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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전인 2004년 봄, 이라크 바그다드에 있는 동안 끔찍한 두통에 시달렸다. 취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올 즈음엔 항상 파김치가 되었다. 전 세계 중고차 전시장이 되어버린 바그다드 거리는 거대한 주차장이 되어 매연과 소음으로 몸살을 앓았다. 건조한 공기와 잿빛 풍경 때문만은 아니었다. 도로 곳곳을 막아선 거대한 콘크리트 방벽과 철망, 사방에 번득이는 경계의 총구, 머리 위를 선회하는 미군 헬리콥터와 한 블록을 돌아서면 나타나는 브래들리 장갑차 등에 일순간 전투가 벌어질 것 같은 긴장감으로 불안한 시간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언제 어디서 총알이 날아들까, 폭탄이 터질까, 대낮에 노상강도를 만나지 않을까 하는 불안, 심지어 검문 경찰조차 저항세력과 연계되어 있을지 모른다는 공포감에 쫓기고 짓눌렸다.
그 같은 전쟁의 긴장감을 수십 년간 끼고 살아온 이라크인들의 고통을 헤아리기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전쟁의 참화 위에서 독버섯처럼 자라는 끔찍한 무질서와 혼돈, 우리는 그 속에서 분노하며 절망하는 핏발 선 눈빛을 보았다. 전선은 미군과 저항세력 사이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전전(戰前)과 전후(戰後)를 가를 수 없는 '일상의 전쟁'에 그들은 숨죽이며 흐느끼고 있었다. 전쟁에 있어 파괴의 순간보다 절망과 폐허가 남기는 끔찍한 미래가 더 잔인하다는 진실을 확인하곤 헤어나기 힘든 무기력증을 느꼈다.
한국에 돌아와 불면과 우울증에 빠져있을 즈음 한국 정부는 미영 연합군을 제외하곤 가장 큰 규모의 전투병 추가 파병을 선언했다. 그리고 곧 청년 김선일이 처참한 시신이 되어 돌아왔다. 국내는 김선일의 죽음과 파병을 둘러싼 문제 등에 마치 벌집을 쑤셔놓은 듯했지만 얼마 가지 않아 죽음도 파병도 잊혀져 갔다. 이라크 뉴스가 신문의 주요지면에서 밀려난 것도 이미 오래되었다. 대다수 언론들은 미 대선에 임박하여 미군 사망자가 1,000명을 넘자 대선 국면에 미칠 정치적 파장을 집중 조명했지만, 같은 기간 숨진 이라크 민간인 수만 명의 죽음은 주목하지 않았다.
우리는 이미 오래 전부터 전쟁에 무덤덤해지고 죽음에 둔감해졌다. CNN 화면을 통해 전달되는 전쟁은 전자게임처럼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한다. 미국의 여류작가이자 문화비평가인 '수전 손탁'의 말대로 우리는 "사방이 폭력이나 잔혹함을 보여주는 이미지들로 뒤덮인 현대사회에 타인의 고통을 일종의 스펙터클로 소비"해 버린다. 그 전쟁터에선 수많은 무고한 생명이 쓰러지고 있는데 '타인의 고통'이 하룻밤의 '진부한 유흥거리'가 되어버렸다.
그 사이 이라크에서 민간인 납치와 살해가 잇따르자 신변에 위협을 느낀 취재진은 물론 평화활동가 상당수가 이라크를 떠났다. 이라크를 취재했던 한 국제인권단체는 '진실의 공백이 우려된다'는 메일을 보내왔다. 이라크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기록하고 증언할 이들이 떠나버려 진실을 전할 방법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가령, 당시 이라크 '팔루자'에서 자행된 미군의 학살이 서방언론의 흥미 거리가 되지 못한 것이 미군의 언론통제 결과만은 아닐 것이다. 전 세계가 어느새 전쟁을 국제관계학의 건조하고 차가운 틀 속에 중독되어 조망할 것을 강요한다. 이를 보면 아직 '야만은 인류의 것'이다.
한국전쟁 60년, 우리 사회는 지난 수 개월간 또 다시 전쟁의 총구 앞에 머릴 박고 선거와 각종 정치적 유, 불리를 즐기는 러시안룰렛을 했다. 달리 전쟁을 피해갈 길 없는 사람들조차 자신의 거처만은 모든 것이 공멸에 들어선 그 길에 나와 있다고 믿지 않는다. 누군가 평화를 말하거나 호전에 동의하지 않으면 포악스럽게 패배주의자로 몰고 좌익의 덫을 씌운다. 지난 10년간 어렵게 끌어낸 평화와 공존의 봄볕은 한순간 엄혹한 겨울로 돌아갔다. 전쟁 60년, 여전히 오늘의 대한민국을 살아내기가 무겁고도 춥다.
아랍의 인사말 '살람 알레이쿰'을 번역하면 "당신에게 평화를"이다.
이글을 읽는 당신에게 "살람 알레이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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