크게 후퇴한 잠정안으로 한국당을 선거법 협상에 끌어들이려는 포석이다.

정춘숙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이날 의원총회 후 기자들과 만나 '선거제 비례대표 연동률을 더 낮출 수도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그건 협상에 따라 달라질 부분이라 예단하기 어렵다"고 부인하지 않았다. 그는 한국당의 필리버스터를 돌파할 일명 '살라미 본회의' 전술과 관련, "그것도 방법이 될 수는 있다"면서도 "너무 의도적으로 보이는 전략을 쓰는 것은 무리가 있지 않겠나, 어제(의원총회에서)는 '정정당당하게 상황에 맞서자'고 얘기한 분도 많이 계신다"고 당내 기류를 전하기도 했다. 이해찬 당 대표가 "한국당에 더 이상 끌려다니지 않겠다"고 한 지 하루만이다.

한국당은 표면적으로는 연동형비례대표제 도입 자체를 반대하고 있지만, 무더기 필리버스터 신청 이후 출구 모색이 더욱 어려워졌다는 비판 속에 당 내에선 협상론도 제기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당내 유력 중진인 김재원 의원이 이날 의원총회에서 언급한 '250(지역구)-25(연동형비례)-25(현행방식 비례)' 안은 매우 구체적인 내용이어서 실제로 민주당과 물밑 교감이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을 낳았다.

이날 오전 오신환 바른미래당 원내대표가 "바른미래당의 마지막 중재안"이라며 "한국당은 준연동형비례대표제를 받고, 민주당은 공수처 기소권에 제한을 두는 선에서 대타협할 것을 제안한다"고 밝힌 것도 이같은 물밑 기류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만약 민주당이 예산안과 민생 법안의 원활한 처리를 위해 비례대표 연동률을 낮추거나 연동형비례제 적용 의석을 줄이는 선거법 개정안을 한국당과 합의할 경우, 바른미래당(당권파)·대안신당·정의당·민주평화당 등 '4+1' 협의에 참여한 범(汎)진보진영 정치세력들은 극심하게 반발할 것으로 예상된다. 민주당은 작년 연말에도 예산안 처리를 놓고 한국당을 제외한 '4당 연대'를 추진하다가 막판에 한국당과 전격 합의하면서 당시 야3당으로부터 "더불어한국당"이라는 노골적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이 한국당·바른미래당(비당권파) 등 교섭단체 3당 간 합의로 선거법과 공수처법을 처리하려 할 경우, 당장의 정기국회 통과는 훨씬 수월해지겠지만 이른바 '촛불 연대', '한국당 포위 전략'으로 불린 정치전략은 문재인 정부 내내 복원이 불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즉 민주당(129석)과 한국당(108석), 바른미래당 비당권파(15석) 간의 합의가 이뤄지면 다른 모든 정당이 반대하더라도 어떤 법안이든 무난히 처리할 수 있지만, 민주당이 한국당과 중장기적으로 동맹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바른미래당 당권파(9석), 대안신당(10석), 정의당(6석), 평화당(5석)에 민주당 의석을 더해 과반(159석) 의석을 유지하는 '범진보블록' 복원이 더 유리한 전략이라는 주장은 앞서 민주당 내에서도 다수 나온 바 있다.

당장 정의당에서는 바로 경고 메시지가 나왔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이날 의원총회에서 "민주당 의총에서 이인영 원내대표가 '비례 일부에만 연동제를 적용하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는 발언을 했다는 보도가 민주당의 뜻이 아니길 바란다"며 "50% 연동률은 원래 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제시한 안"이라고 지적했다.

심 대표는 "작년 12월 이 대표는 '각 당의 사정이 다르기 때문에 100%는 어렵다'고 해서 50% 기준을 제시했고, 정의당은 이 안이 비례성·대표성 확대를 위한 개혁의 의미를 반감(半減)시키는 것이지만 민주당의 선거개혁 의지가 실린 제안이라고 생각해 수용하게 됐다"며 "50%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비례성 확대를 목표로 하는 선거제도 개혁의 최소한의 방안이다. 연동률을 더 하향시킨다는 것은 선거제도 개혁의 취지를 퇴색시키는 것으로 검토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못박았다.

심 대표는 "만에 하나 민주당이 지금 이 순간에도 기득권 양당의 적대적 공생에 미련을 두고 있는 것이라면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라며 "민주당은 더 이상 한국당과의 정치적 타협에 매달리지 말고, 패스트트랙을 함께 추진해왔던 초심으로 돌아와 정치개혁을 위한 여야 4당 합의정신을 솔선해 지켜내야 한다. 개혁과 민생 예산안을 이번 정기국회에 통과시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여야4당의 굳건한 공조뿐"이라고 강조했다. 윤소하 정의당 원내대표도 "이제 한국당과는 어떠한 합의도 있을 수 없음을 민주당은 분명히 해야 할 것"이라고 힘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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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훈
프레시안 정치팀 기자입니다. 국제·외교안보분야를 거쳤습니다. 민주주의, 페미니즘, 평화만들기가 관심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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