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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 사학 회귀' 결정, 밀실에 맡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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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부패 사학 회귀' 결정, 밀실에 맡길 수 없다" 사학분쟁조정위에 '정보 공개 청구' 준비하는 상지대 교수들
흉터는 남았지만, 그럭저럭 아물었다고 생각한 상처가 다시 아파오는 이들이 있다. '김문기'라는 이름을 기억하는 상지대학교 교수와 학생들이 이런 경우다. 김문기 씨가 이 학교를 운영하면서 남겼던 상처가 너무 깊었다. 그런데 16년 전에 학교를 떠났던 김 씨가 다시 돌아올 조짐이 있다. 그래서 오래된 기억이 악몽으로 다시 떠오른다는 상지대 교수들이 많다.

김문기와 상지대의 잘못된 만남

상지대를 운영하는 상지학원의 모태는 1955년 원홍묵 씨가 설립한 관서대의숙이다. 이를 기반으로 원 씨는 1962년 청암학원을 설립했고, 이듬해에는 원주대학을 세웠다. 가구 사업을 하던 김문기 씨가 상지대와 인연을 맺은 것은 그로부터 10년 뒤인 1973년이다. 민관식 당시 문교부 장관의 국회의원 선거운동을 도왔던 인연으로 김 씨는 원주대학에 관선이사로 파견됐다. 이어 김 씨는 청암학원과 원주대학을 각각 상지학원, 상지대학으로 바꾸고 재단 이사장이 됐다. 재단 인수는 무상으로 이뤄졌는데, 이 과정에서 민관식 장관의 압력이 작용한 사실이 뒤에 드러났다.

상지대 이사장이 되고서부터 김 씨의 관운에 날개가 달렸다. 여당인 민주자유당 의원으로 3선을 지냈고, 강원도 일대에서는 막강한 실력자로 군림했다. 관운을 뒷받침한 것은 막강한 재력. 사실상 공짜로 인수한 상지대는 황금알 낳는 거위가 됐다. 교육용 부지를 이용한 땅 투기, 편입학 과정에서 금품 수수 등이 그 방법이었다.

김 씨의 날개를 꺽은 것은 문민정부 출범과 함께 사정의 칼날을 휘두르던 김영삼 전 대통령이다. 김 전 대통령은 취임 직후, 상지대 관련 보고를 받고 상상을 뛰어넘는 비리 규모에 충격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민자당 3선 의원이었던 김문기 씨가 '문민정부 사정 1호'로 꼽히고 대대적인 수사가 이뤄진 일은 김영삼 정부 초기 개혁의 상징이기도 했다. 당시 언론 보도를 보면, '비리종합선물세트 상지대'라는 표현이 관용어처럼 쓰인다.

결국 김 씨는 대법원에서 징역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그리고 상지대는 김 씨의 손에서 벗어나 10년 동안 임시이사 체제로 운영됐다.

'김문기 없는 상지대' 빛날수록, '김문기 복귀' 두려움도 커진다

그리고 지난 2004년 정이사 체제로 바뀌었다. 학교가 정상화됐다는 교육부의 판단에 따른 조치다. 김문기 씨로부터 자유로워진 상지대의 발전상은 눈부시다. 김 씨가 상지대를 운영하던 1992년과 최근을 비교하면, 인플레에 따른 자산 가치 상승분을 제외해도 자산 총액이 5.8배 늘었다. 교수 수는 2.5배, 중앙도서관 장서 수는 3배, 교외 연구비 수탁 총액은 740배, 교내 연구비 총액은 281배 늘었다.

▲ 지난해 말, 상지대 한의과 대학 학생들이 김문기 씨의 복귀를 반대하는 구호가 적힌 팻말을 들고 시위하는 모습. ⓒ연합뉴스
'김문기 없는 상지대'의 발전상이 빛날수록, '김문기 복귀'에 대한 상지대 구성원의 공포는 커진다. 지금도 많은 상지대 교수들은 김문기 씨가 이사장이던 시절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이사장이 교수와 학생에게 폭언을 예사로 하던 시절이다.

문제는 김문기 씨가 다시 상지대를 맡으려는 움직임이 있다는 것. 지난 2007년 대법원 판결이 발단이 됐다. 당시 대법원은 임시이사가 정이사를 선임할 자격이 없다고 판시했다. 따라서 상지대가 지난 2004년 정이사 체제로 바뀐 것은 무효가 됐다. 따라서 상지대는 정이사 9명을 새로 선임해야 한다.

