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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봐, 내 안의 낭만이 이렇게 커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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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봐, 내 안의 낭만이 이렇게 커졌어!" [금정연의 '요설'] 아이헨도르프의 <방랑아 이야기>②
☞ 황당한 소설들의 계보, '요설' 지난 글들 모아 보기

<제21-2장>
이토록 낭만적인 마음 (2)

* 지난 이야기(Previously On Yo-Seol)
옛날하고 아주 먼 옛날, 독일의 한 마을에서 한가한 나날을 보내며 무위도식하던 '나'는 일중독에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아버지에 의해 집에서 쫓겨나고, 바이올린 하나를 등에 진 채 거친 세상을 유랑하게 된다. 우연히 치명적인 매력을 지닌 귀부인들의 고급 마차를 얻어 타게 된 '나'는 아름다운 낯선 성에 도착하고, 그곳에서 정원사 보조로 자연을 벗 삼아 일하며 신분상승을 꿈꾼다. 한편 '나'는 언제나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누군가의 시선을 느끼는데, 그것이 귀부인 중 좀 더 젊고 좀 더 아름다운 아가씨의 것임이 얼마 지나지 않아 밝혀진다. 적어도, 그는 그렇게 생각한다. 계속해서 그녀는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그를 지켜보고, 하인을 통해 포도주를 전해주는 등 순진한 사내의 마음을 뒤흔든다. 그의 마음에 걷잡을 수 없는 욕망의 불씨가 피어오르고, 그것은 이내 그 자신도 감당할 수 없는 불꽃이 되어 번진다. 그렇게 그는 희망과 절망의 양극단을 미친 듯이 오가며 금지된 사랑을 키워 가는데….


- 제2화 -

악몽 같은 일요일이 지났다. 그러니까 그가 사랑하는 아름다운 아가씨와 잘생긴 귀족 청년들의 뱃놀이를 위해 노를 저어야 했던 굴욕적인 일요일이. 심지어 그는 그들을 위해 한 곡조 뽑기도 했는데, 그건 바로 이런 노래였다.

내 인생에서
차라리 눈에다 한 방 발길질을 해 주고 싶은
저 사람들에게
왜 나는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이는 것일까
예전 취해서 몽롱해 있던 동안은
나 행복했지만
지금 나의 이 비참함을 알고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The Smiths, 'Heaven Knows I'm Miserable Now', 성문영 번역)

아니면 이런 노래였던가.

옆구리에 가시를 안은 듯 언제나 고민이 떠나지 않는 소년
하지만 그 차가운 증오 뒤에는 사랑을 향한
실로 살인적일 정도의 무시무시한 갈망이

(The Smiths, 'The Boy With The Thorn In His Side', 성문영 번역)


▲ <방랑아 이야기>(요제프 폰 아이헨도르프 지음, 정서웅 옮김, 문학과지성사 펴냄). ⓒ문학과지성사
아무려나, 더는 견딜 수 없는 비참함에 풀밭에 쓰러져 울었던 그 일요일은 지나갔다. 그리고 며칠 후, 아침 댓바람부터 집사장이 '나'를 찾는다. 집사장은 '나'에게 이름과 출신과 글을 쓰고 읽고 셈할 수 있는지를 묻고, '나'는 할 수 있다고 대답한다. 그러자 집사장이 말한다. 새 세관원으로 뽑힌 것을 축하한다고. 마님께서 그의 성실한 품행과 특별한 공적을 높이 사시어 죽은 세관원의 자리를 맡기셨다는 것이다(죽음은 낭만주의의 단골손님이다).

잠깐, 그런데 '성실한 품행과 특별한 공적'이라고? 그 또한 놀라긴 마찬가지어서, 재빨리 지금까지의 자신의 행동과 태도를 돌아본다. 많은 시간이 필요하진 않았다. 정원사 보조로 일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국은 집사장의 말씀이 지당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과연 셈이 빠른 친구다. 세관원이 될 만하다.

나는 재빨리 지난 페이지를 들춰본다. 많은 시간이 필요하진 않았다. 소설은 20여 페이지도 채 지나지 않았고, 그가 정원사로 일하기 시작한 것은 고작 10여 페이지 전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문장을 발견했다.

