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임경구 프레시안 정치 선임기자 및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가 번갈아 담당하며, 경제는 정태인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 남북관계·한반도는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국제는 이승선 프레시안 국제 선임기자, 생태는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이 맡고 있습니다.
이중 매주 한두 편의 칼럼을 공개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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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해가 바뀌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삽니다만, 정해진 일정에 따라 목표를 재설정하게 되는 공동체의 리듬은 12월 31일과 1월 1일이 사뭇 다릅니다. 2014년의 실질적인 첫 주, 정치권의 공기도 확연히 달라졌습니다. 오는 6월에 치러지는 지방선거가 여야 모두에게 긴장을 강제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으로 집권 2년 차 첫걸음을 내디뎠습니다. '경제혁신 3개년 계획'과 '한반도 통일 시대를 위한 준비'라는 화두를 던졌습니다. 이에 대해선 평가의 재료가 아직 충분치 않아 대체로 방향 설정의 적실성에 대한 갑론을박만 오가는 듯합니다. 어쨌든 대통령이 올해 국정운영의 항로를 밝힌 것이니 대번에 깎아내릴 필요는 없겠습니다. 예컨대 "통일은 대박" 발언이 화제가 되고 있는데요. 품위 없는 단어를 썼다는 비판이 있는 줄 압니다만, 저는 과하지 않은 범위에서 대통령이 좀 더 서민적 언어와 친숙해도 좋다고 봅니다. 중요한 건 발언의 맥락을 들춰보고, 공동체의 이익에 부합할 수 있도록 지켜보고 감시하는 일이겠지요.
▲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6일 신년 기자회견을 했다. '소통'을 강조하며 마련한 자리였지만, 기자회견이 끝나기 무섭게 '불통 정권'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새누리당 김무성 의원마저 정국 안정을 위해서는 "틀린 얘기를 하더라도 들어주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을 정도다. 박 대통령은 80여 분 동안 사진처럼 다양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눈을 씻고 찾아봐도 '소통'을 위한 진심 어린 표정이 보이지 않는다. 2014년도 '대박 불통' 정권에 마음 편할 날이 없을 것 같다. ⓒ연합뉴스 |
이철희 두문정치연구소 소장이 JTBC <썰전>에서 "박 대통령의 회견은 대박, 면박, 반박으로 정리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특검 요구엔 '면박'을 줬고, 소통을 물으니 '반박'을 하더라는 겁니다. 우스개 같지만, 공감 가는 촌평입니다. 박 대통령의 기자회견이 불통 논란을 키웠다는 점엔 거의 모든 언론의 이견이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이대로 조롱하거나 체념해 넘기기엔 문제가 심각합니다. 철도 파업을 예로 들며 반대 세력에 대해선 '법과 원칙'을 앞세운 응징을 암시했습니다.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의 예견대로, 박근혜 정부는 "공안 통치를 넘어 분쇄 정치"로 가는 걸까요?
권력을 운용하는 데에는 표방하는 통치철학 못지않게 행위의 완성도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소통은 핵심적인 정치 행위입니다. 훌륭한 소통이 성공적 지도자가 되는 사다리 역할을 한 경우가 많습니다. 화롯불 주위에 옹기종기 모여 고단한 몸을 녹이는 국민들을 따스하게 어루만진 루스벨트 대통령의 '노변정담'이 그러했고, 공존의 방법에 관한 교과서를 쓰는 듯한 독일 메르켈 총리의 행보가 그렇습니다. 소통의 목적은 국민적 신뢰와 지지를 얻어 국정 철학을 실현하는 데에 있을 텐데, "적당히 타협하고 수용하는 것이 소통이냐"고 쏘아붙이는 박 대통령은 목표로 나아가는 가장 더디고 험난한 길을 선택한 것 같습니다. "국민행복 외에는 모든 게 번뇌"라는 말과 달리, 박 대통령이 벌이는 쓸데없는 대결의 정치입니다.
