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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 대란, 내년 총선ㆍ대선 칼날 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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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전세 대란, 내년 총선ㆍ대선 칼날 될 것 [김영호의 사자후] 2년 마다 셋집 찾아 헤매는 유랑민들
세상은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돌아가는 느낌이다. 하지만 주택전세시장이 요동을 치면서 도시의 세입자들은 피를 토하고 싶은 심정이다. 비수기인 한 겨울철에 전세가격이 폭등세를 보여 전체 가구의 40%가 넘는 무주택 세입자들이 더 싼 셋집을 찾아 변두리로 변두리로 헤매야 할 판이다. 아니면 또 빚을 내서라도 집세를 더 올려주어야 한다. 집을 옮기면 아이들 학교도 옮겨야 하니 집을 줄여서라도 주변에서 더 싼 셋집을 찾으려고 애쓰나 헛탕이다. 서울 세입자들이 수도권으로 몰리면서 그곳의 집세도 밀어 올려 연쇄반응을 일으키고 있다. 젊은 부부들이 기거처를 원룸으로 옮기니 대학가의 하숙생들이 오갈 곳을 잃고 있다. 전세대란이 강원도를 제외한 전국적 현상으로 번지면서 무주택 세입자의 대이동이 시작됐다.

ⓒ진보신당

세입자들은 '죽을 맛'…'무책임'한 국토부 장관

전세 값이 2009년초부터 오름세를 보이기 시작해 지난 1월로 23개월째 뛰고 있다. 1월중 전국평균 상승률이 0.9%로서 2002년 이후 9년만에 최고치를 나타냈다. 전세난이 심화되는 배경에는 전세가 월세로 전환되는 추세도 큰 몫을 하고 있다. 세입자는 전세금을 더 올려 줄 돈이 없고 집주인은 저금리 탓에 전세금을 은행에 맡기기보다 월세를 받는 게 더 유리하다. 그 까닭에 전세가 전세난을 타고 빠르게 월세로 바뀌면서 집세를 올려달라는 요구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전세금 1억 원을 월세로 돌리면 보통 월 100만 원을 받는다. 전세 보증금은 1억 원인데 집주인이 5000만 원을 더 내라고 하나 돈이 없다면 그 금액을 월세로 쳐준다. 보증금의 일부를 월세로 내는 이른바 반전세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국민은행 자료에 따르면 지난 1월 임대차 구성비가 전세 57%, 보증부전세(반전세) 40.2%, 월세(사글세) 2.8%이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전세금만 내면 살던 집인데 매달 생돈 수십 만 원을 월세로 내야 하니 세입자들이 죽을 맛이다.

그런데 주무장관인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이 지난달 13일 전·월세 시장 안정방안을 발표한 다음 기자들과 가진 만찬 자리에서 "내놓을 수 있는 전세대책은 다 내놨다"며 "더 이상의 대책은 없다"고 잘라서 말했다. 2년 동안 이어지는 전세폭등을 방관하겠다는 말인지 아니면 집 없는 서민의 설움은 듣고 싶지 않다는 소리인지 모르겠다.

또 정 장관은 "전세대책이란 있을 수 없다. 언론을 통해 전세난이 부각되면서 정부 차원의 대응이 필요하다고 판단해서 이번 대책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언론보도에 대한 불만인지 아니면 언론보도를 통해 실태를 파악했다는 말인지 무책임하기 짝이 없는 자세다. 새 대책이라고 내놓았지만 시장의 반응은 싸늘하여 폭등세가 멈출 줄 모른다. 그러자 더 이상 대책이 없다더니 지난 12일 한 달만에 또 대책을 내놓았다. 세입자에게는 빚내서 전세금 올려주고 부자에게는 이 김에 집 사서 세나 놓으라는 내용이다.

'재개발,재건축' 무분별한 뉴타운 정책이 전세대란 불렀다

어떤 정부정책도 과거의 실패에서 교훈을 배우는 자세가 중요하다. 정책실패는 다수의 국민에게 무차별적인 피해를 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권의 독선적 국정운영은 그 같은 노력을 비웃는 듯하다. 외환위기의 여파로 1998년 집값이 폭락하면서 전세 값도 25% 가량 떨어졌다. 김대중 정부는 경기부양을 겨냥해 부동산투기 억제책을 모두 풀어버렸다. 1999~2000년 집값이 급등하면서 집세도 덩달아 뛰었다. 이 상황에서 5만 가구 규모의 서울 강남구, 강동구 5개 저밀도 아파트 단지에 재건축 허가를 내줘 전세파동을 촉발했다. 전세수요가 폭발하면서 전세가격이 30% 이상 급등했던 것이다. 전세수요 증가에 대비한 대책을 마련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명박 정권은 2008년 출범하자마자 최소한의 수급예측도 없이 경기부양을 목적으로 19차례에 걸쳐 각종 건축규제를 완화했다. 그나마 중-대형 아파트 위주의 공급정책을 펴 소형 공급물량의 부족으로 수급불균형을 더욱 심화시켰다. 여기에다 대규모 도심재생사업을 밀어붙이고 있다. 2008년 4월 총선거에 출마한 한나라당 서울지역 후보들이 앞다퉈 뉴타운 공약을 남발했고 그 덕택에 당선됐다. 유권자들도 달콤한 공약에 현혹되어 열심히 찍었다. 2009년 서울시 자료에 따르면 서울에서 추진되는 뉴타운, 재개발, 재건축 사업은 모두 247개 지역 23만 가구가 넘을 정도였다. 사상최대의 전세대란은 필연적이다. 내년 4월 총선에서도 뉴타운 공약으로 딴 금배지가 빛을 발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서울시 자료를 보면 멸실주택은 2007년 2만2973가구, 2008년 1만8098가구, 2009년 3만1061가구, 2010년 4만8689가구로 갈수록 높은 증가세를 보인다. 이에 반해 주택공급은 2010년을 빼고는 1만 가구 수준으로 멸실주택보다 훨씬 적다. 2007년 1만2145가구, 2008년 1만1669가구, 2009년 1만1074가구, 2010년 2만2539가구로 말이다. 수요와 공급의 차이에 따라 전세파동이 쉽게 예견된다.