그녀를 보지 못한 채 많은 날들이 흘러갔다. 그녀는 더 이상 정원에 나오지 않았다. 창가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정원사는 나를 게으름뱅이라고 윽박질렀다. 나에겐 세상만사가 다 귀찮아졌다. 하느님이 만드신 세상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내 자신의 콧잔등조차 짜증이 날 지경이었다. (<방랑아 이야기>(요제프 폰 아이헨도르프 지음, 정서웅 옮김, 문학과지성사 펴냄) 24쪽)

하지만 더 이상 애꿎은 콧잔등에 짜증을 낼 필요는 없었다. 그는 그렇게 '생각보다 빨리' 세관원의 관리가 되었고, 성공의 첫 스텝을 밟았다. 아름다운 아가씨에게 신의 가호가 있기를! 한 순간도 지체하지 않고 세관원의 거처로 옮긴 그는 선임자가 남긴 물품들을 챙긴다. 노란 점박이 무늬가 있는 붉은 색의 화려한 잠옷, 푸른 실내화와 잠잘 때 쓰는 모자, 그리고 대롱이 긴 담뱃대까지. 과연 낭만주의의 거장답게 색채를 아끼지 않는 아이헨도르프다(다자키 쓰쿠루는 순례를 떠나기보다는 방구석에 앉아 낭만주의 소설을 읽는 편이 더 나았을 것이다). '나'는 잠옷과 모자를 쓰고, 손에는 담뱃대를 든 채 벤치에 앉아 지나가는 행인들을 바라본다. 그리고 생각한다.

내 소망은 단지, 내 앞날이 신통치 않으리라고 늘 말하던 고향 사람들이 몇 명이라도 이곳을 지나며 내 모습을 보아주는 것이었다. 잠옷은 내게 기막히게 어울렸고, 요컨대 모든 게 유쾌하기 짝이 없었다. 거기 앉아서 나는 이것저것 많은 생각을 하였다. 모든 것은 시작이 어려운 법이다. 귀족들의 생활이란 참으로 쾌적한 것이구나, 등등. 그리고 은밀히 결심하였다. 이제 방랑을 중단하고 나도 남들처럼 돈을 벌어 장차 세상에서 그럴듯한 무언가를 이루어내야지, 하고. 그러나 그 사이에도 나의 결심, 걱정, 업무를 떠나 그 아름다운 아가씨를 한시도 잊은 적이 없었다. (30쪽)

드디어 이 한심한 사내가 정신을 차리려는 것일까? 아름다운 아가씨의 사랑을 얻기 위해 성공을 향해 달려가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채 마침내 도달한 정상에서 이제는 달라진 눈높이 덕에 어느덧 사랑의 포로가 된 그녀를 버리고 다른 아가씨, 이를 테면 영주의 딸이랄까 왕국의 공주랄까 하는 오만하고 차가운 아가씨와 결혼하게 되는 걸까? 그리하여 복수심에 불타는 그녀가 얼굴에 점을 찍고 나타나 영문도 모르는 그를 철저하게 부숴 버리는, 찜찜하지만 어째서인지 눈을 돌릴 수 없는 이야기가 펼쳐지려는 것일까? 그럴 리가. 그의 결심은 불과 4페이지 후에 흔들리게 되는데, 물론 아름다운 아가씨 때문이다.

어느 저녁, 그는 애꿎은 문지기 영감의 멱살을 잡고 흔든다. 사냥을 떠나는 귀족들을 바라보며 "아 정말 고상한 일이로구나, 사냥이란 것은!"하며 감탄하고 있는 '나'에게, 사냥이란 별로 고상할 것도 없는 중노동이라며 눈치 없는 영감이 초를 쳤기 때문이다. 내심 그를 미친놈이라고 생각하던 문지기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고, 감정을 배설한 그는 통쾌한 웃음을 터트리며 집을 나선다. 아가씨에게 꽃다발을 바칠 시간이 되었던 것이다. 바친다고 해봐야 그녀가 지나가는 산책길 정자에 그저 아무도 모르게 꽃다발을 놓을 뿐이지만, 그녀가 그것을 가져간다고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흐뭇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확실히 정상은 아니다.

그런 그 앞에 그녀가 우연히 모습을 드러낸다(나는 지금 '우연히'라는 단어를 쓰지 않으려고 무척이나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그렇지 않다면 당신들은 모든 문단에 박힌 '우연히'라는 단어를 읽어야 했을 것이다). 마침 그녀의 품에는 그가 어제 바친 꽃다발이 들렸다. 그녀가 꽃다발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운명의 여신에게 자신을 맡긴다. 충동적인, 그러나 열정적인 고백을 한 것이다.

