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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어스'도 '구글 글래스'도 꿰뚫지 못하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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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어스'도 '구글 글래스'도 꿰뚫지 못하는 곳! [김용언의 '잠 도둑'] 알베르토 망겔·자니 과달루피의 <인간이 상상한 거의 모든 곳에 관한 백과사전>
언젠가 발터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조형준 옮김, 새물결 펴냄) 같은 글을 쓰고 싶었다. 자료와 주석만으로 이뤄진 글. 다시 말해 애초부터 공인된 상호연관을 맺고 있는 파편들, 혹은 전치(轉置, dépaysement)와 콜라주로서의 반강제적 상호연관성을 띠게 된 파편들로만 이뤄진 글. 내가 존중하고 좋아하는 이들의 의견으로만 이뤄진 글을 통해 내 생각을 드러낼 수 있는 글.

▲ <아케이드 프로젝트>(발터 벤야민 지음, 조형준 옮김, 새물결 펴냄). ⓒ새물결
막상 그런 글을 시도했을 때 공황 상태에 빠졌다. 주석을 달기 위해서는 그만큼 많은 책들을 읽어야 했다. 무수한 자료들로부터 주석이 될 만한 문단을 수집하는 작업은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글을 완성하기 이전에 독서조차 완료하지 못할까봐 두려워졌다. 벤야민이 <아케이드 프로젝트>를 미완으로 남긴 이유가 비단 제2차 세계대전 때문만은 아니었으리라고 생각한다. 만일 벤야민이 스페인 국경에서 살아남았다 하더라도, 그는 이 방대한 문헌 주석을 영영 끝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건 자청해서 미로로 들어가는 여행자의 일정표이며, 영원히 끝나지 않을 지도를 그리는 제작자의 작업대이며,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단어를 붙잡아 종이 위에 포박하려는 사전 편찬자의 고행이다. 수집가이자 기록 관리자 아키비스트(Archivist)는 죽을 때까지 완결된 무언가를 갖지 못한다. 그러나 수집의 행위만으로도 그는 일생 동안 소우주를 창조하는 셈이며, 그 실내 극장 안에서만큼은 위대한 창조주로서 지극한 행복을 누릴 것이다. 보르헤스가 "도서관을 정리하는 것은 아무 말 없이 비평을 하는 행위다"라고 말한 것과 마찬가지다.(<보르헤스에게 가는 길>(알베르토 망겔 지음, 강수정 옮김, 산책자 펴냄))

"어느 날, 자니는 내게 자기가 발견한 소설에 대해 이야기했다. 폴 페발의 <흡혈귀 도시>라는 작품이었는데, 자니는 그 흡혈귀 도시에 대한 일종의 관광안내서를 써보면 재미있겠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그곳에 가서, 어디서 묵고 어디서 먹으며 무슨 구경을 하면 좋을지……. 모두 소설에서 추려내 사실들에 국한하고, 아무것도 지어내지는 않기로 했다. (…) 여기서 그만두라는 법이 어디 있어? 자니가 물었다. 다른 상상 도시들에 대해서도 안내서를 만들어볼 수 있지 않겠는가?"
-<인간이 상상한 거의 모든 곳에 관한 백과사전>(알베르토 망겔‧자니 과달루피 지음, 최애리 옮김, 궁리 펴냄) 중에서.


