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자본에 잠식된 노동현장은 거대한 인권 사각지대"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자본에 잠식된 노동현장은 거대한 인권 사각지대" [인권오름] "용역 폭력 막으려면 노동자성 인정부터"
기획된 노조 파괴 흐름

노동현장에 용역 폭력이 등장한 것이 최근 일만은 아니다. 그럼에도 2010년 이후 노동현장에 나타난 용역 폭력을 주의 깊게 보아야 할 이유는 '노동조합 무력화'라는 의도에 따라 매우 공격적이고 폭력적인 형태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작업장에서 용역 폭력은 일시적이거나 일회적인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노동자 통제의 일환으로 활용되어 노사 관계를 비정상적인 상태로 고착화시킨다.

흔히 노사관계가 안정적이라고 할 때, 노동자와 사용자 간 분쟁이 없는 상태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노동자와 사용자가 고용형태, 노동조건 등 현장 문제를 교섭과 쟁의를 통해 풀어낼 수 있는 자율적이고 대등한 관계가 형성되어 있을 때 비로소 노사관계가 안정화됐다고 평가한다. 노사관계의 안정화 조건은 사용자와 대등한 교섭력·대항력을 가진 노동조합이 있을 때 가능하다. 왜냐하면 작업장에서 노동자들이 자유롭게 모이고 뭉치고 표현할 때 자본의 전횡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강한 노동조합을 기반으로 한 안정적 노사관계는 2008년 이후 지속되고 있는 불안정한 경제 상태 하에서 총자본의 입장에서는 장애요소가 되었다. 그리하여 총자본은 노동조합을 약화시키거나 완전히 무력화 시킬 수 있는 방식을 적극 고려하기 시작했다. 2010년 1월 1일 날치기 통과된 개악 노조법 '전임자 급여지급 금지와 타임오프제 도입',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의 허용과 교섭창구 단일화'는 노사관계 지형 변화를 이미 예고하였다.

이런 지형변화로 노조활동에 대한 통제와 복수노조 상태를 이용한 자본의 노조 개입전략이 적극 구사되었다. 서서히 노동조합을 무력화하기 위한 시나리오가 움직였고 2011년 신문 사회면을 장식한 발레오 만도, 케이이씨(KEC), 유성기업 등에서 나타난 노동조합 파괴 전략은 이런 맥락에서 진행되었다

■ 노동조합 무력화 흐름도 ■
노동조합의 투쟁에 대비한 사전 작업 및 필요한 인사조치 등 → 임금단체협상 및 2010년 법 개정 후 요구되는 노동조합의 특별단체교섭 등에 대한 교섭 거부 및 해태함으로써 노동조합의 투쟁을 유도 → 용역 투입을 통한 선제적·공격적 직장폐쇄 → 이후 생산재개 및 개별복귀 회유, 복수노조 설립 → 강력한 현장 통제, 대량 징계 및 손해배상

과거 노사관계에서 발생한 분쟁과 다르게 자본은 훨씬 공격적 태도와 수위를 넘어선 불법적 방어 전략을 통해 노동조합의 투쟁을 자극시키고, 개별 복귀를 종용하며, 노동조합의 투쟁을 무력화시켰다. 파업이 끝나고 현장에 복귀하더라도 노동조합은 힘을 갖기 힘들었다.

이 과정에서 자본은 경비용역업체와 계약을 맺고 이들의 폭력을 통해 작업장을 점거하고, 노동조합이 완전히 무릎을 꿇기 전에 직장폐쇄를 유지했다. 한편, 자본은 복수노조 설립을 통해 기존 조합원과의 징계나 손해배상 등에 차등을 둠으로써 노동자에 대한 장악력을 지속해 갔다.

용역경비 투입과 공격적 직장폐쇄

사업장은 노동자와 자본이 가장 직접적으로 겨루는 공간이다. 자본은 사업장을 노동조합에 점거당하면, 생산에 차질이 빚어지면서 압박을 당하고 주도권을 잡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자본은 어떻게든 노동조합을 사업장에서 몰아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판단을 했다. 이를 위해 자본은 대규모 용역경비의 동원을 선택했다.