"아가씨, 이 꽃다발도 받아주세요. 제 꽃밭의 모든 꽃, 아니 제가 가진 모든 것을 다 드리겠습니다. 오 당신을 위하는 일이라면 불 속엔들 뛰어들지 못하겠습니까!" (34쪽)

하지만 생각과 달리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마치 화가 난 듯 그를 노려보았으며, 사냥꾼이 떠들썩하게 지껄이는 소리가 들리자 그의 손에서 꽃다발을 낚아챈 뒤 아무 말 없이 구부러진 모퉁이 길로 사라져버렸다. 모퉁이라니, 그는 절망한다, "그녀의 사랑을 얻기 위해 나는 얼마나 더 많은 모퉁이를 돌아야 하는가? 얼마나 더 많은 것을 배워야 하는가? 이토록 많은 사랑이 내 안에 있는데?" (The Verve, 'Lucky Man')

그날 저녁 이후, 그의 마음에서 안정과 휴식이 사라진다. 성공에 대한 욕구도 마찬가지다. 그는 까닭 없는 불안과 행복에 대한 근거 없는 예감 속에서 그저 흔들릴 뿐이었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일도 좀처럼 손에 잡히지 않았다. "8이란 숫자는 널따란 머리 장식에 코르셋을 바싹 조여 맨 나이 든 숙녀를 연상시켰고, 못된 7은 영원히 뒤쪽을 가리키는 이정표 혹은 교수대를 떠올리게 했던 것이다." 그를 가장 자주 놀라게 하는 것은 9였는데, 그것은 물구나무를 서며 눈 깜짝할 사이에 6으로 변했고, 2는 마치 물음표처럼 그를 향해 이렇게 묻는 것만 같았다.

"결국 무엇이 될 셈이냐, 이 가련한 0아! 그녀, 그 날씬한 1이자 모든 것인 그녀가 없다면 네놈은 영원히 아무것도 아닐걸!" (35쪽)
(BGM : Placebo Feat. David Bowie - 'Without You, I'm Nothing')


그는 다시금 담배나 피우며 공상에 잠기는 허랑방탕한 생활로 돌아간다. 번역서에서는 '방랑아'로 번역된 원제의 '타우게니히츠Taugenichts'가 건달, 혹은 쓸모없는 놈이라는 뜻을 가진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그는 건달이고, 쓸모없는 놈이고, 방랑아다. 한 마디로, 빌어먹을 낭만주의자다. 결국 다시금 길을 떠난 운명이었다는 말이다.

지금까지 그의 연애가 그랬듯, 그 또한 하나의 오해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어느 날 하녀가 그에게 성에서 열리는 가장무도회에 아름다운 아가씨가 정원사로 분장할 예정이니 꽃을 준비해달라고 전했다. 아가씨가 직접 꽃다발을 받으러 오겠다고도 했다. 세상을 다 가진 듯 들뜬 마음으로, 꽃다발을 챙긴 그는 그녀를 만나러 간다. 약속시간보다 일찍 도착한 그는 나무 위에 숨어 그녀가 오기만을 기다린다. 그리고 기대했던 아가씨 대신, 늙은 아가씨가 온 것을 보고 화들짝 놀란다. 도대체 뭐지? 고민하던 순간 성 쪽에서 세레나데가 들려왔다. 사람들이 모여 있는 가운데, 늘씬한 키의 귀공자가 군복 차림에 번쩍이는 훈장을 단 채 아름답고 당당한 모습으로 발코니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가 거기에 있었다. 그가 그토록 기다렸던 아름다운 아가씨가, 젊은 장교의 손을 잡은 채, 사람들의 환호를 들으며, '나'따위는 감히 다가갈 수 없는 곳에, 그렇게 서 있었다. 사람들이 만세를 불렀고, 참지 못한 그 역시 사람들을 따라, 혼신의 힘을 다해 만세를 불렀다.

그때 나는 문득 알아차렸다. 원래 꽃을 원했던 사람은 나이 든 여자였다는 것, 그 미인은 오래 전에 결혼하여 나 같은 건 생각지도 않았다는 것, 따라서 나 자신은 그야말로 지독한 바보였다는 것을.

이 모든 것이 나를 깊은 사색의 나락으로 몰아넣었다. 나는 고슴도치처럼 생각의 가시에 휩싸였다. 성으로부터는 아직도 춤곡 소리가 간간이 들려왔다. 구름은 쓸쓸하게 어두운 정원 위로 흘러갔다. 나는 올빼미처럼 나무 위에 앉아 행복을 잃은 황량한 마음으로 꼬박 밤을 지새웠다. (44쪽)

