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브로 봄이 오는 소리를 듣는다. 눈 밑에서 개울물이 흐르기 시작하고, 새싹이 겨울잠에서 깨어난다. 하나 아직도 바람은 차고, 눈이 얼마나 더 내릴지 알기 어렵다. 입춘이 지났으니 머지 않아 날이 풀릴 것은 확실하다. 내일이면 오랜만에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진다. 이산가족이 만나 회포를 푸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겨울을 넘는 봄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중단됐던 상봉이기에, 재개되려다 막판에 무산됐던 상봉이기에 그만큼 의미가 크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산가족 상봉을 성사시켜 “남북관계에 새로운 계기의 대화의 틀”을 만들자는 ‘희망’을 표현한 만큼 상봉 이후에 대한 기대도 크다. 북은 ▲비방·중상 중단 ▲군사적 적대행위 중지 ▲핵재난 방지 등 ‘중대제안’이 실현돼야 이산가족 상봉이 가능하다며 이 기대에 일단 찬물을 끼얹었다. 그러나 며칠 후 중대제안 중 비방·중상 중단에만 합의가 됐는데도 불구하고 국방위원회가 이산가족 상봉에 나선 만큼 기대는 오히려 더 부풀었다.
하지만 난기류도 존재한다. 박근혜 정부의 지향점이 불명확하다. ‘통일대박’론이 대박을 터뜨리고 있지만, 어떤 통일을 구상하는 것인지, 어떤 경로로 그 통일에 도달할지는 미지수로 남겨져 있다. 이산가족 상봉이 ‘새로운 남북대화의 틀’로 이어지고, 남북경협과 교류로 연결되어, 남북 간에 신뢰를 쌓게 될지 아직은 불확실하다. 정부 일부에서이지만 장성택 처형 이후 “북한 정세 유동성과 불확실성”이 커져 이에 대비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꾸준히 있는 것도 지켜봐야 할 일이다. ‘유동성과 불확실성’에 대비하기 위한 한미채널이 구축되고 중국을 견인하려는 노력도 끊기지 않고 있으며 최근에는 ‘한반도 클럽’까지 발족했다. ‘새로운 남북대화의 틀’이라는 가능성을 내비친 박근혜 대통령은 같은 기자회견에서 북의 핵개발이 “통일을 가로막을 뿐 아니라 세계 평화를 위협”한다는 인식을 보였다. 따라서 북이 비핵화를 위한 진정성 있는 조치를 취해야 평화와 공동번영을 위한 다른 조치가 가능하다며 북의 비핵화가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대화’가 이뤄져도 핵문제가 또 다른 장애물로 등장할 수 있는 것이다. 미국의 오바마 정부는 박근혜 정부와 미묘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김정은 정권에 대한 평가에서 차이가 있다. CIA와 국방부 및 국무부 내의 정보부 등 16개 정보기구의 정보분석을 총괄하는 연례보고서인 『미국 정보사회의 세계위협분석』은 “북의 권좌를 차지한 지 2년이 지난 김정은은 유일지도자와 최고결정권자로서의 지위를 더욱 공고화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유동성과 불확실성’을 강조하는 한국 정부의 인식과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북의 군사력에 대해서도 ‘위협’을 강조하는 박근혜 정부와는 온도 차이가 확실하다. “재래식 군사력의 열세 때문에 북한 지도자들은 억제와 방어에 초점을 두고 있다. 평양의 관점에서는 자신의 핵능력이 억제 및 국제적 명성, 강압적 외교를 위한 것이라고 우리는 오래 전부터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유동성과 불확실성’을 강조하는 박근혜 정부는 북과 대화를 재개하여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공동으로 추진하고 있는 반면, 북 정권이 공고화되고 있다고 평가하는 오바마 정부는 대화를 거부하고 있다. 북의 ‘위협’을 강조하는 한국 정부는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위해 판문점에서 북과 적십자 실무접촉을 가졌지만, 북 군사력의 방어·억제성을 인정한 미국은 같은 날 (그리고 그 전 날인 4일) B-52 두 대를 괌 공군기지에서 파견해 중국이 최근 설정한 방공식별구역을 통과하여 군산 직도 상공에서 훈련을 실시했다. 13일 방한한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은 이산가족 상봉을 위해 한미연합군사훈련을 며칠 연기하라는 북의 요구를 명확히 거부했고, 그 다음 날 남북은 군사훈련과 상관없이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진행하자고 합의했다. 이 묘한 불일치가 향후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여러 가지 가능성이 여전히 열려 있지만 북의 최근 변화를 현실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미래를 예측하는 것보다 중요할 것이다. 김정은의 권력장악에 대한 평가는 다를 수 있더라도 노동당과 국가기구가 정상화되고 있다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시간이 갈수록 북의 핵능력과 미사일 능력이 향상되고 있다는 것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북의 경제상황에 대한 구체적 평가에서는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1996년 200만 톤까지 떨어졌던 북의 식량 생산량이 작년에는 500만 톤을 넘어서면서 두 배 이상 증가했다는 데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유엔 세계식량계획(WFP)는 쌀과 옥수수 등의 추수 후 손실률이 15%라고 가정하여 북의 식량 생산량을 추산하는데, 이는 아프리카의 평균 손실률을 상회하므로, 정확한 식량 생산량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하여 북의 현실은 붕괴론과 제재론을 무색하게 한다. 변화하는 현실의 역관계와 이에 대응하는 정책의 조합이 미래를 구성한다. 정책이 현실에 부합할 때에야 그 정책은 미래를 이끄는 힘을 발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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