당장의 생산에 차질이 있더라도 노동조합의 무력화가 자본의 절대 목표가 되는 것이다. 자본은 교섭을 지지부진하게 끌어가면서 노동조합이 투쟁의 강도를 점점 더 높여갈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노동조합의 투쟁이 본격적인 수위에 이르기도 전에 수백 명의 용역경비를 동원하여 노동자들을 현장에서 몰아냈다.

발레오만도의 경우, 단 며칠간의 태업에 대하여 사측은 직장폐쇄를 단행했고 용역경비 400여명을 투입해 현장을 통제했다. 케이이씨(KEC)의 경우도 노동조합이 전면파업에 들어가자 일주일 남짓 뒤에 노동자들이 잠든 기숙사에 용역경비 650명을 투입하여 노동자들을 끌어내고 직장폐쇄를 했다. 유성기업의 경우에는 용역경비가 일으킨 차량사고로 인해 노동자들이 중상을 입고 이에 항의하는 노동자들이 공장을 점거하기 시작하자 공권력을 동원해 노동자들을 몰아낸 후 용역경비로 공장을 틀어막았다. 그 과정에서 헤아리기 힘든 폭력이 난무하였다.

이렇게 직장폐쇄가 이루어진 후 현장 출입은 용역경비에 의해 가로막혔다. 자본은 노동조합이 완전히 무력화 되었다는 판단이 들기 전에는 직장폐쇄를 풀지 않았다. 케이이씨(KEC)의 경우 노조가 몇 번이나 파업철회 선언을 했음에도 직장폐쇄는 1년 가까이 지속되었고 노동부가 계속 권고를 해서 2011년 6월 13일에야 직장폐쇄를 철회했다.

발레오만도 역시 99일간 직장폐쇄가 유지되다가 법원이 직장폐쇄 효력정지 결정을 내리고도 6일이 지난 후에야 직장폐쇄가 철회되었다. 유성기업 역시 노동조합이 작업장을 복귀하겠다고 결정한 후에도 직장폐쇄는 유지되었다가 8월 31일 법원의 조정에 의해서야 노동자들이 업무에 복귀할 수 있었다.

업무 복귀 과정 역시 만만치 않았다. 자본은 노동조합의 투쟁이 수그러들었다 하더라도 조직력을 유지한 채 집단적으로 복귀하는 것을 철저히 막았다. 지속적인 개별복귀 회유와 대체인력을 활용해 공장을 가동하면서 파업을 무력화 시키는 한편, 파업에서 복귀한 노동자들이 투쟁하는 노동자들과 만나지 못하도록 용역경비를 통해 작업장을 감시하고 통제하였다. 이렇게 현장은 사용자와 용역경비에 의해 완전히 장악되었고, 노동자의 일터는 인권의 사각지대로 전락했다.

자본에 의해 장악된 노동현장, 거대한 인권의 사각지대

노사관계의 한 축이 무너지고 자본의 수중에 떨어진 작업장은 노동자들에게 더 이상 건강한 일터가 되지 못했다. 생산력을 높이기 위해 노동 강도는 강화되었다. 복귀한 노동자들은 공장 밖에서 투쟁을 지속하는 노동자들과 접촉할 수 없었고, 생산량을 위해 출퇴근도 없이 강제로 합숙노동을 해야만 했다.

사용자는 직장폐쇄를 철회한 후 바로 노동조합원 대다수를 징계했고, 파업 중에 복귀한 노동자들도 경중의 차이가 있었을 뿐 징계는 피할 수 없었다. 특히 노동조합 간부에게 해고, 정직 등 중징계를 통해 작업장에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반면 어용노조로 옮겨간 노동자들에게는 비교적 가벼운 징계를 내리면서 노조파괴 전략을 지속하였다.

또한 파업에 참여한 노동자들을 바로 현장에 근무시키지 않고, 교육 명목으로 사실상 징계조치를 했다. 케이이씨(KEC)는 7주간 집단 교육 과정에서 노동자들을 파업참가정도에 따라 네 등급으로 분류하여 다른 색깔의 옷을 입히고, 명심보감을 읽게 하며, 묵언수행을 시켰다. 그 과정에서 조합원들에게 퇴직을 강요했고, 교육을 참지 못해 회사를 그만두는 노동자들도 생겨났다.