그리하여 그는 다시금 예전의 방랑욕이 다시 찾아오는 것을 느낀다. 아련한 슬픔, 기쁨, 크나큰 기대, 뭐 그런 것들. 동시에, 아름다운 아가씨가 지금쯤 비단 이불을 덮고 (장교와 함께) 꽃에 묻혀 잠들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는 아가씨를 위해 준비했던 꽃바구니를 공중으로 던지며 외친다. "그렇다. 나는 이곳을 떠나야 한다. 영원히, 하늘이 푸른 곳이면 어디까지든!" 아이헨도르프는 꽃들이 흩어진 모습을 묘사하는 일을 잊지 않는다. "꽃들이 나뭇가지며 푸른 잔디밭에 흩뿌려진 모습은 정말로 아름다워 보였다."(45쪽)

그의 마음속에서 '참된 음향'이 울려왔다. "그렇다. 이리 오너라, 나의 충실한 악기여. 우리의 왕국은 이런 세계가 아니다!" 그는 외치고, 또 다시 노래했다. 이번에는 이런 노래를.

모든 것은 열려있어
영원한 건 없지
강물은 바다가 되고
바다는 너를 집으로 이끄네
집이란 마음이 머무는 곳
하지만 너의 마음은 방황하지
다리들 사이를 부유하는 마음은
결코 돌아가지 않으며
불타는 다리를 바라보네

{코러스}
너는 물속을 떠도는 유목이야
조각, 조각, 조각들로 부서지는
텅 비고 아무 쓸모도 없는 그런 유목
폭포는 너를 찾고, 감싸고, 이윽고 갈아버리겠지
(Travis, 'Driftwood')

그리하여 본격적인 모험이 시작된다. 마침내 대면한 '진짜' 세상과 현실의 악당들, 음모와 속임수가 난무하는 비열한 거리를 자신의 바이올린과 천재성에 의지한 채 걸어가는 음유시인의 너무나 낭만적인 모험이…라고 하면 너무 멀리 간 이야기고.

'나'는 과연 그녀를 잊을 수 있을까? 새로운 사랑을 만날까? 살아남을 순 있을까? 그런데 그녀 역시 그에게 관심이 있었다는 느낌은 그저 착각에 불과했던 걸까? 젊은 장교와 있는 모습을 보고 그녀가 결혼했다고 내린 결론이 너무 섣불렀던 건 아닐까? 우리의 주인공을 기다리는 모험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기대하시라, 개봉박두!

다음 회에 계소ㄱ…
어, 잠깐만요.





시청자 여러분께 알립니다. 총 3회로 기획되었던 <방랑아 이야기>의 서평은 저조한 시청률과 기타 제작상의 문제로 인해 조기종영 될 예정입니다. 그동안의 애정에 감사드리며 앞으로 더 나은 작품으로 찾아뵐 것을 약속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아쉽지만 그렇게 되었다. 그러니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다음 회야말로 이 한가한 건달의 '진정한' 모험이 그려질 예정이었는데, 사실 PPL을 구하지 못했을 때부터 이런 결말을 예상하긴 했다, 던져 놓은 '떡밥'을 재빨리 수거하는 것으로 마무리해야겠다.

- '나'는 과연 그녀를 잊을 수 있을까? : 잊을 리 없다.
- 새로운 사랑을 만날까? : 새로운 여자들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사랑은 아니다.
- 살아남을 순 있을까? : 주인공이잖아.
- 그녀 역시 그에게 관심이 있었다는 느낌은 그저 착각에 불과했던 걸까? : 아니다.
- 젊은 장교와 있는 모습을 보고 그녀가 결혼했다고 내린 결론이 너무 섣불렀던 건 아닐까? : 섣불렀다.
- 우리의 주인공을 기다리는 모험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 전형적인 동화+로맨틱 코미디. 약간 억지스럽긴 하지만, 깜짝 반전도 있다.

하지만 그의 (외적인) 모험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의 정신적인 모험, 끝없이 극단을 오가는 마음의 여정이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 모두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그는 길 위에서도 여전히 흔들리고, 잠에 빠지며, 바보처럼 순응하고, 광대처럼 돌발행동을 한다. 이 모든 것이 낭만주의의 특징이다. 내게 시간이 좀 더 있었다면 자세히 풀어서 설명할 수도 있었을, 하지만 실제로는 하지 않았을 거 같은 그 특징은 다음과 같다.