▲ <인간이 상상한 거의 모든 곳에 관한 백과사전>(알베르토 망겔‧자니 과달루피 지음, 최애리 옮김, 궁리 펴냄). ⓒ궁리
<인간이 상상한 거의 모든 곳에 관한 백과사전>는 이렇게 시작했다. (개인적으로는 틀림없이 보르헤스의 <상상동물 이야기>(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마르가리타 게레로 지음, 남진희 옮김, 까치글방 펴냄)로부터도 강한 영감을 받았을 것이라 추측한다. 바실리스크, 케르베로스, 켄타우로스 같은 익숙한 서구 신화 속 동물부터 시작하여 달나라 토끼, 체셔 고양이, 중국의 불사조 봉황 등까지 아우르는 이 기기묘묘한 목록 말이다.) 이건 '보르헤스에게 책 읽어주는 소년'으로 유명해진 작가 알베르토 망겔이 이탈리아의 편집자 자니 과달루피와 의기투합하여 만들어낸 엄청난 두께의 상상의 지명백과사전이다. 인덱스를 제외하고서라도 1152쪽에 달한다. 그리고 지금 한국에 출간된 버전은 세 번째 개정·증보판이다. 과달루피가 먼저 세상을 떠났지만, 어쩌면 망겔은 혼자서라도 네 번째 수정 작업에 돌입해야 할지도 모른다. 수집벽은 쉽게 떨쳐버릴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마법과 마술을 가르치는 학교. 영국 어딘가에 있다. 이 학교에 가려면 런던의 킹스크로스 역 9 3/4 개찰구에서 기차를 타야 한다"라는 첫 문장만으로도 이미 설레는 호그와트(조앤 롤링의 '해리 포터' 시리즈), "콜롬비아의 한 마을. 먼 옛날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가 건설했다"로 시작하는 마콘도(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 "핀란드 만 연안, 대디 존스의 왕국 남쪽에 있다. (…) 골짜기의 이름은 이곳에 '무민' 일명 '무민 트롤'들이 살기 때문에 그렇게 붙여진 것이다. 이들은 동면을 하는 희고 작은 동물인데, 큼직한 입과 짧은 꼬리, 그리고 털 없이 매끈한 살결을 하고 있다"라는 설명만으로 벌써 짐작했을 무민랜드(토베 얀손의 '무민' 시리즈). 그 장엄함에 비해 다소 소박하게 "미들어스에서 가장 중요한 왕국. 수도 미나스 티리스 주변 지역부터 거의 서쪽의 벨팔라스 만까지 뻗어 있는 백색 산맥의 남서쪽에 있다"로 시작하는 곤도르(J. R. R. 톨킨의 '반지의 제왕' 시리즈), "이곳에는 카드 한 벌과 몇몇 다른 생물이 산다. 이곳에 들어가려면 옥스퍼드의 폴리 교와 고스토 교 사이 템스 강둑에 위치한 토끼 굴을 지나야 한다"고 주장하는 원더랜드(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거나 혐오하는 존재를 부풀린 것, 혹은 실현되지 못했으나 꿈꾸고 있는 것, 영원한 이상향으로 남겨두고 싶어하는 곳들이 이 상상의 장소들의 정체다.

너무나 익숙한 이름들과 또 그보다 훨씬 더 많은 낯선 이름들의 목록은 전부 소설 속에 있는 문장들로만 구성되었다. 저자들은 일체 주관적으로 개입하지 않은 채 건조하리만치 '팩트'(이 단어가 좀 이상하게 들린다는 건 알지만…)에 집중하여 관광안내서를 집필했다. 우리는 마치 19세기 초 아직도 '제국주의자들'의 발길이 닿지 않았기 때문에 명명되지 못한 지도의 '공백들'을 보며 설레어했을 사람들의 심정으로, 아직 내가 펼쳐보지 못한 그 책들을 그리워하게 된다. 가보지도 못할 장소에 대한 목록 만들기가 대체 무슨 소용이 있냐고 물으신다면, 보르헤스를 흉내 내어 발터 폰 데어 포겔바이데의 시 한 구절을 빌려 답할 수밖에 없다.

▲ <보르헤스, 문학을 말하다>(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박거용 옮김, 르네상스 펴냄). ⓒ르네상스
"내가 내 인생을 꿈꾼 것일까, 아니면 그 인생이 참된 것일까?" (…) 압도적인 확언 대신에, 그는 질문을 하기 때문이죠. 시인은 궁금해하고 있습니다. (…) 이러한 망설임이 우리에게 삶의 저 꿈같은 본질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보르헤스, 문학을 말하다>(박거용 옮김, 르네상스 펴냄) 중에서 재인용


여기서부터는 국내 출간을 촉구하는 기나긴 읍소다. <인간이 상상한 거의 모든 곳에 관한 백과사전>에 등장하는 낯선 작가들 중 특히 관심 가는 작가는 머빈 피크다. <타이터스 그론>, <고먼가스트>, <타이터스만이> 3부작을 통해 '고먼가스트 성'과 '검은 집'이라는 무시무시한 공간을 만들어냈다고 하는데, 묘사 하나하나가 너무 매혹적이다.

"성은 너무나 넓기 때문에, 한 집안 사람들도 여러 주씩 서로 만나지 못하는 수가 있다. (…) 성은 수많은 건물이 기묘하게 모인 형태가 되었는데, 그중 몇몇은 정자, 관측소, 회랑처럼 분명한 용도가 있지만, 어떤 것들은 도무지 무슨 목적으로 지었는지도 알 수 없다. 가령 기둥들을 빽빽이 세워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도무지 뚫고 들어갈 수 없게 만든 공간이라든가(…)"

혹은 앙리 미쇼의 <그랑드 가라바뉴 여행>은 어떤가?