이 시점에서 지난 2004년 노무현 대통령과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가 정면으로 충돌했던 '4대 개혁 입법' 파동을 굳이 떠올리게 됩니다. 국가보안법·사학법·과거사법·언론관계법은 개정돼야 마땅한 과제였습니다. 하지만 운동이 아닌 정치의 영역에선 명분이 옳다고 '과업'이 완성되지는 않습니다. 국민적 공감과 신뢰를 충분히 얻지 못한 채, '여대야소(與大野小)'라는 힘의 우위를 믿고 추진한 대결의 정치는 이렇다 할 결실을 보지 못하고 실패로 귀결됐습니다. '국가 정체성 수호'를 내걸고 장외 투쟁을 이끈 박근혜 대표의 승리처럼 보였지만, 실은 개혁의 방법론에 미숙했던 노무현 정부의 자충수로 보는 게 타당할 겁니다.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며 정작 핵심 과제인 시장 개혁을 등한시하고, 알맹이 없는 싸움으로 피로도를 높인 정부를 민심은 인내하지 않았습니다.
그 교훈을 새카맣게 잊은 걸까요. 지금 박 대통령은 한 발 나아가 '극우의 화신' 같은 모습입니다. 경제 민주화는 내팽개치고, 공공부문 민영화로 가는 레일을 깔고, 재벌들의 숙원인 규제 완화는 모조리 들어줄 기세입니다. 다른 한편으론 국가기관 대선 개입 사건을 '종북(從北) 논란'으로 부채질하더니 역사 교과서 파문도 실패를 좀체 인정하지 않으려 합니다. 교육부는 교학사 교과서 채택률이 0%대가 된 이유를 '외압'이라고 규정했습니다. 허점투성이인 교과서 채택을 거부한 학생들과 동문들, 학부모들이 외압 세력이라는 교육부의 주장이 황당하다보니, 국민들은 철회 배경을 특별 조사한다며 일선 학교를 들쑤신 교육부의 외압을 더 심각한 문제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사태가 이 지경인데도 집권 여당은 역사 교과서의 국정 전환을 검토하겠다고 합니다. 99%를 대상으로 '비정상의 정상화'를 외치는 정부와 여당, 뭔가 단단히 잘못됐습니다.
집권 세력의 이 위험한 질주는 언제까지 계속될까요? 대개 올해 6월 지방선거를 첫 번째 분기점으로 봅니다. 사실 박 대통령은 임기 5년을 놓고 볼 때, '일정 복(福)'이 있는 대통령입니다. 첫째는, 지방선거가 취임 1년 4개월 만에 치러지기 때문입니다. 청와대와 정부의 힘이 여전히 막강한 시기이기도 하고, 국민들도 정부에 기대를 내려놓지 않을 시기입니다. 총선이 임기 막바지인 2016년으로 멀찌감치 떨어져 있다는 것이 두 번째 '일정 복'입니다. 정권에 대한 평가의 의미를 띄는 두 번의 전국단위 선거가 이렇게 배치됐으니, 지방선거만 잘 넘기면 3년여간 비교적 안정적인 국정 운영을 할 수 있는 셈이죠. 이명박 정부가 임기 한가운데인 2010년에 지방선거를 맞아 큰 타격을 입고 침몰 한 전례에 비하면, 분명한 호(好) 조건입니다.
그러나 첫 관문 넘기가 만만치 않아 보입니다. 박 대통령은 경제 살리기를 최우선 과제로 설정해 놓았지만, 상반기 중에 경제 정책이 가시적 효과를 거두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당장 부동산 경기부터 살려보려고 해도 이는 전세난으로, 가계부채 문제로 돌고 돌 뿐 근원적인 처방이 되기 어렵습니다. 게다가 박 대통령은 이번 신년 기자회견에서 정치적 해법으로 출구를 찾을 수도 있었던 국가기관 대선개입 사건 해결의 마지막 기회를 스스로 걷어찼습니다. 오히려 불통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교과서 전쟁 같은 극우의 이념 싸움에 얹혀갑니다. 국민들이 언제까지 이 극심한 피로를 견뎌줄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대통령이 이러면, 처한 상황으로 보나 실력으로 보나 청와대를 제어하기 힘든 새누리당은 중도 전략을 구사하기가 무척 힘들어집니다. 목소리 큰 강경 보수 진영의 입김에 휘둘릴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는 것이죠. 기본적으로 우리 정치지형이 보수 우위인지라, 그 유혹은 더욱 강렬해질 수 있습니다. 전국이 교과서 파동으로 들썩이는데, 역사 교과서의 국정 전환을 주장하는 새누리당의 간 큰 행태가 그런 전조가 아닐까 싶습니다. '종북몰이'도 아직 끝난 게 아닙니다. 또한 민주당과 안철수 세력이 혼전하는 야권의 분열도 새누리당에게는 호재(好材)겠죠. 요컨대 새누리당은 박 대통령의 지지율, 보수의 결집, 야권 난립 구도 등 세 가지를 바탕으로, '종북몰이' 소재를 그때그때 버무려 지방권력을 접수하려들 가능성이 큽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박근혜 선거 매직'은 이 삼박자가 맞아떨어졌을 때 위력을 발휘했던 겁니다.