더 큰 문제는 단독주택이 밀집한 재개발 지역은 구조적으로 세입자 가구수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다는 점이다. 아파트와 달리 단독주택, 다가구주택, 다세대주택에는 옥탑방, 지하방, 단칸방이 있어 주택수보다 세입자수가 훨씬 많다. 그러니 재개발을 밀어붙이면 세입자들이 쏟아지기 마련이다. 왕십리 뉴타운 지구의 경우 주민 4275가구의 84.6%인 3620가구가 세입자였다. 그런데 임대 아파트는 909가구만 들어선다. 경기도내 23개 뉴타운 지정지구의 평균 세입자 비율은 68.3%로서 도전체 평균 42%에 비해 훨씬 높다. 이러니 뉴타운 개발이 전세대란의 진앙지가 될 수밖에 없다.

거꾸로 가는 주택 정책…대출받아 집사라고?

무계획-무분별한 뉴타운 정책에다 재개발, 재건축으로 멀쩡한 집을 마구 헐어내 세입자들이 몰려 나온다. 그런데 주택정책은 거꾸로 가면서 전세난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2009년 5월 재건축 아파트 임대주택 건설의무를 없애버렸다. 임대주택단지를 철거하고 분양 위주의 보금자리주택으로 바꾸었다. 2009년 9월 이후 국민임대주택단지에서 보금자리지구로 바뀐 곳이 전국적으로 31개에 달한다. 전세파동이 극성을 부리기 시작한 시점에 소형 아파트 공급규모를 줄이는 한편 임대주택 공급도 없애는 대책을 내놓은 것이다. 건설업자 위주의 주택정책이 전세난에 불을 붙인 꼴이다. 엉터리 주택정책이 빈자의 소득을 부자에게 이전시키고 있다. 가난한 사람을 더욱 가난하게 만들고 부자를 더 부자로 만들면서 양극화를 더욱 부채질하고 있는 것이다.

올 들어 잇달아 내놓은 전세대책의 골자는 대출조건을 완화할 테니 은행 빚을 내서 집을 사라는 것이다. 전세금을 올려주느니 차라리 은행 빚을 조금 더 내서 집을 사면 전세수요가 줄어들 것이란 판단에서 나왔을 것이다. 이것은 주택경기 부양책이지 전세대책이 아니다. 2008년 9월 리만 브러더스 파산으로 발단된 세계적 금융위기로 인해 집값 폭락은 세계적 현상이다. 주택매수세가 있더라도 집값이 더 떨어지기를 관망하고 있다. 시세차익은커녕 시세차손을 볼 위험성이 있다고 보는 상황이다. 그러니 정부가 은행대출을 미끼로 집을 사라고 꼬드긴다고 관망세가 매수세로 돌아설 리 없다. 지난 1월 전국 아파트 매매가격 대비 전세가격 비율이 57.3%로 2003년 이후 7년만에 가장 높다. 하지만 2001년의 68.9%에 비해 한참 낮은 수준이다. 서울의 전세비율이 5년에 가장 높지만 44.8%이다. 전세수요가 매수수요로 돌아설 시점이 아니라는 판단이 옳다.

가구수와 주택수를 비교하는 주택보급율이 작년말 111.9%이다. 가구마다 집을 한 채씩 갖고도 남을 만큼 주택이 보급되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자기 집에 사는 자가점유율은 1995년 53.3%에서 2005년 55.6%로 미미한 증가에 그쳤고 작년 현재 56~57%로 추산된다. 주택보급율과 자가점유율의 차이는 주택을 복수로 소유한 가구가 많다는 뜻이다. 전체의 43~44%는 여전히 셋방살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소리다. 그 중 상당수는 집을 사고 싶어도 돈이 없어서 집을 살 수 없는 처지다. 그래서 2년마다 유랑민처럼 싼 셋집을 찾아 헤매다보니 서울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

이명박 주택 정책 실패, 내년 선거 쟁점 떠오를 것

이런 현실에서 뉴타운을 개발한다고 셋방이 많은 부도심지를 마구 헐어냈다. 전세난을 막기 위한 장치인 소형 아파트 건설의무와 임대주택 의무건설 비율을 없애버리고 임대주택단지도 없앤다. 전세대란이 날 수 밖에 없다. 막상 전세대란이 나자 빚 내서 집을 사라고 독려하는 따위를 전세대책이라고 내놓으니 전세대란이 숨을 죽일 리 없다. 주택정책을 근본적으로 뜯어고치지 않으면 전세대란은 이명박 정부의 집권기간 내내 기승을 부린다. 그 사이 2012년 4월 총선거, 2012년 12월 대통령 선거를 거치면서 주택정책 실패는 선거쟁점으로 부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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