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즈베키스탄의 아무다리야 강변에서 흐르는 푸른 물길을 보면 내가 과연 중앙아시아 사막 한가운데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푸른 물줄기를 이용해 곳곳에 자두와 복숭아 과수원이 늘어서 있고, 밀밭은 황금물결로 굽이치고 하얀 눈송이 같은 목화밭이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이곳은 아주 오래전부터 농경이 발달하고 문명이 싹텄던 곳이다.
흔히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이집트 문명, 인더스와 황하 문명을 4대 문명이라 하지만 사실 이곳 중앙아시아의 아무다리아-시르다리아 강변 유역 또한 아주 오래된 인간의 거주지였다. 그래서 이곳을 트랜스옥시아나(옥시덴탈과 오리엔탈의 경계)라 부르며 문명이 동서로 퍼져나갔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다만 이곳이 서쪽으로 그리스, 동쪽으로 중국에서 멀어 역사적 기록이 빈약할 뿐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곳은 페르시아 제국의 아케메네스 왕조 당시 잘 알려져 있었고, 알렉산더에 의해 쫓기던 다리우스 3세가 최후의 망명처로 삼았던 곳이기도 했다. 알렉산더는 이곳에 박트리아 왕국을 건설해 그리스 최동단의 알렉산드리아라는 이름의 도시를 남겼다.
박트리아가 유라시아의 교차로 역할을 했기 때문일까? 허다한 민족들이 이곳에 거주하거나 지나갔다. 서양을 최초로 떨게 했던 스키타이족과 마사게트족 새족 월지족 등이 명멸했다. 그런데 그리스문명의 그레코-박트리아 왕국은 이들 새족과 월지족에 의해 멸망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언급된 민족 중 새(사카)는 인도북부의 석가족과의 불교적인 연관으로 인해 혹시 만들어진 역사이거나 가공의 민족으로 의심되기도 한다. 하지만 후자인 월지족은 박트리아를 통합하고 인도까지 영향력을 확대한 쿠샨왕조의 기원으로 역사에 확실히 기록되고 있다. 중국인들은 월지족의 다섯 부족 중 하나인 귀상의 이름이 나라의 이름이 되어 쿠샨이라 했다고 전한다. 이들이 바로 헬레니즘과 불교를 결합한 간다라문명의 주인공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중국인들은 어떻게 멀리 떨어진 월지족에 대한 정보를 이렇게 소상히 알고 있었을까? 월지족이 지금의 중국 감숙성 하서회랑지대에서 활동했던 흔치않은 인도-아리안계의 백인들이었다. 바로 중원 옆에서 기원전 3세기부터 기원후 1세기 까지 3백년 넘게 활동하던 민족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떻게 멀리 중앙아시아에서 대제국을 일으킨 것일까? 그리고 그들은 어떻게 실크로드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을까? 참으로 미스터리가 아닐 수 없다. (계속)
사진가,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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