이를 야권의 입장에서 보면, 박 대통령의 지지율과 보수의 결집은 상수로 봐야 한다는 얘기가 됩니다. 지난해를 돌이켜보면, 야당이 주도한 정치 투쟁이 효과를 거둔 적은 드뭅니다. 박 대통령의 독선적 국정운영과 민생 공약 후퇴 등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 역시 야당을 통해 흡입되지는 못했습니다. 특히 민주당은 집권세력의 실정에 따른 반사이익조차 제대로 챙기지 못할 정도로 무기력했습니다. 이대로라면, 새누리당이 중도 전략을 포기하고 집토끼 전략에만 집중한다 해도 야권이 지난 2010년 지방선거와 같은 압승을 거두기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게다가 2010년 지방선거와 비교해 야권에는 두 가지 과제가 여전히 풀리지 않았습니다. 우선, 아직까지 승리하는 야권 연대의 공식을 재정립하지 못했습니다. 지난 지방선거 승리의 바탕은 야권의 성공적인 단일화에 있었습니다. '뭉치면 산다'는 명제가 당시에는 통했던 것이죠. 그러나 현재의 민주당과 안철수 세력이 지난 선거 같은 선거연합 전략을 구사할 수 있는 여지가 매우 협소합니다. 무조건적인 야권 단일화는 안철수 세력에겐 발목을 잡는 논리가 되는 반면, 안철수 세력의 독자 행보는 야권 분열 구도를 야기하는 딜레마가 있는 겁니다. 불가피해진 야권 내부의 경쟁이 두 세력이 윈-윈 할 수 있는 결과로 이어지려면, 질적으로 다른 선거 공식을 새로 만들어내야 할 겁니다.
두 번째는 2010년 지방선거를 관통했던 '무상급식' 같은 야권 주도의 의제가 보이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와 관련해 저와 번갈아 이 지면을 담당하는 김윤철 교수가 몸담고 있는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올해의 대한민국 정치사회 트렌드를 4가지 명제로 정리했습니다. 첫째 '억지는 안 통한다', 둘째 '좋은 삶을 위해서라면 쏜다', 셋째 '이제 아무도 안 믿어요', 넷째 '이제는 판을 바꿀 때이다'라는 겁니다. "지방선거를 준비하는 정치권이 유념해야 할 지점"이라는 설명입니다. 요약하면, '종북몰이' 등 억지 주장도 통하지 않지만 국민들이 야권에 대해서도 신뢰를 거둔 현실에서 "국민 다수의 삶의 질 개선을 목표로 합리성과 개혁성을 높여야 정치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겁니다. 여야에 공히 적용되겠으나, '박근혜 매직'이라는 최후의 방패를 가진 여권에 비해 야권의 갈 길이 더 멀어 보입니다.
연초 일부 언론을 통해 서울시장 등 광역단체장 후보 경쟁력에서 야권 후보들의 우위가 확연한 여론조사가 보도되기도 했지만, 이는 여권 후보들이 가시화되지 않은데 따른 현역 프리미엄일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야권이 여론조사의 허수에 취해 민생 의제 선점에 실패할 경우, 또 한 번 민심의 역습을 맛보게 될 겁니다. 2010년 지방선거 때도 다수의 여론조사는 새누리당의 승리를 점쳤지만, 결과는 정반대였습니다. 무상급식 의제에 대한 대중들의 호응, 당시 선거에서 위력을 발휘한 트위터 등 SNS 영향력 등이 여론조사에선 포착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선거는 늘 결과가 나온 뒤에야 그 이유가 설명됩니다. 그러나 그 모든 선거에서 변치 않는 진리는 민심은 한 곳에 고여 있지 않고 그 흐름을 포착한 쪽이 승리한다는 겁니다. 한귀영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의 지적처럼 국민들의 분노와 책임추궁이 올해는 어느 쪽으로 향할지 지금은 아무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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