유성기업의 경우에는 파업참가 수위가 높은 노동자들을 아예 현장에 복귀시키지 않고 분리시켜 교육을 진행하거나, 대기상태로 두다가 바로 징계절차에 들어가 중징계를 내렸다. 발레오 만도에서는 2박 3일의 화랑대 교육, 30킬로미터 행군, 걷기대회, 1박 2일 봉사활동 등을 통해 노동자들을 길들였다. 현장근무를 하는 것 외에 두 단계의 등급을 만들어서 일을 시키지 않고, 풀 뽑기나 페인트칠, 기계청소, 박스 닦기 등 허드렛일을 시켰다.

어느 사업장이든 작업장 곳곳에 감시카메라가 설치되어 노동자들을 감시했으며, 심지어 화장실을 가는 노동자들에게 용역경비가 따라 붙었다. 공장 안에서 이동조차 용역경비의 감시 하에 줄을 지어 이동해야 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20년 이상을 함께 일한 노동자들이 자본의 징계 위협과 용역감시로 인해 서로 만남조차 회피하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공장'이라는 공간 안에서 노동자와 사용자의 대등한 관계는 이미 사라졌다. 용역경비로 유지되는 사용자의 폭력이 그 자리를 대치하고 있다. 그럼에도 경찰은 사전 신고조차 되지 않은 용역경비의 배치와 그들이 행한 무자비한 폭력에 눈감았고 방조했다. 노동부는 노조의 파업을 불법이라 단정하기에 급급했다.

직장폐쇄와 이후 용역경비와 경찰력이 투입되면서 발생하는 폭력에 대해 노동부나 검찰은 노동조합의 불법쟁의행위에 대한 정당한 대항이라고 주장하였다. 노동자의 권리보다 자본의 이윤이 앞섰고, 노동자들에게 이루지는 사용자의 불법행위는 사용자의 방어권으로 정당화됐다. 노동자는 다치고 노동조합은 무너져갔다.

용역폭력 근절을 위한 방안, 노동자 권리의 인정에서부터

노동자들에게 이루어지는 폭력 그 자체도 심각하지만 '폭력'이라는 현상에 대한 대처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용역업체 몇 개를 처벌하고 현장에서 잡힌 용역경비 몇 명을 처벌하는 것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진짜 문제는 폭력이 자행되는 과정이 노사관계 평형의 축을 자본에게로 기울어지게 하는 결정적인 계기점이 되고 있다는 점과 공권력의 비호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때문에 노동현장에서 용역폭력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큰 원칙으로 사용자에 의한 노동자 폭력의 금지를 재확인해야 한다. 근로기준법은 사용자에 의한 폭력을 이유를 불문하고 금지하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사용자가 막대한 돈을 들여 휘두르는 용역경비에 의한 폭력이 난무하고, 그로 인해 노동자 권리가 짓밟히고 있다. 때문에 용역경비에 의한 것이든, 관리자에 의한 것이든 노사관계에서 노동자에게 행해지는 폭력은 사용자에 의한 폭력으로 규정하고 금지해야 한다.

또한 경비업법 규정의 정비와 개정을 통해 용역경비가 노동현장에 투입되는 것을 단속하고 경찰이 이를 방조하지 못하도록 하며 사용자의 대항행위인 직장폐쇄가 신고라는 간단한 절차만으로 용인되지 않도록 제도적 변화도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노동자의 권리에 대한 사회적 인정이다. 헌법이 노동3권을 보장하지만 현실에서 사용자가 휘두르는 사적 폭력에 의해 파괴되고 있다. 자본은 노동자의 단결권 자체를 부정하며 노조파괴를 위해 폭력을 휘두른다.

노동자의 권리 쟁취를 위한 투쟁이 당연한 권리로 인정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시작이며, 그 속에서 자본의 대항 행위가 방어적 수준에서 통제되어야 한다. 권리는 법 문구 속에 있을 때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당연한 것으로 인식될 때 '권리'로서 승인받을 수 있다.

*이 글은 '2011년 4.9통일평화재단 공모사업 <용역폭력 근절을 위한 정책대안마련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작성된 것이며 곧 보고서롤 발표될 예정입니다.

(이 글은 "자본의 사적 폭력에 의한 노동권 침해 실태"라는 제목으로 주간인권신문 <인권오름>에도 실렸습니다. <인권오름> 기사들은 정보공유라이선스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정보공유라이선스에 대해 알려면, 을 찾아가면 됩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원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2-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