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시아 역사에서 한반도와 만주 일대는 매우 중요한 지역이고, 특히 예맥한족으로 분류되는 사람들에 의해 수많은 나라가 만들어지고 멸망해 갔다. 그리고 만주와 한반도 북부는 맥족이, 한반도 남부는 한족이 역사공동체의 중심이었다는데 별 이견이 없다. 하지만 청동기 이후 공동체의 일원들 중에는 매우 이질적인 문화를 갖고 있었던 사람들도 있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눈에 띠는 것이 신라의 김씨 공동체이다. 신라를 명실공이 고대국가로 성장시킨 이 집단은 특유의 고분(적석목곽분)과 황금유물 주변인들과 구별되는 생김새와 언어로 인해 수많은 미스터리를 만드는 역사의 뜨거운 감자이기도 하다.
고대사는 문헌적으로나 고고학적으로 실체를 완전히 드러내기 어려운 분야이다. 그래서 일정부분 당대를 살아가는 우리 인간의 상상력으로 그 빈자리를 메우고 있다. 그리고 그 설의 대부분은 영영 밝혀지지 않을 가능성이 더 높다. 많은 학자들이 타임머신이라도 있다면 과거로 돌아가 보고 싶다는 꿈을 꾼다. 바로 2천 년 전 경주의 김씨 신라인들이 그런 꿈의 소재인 것이다. 지금까지 김씨의 독특한 문화가 중앙아시아 초원에서 시작됐고 그 주인공들은 흉노 선비 스키타이 계통의 아리안족이 아닐까하는 다양한 이론이 등장했다. 그래서 나는 여기에 하나의 가설을 더 보탤 생각이다. 그것은 지난번까지 이야기했던 월지족의 한반도 유입설이라 해야겠다.
지난번 기련산맥 밑 현 간쑤성 일대에서 활동하던 월지인들이 흉노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이주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모두 이동한 것이 아니고 일부는 남아 '소월지'로 이름되었다. 하지만 이들의 영지는 곧 흉노에 편입되어 흉노의 제후인 곤야와 휴도의 지역이 된다. 그렇다면 소월지인들은 어디로 간 것일까? 아마도 곤야와 휴도 둘 중 하나가 소월지인들의 공동체일 가능성이 높다. 특히 가문이 정확하지 않고 금으로 만든 동상(불상이라는 추정도 가능)을 경배했다는 휴도왕이 소월지인 계통이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특히 휴도왕의 아들 김일제는 성씨가 금이라는 점과 외모가 서구인이었다는 점에서 그들의 민족적인 특징을 증거한다.
한무제에게 김이라는 최초의 성씨를 받은 후 김일제는 분명 시안에서 죽었다. 하지만 그의 성씨인 김은 한반도 남부에서 나타났고 한반도인들은 꾸준히 그들의 성씨가 김일제로부터 유래했다는 기록을 남겼다. 하지만 어디서도 그 둘을 이어줄만한 역사적인 근거는 나오지 않았다. 여기서부터가 추정이다. 약 5만호 정도로 추정되는 휴도왕의 공동체는 한나라에 귀부하고 전에 살던 곳은 공지가 된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디로 간 것일까? 이들이 한무제에 의해 수행된 고조선 정벌과 한4군 설립에 관여했을 가능성이 있다. 당시 중원이 사용하던 정책 중 하나가 이민족 정벌에는 이민족을 사용하는 것이었다. 그 근거가 지금의 평양에서 발견된 동복과 동물문양의 장신구 그리고 고졸한 적석목곽분 따위의 증거들이다. 이렇게 낙랑에 자리잡은 이들이 시간이 흘러 낙랑인화되고 고구려와의 긴장과 기타 이유로 꾸준히 신라지역으로 내려갔다. 실제 신라인들도 고래의 변한족에 고조선유민, 석씨 계통의 해양인, 중국 진나라 계통의 유민 등 새로운 땅을 찾아 바다끝까지 온 사람들이 혼융되어 생겨난 역사공동체였던 것이다.
사실 역사적으로 월지인들이 정말 동쪽 한반도의 끝까지 진출했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다만 불쑥 한반도의 문화와 이질적인 초원문화가 등장하기에 수많은 상상을 한 결과물일 뿐이다. 하지만 같은 곳에서 서쪽으로 이동해 멀고 먼 아프가니스탄 지역에서 쿠샨제국을 건설했다는 것에 비해 월지인의 신라는 비현실적일까? 근대적인 국경이 만들어지기 한참전인 고대에 민족의 이동과 혼융은 일상이었을 것이다. 그 이동과 혼융이 오늘의 인류와 민족을 만들어 냈다는 것이 더 자연스런 추정이다. 그래서 우리 혈관에 타고 흐르는 다양한 유전자를 획득하게 된 것이니 말이다. 나는 오늘도 꿈속에서 경주를 거니는 월지인들을 만나고 있다.
사진가,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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