"위치가 늘 변하는 이상한 나라 (…) (그곳의) 유독한 풍경은 때로 깊은 명상 후에, 또는 여행자가 착란 상태에 있을 때 보인다고 한다. 이 나라의 첫인상은 무시무시하며, 방문객을 절망케 한다. 여행자들은 제각기 자신만의 괴물과 갈라진 땅과 사막을 만나게 된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그랑드 가라바뉴 주민들(…)은 서구 사회가 경멸하고 혐오하는 모든 것의 화신들이다."

에드워드 리어의 <난센스 노래, 이야기, 식물학과 알파벳>에 등장하는 그램블램블랜드 나라의 그 유명하다는 시립 박물관도 정말 가보고 싶다.

"이곳에는 일곱 개의 유명한 가문-앵무새가(家), 황새가, 거위가, 부엉이가, 기니피그가, 고양이가, 물고기가-이 일곱 개의 커다란 유리병에 밀봉 보관되어 있다. 이 가문들은 자녀들의 비행으로 수치를 당한 뒤 고추와 브랜디와 식초를 다량 써서 자신들을 절임으로 만들어버렸다. (…) 방문객은 시립 박물관의 정방형 중앙 홀 왼쪽 익랑에서 오른쪽 복도의 427번째 방에 있는 98번째 탁자 위에서 이 병들을 보게 될 것이다."

이 외에도 '지적인 북극곰 부족이 통치하는 왕국'(요커이 모르의 <얼음 및 2만 리>), 무릎과 팔꿈치가 없는 분홍 아이의 분홍 궁전(마르코 테네비의 <위작>)은 떠올리기만 해도 너무 귀여워서 몸서리치게 된다. 필립 쥘리앙의 <이집트 피난>도 슬그머니 들이밀어 본다. 러시아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의 장녀인 올가 대공녀가 여왕으로 군림했다는 홍해의 이집트 연안 어딘가의 이시(불어로 '이곳'이라는 뜻) 공국이 배경이다. T. E. 로렌스와 시인 모리스 작스, 서머싯 몸, 콜레트, 카렌 블릭센 백작 부인, 트루먼 커포티 등 '전 세계에서 가장 타락한 자들'이 이곳에서 지칠 줄 모르는 쾌락을 누렸다고 전해진다. "교양이 없거나 병들거나 늙은 자들은 '이시(이곳)'에서 추방되어 '라바(저곳)'로 보내졌다."

▲ <자유의 감옥>(미하엘 엔데 지음, 이병서 옮김, 메타포 펴냄). ⓒ메타포
이중에서 미하엘 엔데의 <자유의 감독>(이병서 옮김, 메타포 펴냄)은 다행스럽게 국내 출간되어있어서 냉큼 인터넷 서점 보관함에 담았다. '외부만 있고 내부가 없'는 집, 저택의 길이보다 복도의 길이가 더 긴 '보로메오 콜미의 복도'라니 설명만 들어도 너무 탐스럽지 않은가!

다만 지극히 우아하고 깊은 생각에 잠기게 하는 호러소설을 쓴 M. R. 제임스의 공간이 하나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에는 분개하지 않을 수 없다. '호각 소리(Oh, Whistle, And I'll Come to You, My Lad)'(<세계 호러 걸작선>(H. P. 러브그래프트 외 지음, 정진영 옮김, 책세상 펴냄)에 수록된 단편이다)의 잊을 수 없는 글로브 여관 정도는 들어갔어도 좋았을 것이다. 헨리 다거의 그림-소설 <비현실의 왕국에서>와 셜리 잭슨의 '역사상 가장 무서운 공포소설'인 <힐 하우스의 유령(The Haunting of Hill House)>(1963년에 로버트 와이즈가, 1999년에 얀 드봉이 각각 영화화한 작품이다)의 힐 하우스도 빠진 것에 대해서도 저자들의 해명을 요구하는 바다!

P.S. <인간이 상상한 거의 모든 곳에 관한 백과사전>을 재밌게 읽은 사람이라면 시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가 수집한 '신화와 민담과 판타지' <켈트의 여명>(서혜숙 옮김, 펭귄클래식코리아 펴냄)도 소중하게 집어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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