보수 일색 사분위, 김문기 복귀 움직임 가속화

그런데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가 당선되면서, 김문기 씨 쪽의 움직임이 활발해졌다. 현 정부가 사립학교 재단을 지지기반으로 뒀다는 점 때문이다. 사립학교 관련 분쟁에서 재산권과 교육권이 부딪힐 때 재산권을 우선하는 법조계 및 정부 여당 분위기도 한몫했다. 여기에 박차를 가한 것은 보수 일색으로 채워진 2기 사학분쟁조정위원회(사분위)다. 총 11명의 위원으로 구성된 사분위는 교육과학기술부 산하 기구로, 분쟁 사학의 정상화 방안을 심의하는 곳이다. 노무현 정부 당시 출범한 1기 사분위는 보수와 진보의 비율이 6대 5로 균형을 맞추고 있었다. 그런데 지난 2월 1일 새로 선임된 2기 사분위원들의 면면을 보면, 이런 균형이 깨졌다. 이장희 한국외대 교수를 제외하면, 진보로 분류할만한 위원이 없는 상태다.

그래서인지 사분위 안에서 구(舊)재단, 즉 김문기 씨 측 인사를 대거 정이사로 선임해야 한다는 주장이 노골적으로 제기된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사분위원들은 회의 내용을 언론에 공개할 수 없다는 입장이지만, 사분위 회의 내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상지대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공공연한 사실로 통한다.

입시 비리, 횡령 등으로 형사처벌을 받은 김문기 씨를 복귀시키려는 이들이 내세우는 근거는 2007년 대법원 판결이다. 당시 법원이 종전이사(김문기 씨 측)의 권리를 인정했다는 것.

"학교 발전 명예에 먹칠했는데…" vs "이미 처벌 끝난 문제"

그러나 상지대 교수들의 판단은 다르다. 대법원 판결이 뜻하는 바는 "종전이사도 소송을 제기할 자격이 있다"라는 뜻일 뿐이며, "종전이사가 정이사를 선임할 권리가 있다"는 게 아니라는 게다. 또 범법 행위로 퇴임한 종전이사가 일반적인 권리를 갖는다는 주장 역시 무리라고 주장한다. 현행 사립학교법에는 임시이사가 선임된 학교 법인의 정상화와 관련해 "상당한 재산을 출연하거나 학교발전에 기여한 자 및 학교운영위원회 또는 대학평의원회의 의견을 들어 선임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그런데 김문기 씨 측은 학교 발전에 기여하기는커녕 범죄로 구속돼 학교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게 상지대 교수들의 지적이다. 또 상지학원 사무국에서 확인한 김문기 씨의 현금출연규모는 6억 7000여만 원이며 그 중 5억2000여만 원은 상지학원에 속한 한 고등학교에 출연된 것이다. 따라서 '상당한 재산'을 출연했다고 보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

반면, 김문기 씨측의 복귀에 반대하는 교수들을 '탈취자(재단으로부터 대학을 빼앗았다는 뜻)'로 규정하는 쪽의 입장은 다르다. 상지학원 정상화추진위원회 김재경 자문위원장이 이런 경우다. 김 위원장은 "학교와 재단은 별개다. 학교에서 교육에 전념해야 할 교수들이 왜 재단 문제에 간섭하느냐"라고 말했다. 과거 김문기 씨가 저지른 비리에 대해서도 "과거에 벌을 받았다는 이유로, 법적 권리를 제한한다면 연좌제나 다를 바 없다"라고 말했다. 그가 여러 차례 강조한 것은 '법치'였다. 법에 따른 처벌이 끝난 문제에 대해 문제 삼는 것은 '법치주의'에 어긋난다는 논리다.

상지대 교수들 "사분위에 정보 공개 청구할 것"

사학 분쟁에서 '법치'가 작동하는 통로는 사분위다. 그렇다면, 사분위에서는 어떤 이야기가 오가고 있을까. 문제는 이 대목이다. 뉴라이트, 공안검사 출신 등 보수 일색인 사분위 안에서 오가는 이야기를 알 수 없다는 것.

그래서 상지대 교수들이 추진하는 게 사분위 회의 내용에 대한 '정보 공개 청구'다. 이 작업을 준비 중인 박병섭 상지대 대외협력위원장(법학부 교수)는 "분쟁 사학인 세종대, 조선대 등에서 구 재단 측 인사를 정이사로 선임하면서도 사분위는 아무런 설명이 없었다"라며 "밀실에서 정이사 선임 논의가 이뤄지고 아무런 설명 없이 결과가 발표된다면, 승복할 수 없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그는 "관련 법을 샅샅이 살펴도, 사분위가 정보 공개를 거부할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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