그는 자기 자신에게 기댈 수밖에 없었고 자신 속에서 모든 근거를 찾아야만 했다. 개인은 그 스스로에게 끝없이 중요하고 끝없이 흥미로운 존재가 되었다. 그는 세계의 체험을 자신의 체험으로 대체하였으며, 그리하여 결국 내적인 움직임, 사고와 감정의 흐름, 어느 한 정신적 상태에서 다른 정신적 상태로의 이행과정을 외부적 현실보다 더 현실적이라고 느끼게 되었다. 개인은 세계를 단지 자신의 체험을 위한 질료이자 바탕으로만 간주하였고, 또 세계를 자기 자신을 얘기하기 위한 구실로 이용하였다. (…)

세계는 내면적 움직임의 단순한 계기가 되고 예술의 체험은 내용이 한순간 그 속에서 형태를 얻게 되는 우연한 용기(容器)가 된다. 바꾸어 말하면 지금까지 사람들이 낭만주의의 기회원인론(Occasionalismus)이라고 불러온 사고방식이 생겨나게 된다. 기회원인론이란 현실을 일련의 실체가 없고 본질적으로 정의내릴 수 없는 기회로, 정신적 생산성을 위한 단순한 자극으로 분해시키는, 즉 현실을 오직 주체가 자신의 존재와 자신의 본질성을 확인해보기 위해서만 그렇게 있다고 여기는 상황으로 해체시키는 관점이다. 그 자극들이 더 애매모호하고 분위기적·'음악적'이면 그럴수록 체험하는 주체가 겪는 반응의 진폭은 더욱 격렬하며, 또 세계가 파악 불능이고 변덕스럽고 실체가 없으면 없을수록 자신의 타당성을 획득하기 위해 싸우는 자아는 더욱 강하고 자유롭고 자율적이라고 느끼게 되는 것이다. (아르놀트 하우저,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3>(염무웅·반성완 옮김, 창작과비평사 펴냄) 236~237쪽)


▲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3>(아르놀트 하우저 지음, 염무웅·반성완 옮김, 창비 펴냄). ⓒ창비
그것은 우리에게도 낯선 생각이 아니다. 실제로 근대 이후의 모든 예술은 낭만주의의 영향을 지우지 못했다고 하우저는 말한다. 비단 예술뿐일까. "직접적인 체험과 기분에 대한 신뢰, 순간과 순간적으로 스쳐지나가는 인상들에 대한 탐닉" 같은 낭만주의의 몇몇 특성은, SNS에 탐닉하는 오늘의 현실을 가리키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계몽주의의 문학이 시민을 추켜세웠을 때는 자기보다 높은 신분에 대항하기 위해 다소간은 논쟁적 색조를 띠고 있었다. 그런데 낭만주의에 이르러 비로소 시민은 너무나 자명한 인간의 기준이 된 것이다"(230쪽)과 같은 지적은 또 어떤가? 어쩌면 우리는 낭만주의라는 관점 아래에서 오늘 우리의 망탈리테를 분석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아니다. 아마 앞으로도 안 할 거 같다.

그러니 이렇게 말하는 건 어떨까. <방랑아 이야기>에 도달해 우리는 비로소 우리와 닮은, 그렇기에 한심한 어떤 주인공의 탄생을 목격하게 되었다고.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 음악과 소설, 그리고 우리의 삶이 모방하고 있는 낭만주의의 전형이 그곳에 있었다고. 당신이 아무리 비웃고 손사래를 쳐도, 당신 안에도 이미 하나의 낭만주의자가 숨어 있다고.

어쩌면 그것은, 우리 마음의 드라마는, 사랑과 증오와 실망과 기대를 둘러싼, 불안과 근거 없는 희망을 쉼 없이 왕복하는 그 이야기는, 결국 똑같지만 자신만은 다르다고 생각하는 그 낭만적인 믿음은, 앞으로도 좀처럼 끝나지 않을 지도 모른다. 우리의 건달이 불렀을 법한, 이 노래의 가사처럼 말이다.

오늘의 마지막 곡, 스미스가 부릅니다. '어젯밤 누군가 나를 사랑해주는 꿈을 꾸었네' 들으며 인사드릴게요. 모두 아름다운 꿈들 꾸시길.



어젯밤 나는 꿈을 꾸었다
누군가 나를 사랑하는 꿈을
희망이 없는……… 하지만 불행도 아닌,
그저 지금까지와 다를 것 없는 똑같은 기대의 실패를
어젯밤엔
정말 누군가가 나를 안아 주는 것 같았다
희망일 것도……… 그렇다고 손해일 것도 없는,
또 다시 경험한 허무한 기대
그러니, 이젠 말해 다오
얼마나 더 이 꿈을 견뎌내야 하는 것인지
얼마나 더 이 고통이 지나야
진짜 사랑을 얻을 수 있는지
이건 진부한 얘기………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결코 끝나려 하지 않는다
지겨운 스토리라는 걸……… 나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The Smiths, 'Last Night I Dreamt That Somebody Loved Me, 성문영 번역)

▲ The smiths. ⓒ출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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